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15화 (115/190)
  • 제115화

    “죽어. 스트레이트야.”

    “어쭈. 플러시를 숨겨두고 잘 안 맞은 척 연기하고 있네?”

    “야, 이놈 뻥카다. 바닥에 깔린 원 페어가 전부야.”

    인호는 사기꾼의 말을 들으며 게임을 진행하고 있다.

    “죽겠습니다.”

    “촉이 굉장히 좋네요? 에이스 풀 하우스를 잡고 고작 이 돈을 먹어야 한다니.”

    인호의 우측에 앉은 쥐수염의 남자가 아쉽다는 듯 칩을 쓸어간다.

    한 시간 동안 포커를 하고 있지만, 인호는 돈을 따지도, 잃지도 않고 있었다.

    사기꾼의 실시간 중계를 듣고 있기에 잃으려야 잃을 수가 없다. 돈을 딸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적정선만 유지하고 있었다.

    인호는 가끔 맞은 편에 앉은 남자, 후지와라 타케루를 바라본다.

    카드가 형편없는지 인상이 펴지질 않는다. 그의 앞에 쌓인 칩은 계속해서 줄어들기만 하고 있었다.

    “인호야. 이 녀석 풀 하우스인데?”

    사기꾼이 말을 하기 무섭게 후지와라 타케루가 베팅을 시작한다.

    “50만.”

    “다이.”

    “다이.”

    연거푸 두 사람이 죽자 후지와라 타케루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인호가 앞에 있는 50만 엔짜리 칩을 던진다.

    “콜.”

    다른 이들은 다 죽고 인호와 후지와라 타케루만 남았다.

    “100만.”

    “콜.”

    “히든카드입니다.”

    딜러가 마지막 카드를 돌린다. 인호는 슬쩍 카드를 확인한 후 내려놓는다.

    “200만.”

    후지와라 타케루케가 베팅을 하자 인호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인호의 시선을 받은 후지와라 타케루가 칩을 만지며 딴청을 피운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던 인호가 칩을 가운데로 던진다.

    “콜. 메이드 윈.”

    “오케이. 나는 풀 하우스입니다. 하하하.”

    후지와라 타케루가 환하게 웃으며 칩을 쓸어간다. 인호가 아쉽다는 듯 카드를 던진다.

    “블러핑인 줄 알았는데 풀 하우스라니 완전히 속았습니다.”

    “하하, 운이 좋았죠.”

    “제가 카드를 조금 치는 편인데 정말 깜짝 속았네요. 완전히 포커 페이스이시네요. 대단합니다.”

    인호가 엄지를 세우며 ‘스고이 데스네’라고 말하자 후지와라 타케루의 입이 귀에 가 걸린다.

    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인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누가 봐도 굉장히 좋은 패가 맞은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후지와라 타케루는 카드에 재능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하던 인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일본에 와서 포커 고수를 만나게 되네요. 다시 한번 좋은 승부 부탁드립니다.”

    “하하, 당연하죠.”

    새롭게 카드가 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고 후지와라 타케루가 웃으며 인호에게 묻는다.

    “일본에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평소라면 같은 테이블에 앉은 이들에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행 겸 뭘 좀 사려고 왔습니다.”

    “뭘 사시려고요? 5만 콜.”

    “제가 예술품에 관심이 많아서요. 저도 5만 콜.”

    딜러가 카드를 돌린다.

    “오늘 낮에도 오래전 일본이 한국을 통치하던 시절 사용하던 땅문서를 구입했습니다.”

    “그걸 구입해서 뭐 하시게요?”

    “그냥 취미죠. 열강들이 아시아에 권력을 투사하고, 일본이 한국과 중국의 일부를 지배하면서 한국 내의 예술품들이 국외로 많이 유출됐습니다. 가치가 큰 예술품들은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으니 그런 문서 같은 것을 구하는 거죠. 15만 콜.”

    인호가 칩을 던진다.

    “난 죽습니다. 땅문서는 얼마에 구입하셨습니까?”

    “부산 시골 동네의 땅문서였는데 20만 엔에 구입했습니다.”

    한화로 2백만 원 정도의 금액이었다.

    “그깟 종이 쪼가리가 뭐라고 그 돈을 쓰셨습니까?”

    “대하는 사람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하하, 이번에는 제가 이겼네요.”

    인호가 칩을 쓸어간다.

    “인호야. 이놈 뻥카친다. 원 페어도 없는데 바닥에 하트 네 개 깔고 돈질하네.”

    사기꾼이 후지와라 타케루가 블러핑을 한다고 알려준다.

    “100만.”

    “콜.”

