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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108화 (108/190)
  • 제108화

    인호는 답답한 마음에 술 한잔하고 싶어 땡초의 가게를 찾았다.

    “자주 좀 오고 그래. 동생 놈들하고 술 마시면 영 맛이 안 나거든.”

    “나도 형하고 마시면 영 맛이 안 나요.”

    “크크, 그래도 술 마시고 싶을 때 찾아올 사람이 나밖에 없지?”

    “그래서 참 슬프네요.”

    “오늘은 무슨 일인데?”

    인호가 땡초에게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준다.

    “할 말은 아니지만 결국 쉽게 돈 벌려다 그런 거잖아. 4억을 넣었다고 했지? 이자가 5%만 해도 한 달에 2천만 원이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말이 안 되죠. 그걸 아는데도 그냥 듣고 나니 마음이 쓰이네요.”

    “사람이니 당연히 그렇겠지. 네 성격도 있고. 그나저나 할머니는 사기당한 충격으로 돌아가신 거야?”

    “아니요. 사기 친 놈들 잡겠다고 서울 올라오셨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대요.”

    땡초가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흔든다.

    “그 자식들은 뭔 죄냐? 사기당해 집 날라가게 생겼어. 어머니까지 돌아가셨어. 그 아들 속이 속이겠냐고.”

    “그렇죠.”

    “얘기 들으니까 기분 꿀꿀해지네. 술이나 이빠이 빨자. 자-, 마셔.”

    땡초와 건배한 후 잔을 비운다.

    독한 위스키가 식도를 타고 흘러내려 간다.

    “형은 요즘 어때요? 경기가 안 좋잖아요.”

    “몰랐냐? 우리 업계는 원래 경기가 안 좋으면 오히려 장사가 더 잘 돼.”

    “신기한 일이네.”

    “그러게 말이다. 돈 많은 놈들은 경기가 좋던 안 좋던 쓸 돈 다 쓰거든. 우리 가게야 상위 1%만 손님으로 받으니 경기 영향받을 일이 없지.”

    “좋겠수. 돈 많이 벌어 부자 되세요.”

    “크크, 그래야지.”

    땡초의 잔을 채워준다.

    “인호야. 나하고 동업 안 할래?”

    “동업이요?”

    “그래. 새로 가게 하나 오픈하려고 하거든. 나 혼자 해도 상관없는데 생각 있으면 같이 하자.”

    “됐네요.”

    “얌마. 내가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잖아. 너도 알다시피 우리 가게 불법적인 일은 안 해.”

    인호도 알고 있었다.

    그는 악귀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인호를 만난 후 사채업을 청산하고 불법적인 일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그래도 싫어요. 술집이 나하고 어울리기나 하게요.”

    “미친놈. 한 달에 순수입만 최소 5천씩 따박따박 꽂힐걸?”

    “이야. 그거 혹하네.”

    “그렇지?”

    “그래서 그 할머니도 사기당했구나.”

    “크크, 미친놈. 그래. 사기다, 사기. 그냥 좀 속아주면 안 되냐? 크크.”

    건배하고 술을 마실 때 인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냐?”

    “정 검사님인데?”

    “그러면 받아야지.”

    인호가 전화를 받는다.

    “네, 검사님.”

    - 인호 씨. 전해 드릴 말이 있어서요. 이게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사기 친 일당들 외국으로 도망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요”

    - 네. 멍청한 놈들이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을 건드렸네요.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 혹시 마귀라고 아세요?

    “마귀요?”

    마귀라는 말에 땡초가 바로 반응한다.

    - 우리나라 사채시장의 대부 같은 사람이에요. 아-, 태훈 씨라면 잘 알겠네요.

    “네, 전에 한 번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 그놈들이 마귀한테도 사기를 쳤어요.

    “네? 마귀한테 사기를 쳤다고요?”

    땡초의 인상이 와락 구겨진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마귀 형님이 그런 얼치기들한테 당했을 리가 없어.”

    “들으셨어요?”

    - 정확하게는 마귀가 사기당한 게 아니라 마귀 아들이 사기당한 거예요.

    “마귀 아들이요?”

    인호가 땡초를 바라본다.

    “이런 미친 새끼. 내가 언젠가 한 번 사고 제대로 칠 줄 알았다.”

    아무래도 마귀의 아들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 그 사실을 알게 된 마귀가 그 일당들을 모조리 잡았나 봐요. 그다음은 태훈 씨에게 물어봐요.

    정재훈과 통화를 마치니 땡초가 답답하다는 듯 술잔을 비운다.

