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05화 (105/190)
  • 제105화

    천주교 구마사제 박주완.

    불교 제마승 불계.

    도문 토룡 황동호.

    그리고 인호.

    이 정도 라인업이면 한국 퇴마계의 어벤저스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건 쫌 아닌 것 같습니다.”

    “뭐가 아닙니까? 시주님이 잘 모르셔서 그러는데 그 상황에서는 그렇게 하는 게 딱 맞다니까요.”

    “형제님. 제가 구마 의식을 한 경험이 백 번이 넘습니다.”

    “나는 뭐 놀았습니까?”

    어벤저스 멤버들이 어린아이들처럼 내가 잘났네, 내가 더 잘났네 하며 말싸움을 벌이고 있다.

    “참, 두 분 모두 감이 떨어지셨네. 거기선 그렇게 하면 안 되죠. 부적 한 장이면 끝날 일을 뭐 그리 번잡하게 합니까?”

    거기에 조금 젊은 멤버까지 합세해 기름을 뿌린다.

    “야!”

    “인호야!”

    “누구 말이 맞아?”

    인호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운전에 집중했다.

    세 사람은 계속해서 누가 더 잘났는지를 가리기 위한 퇴마 배틀을 하고 있었다.

    “형님.”

    무슨 말인가를 하려던 황동호가 인호를 바라본다.

    “확실히 막아야 합니다.”

    “별걱정을 다한다. 내가 누구냐? 나 토룡이야, 토룡.”

    “지렁이가 뭐 대단하다고 저리 자랑하듯 말하는지.”

    불계의 말에 황동호가 발끈한다.

    “그러는 스님은요? 계율 어기는 게 뭐 그리 자랑이라고 법명을 불계라고 지으셨어요?”

    “여기서 정상적인 사람은 나밖에 없는 건가?”

    박주완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룸미러로 박주완을 보며 인호도 한숨을 내쉰다.

    커다란 십자가를 휘두르며 랩을 하듯 기도문을 내뱉으며 뱀파이어를 갈아버리던 한 신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걱정할 사람이 없어서 형님을 걱정할까요. 그런데 이번에 상대할 악령이 조금 강해요.”

    “강해 봐야 잡귀겠지.”

    “거참, 아니라니까. 최소 2년, 길게는 5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을지 몰라요. 악령은 악업을 쌓을수록 강해지잖아요. 목격자인 박경훈을 죽이려고 바로 서울에 온 것만 봐도 자신감이 엄청난 녀석이에요.”

    “이러려고 내 앞에 있던 나무에 벼락이 떨어졌나 보다. 천존께서 내린 순사한 뇌전의 기운은 온갖 사악한 것들에게 천적이지.”

    “불계 스님.”

    뒷자리에 앉은 불계가 인호를 쳐다본다.

    “잘 부탁드립니다.”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지 그래? 내가 왜 외곽인데? 그런 악한 존재는 부처님의 강력한 힘으로 심판해야지.”

    “스님보다는 신부님이 맞아요.”

    불계 역시 악령을 소멸시키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몇 없는 제마승들의 수장이니 그 실력도 확실했다.

    다만 그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제마승들은 악령을 없애기 위해 숙주가 되는 사람, 즉 몸주에게까지 피해를 강요한다.

    악령이 깃든 몸에 타격을 주어 악령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제마의식 중 몸주가 죽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불계에게 악령을 처리할 장소의 외곽에 결계를 부탁했다. 불계가 펼친 결계라면 아무리 대단한 악령이라 해도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몸주 이연호에게서 악령을 떼어내는 일은 박주완이 맡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악령을 소멸시키는 일은 인호가 맡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부적 몇 장 받아 가지 그래?”

    “괜찮아요.”

    황동호의 도력이 담긴 부적은 강력한 힘이 깃들어 있다. 하지만 인호와는 잘 맞지 않는다.

    “박경훈이나 잘 보호해 줘요.”

