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16화 (116/190)
  • 제116화

    “오늘따라 유난히 차가 막히네. 아직 퇴근 시간도 아닌데.”

    조수석에 앉은 사기꾼이 고개를 차 위로 쑥 내민다.

    “사고 난 것 같은데?”

    “그렇겠지. 안 그러면 이 시간에 여기가 막힐 리가 없잖아. 오늘은 또 무슨 사고가 난 거야?”

    거북이걸음 마냥 느리게 이동하며 답답함을 느낀 인호가 라디오를 켠다. 경쾌한 여자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오-. 유니 노래네.”

    “유니?”

    “왜 전에 사생 망령 붙었던 가수 있잖아.”

    “아-. 이게 그 가수 노래야?”

    “유니 엄청 잘 나가잖아. 이 노래도 2주 넘게 차트 1위 했을걸. 행사 한 번 뛰는데 3천만 원이 넘는다고 하더라.”

    “돈 잘 버네.”

    노래를 들으며 조금씩 이동한다.

    “정말 사고 났네.”

    주위의 차들이 사고 현장을 구경하는지 잠깐씩 멈췄다 간다.

    “많이 다쳤나 본데? 구급차가 두 대나 와 있네.”

    인호가 차 사고 현장을 확인한다.

    거의 반으로 접혀 있는 오토바이, 그리고 전봇대에 틀어박혀 있는 고급 외제 승용차가 보인다.

    그런데…….

    “저 양반은 왜 저기 있는 거야?”

    “사고 난 사람이 죽었나 보지.”

    검은 정장 차림의 저승사자 옆으로 한 남자 망령이 서 있었다. 그런데 저승사자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인호가 길가에 차를 세운다.

    “여기서 뭐 하십니까?”

    “어, 그게.”

    저승사자가 말을 하다 말고 옆에 서 있는 망령을 바라본다.

    “저기 잠깐 나하고 얘기 좀 하자. 거기 망령.”

    “넵!”

    사기꾼이 부동자세로 대답한다.

    “이 망령 어디 가지 못하게 지켜보고 있고.”

    “네, 알겠습니다.”

    인호가 저승사자와 조금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무슨 일인데 표정이 그래요?”

    평소의 모습과 너무 다른 모습이다.

    “하아-. 미치겠네. 내가 실수한 것 같다.”

    저승사자가 사기꾼과 대화하고 있는 망령을 힐끔 바라본다.

    “실수요?”

    “하아-.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나? 저기 저 망자 이름이 김한수야. 오토바이로 배달하던 사람인데 저 차하고 부딪쳐서 크게 사고가 났어. 그런데 저 차 운전자의 이름도 김한수야.”

    “이름 같은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요.”

    “그렇지. 그런데 저 둘은 나이도 같고 태어난 날, 태어난 시가 모두 같아. 심지어 이름에 쓰인 한자도 똑같아.”

    “하, 하하. 진짜요?”

    나이와 태어난 날, 시, 그리고 이름까지 같다면 사주가 같다는 의미다.

    뭔가를 깨달은 인호가 저승사자를 보며 묻는다.

    “설마 죽어야 할 사람이 저 사람이 아닌 겁니까?”

    “끄응-. 미치겠다 정말. 아-, 이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저승사자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린다.

    “큰일 아닙니까?”

    “큰일이지. 명부가 발칵 뒤집힐 일이야.”

    “해결 방법은요?”

    “하아-, 모르겠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저 망령 좀 잠시 데리고 있어 주면 안 되겠냐? 위에 보고하고 어떻게 조치할지 방안이 나오면 데리러 올게.”

    “뭐 어쩔 수 없네요. 그렇게 할게요.”

    * * *

    “어디서 또 망령을 주워 온 거야?”

    인호와 함께 사무실에 들어서는 김한수를 보며 영감이 물었다.

    “망령이 뭐 물건입니까? 주워오긴 뭘 주워와요?”

    “그래서 누군데?”

    “그게 설명하기가 조금 복잡해요.”

    인호가 김한수에 대해 설명해 준다. 김민정과 영감, 뚱보가 이야기를 듣다 입을 쩍 벌린다.

    “역대급 실수네.”

    “제 말이 그 말이에요. 그런데 이해가 안 되지는 않아요. 같은 사주의 사람이 동시에 사고가 날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렇긴 하지.”

