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06화 (106/190)
  • 제106화

    악령이 황동호를 쏘아본다.

    “하나가 아니었네?”

    “그래. 하나보단 둘이 낫고, 둘보단 셋이 나은 법 아니겠냐?”

    “널 죽이면 누군가 또 나온다는 뜻인가?”

    “일단 날 죽여봐. 그러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 않겠냐?”

    악령이 창문을 바라본다. 푸른빛이 넘실거리고 있다.

    “저 기운은 낯설지 않군.”

    강당 문이 열리며 불계가 들어선다.

    “진득허니 기다리고 있으려고 했는데 들켜버렸네.”

    “특이한 조합이군. 신부와 중, 그리고 도사라니. 크크, 그만큼 내가 대단하다는 뜻이려나?”

    악령이 망치를 빙글빙글 돌린다. 그러면서도 빠르게 주변을 살핀다.

    “눈동자 굴러다니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운데?”

    불계의 말에 악령이 씨익 웃는다. 귀까지 찢어진 입이 꿈틀거린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살아왔지.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어. 그중에는 너희 같은 사람들도 있었지. 그래서 너희 같은 것들의 공통점을 아주 잘 알지.”

    악령이 뒤로 내달린다. 어느새 번쩍 들어 올린 팔이 엄청난 속도로 떨어져 내린다.

    악령이 노리는 것은 공포에 빠져 결국 기절해 버린 박경훈이었다.

    쩌정-

    날카로운 파동이 주변을 휩쓴다.

    악령의 망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허공에 멈췄다. 푸른빛의 신비로운 문양이 악령의 망치를 막고 있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을 잘 안다고? 웃기는 놈이네. 야! 우리가 너 같은 악령들을 하루 이틀 봤겠냐? 일반인을 아무런 조치도 없이 거기 뒀겠냐고.”

    황동호가 낄낄거린다.

    악령이 다시 한번 망치를 휘두른다. 하지만 푸른빛의 벽은 깨어지지 않는다.

    사르륵-

    황동호가 품속에서 열 장이 넘는 부적을 꺼내 허공에 던지며 수결을 짓는다. 부적들에 순식간에 불이 붙는다. 부적은 허공에서 빠른 속도로 회전한다.

    “봉마封魔의 술.”

    검지 끝을 물어 머금은 피를 뿜어낸다. 붉은 피 안개가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불을 뒤덮는다. 시뻘건 화염이 수레바퀴처럼 빙빙 돌며 악령을 뒤덮는다.

    악령의 표정이 흉악하게 일그러지더니 망치를 쥔 손을 빠르게 휘두른다.

    콰쾅-

    악령의 몸이 뒤로 쭉 날아간다.

    “여기 부처님도 계신다!”

    불계가 목에 걸고 있던 염주를 풀러 던진다. 황금빛으로 물든 염주가 악령을 쫓는다. 염주가 점점 커진다. 신비로운 황금빛을 흩뿌리며 악령의 몸을 감싼다.

    악령이 몸을 움직이려 하지만 염주는 더욱 단단하게 옥죈다. 그 모습을 본 불계가 그 자리에 앉아 합장하며 눈을 감고 불경을 외기 시작한다.

    “신부님 차롑니다.”

    박주완이 엉덩이를 털며 일어선다.

    “아니. 내가 다친 것도 아니고, 위기에 처한 것도 아닌데 왜 다들 나와서 그래? 남들이 보면 내가 약해서 그런 줄 알잖아.”

    악령의 기운에 밀려 타격을 입긴 했지만, 위기까지는 아니었다. 박주완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십자가를 뽑아 든다.

    봉마의 술에 타격을 입고 불계의 염주에 묶인 악령은 다가오는 박주완을 보며 비릿하게 웃는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말을 떠들기 시작한다.

    박주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네가 어떻게 사탄의 언어를 아는 것이냐!”

    “캬하하하하! 크크크크크!”

    박주완의 호통에 악령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린다. 악령의 주위에 붉은 기운이 뭉클 피어오른다.