    인호는 히든카드를 받기 전까지 후지와라 타케루의 베팅을 따라간다. 마지막 카드를 받은 후지와라 타케루의 눈동자가 떨린다.

    베팅을 했는데 인호가 콜을 하게 되면 자신의 블러핑이 들통날 것이다. 후지와라 타케루는 이를 꽉 깨물고는 마지막 블러핑을 한다.

    “2백만.”

    “흐음-.”

    인호가 물끄러미 후지와라 타케루를 바라본다.

    “역시 안 읽히시네요. 죽었습니다. 스트레이트로는 이기기 힘들겠죠?”

    인호가 자신의 카드를 오픈하자 후지와라 타케루가 히죽 웃는다.

    “하하, 이번에는 정말 블러핑이 맞았습니다. 노페어였습니다.”

    후지와라 타케루가 환하게 웃으며 칩을 쓸어간다. 그런 후지와라 타케루를 보며 인호도 환하게 웃는다.

    * * *

    또다시 한 시간이 흘렀다.

    가장 돈을 많이 딴 사람은 인호였다. 5천만 엔으로 시작했는데 앞에는 1억 엔이 넘게 쌓여 있었다.

    놀랍게도 그 다음으로 돈을 많이 딴 사람은 후지와라 타케루였다.

    인호가 다른 이들에게 돈을 딴 후 후지와라 타케루에게 조금씩 돈을 잃어주었기 때문이다.

    후지와라 타케루의 앞에 쌓인 칩은 3천만 엔 정도였다.

    “오우야. 이놈 A 플러쉬다. 이야 5구에 딱 꽂혀버리네.”

    사기꾼의 브리핑이 있기 무섭게 후지와라 타케루의 베팅이 시작된다.

    “백만.”

    “다이.”

    “다이.”

    “레이스. 백 받고 2백 더.”

    두 명이 죽기 무섭게 인호가 다시 한번 베팅한다. 후지와라 타케루가 기다렸다는 듯 베팅을 늘린다.

    “2백 받고 4백 더.”

    “4백 받고 8백 더.”

    주거니 받거니 베팅을 하니 후지와라 타케루의 앞에 쌓인 모든 칩이 테이블 중앙으로 이동한다.

    여섯 번째 카드를 받았지만, 후지와라 타케루는 돈이 없어 더 베팅을 할 수 없었다.

    “3천 2백만.”

    인호가 베팅을 하자 후지와라 타케루의 눈동자가 거세게 떨린다. 칩이 없으면 베팅에 참여하지 못하고 자연 실격된다.

    테이블 밑에 진동이 느껴진다. 초조함에 다리를 떨고 있는 것이리라.

    “저기-.”

    “말씀하세요.”

    “제가 칩이 없는데 마지막 베팅은 빼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하하, 그럴 수는 없죠.”

    인호가 웃으며 후지와라 타케루를 바라본다.

    - 집에서도 내놓은 자식 취급을 받고 사설 카지노에서도 돈을 빌리고 상환 기한을 매번 미루다 보니 많은 돈을 구하지 못할 겁니다.

    사설탐정의 보고서에 있는 내용이다.

    다른 이들이 흥미롭다는 듯 두 사람을 지켜본다. 입술을 질겅질겅 씹던 후지와라 타케루가 인호에게 묻는다.

    “일본이 조선, 아니 한국을 점령했을 당시의 문서에 관심이 많으시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저희 가문에는 그런 문서들이 많습니다. 저희 증조부께서 조선총독부의 높은 관료셨습니다.”

    “네, 그래서요?”

    “원하시는 문서를 가져다드리죠. 그걸로 베팅을 대신하면 안 되겠습니까?”

    인호가 곤란하다는 듯 후지와라 타케루를 바라본다.

    “어떤 문서인지 모르지만 3천 2백만 엔의 가치가 있을까요?”

    “당연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제가 어린 시절에 해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한 장의 문서를 보여주시면서 이것이 공개되면 큰 난리가 난다고 말이죠.”

    “호오-. 굉장히 궁금해지네요. 혹시 그 문서에 손바닥 자국이 있습니까?”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인호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한다.

    “예전에는 중요한 문서에 수결을 했거든요. 제가 모으는 문서들 중 그렇게 수결한 문서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가격이 모자랄 것 같은데요.”

    “손바닥 자국이 일곱 개나 됩니다.”

    인호가 놀랍다는 듯 후지와라 타케루를 바라본다.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다만 꼭 그 문서를 가져와 주셔야 합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카지노에서는 대신 차용증을 써 줍니다. 만약 제가 그 문서를 가져다주지 못하면 큰일을 당하게 되거든요.”

    인호가 손을 들자 카지노 직원이 다가온다. 사정 이야기를 하니 직원이 후지와라 타케루를 힐끔 쳐다보고는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사설탐정의 말대로 후지와라 타케루의 신용이 형편없는 모양이다.