    영감이 여전히 서 있는 김한수에게 말한다.

    “젊은 친구. 이리 와서 앉아.”

    “아, 네.”

    김한수가 자리에 앉자 인호가 차를 한잔 우려 준다.

    “망한초라고, 망령도 향을 느낄 수 있는 찹니다.”

    “감사합니다. 저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말씀하세요.”

    “원래 제가 죽어야 하는 게 아니었다는 거잖아요.”

    “네, 맞아요.”

    “그러면 전 다시 살아나게 되는 건가요?”

    인호가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김한수는 이미 영혼이 몸을 떠난 상태다. 즉, 육체가 죽은 상태라는 뜻이다.

    한 번 육체를 떠난 영혼은 다시 육체로 돌아갈 수 없다. 육체와 영혼이 연결되어 있는 줄이 끊겼기 때문이다.

    “이대로 죽는 건가 보네요.”

    “아직 확실하지 않아요. 명부에서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일단 희망을 주긴 했지만, 김한수가 다시 살아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김한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혹시 남는 가족들 때문에 그래요?”

    “아니요. 전 가족 없어요. 부모님 두 분 모두 작년에 사고로 돌아가셨거든요. 다만-.”

    “편하게 말해봐요. 내가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있거든요. 저 대신 말 좀 전해줄 수 있을까요?”

    “네 그럴게요. 어떤 말을 전해 줄까요?”

    김한수가 선뜻 말을 못 하고 머리를 긁적인다.

    “사랑했다고. 정말 많이 사랑했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저 빨리 잊고 좋은 사람 만나라고 전해주세요.”

    “여자친구분을 정말 많이 사랑하나 보네요.”

    “네. 가족도 없고, 변변치 않은 제게 너무 과분한 여자친구거든요. 하하. 결혼하면 고생 안 시키려고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이렇게 됐네요.”

    인호가 가벼운 한숨을 토해낸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꼭 한수 씨가 한 말 전해 줄 테니까요.”

    * * *

    서울 변두리 장례식장.

    “이름 좋네.”

    차에서 내린 인호가 ‘극락 장례식장’이라는 간판을 보고 피식 웃는다.

    장례식장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 옆쪽의 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게 보인다.

    남자와 여자였는데 여자는 검은 상복을 입고 있었다. 남자가 여자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남은 손으로 여자의 손을 잡고 있다.

    슬픈 일을 겪은 이를 위로하는 건가 싶은데 분위기가 뭐라고 해야 할까…….

    “야릇한데?”

    인호의 중얼거림이 들렸는지 의자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이 고개를 돌린다.

    인호가 모르는 척하며 건물 안쪽으로 들어간다.

    “김한수. 202호.”

    김한수의 이름을 확인한 후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간다.

    준비해 간 조의금을 넣고 방명록에 이름을 남긴다. 김한수의 친구로 보이는 남자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상주가 자리를 비운 듯하여 잠시 앉아서 기다린다. 물을 한 잔 따라 마시고 있을 때 누군가 안으로 들어온다.

    검은 상복을 입은 젊은 여자였다. 그 뒤로 남자 한 명이 따라 들어온다.

    조금 전에 밖에서 봤던 두 사람이었다.

    김한수의 여자친구일 것으로 짐작되는 여자, 정소영이 영정 사진이 있는 곳으로 가 앉는다. 안으로 들어가 향을 피운 후 절을 한다.

    정소영과 맞절을 한 후 그녀를 잠시 바라본다.

    “고인과는 어떻게 되는 관계세요?”

    “예전에 알고 지내던 형입니다.”

    “아-, 그러세요? 한수 씨 지인이라면 대부분 제가 알고 있는데…….”

    “연락 안 한 지 꽤 돼서 이야기 안 한 것 같네요.”

    정소영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후 자리를 잡는다. 곧 아주머니 한 분이 반찬과 밥을 가져다준다.

    건너 테이블에는 정소영과 밖에 함께 있던 남자가 앉아 있다. 그는 안쪽의 정소영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 분위기 뭐야?”

    그런데 남자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정소영이 웃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후 짓는 처연한 웃음이 아닌 밝은 웃음이다.

    조금 전 밖에서 보았던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린다. 어깨에 두른 손은 위로하려고 토닥인다기보다 어깨와 등을 쓰다듬고 있었고 잡은 손은 깍지를 끼고 있었다.