    “아는 사람이에요?”

    “알자. 아주 잘 알지. 마귀 형님 위궤양의 원인이지. 전에 봤던 재문 형님 기억하지?”

    “공사장 터줏대감이요?”

    “그래. 그 형님. 좀 된 이야긴데 그 형님이 마귀 형님 아들 녀석한테 뺨을 맞은 일이 있었어. 사소한 이유인데 재문 형님은 마귀 형님 때문에 뭐라고 하지도 못했고. 그놈은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마귀 형님한테 개처럼 뚜드려 맞았지.”

    “형도 맞은 거 아니에요?”

    “날 뭘로 보고. 내가 종수 그 녀석 훈육 담당이었어. 그래서 종수 녀석이 나만 보면 껌뻑 죽지.”

    “훈육 담당은 또 뭐예요?”

    땡초가 예전 생각이 나는지 히죽 웃는다.

    “명동에서 사채하는 애들 대부분 예전에 마귀 형님 밑에서 일했거든. 나도 그랬고. 그때 마귀 형님이 아들인 종수가 하도 사고를 치고 다니니까 나한테 맡겼었어.”

    “아-.”

    “그런데 상황이 조금 재미있게 돌아가네.”

    “무슨 말이에요?”

    “종수 놈이 사고를 쳤으면 혼자 치지는 않았을 거란 말이지. 그놈하고 어울려 다니는 두 녀석이 있거든. 한 놈은 한라 그룹 셋째고, 다른 놈은 4선 국회의원 아들. 그 셋 중 하나가 사고를 치면 다른 두 놈도 같이 사고를 쳤다고 생각하면 돼. 끼리끼리 뭉친다고 항상 같이 다니거든.”

    땡초가 사과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얼마 전에도 세 놈이 함께 가게에 놀러 왔었어. 아-, 그리고 보니 그래서 그렇게 말했구나.”

    - 삼촌. 이런 가게 하려면 얼마나 들어요?

    “뭔 돈이 있어서 가게를 하려고 하냐고 물었더니 다 나올 구멍이 있다고 하더라. 그게 이거였네. 아이코야. 마귀 형님 또 위궤양 도지시겄네.”

    “마귀라는 사람이 사기꾼들 다 잡았다던데요.”

    “돈은?”

    “그 이야기는 못 들었어요.”

    “돈을 찾았다면 그나마 다행이려나?”

    인호가 술을 마신 후 은근한 투로 말한다.

    “저-, 형. 그 마귀라는 사람 한 번 만나게 해주면 안 돼요?”

    * * *

    “형님. 도착했습니다.”

    땡초와 함께 차에서 내린다.

    “이야. 집들이 하나 같이 그냥 궁궐이네.”

    “신성 그룹 회장님 집에도 가봤다며? 거긴 여기보다 더 좋을 거 아냐?”

    “그렇긴 하죠. 그때 우리나라에도 그런 집이 있는 줄 처음 알았어요.”

    “재벌들은 자기 사는 모습 남들한테 잘 안 보여주잖아.”

    계단을 오르니 넓은 정원이 나왔다. 정원에는 경호원으로 보이는 남자들 몇 명이 거닐고 있었다.

    “땡초 형님 오셨습니까.”

    현관 앞에 서 있는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땡초에게 꾸벅 인사한다.

    “그래. 오랜만이네. 형님 안에 계시고?”

    “네. 기다리고 계십니다.”

    땡초가 현관 안으로 들어가자 인호가 그 뒤를 따라 들어가려 한다. 그러자 땡초에게 인사한 남자가 앞을 막아선다.

    “함께 왔는데요.”

    “실례지만 잠시 몸수색 좀 하겠습니다.”

    인호가 팔을 벌리고 서자 남자가 몸 곳곳을 확인한다.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만나달라고 부탁했기에 꾹 참았다.

    “들어가셔도 됩니다.”

    “네.”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응접실이 맞아준다. 땡초가 소파 앞에 서 있다. 그 옆으로 서서 상석에 앉은 50대 중반의 남자에게 인사한다.

    “정인호라고 합니다.”

    “그래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인호가 땡초를 힐끔 쳐다본다. 땡초가 고개를 가볍게 흔든다. 자신이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신성, 대은. 이 정도 이야기하면 이해됐죠?”

    “형님. 아직도 대기업 가문에 눈 붙여두신 겁니까? 위험하다고 몇 번을 말씀 드립니까?”

    땡초의 말에 마귀 송양호가 피식 웃는다.

