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12화 (112/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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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우와, 부럽네요. 그 사람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봅니다.”

“하하, 당연하지. 천하의 이철호의 아들이 될 녀석인데.”

“회장님이 알아서 다 하시겠지만 그래도 조심하세요. 안 좋은 추억도 있으시잖아요.”

이철호가 쓰게 웃는다.

재혼한 아내가 재산을 노리고 사랑하는 딸을 죽였다.

“그래. 그래서 지금부터 잘 좀 알아보려고.”

“네. 도움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제 주위에 그런 걸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알겠네. 꼭 그렇게 하지.”

이철호가 술을 마신 후 잔을 내려놓으며 묻는다.

“내가 말을 조금 편하게 해도 될까?”

“전부터 그러시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자-, 따라 해보세요. 인호야.”

“인호야.”

“하하, 좋네요.”

“그래. 좋네. 인호야. 종종 오늘처럼 전화해서 같이 밥도 먹고 그러자.”

“저야 좋죠. 회장님 만날 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좋은 음식이며 술을 먹겠습니다.”

“돈도 많은 녀석이.”

인호가 피식 웃는다.

“돈이 많기는 한데 제 돈 같지 않아서요. 아무튼 그렇다는 겁니다.”

* * *

갑자기 돈이 많아졌다고 해도 인호의 생활은 바뀌지 않았다.

오늘도 사무실로 출근해 이민정이 타다 준 커피를 마시며 휴대폰으로 뉴스 기사를 확인하고 있었다.

“돈 쓰기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같아.”

인호가 중얼거리자 이민정이 티비를 보며 말한다.

“저기 돈 쓸만한 일 있네요.”

인호가 고개를 돌려 티비를 본다.

- 보고 계시는 사진은 일제 강점기 당시 만주를 근거지로 활동하던 독립투사 분들의 사진입니다.

다섯 명이 나란히 서서 찍은 흑백사진이었다. 모두가 굳은 표정이었는데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비장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 지금까지 사진을 보관하고 있던 사람은 사진 속 독립투사 중 한 분이신 이세진 의사의 자손들이었습니다. 현재 한얼 미술관을 운영하는 이경민 씨는 고 이세진 의사의 손자입니다. 이경민 씨는 한얼 미술관을 운영하며 외세의 침략으로 우리 땅을 떠난 고미술품을 조국의 품으로 찾아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미 다수의 작품을 회수했고, 또 여러 작품을 찾아오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한얼 미술관의 전경이 보인다. 딱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예술품들이 제법 많다.

- 이경민 씨는 최근 미술관의 운영이 적자로 돌아서며 그간 추진하던 ‘겨레 예술품 되찾기’ 프로젝트가 중단될 위기라고 밝혔습니다. 이경민 씨는 오랫동안 보관만 하고 공개하지 않았던 이세진 의사의 사진을 공개한 이유를 ‘현시대의 젊은 층들이 과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희생하신 분들의 노고를 알아주었으면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일리가 있네요. 저만해도 저런 것에는 관심 없거든요. 학교 다니면서 배울 때도 그냥 시험 때문에 공부는 했지만 금방 잊어버렸거든요.”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지.”

인호가 벽에 걸린 아버지와 조상들 사진을 바라본다. 저들이 있었기에 수많은 억울한 망령들이 진정한 안식을 찾을 수 있었다.

- 이경민 씨는 내일부터 일주일 동안 사진을 한얼 미술관에 전시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다만 ‘사진은 판매의 목적으로 전시하는 것이 아니다. 조상의 업적이 재조명되길 바랄 뿐이다’라며 독립투사와 그의 후손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호소했습니다.

뉴스를 보던 인호가 씨익 웃는다.

“찾았다.”

“뭘요? 아-. 돈 쓸 곳이요?”

“그래. 이런 곳에 써야지. 그래야 보람되지 않겠냐? 쉽게 번 돈이지만 쓸 때도 그러면 안 되잖아.”

“소장님 돈이니 알아서 하세요. 저런 데 쓰는 거라면 저도 찬성이에요.”