    “넌 평범한 존재가 아니로구나.”

    “이까짓 염주가 내 몸을 구속할 수 있을 것 같나?”

    뭔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악령을 몸을 구속하던 염주가 끊어지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불계가 피를 토하며 몸을 휘청인다.

    “네게 돌려주마.”

    악령이 ‘후’하고 입김을 토해낸다. 황동호가 만들어 낸 불길보다 더욱 새빨간 화염이다. 황동호가 도술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며 두 손으로 안면을 보호한다.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황동호의 몸이 뒤로 날아간다. 벽까지 밀려 부딪친 황동호가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분위기 좀 맞춰줬더니 이건 도가 지나치잖아.”

    악령은 뭐가 좋은지 계속해서 웃는다.

    “이 몸주에게 마지막 선물을 줄 수 있겠군.”

    “마지막이라니 무슨 뜻이냐?”

    “용도를 다한 것은 폐기해야지.”

    악마가 망치를 빙빙 돌리며 박주완을 향해 다가온다.

    “내가 어떻게 그 말을 아느냐고 물어봤지?”

    조금 전 악마가 사용한 언어는 구마사제들의 상대하는 악마의 언어였다.

    “배웠거든. 옛날과 다르게 인터넷이라는 아주 좋은 것이 있잖아. 악마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악마의 언어를 올려뒀더군.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배웠는데.”

    악령이 팔을 좌우로 벌리며 숨을 크게 들이쉰다.

    “아주 강한 힘을 얻을 수 있게 되었지.”

    박주완이 십자가를 강하게 움켜쥔다.

    “한국의 악령들은 좀 낯설어서 상대하기 쉽지 않았는데 말이야. 차라리 악마의 언어를 사용하니 반갑기까지 하다, 이 악마야. 너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곳까지 가 버렸구나.”

    “크크크, 언제는 물러설 곳이 있었던가? 벼랑 끝의 위태로움이 스릴 있고 좋지.”

    “성 미카엘 대천사여. 싸움에서 우리를 보호하소서. 악마의 악의와 간계에서 우리를 도와주소서.”

    박주완의 십자가에 성스러운 빛이 모여든다.

    “영혼들을 멸망시키고 세상을 돌아다니는 사탄과 다른 악령들을 하느님의 능력으로 지옥에 가두소서.”

    십자가가 허공을 가른다. 성스러운 빛무리가 그 뒤를 쫓는다. 악령은 망치로 십자가를 맞이한다.

    쾅- 쾅-

    십자가와 망치가 부딪칠 때마다 강력한 기운들이 주변을 뒤흔든다. 박주완은 뒤로 밀려났다가도 다시 악령을 향해 달려든다.

    바닥을 뚫고 솟구친 식물의 뿌리가 악령의 두 팔을 묶는다. 황동호가 벽에 기댄 채 수결을 맺고 있다.

    “악마가 가야 할 곳은 정해져 있으니.”

    십자가가 수직으로 떨어져 내린다.

    악령은 뿌리를 잡아 뜯고는 십자가를 막아낸다. 악령이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힌다. 벽의 푸른 기운이 악령을 다시 한번 내친다.

    불계가 펼친 결계의 힘이었다.

    입에서 흐르는 피를 닦은 악령이 히죽 웃으며 박주완을 향해 달려든다. 이번에는 박주완이 뒤로 튕겨 나간다.

    악령이 박주완의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빠각-

    누군가 박주완의 앞을 막아서며 떨어져 내리는 악령의 손목을 붙잡고 턱에 주먹을 꽂아 넣는다.

    “하아-, 또 있었네?”

    완전히 반대로 돌아간 악령의 목이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온다. 악령의 팔은 여전히 붙잡힌 상태였다.

    “불교, 천주교, 도교. 넌 종교가 뭐냐?”

    악령의 팔을 잡은 인호가 씨익 웃는다.

    “무교야.”

    퍽-!

