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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114화 (114/190)

제114화

“드릴 게 변변치 않네요.”

“갑자기 찾아왔는데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양호성의 아내가 인호의 앞에 믹스 커피를 내려놓고는 조심스럽게 묻는다.

“저희 민찬이가 어떻게 됐다고요?”

“최근 그룹 내 대대적인 감사가 있었습니다. 그때 여러 가지 잘못이 발견되었습니다. 아드님의 문제도 그중 하나죠. 본래는 저희 대은 그룹에 합격하셨어야 하는데, 직원의 실수로 반대로 통보가 나갔습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우리 민찬이가 대은 그룹에 취직할 수 있는 건가요?”

“네. 잘못은 바로 잡아야죠. 회장님 특별 지시로 특채 입사하게 될 겁니다. 물론 본인이 원해야 하지만요.”

양호성의 옆에 앉아있던 젊은 남자, 양민찬이 딱딱한 표정으로 말한다.

“무슨 말씀하시는지 잘 알겠는데요. 직원분의 실수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네?”

“불합격해야 할 결격 사유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철저히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런 사유는 없었습니다.”

“아닐 텐데요. 저희 집안은…….”

“민찬아.”

양호성이 양민찬의 무릎에 손을 얹는다.

“아버지. 이런 문제는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분명히 다음에 문제가 돼요.”

“하아-. 그래. 네 말이 맞다. 정인호 과장님이라고 하셨죠?”

“네, 아버님.”

“저희 집안이 문제가 좀 있습니다. 우리 민찬이가 입사 원서 넣고 매번 떨어지는 이유,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지는 이유지요.”

“어떤 이유죠?”

“증조부께서 매국 행위를 하셨습니다.”

인호가 피식 웃는다.

“증조부님 함자가 양 형자, 우자 맞으시죠?”

양호성이 쓰게 웃는다. 이미 자신의 집안에 대해 조사하고 온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신다니 말이 편하겠네요. 그리고 이대로 돌아가셔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자주 겪는 일이라서요.”

“이미 확인했습니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양민찬이 인호를 쏘아본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쫓아낼 거 아닙니까? 그리고 대은 그룹 소속이 맞기는 합니까?”

인호가 휴대폰으로 대은 그룹 홈페이지에 들어간다.

“여기 전화번호 보이시죠? 여기로 전화해보세요. 그리고 제 이름 대시면서 기획조정실에 속해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양민찬이 곧바로 전화를 한다.

“아, 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양민찬이 의아한 듯 묻는다.

“지금까지 하신 말씀이 사실이란 말이죠?”

“물론입니다. 잠시만요. 시간이…… 지금쯤 나오겠네요. 티비 틀어 보시겠어요? 뉴스 채널 트시면 됩니다.”

양민찬의 어머니가 곧 티비를 켠다.

화면 속에는 대은 그룹 이철호 회장이 있었다.

-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독립 유공자 분들이 얼마나 어렵게 사시는지, 그리고 나를 위해 희생하신 조상 분들의 공로를 인정받기가 얼마나 힘든지 말입니다. 심지어 나라를 판 매국노가 독립투사가 되어 있고, 독립투사가 매국노가 되어버린 일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 제 사비로 재단을 하나 만들 생각입니다. 그 재단은 소외 받는 독립투사의 후손들을 위한 재단이 될 겁니다. 그리고 이름조차 알리지 못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되신 분들의 명예를 되찾아 드릴 겁니다. 또한 잘못된 역사도 바로잡으려 노력할 겁니다.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자신의 사비를 헐어 재단을 만드실 겁니다. 그래서 양형우 의사님처럼 조국을 위해 한목숨 바쳤지만, 매국노라 손가락질받는 분들의 명예를 되찾아 드릴 겁니다.”

“그러니까 과장님 말씀은 우리 증조부님이 매국노가 아니라는 겁니까?”

“네, 정확합니다. 증조부께서는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셨던 분이십니다. 반대로 동료들을 배신하고 나라를 판 매국노는 독립투사인 척 호의호식하며 잘살고 있습니다.”

“그게 누굽니까!”

