제117화
“역시 차가 좋아서 그런지 승차감이 끝내주네. 나도 돈 모아서 이런 차나 한 대 살까?”
조수석에 앉은 저승사자의 말에 인호가 피식 웃는다.
“저승사자가 세속에 물들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힘들게 일하는데 조금 즐겨도 되잖아.”
“결론은 어떻게 났습니까?”
“하아-, 그게 좀 곤란하다. 죽어야 할 자가 살고, 살아야 할 자가 죽었어. 그렇다고 죽었어야 할 자가 멀쩡히 살아있는데 죽일 수도 없지.”
인호가 차를 세우고 내린다.
“요즘 여기 자주 오네요.”
인호와 저승사자가 도착한 곳은 신성 병원이었다. 최근에는 박주완과 황동호, 불계가 입원하고 있을 때 병문안을 하러 몇 번 왔었다.
VIP 병동 전용 엘리베이터로 걸어간다. 엘리에베이터 앞을 지키고 있던 가더들이 인호를 보고 살짝 고개 숙인다. 신성 그룹의 오형민 회장과의 친분 덕분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VIP 병동으로 올라간다.
“수간호사님 안녕하세요.”
“인호 씨 오셨어요.”
“이것 좀 나눠 드세요.”
빵이 가득 담긴 봉지를 건네니 수간호사가 환하게 웃는다.
“올 때마다 이러시니까 선생님들이 인호 씨 올 때만 기다리잖아요.”
“아름다운 선생님들이 절 기다린다니까 설레는데요.”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좋지요.”
“휴게실로 가요.”
수간호사와 함께 간호사들 전용 휴게실로 들어간다.
“그분들 모두 퇴원했는데 무슨 일로 오셨어요? 또 아는 분이 입원했어요?”
“그건 아니고요. 뭘 좀 알아보려고요. 수간호사님. 며칠 전에 김한수라는 사람 입원했죠?”
“김한수 환자요? 네. 아는 사이예요?”
“조금요. 그 환자 지금 어떤 상탭니까?”
수간호사가 인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원래 이런 것 알려주면 안 되는데 좀 많이 심각한 편이에요.”
“그래요?”
인호의 옆에 서 있는 저승사자가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영체화하고 있었기에 수간호사는 저승사자를 볼 수 없었다.
커피를 마신 후 휴게실을 나선다.
“선생님. 정말 가능성이 없는 건가요?”
반대편에서 의사와 중년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확실하게 해 드릴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지만…….”
“선생님. 제발 부탁드려요. 우리 한수 꼭 살아야 해요. 아시잖아요. 우리 한수 3대 독자예요.”
김한수의 어머니인 것으로 보였다.
의사가 위로의 말을 건네고 멀어지자 김한수의 어머니가 벽에 등을 기댄다. 고개를 숙인 채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데 이내 눈물이 흘러내린다.
인호가 가만히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저승사자에게 말한다.
“사자님.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어떻게?”
“본래 죽었어야 할 김한수의 상태가 안 좋다고 하니 곧 죽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영이 육을 떠나는 순간 다른 김한수 씨를 육에 밀어 넣는 겁니다.”
“그럴 수 없다. 안 될 일이야.”
당연한 말이지만 망령이 다른 이의 육체를 차지하면 안 된다.
“하지만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 죽어야 할 김한수는 죽고, 살아야 할 김한수는 사는 것 아닙니까.”
저승사자가 대답하지 못한다.
“일단 상제께 말씀이라도 올려보세요. 상제께서도 난처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한데-. 그래. 네 말대로 일단 말씀은 드려 보마.”
* * *
“아니. 도대체 왜 싫다는 겁니까?”
인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김한수를 바라본다. 김한수가 순박한 미소를 짓는다.
“제가 살겠다고 다른 사람의 몸을 차지해서야 되겠습니까. 나하고 이름이 같다는 그 사람에게도 가족이 있지 않겠습니까.”
“한수 씨. 한수 씨 사고 났을 때 그놈 만취 상태였어요. 엄밀히 따지면 그놈은 살인자예요.”
만취 상태에서 김한수가 탄 오토바이와 충돌하고 전봇대에 들이받은 것이다.
“정작 죽어야 할 놈은 그놈인데 아무 죄 없는 한수 씨가 죽은 거예요.”
정확히 말하자면 저승사자의 실수 때문에 김한수가 죽은 것이다. 저승사자가 김한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면 크게 다쳤겠지만 죽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살고 싶지 않아요?”
“살고 싶죠. 하고 싶은 것도 많고요. 소영이하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고요.”
“그건…….”
인호가 말을 하려다 입을 닫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말을 꺼낸다.