    황동호의 역할은 이연호에게 빙의 된 악령이 박경훈의 몸으로 갈아타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박경훈은 이미 황동호가 그려 준 부적을 지니고 있다. 그뿐 아니라 몸 자체에 도술을 그려 두었다.

    “모두 잘 부탁드립니다.”

    * * *

    박경훈은 운전을 하며 계속해서 룸미러와 사이드미러를 힐끔거린다.

    “쫄지 마, 박경훈. 인생은 한 방이다. 아자!”

    - 협조해 주시면 연쇄살인마에게 걸린 현상금 외에도 포상금을 얹어 드리겠습니다.

    절대 협조하지 않겠다고 뻗대던 박경훈의 마음을 돌린 것은 바로 돈이었다.

    정재훈은 일이 잘 해결되면 2억 원을 지급하겠다며 박경훈을 설득했다.

    “저놈인가?”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온 이후부터 줄곧 뒤를 따라오는 차가 있었다.

    “저기. 내 목소리 들리세요?”

    - 네, 들립니다.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정재훈의 목소리가 들린다.

    “뒤에 차가 따라오는데요.”

    - 알고 있습니다. 박경훈 씨가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따라붙은 차입니다.

    “네? 고속도로 빠져나온 후에 붙은 게 아니라요?”

    - 처음부터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박경훈이 부르르 몸을 떤다. 살인마가 줄곧 자신을 따라오고 있음에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경찰이 보호해 주지 않았다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은 저와 경찰들이 경훈 씨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면 그곳에 계신 분들이 보호해 드릴 겁니다.

    “거기 있는 사람들- 사실 믿음이 잘 안 가요.”

    - 믿으셔야 합니다. 오히려 저나 경찰들보다 실력이 더 좋은 분들이니까요.

    “정말요?”

    - 네. 그분들 중 인호 씨는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경훈 씨가 듣기만 해도 알만한 큰 사건들을 인호 씨 도움을 받아 해결한 겁니다.

    “아, 그래요?”

    - 목적지에 거의 도착하셨군요. 저희들은 여기까지입니다. 계획대로만 움직이시면 됩니다.

    정재훈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씨발.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가는 거야!”

    박경훈이 가속 패달을 밟으며 속력을 올린다.

    * * *

    차 문을 닫고 내린 박경훈이 주변을 살핀다.

    공터의 앞에 건물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다.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잖아. 들어가서 그 미친 살인마만 기다리면 되는 거야.”

    다행히 주변은 어둡지 않았다. 곳곳에 가로등이 있고 건물 안도 밝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제법 큰 강당이다. 아무래도 수련원으로 사용하던 곳 같다.

    중앙에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마치 누군가 저 의자에 앉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의자에 가서 앉는다.

    멀리서 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리자 박경훈이 이를 꽉 깨문다.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무릎에 올려둔 손을 꽉 쥔다.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온다.

    휘이익-

    들어선 이는 휘파람을 불고 있다. 분명 들어보았던 휘파람 소리다.

    “월악산.”

    캠핑을 갔다 마른 나무라도 주우려고 산에 올라갔다. 캠핑장에서 파는 장작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그때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렸고 홀린 듯 그 소리를 따라갔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인 현장을 목격했다.

    휘익-

    지금 듣고 있는 휘파람 소리가 그때 들었던 휘파람 소리와 똑같았다.

    “결국 여기로 결정한 거야?”

    쇳가루를 잔뜩 삼킨 듯 거친 음성이 들렸다.

    한 남자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강당에 들어와 선다. 망치를 든 오른손을 빙빙 돌리며.

    “죽을 장소치고는 너무 밝은데? 뭐 괜찮아. 나는 오히려 더 좋으니까. 고통스러워하는 네 표정이 더 잘 보일 테니까. 그런데-.”

    이연호, 아니 악령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한다.