    다시 한번 악령의 턱이 돌아간다. 인호의 주먹이 몇 번이고 악령의 턱을 강타한다. 잡고 있던 손목을 놓으며 가슴을 발로 강하게 밀어 찬다.

    “인호. 나이스 굿 타이밍.”

    박주완이 엄지를 세운다.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웃고 있는 박주완을 보며 인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괜찮으세요?”

    “뼈마디가 다 욱신거린다.”

    “그럴 나이 되셨죠.”

    “내가 신부인 걸 다행으로 알아. 하여튼 욕을 부른다니까.”

    인호가 멀찍이 넘어져 있는 악령에게 걸어가며 황동호와 불계를 살핀다. 불계는 이제 혼자 일어서 있고 황동호는 벽에 등을 기댄 채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다.

    애초에 잘못된 계획이었다.

    박주완이라면 악령을 이연호의 몸에서 떼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호의 예상보다 악령의 힘이 너무 강했다.

    “끝판왕의 등장인가?”

    악령은 하관이 완전히 너덜너덜해졌음에도 용케 말은 하고 있다.

    “네가 차지한 그 몸은 이미 생명력이 다 했겠지?”

    “후후, 잘 알고 있군. 아무래도 오늘 이곳을 빠져나가긴 힘들 것 같네.”

    “너도 잘 알고 있네. 잘 알면 헛심 쓰지 말고 그냥 얌전히 소멸되면 안 되겠냐?”

    “소멸될 때 소멸되더라도 마지막으로 꿈틀거려 봐야지.”

    “아이씨. 안 그래도 된다니까 그러네.”

    인호가 소매를 걷는다. 검지로 왼쪽 팔목의 검은 문양을 찌른다. 검지가 검게 물든다. 검지를 들어 이마 중앙에 가져다 댄다. 검은 기운이 스며든다. 인호의 얼굴에 검은 거미줄이 쭉쭉 그어진다.

    눈동자 역시 탁해진다.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 있구나. 살아있는 생자가 망자의 기운을 품고 있다니.”

    “너 같은 악령을 상대하라고 아주 높은 곳에 계신 분이 주신 힘이지.”

    “과연 그럴까? 그 기운이 네 생명을 갉아 먹고 있음이 눈에 보이는데도?”

    “네가 악행을 일삼아 힘을 얻은 것처럼 나 역시 힘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포기한 것뿐이다.”

    악령이 히죽 웃는다.

    “생명을 작다고 표현하는 인간이라니. 아주 재미있구나. 재미있어.”

    악령이 들고 있던 망치를 휙 집어 던진다. 그러고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박주완이 말한 악마의 언어인 듯하다.

    악령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올라 그를 감싼다. 검은 기운을 두르고 있는 모습이 마치 두터운 갑주를 걸친 것 같다.

    “본격적으로 어울려 보자꾸나.”

    악령이 인호를 향해 내달린다. 순간 악령의 모습이 사라진다. 인호가 양팔을 X자로 교차해 얼굴을 보호하며 몸을 돌린다.

    뒤에서 나타난 악령이 인호의 가드 위에 주먹을 꽂는다.

    쾅-

    인호의 몸이 주르륵 밀려난다.

    “매콤한데.”

    “그렇지?”

    악령이 잔상을 남기며 사라진다. 인호가 좌측으로 몸을 돌리며 주먹을 뻗는다. 턱을 노리고 아래서 위로 솟아오르는 악령의 주먹을 반대 손으로 내리누른다.

    악령 역시 인호의 주먹을 틀어쥐고 있었다.

    서로의 배를 발로 밀어내며 거리를 벌린다.

    인호와 악령의 육탄전이 시작되었다.

    인호가 한 대, 악령이 한 대.

    방어는 무시한 채 서로의 몸에 주먹과 발을 꽂아 넣을 생각뿐이다.

    빠각-

    악령이 두 팔을 잡자 인호가 이마로 악령의 얼굴을 들이받는다. 악령이 하체를 쓸어오자 인호의 몸이 붕 떴다 떨어진다. 바닥을 굴러 악령의 발을 피해낸다.

