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07화 (107/190)
  • 제107화

    악령에게 몸을 빼앗긴 이연호는 결국 죽게 되었다. 그나마 온전한 정신으로 죽을 수 있었다. 그는 죽어가며 인호와 일행에게 감사하다며 몇 번이나 인사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이연호의 주변에는 그의 죽음을 슬퍼해 줄 사람이 없었다.

    악령이 이연호의 몸을 차지한 후 가장 먼저 죽인 사람이 바로 그의 부모님들이었다.

    이연호가 정신을 찾을 때마다 자살을 시도했던 이유가 그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연호는 죽기 전 악령이 죽인 사람들이 마흔 명이 훌쩍 넘는다고 말했다.

    희대의 연쇄살인이었지만 이연호의 이름은 신문이나 뉴스에서 찾을 수 없었다.

    정재훈이 자신의 선에서 묻어 버린 것이다. 자신의 의지로 살인을 하지 않았음에도 희대의 살인마로 기록에 남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어떠셨습니까?”

    인호가 양손에 음료수와 과일바구니를 들고 병실에 들어선다. 신성 병원의 VIP 룸에 박주완과 황동호, 불계가 나란히 누워있었다.

    “인호야. 제발 병실 좀 옮겨주면 안 되냐?”

    “또 왜 그러세요?”

    “불계 형제님이 아침저녁으로 불경을 틀어놔서 미쳐버릴 것 같아.”

    불계가 피식 웃는다.

    “시주님. 다른 분들이 오셔서 예배드릴 때 제가 한마디라도 했습니까?”

    “그냥 한마디 하지 그랬습니까?”

    “대한민국은 엄연히 종교의 자유가 있는 국가 아니겠습니까? 크크크.”

    저 웃음이 왠지 지옥의 문으로 끌려 들어간 악령의 웃음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

    “동호 형님은 지낼 만하세요?”

    “당연하지. 완전히 호텔이야, 호텔. 음식도 맛나고 서비스도 아주 좋아. 결정적으로.”

    황동호가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하고 인호의 귀에 속삭인다.

    “간호사들이 아주 예뻐.”

    “하, 하하.”

    “왼쪽에 신부님, 오른쪽에 스님. 간호사들이 그냥 나만 쳐다본다니까?”

    “그러니까 제발 노골적으로 쳐다보고 그러지 마요.”

    “누가 누굴 봤다고 그래? 내가 워낙 매력이 철철 넘치니까 쳐다보는 거지.”

    “이 병실에는 거울 없어요?”

    박주완과 불계가 큰 소리로 웃는다.

    웃고 떠들고 있었지만, 박주완과 황동호는 각각 갈비뼈와 팔목에 골절상을 입었다. 불계는 장기에 손상이 와 적어도 4주는 입원 치료를 해야 했다.

    자신이 손을 내밀자 아무런 대가 없이 도움을 준 이들이기에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자주 올게요.”

    “제발 오지 마. 가뜩이나 남자 셋이라 칙칙해 죽겠는데 왜 너까지 와서 난리야.”

    인호가 생긋 웃는다.

    “그래서 오는 거예요.”

    * * *

    “다녀왔습니다.”

    “배울 만해?”

    “네. 완전 재밌어요.”

    요즘 이민정은 사무실 인근의 주짓수 짐에 다니며 격투기를 배우고 있었다.

    얼마 전 뜬금없이 격투기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이유를 물으니 인호를 돕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이유라면 배울 필요 없다고 말을 하려다 그냥 두었다. 배워두면 언젠간 써먹을 때가 있을 테니 말이다.

    “소장님. 그런데 주짓수 배울 때 원래 그래플링 먼저 배우는 거예요?”

    “글쎄. 나도 배워보질 않아서 잘 모르겠네. 왜 그러는데?”

    “나한테 재능이 있다면서 그래플링 배워보자고 해서요.”

    “하, 하하.”

    “왜 웃으세요?”

    “아니야.”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가?

    이민정의 외모가 예쁘니 그래플링을 가르쳐 준다며 함께 바닥에서 뒹굴뒹굴하려는 것이리라.

    “뭐라도 가르쳐 준다는데 잘 배워 놔.”

    “네, 그러려고요. 오늘 배운 것 한번 보실래요?”

    이민정이 가드를 올리고 자세를 잡더니 스텝을 밟으며 원투 스트레이트를 친다. 자세가 제법 좋다.

    재능이 있다는 칭찬이 영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닌 것 같다.

    “무게만 조금 더 실리면 괜찮겠네.”