    “말씀드린 대로 차용증만 작성해 주시면 됩니다.”

    인호의 요구에 카지노 직원이 차용증을 작성해 준다. 인호가 차용증을 테이블 가운데 던진다.

    “자, 이제 마지막 카드 받을까요?”

    마지막 카드를 받은 후 후지와라 타케루가 자신의 카드를 오픈한다.

    “A 플러시입니다. 하하하. 이번에 좋은 패가 맞으신 것 같은데 아쉽게 됐습니다.”

    후지와라 타케루가 당연히 자신이 승리한 것처럼 테이블 위의 칩을 가져가려 손을 뻗는다.

    “잠시만요.”

    인호의 말에 후지와라 타케루의 손이 멈춘다.

    “칩은 제 카드를 확인하신 후에 가져가셔도 될 텐데.”

    오픈되어 있는 네 장의 카드 중 한 장이 ‘2’였다. 인호가 세 장의 카드를 차례로 오픈한다.

    “2, 2. 그리고 또 2. 2 포카드입니다.”

    인호가 환하게 웃으며 칩을 쓸어간다.

    * * *

    똑- 똑-

    누군가 창문을 두드린다.

    뒷좌석 창문을 내리니 후지와라 타케루가 서 있다. 뭐가 그리 불안한지 계속해서 주변을 살핀다.

    “가지고 오셨습니까?”

    인호가 있는 곳은 후지와라 타케루의 집 근처였다.

    “여기.”

    후지와라 타케루가 둥근 통을 하나 건네준다. 뚜껑을 여니 둘둘 말려있는 종이가 나온다.

    오래되었는지 누렇게 변한 종이였다. 뒷좌석 불을 켠 후 조심스럽게 종이를 펼친다.

    일본 황제에게 충성 맹세 서약이 담긴 내용과 그 아래 일곱 개의 수결이 보인다. 인호는 그중 가운데 있는 수결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아주 멋진 것이군요. 3천 2백만 엔의 가치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그, 그렇습니까? 개인적인 부탁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그것을 개인적으로 소장만 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인호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후지와라 타케루를 바라본다.

    “소유권이 내게 넘어왔는데 이걸 어떻게 하던 내 마음 아닙니까?”

    “그것이…….”

    “지금이라도 이걸 다시 드릴 테니 3천 2백만 엔을 주셔도 됩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아, 아닙니다.”

    후지와라 타케루가 뒤로 한걸음 물러선다.

    “이건 제가 좋은 곳에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만.”

    * * *

    - 참으로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불과 얼마 전 자신을 독립투사의 후손이라 밝힌 모 미술관의 관장이 있었습니다.

    이전에 보도되었던 이경민의 인터뷰가 다시 흘러나온다. 모자이크 처리를 하긴 했는데 알만한 사람은 그가 이경민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 그런데 알고 보니 독립투사로 알려졌던 그의 조상은 함께 독립운동을 하던 동지들을 배신하고, 매국 행위를 한 파렴치한 매국노였습니다. 대은 그룹 이철호 회장이 만든 ‘맑은 정기 되찾기 재단’이 일본까지 가서 어렵게 찾아온 문서 때문에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보시는 것은 일본 황제에게 충성을 서약하는 문서에 찍힌 수결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국립 박물관에 보관 중이 상해 임시정부에 있던 문서입니다. 두 문서에는 똑같은 사람의 수결이 찍혀 있습니다. 바로 독립투사라고 알고 있던 모 미술관 관장의 선조입니다. 비참한 것은 매국 행위를 한 그로 인해 진정한 독립투사가 매국노로 알려져 그 후손들이 지속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입니다.

    “후손들이 이제 제대로 된 대우를 받게 될 테니 안심이 되는구나.”

    망자, 양형우가 환하게 웃는다.

    “그보다 어르신의 명예가 회복된 것이 더 크지 않겠습니까.”

    “고맙다. 모두 네 덕분이다.”

    - 문서에는 여섯 개의 수결이 더 있는데 그중 네 개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친일파의 수결입니다.

    “사필귀정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일은 결국 옳은 이치대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이제 편하게 떠나셔도 되겠습니다.”

    양형우가 뒤로 돌아선다.

    “망자 양형우.”

    “네, 사자님.”

    “어서 가십시다. 가서 누려야 할 것들이 아주 많아요.”

    저승사자가 인호를 쏘아본다. 인호가 뭘 잘못했냐는 듯 어깨를 으쓱하자 저승사자가 피식 웃는다.

    “잘했다.”

    그 말을 남기고 양형우와 함께 먼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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