사기꾼이 말한다.

“가는 김에 그럴듯한 그림도 한 점 사와. 예술품에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부자들이 이유 없이 예술품 사 모으는 게 아니야. 예술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높아지거든.”

“미안한데. 이 사무실하고 예술품이 어울리기나 하겠냐?”

사기꾼이 피식 웃으며 인호의 책상 위에 놓인 도자기를 바라본다.

“메이드 인 차이나 예술품은 애지중지 잘 보관하잖아.”

“적당히 하자.”

사기꾼이 어깨를 으쓱한다.

“이번에는 사기꾼 말이 무조건 틀린 것 같진 않은데.”

영감의 말에 인호가 더 말해보라는 듯 바라본다.

“요즘 미술관이 적자라잖아. 미술품 판매도 할 테니, 무작정 기부하기보다 그것들을 사들이는 게 더 자연스럽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어서.”

“틀린 말은 아니네요.”

“인호야. 네 말대로 이 사무실이 예술품하고는 영 안 어울리잖아. 이 기회에 그럴듯한 건물 하나 더 사라. 아니면 좋은 집을 한 채 사던가.”

사기꾼이 이때다 싶어 말한다.

“집이라-.”

그렇지 않아도 이철호와 대화를 나눈 후 집을 사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긴 했다.

“그건 좀 더 고민해보고.”

* * *

뉴스의 영향인지 한얼 미술관에는 관람객들이 아주 많았다.

관람객들 사이에서 입장 순서를 기다리던 인호 일행이 입장료를 지불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우와-. 저거 국사책에서 봤던 것 같아요.”

이민정이 세월이 가득 담겨 있는 청자를 보며 수선을 떤다.

“비슷한 거겠지. 국사책에 나올 정도면 보물로 지정되어 있지 않겠냐?”

“그런가요?”

관람객들의 줄을 맞춰 천천히 이동하며 미술품들을 감상한다. 곳곳에 미술관 직원이 서서 예술작품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정체의 이유가 있었군.”

사기꾼이 한쪽을 가리킨다.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저곳에서의 정체 때문에 뒤쪽까지 이동이 느려지고 있었다.

“저기에 그 사진이 있나 봐요.”

미술관 직원들의 교통정리로 인해 잠시 후 인호 일행도 사진 앞에 설 수 있었다.

“어-, 어!”

이민정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뜬다.

“쉬-.”

인호가 검지를 입 앞에 세운다.

“고 이세민 의사와 함께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던 분들의 사진입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서 계신 분이 고 이세민 의사십니다.”

미술관 직원의 설명이 모인 사람들이 작은 탄성을 토해낸다.

티비에서 보던 것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나라를 잃은 이들의 설움과 비애가 느껴졌다. 사진 속 독립투사들은 그런 감정들을 일본에 대한 분노로 표출하는 것처럼 보였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저 다섯 사람 중 한 명은 나머지 동료를 일본에 팔아먹은 배신자라고 합니다. 그분의 후손들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어 누구라고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인호가 설명해 주는 직원을 바라본다.

“모종의 작전을 수행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배신으로 작전은 시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일본 군인들이 독립투사 분들의 은거지를 덮친 거죠. 그때 세 분이 죽고 이세진 투사와 배신자만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하늘의 심판을 받은 것인지 배신자는 이세진 투사를 노린 총알을 맞고 죽었다고 합니다.”

인호의 시선이 사진으로 향한다.

사진 속에 푸른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다섯 명의 독립투사 중 오른쪽에서 두 번째 투사였다. 죽은 독립투사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사진 속에 붙잡혀 있는 듯하다.

인호는 모르는 척 사진을 지나친다.

“소장님도 보셨죠?”

“니가 본 걸 내가 못 봤을까?”

인호가 일행들과 함께 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독립투사 분들 중 한 분의 망령일까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제가 잘못 느낀 걸 수도 있는데요. 그 망령 분에게서 원망과 분노가 느껴졌어요.”

“망령이면 망령이지 망령 분은 뭐냐?”

사기꾼의 말에 이민정이 발끈한다.

