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10화 (110/190)

제110화

트럭은 금방 찾았다.

하지만 아직 도재민을 찾지 못했다.

“이 많은 집들 중에 어떻게 찾냐?”

트럭을 발견한 곳은 트럭이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의 끝이었다.

트럭이 세워진 곳 안쪽으로는 좁은 길들 뿐이다. 빌라와 다세대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쉬운 방법이 있잖아.”

사기꾼의 말에 인호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박스가 백 개나 되니 쉽게 찾을 수 있겠네.”

사기꾼과 영감, 뚱보가 벽을 뚫고 훑어보면 된다.

“사람들한테 피해 주지 말고.”

“당연하지.”

영체화한 뚱보와 두 망령이 흩어진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네.”

이민정과 근처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소장님. 저기 봐요.”

덩치가 큰 남자 몇 명이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제가 지금 생각하는 게 맞겠죠?”

“흐음. 그런 것 같네.”

마귀의 부하들인 것 같다.

당당하게 내기를 하자고 하더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탕탕탕이라는 치트키를 쓴 인호 일행과 거의 같은 시기에 도착한 것이다.

망령들이 커피전문점에 온 것은 수색을 시작하고 한 시간 반 정도 지난 후였다. 망령들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못 찾았어?”

“없네.”

“아무리 찾아도 없어.”

박스가 백 개가 넘는다. 그걸 찾지 못했을 리 없다.

“손으로 일일이 날랐다고?”

밤의 어둠을 이용해 박스를 날랐을 수도 있다. 하루에 오십 개씩 나른다면 나흘이면 모두 나를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을 숨기기 위해 주문진까지 도망쳐 온 도재민이 그런 위험을 감수했을 리 없다.

리모컨 속의 탕탕탕을 소환한다.

“이 골목 밖의 CCTV 확인해 봐. 트럭이 들어온 이후에 다른 트럭이 들어온 적 있는지.”

확인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트럭이 들어간 게 마지막이야.”

다른 트럭은 골목 안으로 들어간 적이 없다고 한다.

결국 그들은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인근 모텔에 숙소를 잡아야만 했다.

* * *

여덟 시가 지나는 무렵, 인호는 이민정과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모텔을 나섰다.

뚱보는 그들과 함께 나섰고 모텔에 남은 다른 망령들에게는 중국 음식을 시켜주었다.

모텔에서 멀지 않은 선술집으로 들어갔다. ‘꼼장어’라고 큼직하게 적혀있는 간판이 일행의 발길을 붙잡았다.

테이블이 다섯 개 있는데 이미 세 곳은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중간 자리에 앉은 다음 주문을 한다. 먼저 나온 밑반찬에 소주를 먼저 한잔 마신다.

“크으-. 좋네. 확실히 사무실에서 마시는 거하고 차원이 다르네. 바다 짠내도 좋고.”

“그러니까 가끔 멀리 나오고 그래야 한다니까요.”

“그래. 앞으로 그렇게 하자.”

주문한 꼼장어가 나왔다.

그릴 위에서 꼼장어가 맛있게 익어갔다.

“연탄으로 굽는 집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이민정이 기대가 된다는 듯 젓가락을 들고 꼼장어가 익기를 기다린다. 꼼장어가 모두 익자 소주 한잔을 마신 후 냉큼 한 조각 입에 넣는다.

“그래. 이 맛이지.”

이민정을 보며 피식 웃은 인호가 꼼장어를 입에 넣는다. 쫀쫀한 식감이 일품이다.

“소주를 부르는 맛이네.”

뚱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흡입하기 시작했다. 꼼장어 익는 속도가 뚱보의 먹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지경이었다.

“주방에서 좀 구워 드릴까요?”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사장님이 꼼장어를 주방에서 구워 가져다주신다. 그래도 인호와 이민정이 먹는 꼼장어의 양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냥 모텔에서 짜장면이나 먹지 왜 따라 나온 거예요?”

“미안. 천천히 먹을게.”