양호성의 버럭 소리를 지른다.

지금까지 살아 온 세월에 분노한 것이리라.

조상 잘못 둔 탓에 번번이 실패를 맛봐야 했던 아들에 대한 죄스러움 때문이리라.

“곧 알게 되실 겁니다. 곧 양민찬 씨 앞으로 따로 통보가 가겠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특채로 입사하게 되실 겁니다. 희망하는 부서가 있으시면 그쪽으로 발령이 날 거고요. 그리고 그룹 차원에서 2년 전의 잘못에 대한 보상을 할 겁니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양민찬의 어머니가 눈물을 주륵 흘린다. 양호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양민찬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지 멍한 표정이다.

인호는 양형우의 후손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후손들은 양형우가 매국 행위를 했다고 알려져 힘들게 살고 있었다.

양형우의 증손자인 양민찬은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하지 못했다.

그가 대은 그룹에도 입사 원서를 넣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곧바로 이철호 회장에게 찾아갔다.

사정 이야기를 들은 이철호 회장은 자신이 그 일을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분노했다.

이후 양민찬을 특채로 입사시키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3천억 원 규모의 재단을 만들어 독립 유공자들을 돕기로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인호의 질문에 이철호는 이렇게 대답했다.

- 재산 물려줄 자식도 없잖아. 이 많은 재산 전부 싸 들고 갈 것도 아니고 죽기 전에 좋은 일도 하고 좋지 뭐.

“양민찬 씨. 월요일부터 출근하시면 됩니다.”

세 가족은 인호에게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런 그들을 뒤로한 채 빌라를 나서는 인호를 본 이민정이 큰소리로 외친다.

“이럴 거면 날 왜 데리고 온 건데요?”

인호가 피식 웃는다.

“장거리 운전하는데 혼자 오면 심심하잖아.”

* * *

“이씨. 완전 치사해.”

공항에서 티켓팅을 하려는데 이민정의 구시렁거림이 들린다.

“같이 가자니까 니가 싫다고 했잖아.”

“일본에 간다고 말 안 했잖아요.”

“몰라. 난 분명 같이 가자고 했고 니가 싫다고 했어.”

인호가 이민정에게 손을 흔든다.

“사무실 잘 보고 있어. 오는 전화 잘 받고. 잘 다녀올게.”

“그러던지 말던지. 흥이네요.”

티켓팅을 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사기꾼이 지나는 사람들을 보며 말한다.

“해외 나가는 사람들 많은가 보다. 공항이 완전히 미어터지네. 경제 안 좋다는 말 다 거짓말이라니까.”

영감에게도 함께 가자고 했더니 일본에는 가기 싫다며 사무실에 남아있기로 했다.

“돈도 많으면서 퍼스트 클래스로 타라니까.”

“돈이 있어도 그런 사치는 부리고 싶은 마음 없다. 비즈니스석만 해도 나한테는 과분해.”

비행기 좌석을 비즈니스석으로 예약했다. 그나마도 사기꾼이 옆에서 계속 구시렁거려서 이코노미석에서 비즈니스석으로 바꾼 것이다.

면세점을 기웃거리다 우동 한 그릇을 먹은 후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즈니스석이 좋긴 하다.”

“돈 써서 나쁠 게 없잖아. 비즈니스석이 이렇게 좋은데 퍼스트 클래스는 얼마나 더 좋겠냐?”

사기꾼은 비행기 내부를 좀 보겠다며 사라진다.

인호는 눈을 감고서 양형우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 * *

“잘못을 바로잡을 방법이 없겠습니까?”

인호의 물음에 양형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증명할 자료가 남은 것이 있습니까? 상해 임시정부에서도 이세진이 배신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맞지. 워낙 조심성이 많은 놈이야. 하지만 딱 한 번 실수를 했어.”

“어떤 실수입니까?”

“조국이 해방되기 몇 해 전 경성에서 있었던 일이야. 임시정부의 명령으로 이세진은 조선 땅에 있었지. 경성에서 지내며 군자금을 모아 독립군에게 운반하는 역할이었다. 이세진은 경성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척하며 일본인들과 어울렸지.”