    “그쪽에서도 다 알아. 그리고 그쪽에서도 나한테 눈 붙여 뒀어. 서로 알면서 그냥 모르는 척하는 거야.”

    땡초가 고개를 돌리며 으르렁거린다.

    “얌마. 너는 삼촌을 보고도 인사를 안 하냐?”

    “오셨어요.”

    아직 서른도 안 되어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이번에 사고 친 송양호의 아들 송종수일 것이다.

    “형님. 대충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어쭈. 이 바닥에서 떠났는데 아직 귀는 살아 있나 보다.”

    “사정이 있습니다. 그래도 잘 해결됐다고요?”

    “잘 해결되기는 개뿔. 귀는 살아있는데 제대로 듣지는 못했나 보구나.”

    “무슨 말씀이신지.”

    “이 녀석 사기 친 놈들 잡아들였다는 말 듣고 왔지?”

    “네, 형님.”

    “그런데 가장 중요한 놈을 못 잡았어. 돈 가지고 있는 놈.”

    “아-!”

    송양호가 인상을 찌푸린다.

    “5백억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만 기분이 좀 언짢아.”

    “5백억이라 말씀이십니까, 형님?”

    “그래. 이 녀석만 5백억. 같이 어울려 다니는 망나니 놈들도 2백억씩 당했다더라.”

    “하, 하하.”

    2, 3백억 규모의 사기인 줄 알았더니 천억이 넘어가는 사기였다.

    “내가 눈치챈 걸 알고 도망을 치려고 하길래 잡았지. 돈도 빼돌리지 못했고. 그런데 정작 그 돈을 가진 놈만 잡지 못했어. 이런저런 방법들을 동원해 봤는데 잡힌 녀석들도 그 녀석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하더라.”

    송양호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뭐 그래도 금방 잡히지 않겠냐.”

    “그렇지요. 대한민국 땅에서 형님 눈 피할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송양호가 인호를 보며 묻는다.

    “함께 오신 분은 무슨 일로 날 보자고 했을까요?”

    “사실 제가 온 이유는 아는 분이 아드님 엮인 그 사기극 피해자입니다.”

    “피해 금액은요?”

    “4억 정도 됩니다.”

    “흐음. 곤란하네요.”

    송양호가 볼을 긁적인다.

    “그놈 잡으면 아이들 당한 금액을 제외하고는 내 수고비가 될 거거든요. 이래 봬도 엉덩이가 무거워서 한 번 움직이는데 많은 수고가 들어요.”

    “그중…….”

    무슨 말인가를 하려던 인호가 입을 닫는다.

    그중에 4억만 돌려주시면 안 되겠냐는 말을 하려다 차마 하지 못한 것이다.

    사기를 당한 사람이 백 명이 넘는다고 했다. 할머니 망령이 찾아와 알게 된 일이라고 해도 나머지 사람들을 외면한 채 4억만 찾을 수는 없었다.

    “곤란한가요? 차라리 내가 4억을 주면 어떨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럴 것 같았으면 제 돈으로 벌써 드렸죠.”

    송양호가 묘한 웃음을 짓는다.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어떻게 말씀이시죠?”

    “우리 둘이 그놈을 찾는 거예요. 먼저 찾는 사람이 그놈이 숨긴 돈 모두 갖는 겁니다. 어때요?”

    “무게 추가 맞지 않는 것 같은데요.”

    “왜요? 이쪽은 9백억이고 그쪽은 4억이라서?”

    “일단은 네, 그렇죠.”

    “나한테 9백억이나 4억. 크게 의미 없어요. 내 재산이 얼마나 될 것 같아요?”

    “잘 모르겠습니다.”

    송양호가 빙긋 웃는다.

    “사실 나도 잘 몰라요. 내 재산은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거든요. 9백억? 없어도 되는 돈이에요. 대신 그 9백억으로 오랜만에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 같네요.”

    이런 것이 돈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가진 사람의 마인드인가 싶었다.

    “나 정도 재산을 가지고 이 나이 되면 흥미로운 일이 별로 없거든요. 사람들은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들. 전화 한 통이면 불러낼 수 있어요. 대통령? 연락 한번 주십사 하면 다음 날이면 통화돼요. 어때요? 부러워요?”

    “전혀 안 부럽습니다.”

    “크크, 내 그럴 줄 알았어요. 딱 봐도 그래 보이거든요.”

    송양호가 씨익 웃으며 상체를 숙여 손등에 턱을 받치며 묻는다.

    “내기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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