뚱보가 입에 꼼장어를 잔뜩 집어넣고 우물거리며 말한다.

두 번이나 꼼장어를 추가시킨 후에야 뚱보의 먹는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그나저나 어딜 가야 찾을 수 있을까?”

인호가 소주 한 잔을 마신 후 도재민을 떠올린다.

그때 문이 열리며 남자 한 명이 안으로 들어온다.

“유 씨, 왔어.”

사장이 남자를 아는 체한다. 바닷일을 하는지 무릎 위까지 오는 긴 장화를 신고 있는 남자였다.

뜨거운 바다 햇빛을 피하려 벙거지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있어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모자 아래로 드러난 하관은 온통 수염으로 가득했다.

“꼼장어하고 소주 한 병 주세요.”

“그래. 조금만 기다려. 곧 줄게.”

남자는 먼저 나온 반찬에 소주를 마시고 있다. 일이 힘겨운지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소장님. 이번 일 끝나면 어디 놀러 가면 안 돼요?”

“제주도 다녀온 지 얼마나 됐다고 놀 타령을 하고 있어? 일이 너무 편해서 그렇지?”

“아니거든요. 저도 나름 바쁘거든요.”

“요즘도 일감 찾겠다고 괴담 카페 기웃거리냐?”

“그것도 제가 하는 일 중 일부죠. 이틀 전에 괜찮은 글 하나 봤는데 이야기해 드릴까요?”

이민정은 인호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소장님은 마법을 믿으세요?”

“마법? 마술이 아니라?”

“네. 마법이요.”

인호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믿지.”

이 세상에는 신비로운 힘이 참 많았다. 인호가 지닌 힘만 해도 그런 힘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 그런 힘을 지닌 이들이 많았다.

박주완, 황동호, 불계, 박수, 만신.

앞에 앉아 있는 이민정만 해도 망령을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인호는 사람들이 영화 속에서나, 상상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신비한 힘들을 대부분 믿었다.

마법도 그것들 중 하나다.

“그런데 갑자기 마법은 왜?”

“이거 보세요.”

이민정이 자신이 즐겨 찾는 카페의 동영상 하나를 보여준다.

“이게 사람을 반으로 자르는 마법이에요.”

“마술 아니고?”

“정말 마법이라니까요.”

사람을 반 토막, 세 토막 내는 마술은 아주 유명하다. 세계에서 그 마술을 할 수 있는 마술사만 해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제가 왜 마법이라고 하는지 들어보면 아실 거예요. 동영상 속 마법사는 영상의 조작 의혹을 일소하기 위해 스무 개의 메트로놈을 배치했어요. 커튼이나 그런 것 하나도 없고요. 마술처럼 사람을 상자 속에 집어넣지도 않아요.”

“그게 가능하긴 한 거야?”

“그러니까 마법이죠.”

“그건 마법으로도 불가능할 것 같은데?”

인호도 아는 마법사가 있다. 아무런 도구 없이 화염을 만드는 마법사다. 그 마법사가 할 수 있는 것은 화염을 만드는 것뿐이다.

영화나 소설처럼 화염을 화살처럼 만들어 상대에게 날려 보내지도, 폭탄처럼 터트리지도 못한다. 활용도를 따지면 캠프파이어를 할 때 장작에 불을 붙이는 정도였다.

그렇다고 그의 마법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불을 만들어내는 것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민정이 말한 것처럼 사람을 반으로 가르는 것은 마법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안 됐다.

사람의 몸을 반으로 갈랐는데도 살아있다면 그건 사람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동영상 보세요. 메트로놈이 스무 개가 넘어요. 나중에 댓글 보시면 아시겠지만, 영상 전문가들도 영상에는 아무런 조작의 흔적이 없다고 했어요.”

이민정이 동영상을 재생시킨다.

한 여자가 침대에 누워있다. 그녀의 주위로 메트로놈들이 빙 둘러있다. 메트로놈은 조금씩 움직임이 모두 달랐다. 이민정의 말대로 영상을 조작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한 남자가 등장한다. 어린 시절 보았던 쾌걸 조로라는 외국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두건으로 코 위를 가리고 있다.