    “한수 씨. 아무래도 말을 못 전해 줄 것 같네요.”

    씁쓸한 마음에 차를 가져왔음에도 소주를 시켜 마신다. 한 잔, 두 잔 마시고 있을 때 조의금을 받던 남자가 다가온다.

    “한수하고 잘 아는 사이셨어요?”

    “아, 네. 그렇죠.”

    “전 한수 친구예요. 한수가 친구가 많지 않거든요.”

    그로부터 부모님 두 분 다 여의고 혼자 억척스럽게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한수는 평소에 정소영과 결혼하기 위해 돈을 모은다고 친구들 만날 시간도 아깝다며 일을 했다고 한다.

    “성함이-.”

    “조인국이라고 합니다.”

    “정인호라고 합니다. 여기서 일하고 있습니다.”

    대은 그룹 기획조정실 명함을 건넨다. 명함을 받은 조인국이 의외라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한수한테 대기업 다니는 아는 형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저 죄송한데 저기 저분도 한수 친굽니까?”

    인호가 가리키는 남자를 본 조인국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재영이요? 네. 친구 맞아요. 한수한테 소영이 소개해 준 것도 재영이에요.”

    “아-, 그래요? 한수가 내년에 결혼할 거라고 결혼식에 꼭 참석해 달라고 했는데 마음이 좀 그렇네요.”

    “가까운 사이 맞나 보네요. 결혼하는 거 정말 친한 사람들한테만 말했었거든요.”

    조인국이 안타깝다는 듯 쓰게 웃는다.

    “식사 천천히 하고 가세요. 전 자리를 지켜야 할 것 같아서요.”

    “네, 고생하세요.”

    괜히 입맛이 씁쓸했다.

    대충 식사를 마친 인호는 정소영과 오재영을 한 번씩 바라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형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흥신소 유정우가 꾸벅 인사한다.

    “전화로 알려줘도 되는데 굳이 찾아오고 그래. 안 바빠?”

    “하하, 바쁘긴 하지만 가끔 얼굴도 뵙고 그래야죠. 말씀하신 두 사람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우선 정소영은…… 그냥 평범하네요. 대학 졸업하고 작년부터 회사 다니고 있네요. 정명 건설이라고 작은 건설 회삽니다. 그리고 오재영은 보험설계사네요.”

    “보험설계사?”

    “네. 2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수완이 좋은가 봅니다. 실적이 상당합니다.”

    유정우가 이민정이 타다 준 커피를 마신다.

    “역시 민정 씨 커피가 제일 맛있습니다. 하하.”

    “자주 들르세요.”

    “오재영하고 조인국이 마지막까지 장례식장을 지켰습니다. 어제 발인했구요.”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유정우가 돌아가자 인호가 김한수에게 묻는다.

    “오재영이라는 친구하고 많이 친했나 봅니다.”

    “네. 친구라곤 인국이하고 재영이뿐이거든요. 고등학교 친구들 몇 명 있긴 한데 다 연락 끊겼고요.”

    인호가 혹시나 싶어 묻는다.

    “혹시 오재영 씨한테 보험 들었어요?”

    “네. 2년 전에 갑자기 보험설계사 한다고 해서 기존에 있던 보험 재영이 쪽으로 다 옮겼어요.”

    “자세히 말해줘요.”

    “암 보험, 사망보험, 그리고 운전자 보험 들었어요.”

    “보험 수혜자는 누구로 되어 있어요?”

    “당연히 소영이 이름으로 되어 있죠. 저한테 가족이 없잖아요.”

    “그렇군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소영이는 뭐라고 해요? 저 만났다는 말을 믿어요?”

    “처음에는 안 믿었는데 계속 설명하니 믿었어요. 전해주라는 말 전해줬고요.”

    인호는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

    죽을 운명이 아닌데 망령이 된 것도 억울할 텐데 사랑하는 여자와 친구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욱 힘들어 할 것이다.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니까.’

    김한수가 꾸벅 고개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하, 하하. 뭘요.”

    오재영과 정소영의 관계는 인호의 심증일 뿐 아직 제대로 확인해 본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김한수와 눈을 맞추기 부담스러웠다.

    인호가 김한수를 보며 애써 밝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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