    “그래요?”

    “펀치를 낼 때 팔만 쓰는 게 아니야. 온몸을 다 쓰는 거지. 내일은 가서 그 원리를 알려달라고 그래.”

    “알겠습니다.”

    가뜩이나 불같은 성격인데 격투기까지 탑재된 이민정에게 뭣 모르고 찝쩍대다 봉변당할 남자들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명복을 빌지.”

    “뭐라고 하셨어요?”

    “아니야. 혼잣말이야.”

    “식사 아직 안 하셨죠? 운동하고 와서 그런지 엄청 배고파요. 맛있는 것 좀 사주세요.”

    “맛있는 게 뭔데?”

    “으음-. 순댓국?”

    “그래. 가자.”

    이민정과 함께 사무실 근처에 있는 순댓국집으로 향한다.

    “우리 사무실 위치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갑자기?”

    “여기 순댓국도 맛있고, 아무튼 주변에 맛집이 엄청 많잖아요.”

    “아, 그래서 좋다고?”

    인호가 물로 입을 헹구며 말한다.

    “요즘은 여럿이서 밥 먹으러 와도 서로 휴대폰 보기 바빠서 대화는 거의 안 하더라.”

    “요즘 다 그래요. 친구들끼리 만나도 그러는데요 뭐.”

    “우리 때는 그러면 실례였거든.”

    “라떼는 말이야. 뭐 이런 거예요?”

    “후후, 그런 거지.”

    순대국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였다.

    “누구세요?”

    인호가 소파에 앉아 영감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망령에게 묻는다. 하얗게 머리가 센 할머니 망령이었다.

    “인호야 이리 와봐. 사정이 아주 딱해.”

    소파에 가 앉으니 할머니가 고개를 숙인다.

    “처음 뵙겠습니다. 주인도 없는 곳에 막 와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부탁하러 온 입장에 그러면 안 되죠.”

    인호가 영감을 쳐다본다.

    “사기를 당했대.”

    “사기요? 보이스피싱 이런 거요?”

    “차라리 그런 거면 다행이지. 아주 제대로 당한 것 같아. 나머지는 이놈한테 들어.”

    영감이 사기꾼의 어깨를 툭 친다.

    “그냥 투자 사기당한 거야. 아주 괜찮은 펀드가 있다. 이게 아무나 막 투자받아주고 그러는 펀드가 아니다. 천만 원을 투자하면 한 달에 이자를 50만 원 주겠다.”

    “무슨 펀드길래 한 달에 이자가 50만 원이야? 일 년이면 이자만 6백이네?”

    “그러니까 사기지.”

    “나이 드신 분들 상대로 사기 치는 놈들한테 당하신 거야?”

    사기꾼이 고개를 젓는다.

    “나이하고 상관없어. 딱 들어도 사기 같지? 그런데 막상 직접 겪으면 빠져들기 쉽다니까. 일단 안면이 있는 사람이 접근하는 거야. 내가 천만 원 투자 했는데 한 달에 이자로 50 주더라. 막 투자 증서하고 이자 들어 온 통장 보여줘. 처음에는 경계하지. 그런데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이 지나도 통장에 계속 이자가 꽂혀. 그러면 슬슬 회가 동하지. 나도 한 번 해볼까? 저놈이 천만 원으로 50 벌었으니 나는 2천 넣으면 백만 원 벌 수 있는 거 아냐? 이렇게 말이야.”

    “그걸 믿는 사람이 있다고?”

    “있지. 당연히 있지.”

    사기꾼이 쓰게 웃고 있는 할머니를 힐끔 쳐다본다.

    “아, 죄송해요. 할머니한테 뭐라고 하는 것 아니에요. 사기 치려고 작정하고 달려들면 대부분 당하죠. 저놈이 사기꾼이라 제가 잘 알아요.”

    “여기서 중요한 건 이자 꽂히면서 통장 보여주는 사람. 그 사람도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라 이거지.”

    “한패가 아니고?”

    “절대. 다단계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이해가 빠를 거야. 야, 가서 투자자 두 명 데리고 오면 이자 5%가 아니라 7% 줄게. 이러는 거야. 그러다 보면 친구 두 명에게 투자받아줬는데 어느 순간 나는 10% 넘게 이자를 받고 있지. 왜? 그 친구 두 명도 다른 친구 꼬셔서 투자받았을 테니까.”

    “아-!”