남자는 가로세로 50센티미터쯤 되는 금속판을 들고 있다. 금속판의 아래쪽에 고구마를 가져다 슥슥 자르는데 얼마나 날카로운지 쉽게 잘려 나간다.

남자가 여자가 누운 침대 중간쯤에 선다. 잠시 카메라를 응시한 남자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인호가 고개를 갸웃한다.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기운이 조금 오묘하다. 망자의 기운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던 남자가 금속판을 여자의 배에 내리꽂는다.

“헛!”

인호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낸다.

남자는 금속판 한 장을 더 여자의 몸에 꽂는다. 그리고는 침대의 반을 잡아당긴다. 여자의 상체가 누운 침대가 하체가 누운 침대와 분리된다.

남자가 누운 여자의 어깨를 살짝 건드린다. 여자가 팔을 들어 올려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든다. 이번에는 하체 쪽으로 가 발가락을 건드린다.

간지럼을 느끼는 것인지 발이 움찔거린다.

남자는 카메라를 보며 다시 주문을 외운다. 그리고 침대를 본래대로 되돌린다.

“이제부터 대박이에요.”

남자가 금속판을 뽑아낸다. 잠시 누워있던 여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이게 가능해?”

영상이 조작되었다는 의심은 조금도 없다. 여자가 몸을 일으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어때요? 대단하죠? 이래도 제가 일을 안 한다고 하실 거예요?”

“대단한 건 맞는데. 이게 네 일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뭐 그거야…… 한잔해요.”

말문이 막힌 이민정이 잔을 앞으로 내민다.

“계산할게요.”

뒤늦게 들어온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3만 원이야. 유 씨. 오늘도 수고했어. 다음에 또 와.”

남자가 밖으로 나가자 사장이 테이블을 정리한다.

“일 시작한 지 며칠 안 돼서 그런지 아주 죽을려고 하는구나.”

인호가 궁금하다는 듯 묻는다.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고요?”

“네. 이 동네 온 지 며칠 안 됐어요. 지난 주에 왔나? 그럴걸요. 평생 바닷일 안 해본 사람 같았어요. 그러니 매일 저녁 저렇게 녹초가 돼서 들어오지.”

“사장님. 저 사람 성이 유 씨가 맞아요?”

“자기가 유 씨라니까 유 씨인지 알죠. 그런데 그건 왜 물어요?”

“하하, 저도 유 씨거든요. 어디 유 씨인지 궁금해서요.”

인호가 막 입에 꼼장어를 집어넣고 있는 뚱보를 툭 친다.

“왜?”

“가봐.”

“우씌.”

뚱보가 꼼장어 몇 점을 입에 더 넣고는 밖으로 나간다. 영체화해서 따라갈 테니 들킬 염려는 없었다.

“왜요? 유 씨라잖아요.”

“그렇긴 한데…… 키도 그렇고, 체격도 그렇고. 도재민하고 많이 비슷한 것 같아서.”

뚱보가 들어오자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집이 어딘데?”

“아까 우리가 살펴봤던 곳이야.”

“그래?”

“응. 내가 확인했던 곳이야. 그런데 정말 박스는 없었어.”

뚱보를 따라가니 낮에 왔던 곳이 맞았다.

“저기 3층 불 켜진 곳 있지? 그 집이야.”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안에 박스가 없단 말이지?”

누가 내놓은 것인지 모를 침대 매트리스가 벽에 기대어져 있었다.

“아닌가?”

인호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모텔로 걸음을 옮겼다.

* * *

아침보다는 새벽에 가까운 시각.

인호가 골목 벽에 버려진 매트리스에 기댄 채 서 있었다.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 때 빌라에서 어제 보았던 남자 ‘유 씨’가 밖으로 나온다. 일을 가는 건지 무릎 위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있다.

남자가 인호를 지나쳐 걸어간다.

인호가 몸을 돌려 조금씩 멀어지는 남자에게 말한다.

“도민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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