“병원에 있는 그놈 한수 씨하고 사주가 같아요. 그래서 한수 씨가 들어갈 수 있는 최고의 몸이에요. 아무 몸이나 막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물론 진짜 가족이 아닌 이들과 지내는 것 불편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일단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운 좋아 부자 부모 만나 평생 고생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개망나니요.”
혹시나 싶어 흥신소 유정우를 통해 병원에 있는 김한수에 대해 조사해 보았다. 조금 전 말한 것처럼 ‘개망나니’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개차반이었다.
“한수 씨가 그 몸에 들어가는 게 그놈 부모님을 위해서도 더 좋은 일이에요.”
“그래도 남의 몸에 들어가는 건 조금 그럴 것 같아요.”
인호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토해낸다.
“그럼 이대로 저승으로 갈 거예요? 후우-, 정말 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한수 씨가 사랑하는 정소영이 오재영이라는 친구하고 바람이 났어요. 딱 봐도 한수 씨 사고 나기 전부터 그렇고 그런 관계였던 것 같아요.”
“그, 그 말 사실인가요?”
“내 눈으로 직접 봤어요. 한수 씨 죽었으니까 보험금으로 돈 많이 받았겠네요. 한수 씨 믿음 배신한 그 여자 보란 듯 잘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김한수는 인호의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다.
“죄송한데 저 좀 어디 데려다주실 수 있어요?”
“어딜 가려고요?”
“제가 살던 곳이요. 재영이네 집도 좀 가 보고요.”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리라.
인호가 김한수를 데리고 그가 살던 집으로 향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는지 불이 꺼져 있었다.
벽을 통과해 안쪽을 확인한 김한수가 고개를 흔든다.
“재영이인지 하는 그 사람 집으로 가죠.”
김한수의 안내로 친구 오재영의 집으로 향한다.
오재영의 집은 김한수의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문 앞에 서서 숨을 길게 토해낸 김한수가 문을 통과해 안으로 사라진다.
잠시 후 밖으로 나온 김한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왜요? 뭘 본 거예요?”
“침대에서 뒹굴고 있었어요. 재영이 하고 소영이가.”
김한수가 인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저 할게요. 저 좀 살려주세요.”
* * *
부장과 저승사자가 사무실에 찾아왔다.
“결과 나왔습니까?”
“인호 씨 말대로 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아요. 상제께서도 허락하셨어요. 두 사람의 사주가 같으니 몸을 차지하는 데 반발이 없을 거예요.”
“다행이네요.”
의견을 제시하고도 옥황상제가 허락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받아들여진 것이다.
“김한수 씨.”
“네.”
부장이 김한수를 바라본다.
“어떤 상황인 줄은 아시죠?”
“네.”
“다른 김한수 씨는 오늘 자정에 죽게 될 거예요. 우리들의 실수 때문에 험한 꼴 당하셨으니 보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작은 선물을 준비했어요.”
“선물요?”
“좀 이따 병원에 가면 저절로 알게 되실 거예요. 인호 씨. 병원으로 가죠.”
* * *
병상에 누운 김한수는 생명유지장치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병상에서 조금 떨어진 소파에 그의 어머니가 잠에 빠져 있다.
11시 55분을 지나는 시각.
부장과 저승사자, 김한수가 병실 안으로 들어온다. 저승사자가 시간을 확인한다.
“이번에도 실수하면 알지?”
“네, 부장님.”
시간이 흘러 자정이 되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김한수의 몸에서 푸른 기운이 빠져나온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김한수. 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망자 김한수.”
“네? 망자요? 제가 죽은 건가요?”
“저승사자가 찾아오는 이유는 그것뿐이지.”
김한수가 침대에서 일어선다. 그때 부장이 다른 김한수를 툭 친다.
가볍게 친 것 같은데 김한수의 영체가 강하게 떠밀린다. 김한수가 김한수의 몸을 통과해 누워있는 몸으로 스며든다.
“망자 김한수. 가자.”
“내, 내가 왜 죽어요? 안 가요. 어, 엄마! 엄마!”
김한수는 발버둥 치며 소파에 잠들어 있는 어머니에게 가려고 했다.
저승사자의 눈에 푸른 기운이 일렁였다.
“곱게 갈 것인가? 아니면 끌려갈 것인가? 참고로 난 후자를 선호하는 편이지.”
저승사자가 인상을 구기며 말하자 김한수가 몸을 부르르 떤다.
“네가 술을 마시고 운전한 덕에 다른 이가 큰 피해를 보았다. 그 죄가 작지 않으니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저승사자가 김한수를 끌고 사라진다.