“독립투사잖아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신 분들인데 당연히 높여 불러야죠.”

“그래. 너 잘났다.”

이민정이 인호에게 묻는다.

“그냥 넘어가실 거예요?”

“생각 중이야.”

“그런데 왜 기부는 1억밖에 안 하신 거예요? 전 한 백억은 하실 줄 알았는데.”

신호에 걸리자 차를 세운 인호가 이민정을 보며 말한다.

“고민 중이야.”

* * *

“관장님. 부르셨어요?”

한얼 미술관의 큐레이터 정소희가 관장실로 들어오며 말한다.

“그래. 기부금은 좀 모였고?”

“5억 정도 모였습니다.”

“5억? 4일 동안 5억이 모였다고?”

“네.”

“대기업하고 정치인들도 다녀갔잖아.”

“그분들이 오셔서 그나마 그 정도라도 모인 겁니다.”

한얼 미술관 관장 이경민이 인상을 찌푸린다.

“돈도 많은 사람들이 말이야.”

“일반 관람객들 중 한 분이 1억 원을 기부하셨습니다. 가장 많은 돈을 기부하신 분이죠.”

“일반 관람객인데 1억이나 기부했다고?”

“일단 일반 관람객이긴 한데 신분을 보면 그런 것 같지 않기도 합니다.”

“무슨 말이야?”

정소희가 방명록에서 확인한 것을 말한다.

“대은 그룹 기획조정실 소속이시던데요.”

“아-, 그래?”

“관장님께서 호출하시기 조금 전에 그분께 연락이 왔습니다.”

“뭐라고?”

“10억 원을 기부하실 생각이 있으시다고 합니다.”

“오-. 10억.”

“한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합니다.”

“뭔데?”

“특별한 조건은 아닙니다. 박물관 관람 시간이 끝나면 혼자서 관람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경민이 피식 웃는다.

“자기를 조금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인가? 왜 재벌들 그러잖아. 백화점 내에 자기들만 들어갈 수 있는 특별한 공간 만들고 말이야. 조건은 그거 하나뿐이야?”

“네. 안내해 줄 사람도 필요 없다고 합니다.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CCTV 돌아가고 있으니 예술품 도난에 대한 위험도 없을 테고 말입니다. 대은 그룹 기획조정실에 계신 분이 쓸데없는 생각을 할 리도 없고요.”

“신분은 확인했어?”

“네. 대은 그룹에 직접 확인했습니다. 대은 그룹 기획조정실 정인호 과장님 맞습니다.”

“과장? 뭐, 최고 엘리트들만 모이는 기획조정실 소속이니 그럴 수도 있지. 알겠다고 해. 방문 날짜는 언제고?”

“오늘이라도 좋다고 합니다. 기부금은 관람을 마친 후 바로 지급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경민이 씨익 웃는다.

“그럼 뭘 망설여. 바로 오시라고 해.”

* * *

아무도 없는 미술관을 인호 혼자 거닐고 있다. 이민정과 망령들 모두를 떼어두고 왔다. 미술관 입구를 지키는 경비 인력은 있지만, 실내에는 아무도 없다.

인호는 다른 예술품들을 천천히 구경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방문의 목적인 사진이 전시된 곳 앞에 돌아와 섰다.

인호가 휴대폰을 한 번 꺼낸 후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CCTV로 자신을 촬영하고 있을 테니 전화를 거는 척하려는 것이다. 망령과 대화를 나눠야 할 텐데 혼자 떠들고 있는 모습이 촬영되면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안녕하세요.”

사진 속에서 푸른 기운이 일렁인다.

“저는 정인호라고 합니다. 극락 흥신소라는 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호는 극락 흥신소가 뭘 하는 곳인지 설명해 준다.

“제가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 양형우.

귀가 아닌 머리로 직접 전달되는 메시지.

“네. 양형우 의사 되시는군요. 이 사진 속 이세진 의사와 동료 되시는 분이시고요?”

사진 속에서 푸른 기운이 불쑥 튀어나오며 큰소리로 호통친다.

“그 더러운 배신자를 입에 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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