    인호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몇 개월 굴려. 이자 지급도 아주 잘해줘. 천만 원 투자하고 한 4개월 동안 50씩 꼬박꼬박 받아봐. 그것만 해도 2백만 원이잖아. 사기당하는 사람들은 자기 원금 천만 원이 묶여 있다는 생각은 안 하고 이자로 2백만 원 받았다고 좋아한다.”

    대부분 사람들의 심리가 그러하다.

    “그렇게 투자자 백 명만 모으잖아. 사기꾼들 순이익이 금방 5억 되고 10억 되는 거야. 그런데 그 돈 먹으려고 판을 짜진 않거든. 또 살살 꼬셔. 몇 달 투자금 담가보니 이익이 나잖아. 그러니까 더 투자해. 이렇게 말이야. 그동안 달콤한 열매를 먹은 사람들이 어떨 것 같아? 너도나도 그냥 투자를 하는 거야. 막 투자해. 그러면 사기꾼들 이익은 백억 단위가 순식간에 넘어 버리지. 이자 몇 개월 받다 보면 어느 순간 사기꾼들은 슝하고 사라지는 거야.”

    인호가 할머니를 바라본다.

    “네, 맞아요. 딱 그렇게 당했어요.”

    “얼마나 사기를 당하셨는데요?”

    “처음에는 저도 경로당 할망구 따라서 천만 원만했어요. 아들이 용돈 준 것 꼬박꼬박 모은 쌈짓돈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자도 잘 들어오고 해서 더 투자하라는 말에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투자했어요.”

    “그러니까 얼마요?”

    “4억이요.”

    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허허 하며 웃는다.

    “아들이 엄마 위한다고 집 명의를 제 앞으로 했거든요. 나 죽은 후에 명의 옮긴다고.”

    “그래서 4억을 대출받으셨어요?”

    “아들이 많이 힘들어했거든요. 작은 식당 했었는데 손님도 많이 떨어지고 힘들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아들 돕고 싶은 마음에 그만.”

    할머니가 고개를 푹 숙인다.

    “제발 도와주세요. 우리 아들 평생 일해서 겨우 장만한 집이에요.”

    인호가 사기꾼을 바라본다. 자신은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다. 정재훈에게 상의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쪽은 전문가가 따로 있다.

    “잡을 수 있겠어?”

    “잡아도 돈은 회수 못 할 거야. 이미 수백, 수천 계좌로 잘라서 세탁 들어갔지. 세탁 끝나면 국세청, 금감원이 나서도 절대 그 돈 못 찾아.”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주륵 흘러내린다.

    “우리 아들 불쌍해서 어쩌누. 우리 형우 불쌍해서 어쩌누. 우리 손주들은 어떻게 하면 좋아.”

    서럽게 우는 할머니를 영감이 토닥여 준다.

    “걱정하지 말아요. 여기 사기꾼, 아니 전문가도 있고 인호가 아는 검사도 있어요. 그렇지, 인호야?”

    인호가 난감한 표정으로 영감을 바라본다.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할머니를 보고 있자니 아니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해 알아볼게요. 어떻게 사기당했는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세요.”

    * * *

    “아주 흔한 사기 수법입니다. 속아 넘어가기 쉬운 사기이기도 하고요. 다른 사기들과는 달리 바로바로 현금이 오가니까요. 그리고 이걸 소개하는 사람도 잘 아는 지인들입니다.”

    “이번에 사기 사건 신고 들어온 게 있습니까?”

    “네. 벌써 스무 건이 넘게 들어왔습니다. 피해액도 2백억이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호가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최초 신고가 들어온 순간 사기 친 놈들 수배하고 관련된 개인 계좌와 유령회사 계좌 등을 모두 동결했습니다. 하지만 사기당한 피해 금액을 찾는 건 어려울 거예요.”

    그건 이미 사기꾼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사기꾼들도 이미 필리핀이나 태국 같은 나라로 모두 도주했을 겁니다. 사기당한 사람들이 신고했을 때는 이미 다 털어낸 후니까요. 혹시 지인 중에 피해자가 있습니까?”

    “지인은 아닌데…… 그럴 사정이 있어요.”

    인호가 사무실을 찾아온 할머니 망령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아-.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기당하신 분들 중 형편 어려운 분들 참 많거든요. 그 할머님도 마찬가지고요.”

    “방법이 없다는 뜻이군요.”

    정재훈이 쓰게 웃는다.

    “간혹 그런 경우는 있습니다. 사기꾼 일당이 서로를 믿지 못하면 돈을 쪼개서 세탁하지 않고 현금화하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라면 돈을 회수할 가능성이 조금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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