그 순간 누워있던 김한수가 눈을 뜬다.
“정신이 들어요?”
부장의 물음에 김한수가 눈을 깜빡인다.
“이상한 기억들이 있네요.”
“내가 말한 선물이에요. 그 몸을 떠난 김한수의 기억이에요. 처음에는 조금 혼란스럽겠지만 앞으로 그 몸으로 살아갈 때 도움이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아니요. 보상이랍시고 이 정도밖에 해 드리지 못해 미안하죠. 부디 다시 사는 삶 보람되고 행복하게 사세요.”
부장이 문을 열려다 다시 몸을 돌린다.
“아-, 깜빡할 뻔했네요. 한수 씨. 운전해도 돼요.”
“네?”
“그 몸 원래 주인이 한수 씨하고 사고 났을 때 만취 상태였던 건 아세요?”
“인호 씨에게 들었습니다.”
“네.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면허가 취소되어야 정상인데, 그 몸의 원래 주인이 술을 마신 일이 없던 일이 된 거예요. 새로운 몸으로 새롭게 사시는데 기왕이면 깨끗하게 시작하면 좋잖아요.”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정말 갈게요.”
부장이 사라진다.
병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들어온다.
“어머!”
간호사는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김한수를 보고는 놀라 뾰족한 외침을 토해낸다. 그 소리에 잠에서 깬 김한수의 어머니가 벌떡 일어선다.
“왜 그래요? 우리 한수 잘못됐어요?”
“아니요.”
간호사가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김한수 환자 깨어났어요.”
“네? 우리 한수가요?”
침대로 달려 온 어머니가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김한수를 보고는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우리 한수 깨어났구나. 엄마는 우리 아들 깨어날 줄 믿고 있었어. 정말 잘됐어. 정말. 내 정신 좀 봐. 아빠한테 전화해야겠다.”
“환자 보호자 분. 환자분이 막 의식을 회복하셔서 안정을 취해야 해요.”
“아-, 그래요? 알겠어요. 내가 어떻게 하면 돼요?”
김한수가 힘겹게 입을 뗀다.
“저 괜찮아요. 엄마. 아빠 주무실 텐데 깨우지 말고 내일 아침에 전화 드려요.”
“우리 착한 아들, 생각이 어쩜 이렇게 깊을까. 그래도 그건 아니지. 엄마 아빠하고 금방 통화하고 올게.”
* * *
김한수는 차에 탄 채로 카페를 나서는 오재영과 정소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이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쓰게 웃는다.
자신이 죽은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함께 뒹구는 이들이었다.
인호의 말대로 자신이 살아 있을 때부터 저 두 사람은 자신을 속이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카페 앞에 세워 둔 차에 올라탄다. 오재영의 소형 자동차가 곧 출발한다.
그걸 보고 김한수도 자신의 차를 출발시킨다. 김한수에게는 그때 사고가 났던 고가의 외제차 말고도 몇 대의 외제 스포츠카가 더 있었다.
오재영의 차를 따라간다. 잠시 동안 그렇게 미행 아닌 미행이 이어졌다.
“그래. 그 보험금으로 잘 먹고 잘살아라.”
복수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냥 자신이 잘사는 것이 복수인 것이다.
막 오재영의 차를 추월해 지나가려 할 때였다.
끼이이익- 쾅-
김한수의 차 옆구리를 오재영의 차가 들이받는다. 다급히 브레이크를 밟는다. 강하게 충돌한 것이 아니라 몸에 이상은 없었다.
길가에 차를 세우니 오재영이 뒤에 차를 세우고는 곧바로 내린다.
“죄송합니다.”
김한수가 창문을 여니 오재영이 허리를 접으며 사과한다.
“정말 죄송합니다.”
창문을 내린 김한수가 오재영을 보고는 피식 웃는다. 그의 뒤에 서 있는 무언갈 본 것이다.
“어땠어? 괜찮았어?”
인호의 사무실에 있는 망령 중 한 명인 사기꾼이었다. 어째서 오재영이 갑자기 핸들을 꺾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김한수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재영을 바라본다.
“보험사에 전화하시죠.”
“네, 당연히 그래야죠.”
“그런데 대물 금액이 얼만지 궁금하네요. 제 차가 조금 비싼 편이거든요.”
오재영의 얼굴이 썩어간다.
룸미러로 뒤를 보니 정소영이 차에 탄 채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애인 분이신가 보네요.”
“아, 네.”
“잘 어울리는 커플이네요. 차는 보험처리 하시고, 목하고 허리에 통증이 느껴지는데……. 그것도 보험사하고 이야기하면 되겠죠?”
김한수가 웃으며 말한다.
“애인 분하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