“진짜 나쁜 사람이군요.”

“여러 개의 가면을 필요에 따라 바꿔쓰며 사람들을 기만했지. 그때 그놈은 일본 고위 관료들과 비밀스러운 자리를 가지곤 했는데, 조선총독부에서 높은 자리에 있던 일본인이 한 가지 제안을 했지.”

- 일본 제국의 황제 폐하께 그대들의 충성을 서약하는 증거를 남기는 것이 어떠한가?

“그리고는 일본 황제에게 충성하겠다는 글이 적힌 곳에 우리 동지들이 했던 것처럼 수결을 했어. 이세진은 손가락이 멀쩡한 오른손으로 수결하려 했지만 일본 관료가 장난을 친다고 왼손으로 수결하게 했지. 잘린 손가락이 일본에 대한 충성심을 나타내는 것이라며 말이야.”

“설마 그 연판장이 남아있는 겁니까?”

“남아있는지는 잘 몰라. 하지만 그 연판장을 챙긴 이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지.”

“그게 누굽니까?”

양형우가 이를 바득 간다.

“후지와라 료스케. 군인 출신 관료로 수많은 동지들을 죽인 인간 백정이지.”

“그의 자손들이 그 연판장을 가지고 있겠군요.”

“그것만 찾을 수 있다면 이세진의 추악한 짓을 알릴 수 있지. 그 연판장에는 이세진뿐 아니라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여섯 명의 이름도 있어.”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꼭 찾아와야겠네요.”

* * *

“요청하신 자료입니다.”

동그란 금속테 안경을 쓴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인호에게 서류를 건넨다. 인호가 돈이 담긴 봉투 하나를 남자에게 건넨다.

“다음에 또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주십시오.”

“그렇게 하죠.”

인호가 능숙하게 일본어로 대답하자 남자가 떠나간다.

“이런 재능충 같으니라고. 일본어도 잘하네.”

사기꾼이 히죽 웃는다.

“그런데 재밌네. 사설탐정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

한국에서는 ‘흥신소’가 법적 테두리를 벗어난 다소 음성적인 개념이었지만, 일본은 법으로 탐정을 인정하고 있었다.

조금 전 인호에게 서류를 건네고 간 남자 역시 그런 탐정들 중 한 명이다.

대은 그룹 일본 오사카 지사장이 소개해 준 탐정으로 명성이 제법 높은 사람이었다.

인호가 서류를 살핀다.

“후지와라 타케루. 어린놈이 싹수가 노랗네.”

서류에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의 사진과 그의 신상 정보가 적혀 있다.

“캬하-. 온갖 나쁜 짓은 다 하고 다니는 놈이네. 너한테는 좋은 일이려나?”

사기꾼의 말에 인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게. 집안이 예전만큼 잘 나가지도 않고 말이야.”

일제 강점기 당시 잘 나가던 관료였던 후지와라 료스케가 이뤄놓은 것들을 후손들이 대부분 말아 먹었다.

여전히 잘 사는 축에 속하긴 했지만, 권력과는 거리가 멀어진 상태였다.

“아버지가 형을 편애한다네. 아주 딱 좋아. 사기꾼. 오랜만에 합 한 번 맞춰보자.”

“크크, 좋지.”

* * *

오사카 지역 야쿠자가 운영하는 사설 카지노.

안으로 들어선 인호가 5천만 엔을 칩으로 환전한다. 한화로 5억에 가까운 돈이기에 환전하는 직원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뜬다.

들어올 때는 대은 그룹 오사카 지부장의 이름을 팔았다. 대은 그룹이 일본 내에도 영향력이 있는 편이라 입장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칩을 챙긴 후 주위를 살핀다.

주변의 도박꾼들이 인호가 든 칩을 보며 군침을 흘린다. 인호가 한 곳에 자리 잡는다.

“함께 해도 될까요?”

앉은 이들은 인호의 얼굴이 아닌 그가 들고 있는 칩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실례하겠습니다. 한국에서 여행 온 사람입니다.”

인호가 맞은 편에 앉은 남자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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