    악령이 사커킥으로 일어나려는 인호의 얼굴을 차려고 할 때였다. 황금빛 기운이 악령을 뒤로 잡아끈다. 합장한 불계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악령을 쏘아보고 있었다.

    “참, 귀찮게 하네.”

    불계에게 달려가려 할 때였다. 이번에는 푸른벽이 막아선다. 황동호가 수결을 맺고 있다.

    “어둠 속에서도 내가…… 아버지. 제게 힘을 주소서!”

    성스러운 빛을 품은 십자가가 수직으로 떨어져 내린다. 악령이 두 팔을 교차해 십자가를 막는다. 십자가가 닿은 악령의 팔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박주완이 악령과 힘겨루기를 할 때 인호가 달려들어 악령의 옆구리를 발로 강하게 찬다. 자세가 흐트러지자 십자가가 결국 악령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누른다.

    “크아아악-!”

    악령이 고통에 찬 비명을 토해낸다.

    황동호의 봉마의 술이 날아들고 황금빛 염주가 날아온다. 도술과 불력이 악령을 붙드는 사이 십자가가 악령의 이마에 낙인을 찍는다.

    “인호야!”

    박주완의 외침에 인호가 악령에게 다가선다. 인호의 눈에 푸른 기운이 머문다. 인호가 악령의 머리를 아래로 내리누른다.

    박주완이 십자가를 거둔 후 성수를 꺼내 악령에게 뿌리며 기도문을 외운다. 악령의 비명이 점점 커진다.

    “성령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네가 차지한 그 몸에서 나오거라.”

    악령의, 아니 이연호의 얼굴이 꿈틀거린다. 이연호의 얼굴과 흉측한 악령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박주완의 기도문이 계속되자 새빨갛게 물든 악령이 이연호의 몸에서 떠오른다.

    인호가 재빨리 품속에서 삼신령을 꺼낸다.

    딸랑- 딸랑-

    “부르지 말라고 했…….”

    저승사자가 말을 멈춘 채 허공에 떠서 몸부림치는 악령을 바라본다.

    “도대체 어떤 죄를 지었길래 그런 흉물스러운 모습이 되었느냐!”

    저승사자의 호통에 주변 공간이 일렁인다.

    “네 죄는 너무 커 축생으로도 환생하지 못할 것이다. 영겁의 세월 동안 지옥에서 참회해야 할 것이다!”

    악령의 앞쪽 공간이 쩍 벌어진다.

    안에서 셀 수 없이 수많은 팔이 나온다.

    끼아아아악-!

    꺄아악-!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다.

    수많은 손이 악령의 몸을 붙잡는다.

    악령은 그 손에 잡혀 끌려 들어가면서도 인호를 쏘아본다. 순수한 악의로 물든 새빨간 눈이다.

    “나는 반드시 돌아온다.”

    악령이 쩍 벌린 지옥의 문으로 끌려 들어가고 곧 문이 닫혔다.

    “지가 무슨 터미네이터야 뭐야. 돌아오긴 뭘 돌아와.”

    팍-!

    “아! 아프잖아요.”

    “아프라고 때린 거다.”

    저승사자가 인상을 구기고 있다.

    “저건 뭐야?”

    “보면 모릅니까? 악령 아닙니까?”

    “그걸 누가 몰라서 물어? 어디서 저런 것이…… 나중에 이야기하자.”

    저승사자의 모습이 사라진다. 아무래도 누군가의 호출을 받은 것 같다.

    “휴우-. 끝났네요.”

    불계가와 박주완이 황동호를 부축한 채로 다가온다.

    “그래. 끝났네.”

    이들이 서로를 보며 웃고 있을 때였다.

    “뭐야? 살인마 어디 갔어요? 거기 쓰러져 있네? 어떻게 된 거예요?”

    기절했던 박경훈이 깨어났다.

    “아이씨. 아무것도 못 봤는데. 어떻게 됐어요? 아저씨가 살인마 잡은 거예요? 신부님이?”

    모두가 박경훈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

    “차라리 잘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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