    “경찰도 없이 혼자 온 거야? 대단한데? 설마 나하고 인터뷰라도 한 후에 카페에 올릴 생각인가?”

    “…….”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참을 수 없는 공포가 밀려온다. 온몸의 근육이 마비라도 된 듯 움직이지 않는다. 뱀을 앞에 둔 쥐가 느끼는 공포가 이런 것이리라.

    “걱정하지 마. 널 죽인 다음에 꼭 카페에 올려 줄게. 그래서 이것도 가져왔어.”

    악령이 들고 온 것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삼발이 형태의 휴대폰 거치대다.

    “동영상 잘 찍어서 카페에 올려 줄게. 사람들 반응이 대단할 거야. 그렇지?”

    악령이 환하게 웃는다. 악령의 두 눈이 붉게 빛난다. 그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박경훈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악령이 망치를 빙빙 돌리며 다가온다.

    “자, 잠깐-!”

    박경훈이 쥐어짜듯 외친다.

    “뭐야? 갑자기 할 말이라도 생각 난 거야? 아-, 유언? 뭐 그런 건가?”

    “씨발.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야!”

    박경훈의 외침에 악령이 반응한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악령이 환하게 웃는다.

    “뭔가 준비를 하긴 했구나. 그렇지? 굉장히 기대되네.”

    - 그래. 기대해도 좋을 거야.

    강당에 걸린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음성.

    “누군지 몰라도 제발 날 즐겁게 해주길 바랄게.”

    그때였다.

    솨아아아-

    천정에 달린 스프링클러가 물을 토해낸다.

    “크크크.”

    졸지에 물벼락을 맞은 악령이 날카로운 웃음을 토해낸다.

    “준비하게 고작 물이야? 이런 걸로…….”

    말을 하던 악령이 인상을 찌푸린다.

    - 내가 어두운 골짜기를 걸음에도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지켜 주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박경훈 뒤쪽 커튼이 열리며 박주완이 걸어 나온다.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손에는 커다란 백은 십자가를 들고 있다.

    “주여,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아멘.”

    “이 물은 뭐지?”

    악령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다.

    “성수. 네게는 과분한 것이지.”

    박주완이 악령을 향해 걸음을 옮길 때 번쩍하며 강당의 창문을 통해 푸른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불계의 결계가 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계의 기운 탓인지 악령이 뒷걸음질 친다.

    “넌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네가 가야 할 곳은 정해져 있으니.”

    박주완이 십자가로 악령을 가리킨다.

    “그곳은 바로 지옥이다.”

    쾅-!

    박주완이 십자가를 강당 바닥에 꽂고는 무릎 꿇는다. 그의 입에서 라틴어 기도문이 흘러나온다.

    “다 죽여버리겠다!”

    악령이 망치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 달려든다.

    “크아악-!”

    하지만 악령은 몇 걸음 떼지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친다. 악령의 주변에서 성스러운 빛이 솟구친다. 박주완이 미리 바닥을 뜯어낸 후 구마 의식에 필요한 성물을 묻어 두었다.

    박주완의 기도가 격렬해진다. 박주완이 몸을 일으킨다. 성경을 품에 갈무리하고 투명한 병을 꺼낸다. 병 속에 담긴 액체는 은은한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성수였다.

    본격적인 구마 의식이 시작된다. 박주완은 악령의 주위를 돌며 기도문을 외운다. 그가 손을 떨칠 때마다 성수가 악령의 몸을 적신다.

    “크아아아악-!”

    악령의 얼굴이 흉측하게 변한다. 양쪽 입꼬리가 누군가 잡아당기기라도 하듯 쭉 늘어나 귀까지 붙는다. 이빨이 우수수 빠지고 날카로운 이빨이 새롭게 돋아난다.

    얼굴에는 검은 줄이 거미줄처럼 죽죽 그어진다.

    쾅-!

    악령이 두 손이 바닥을 때린다.

    “컥-!”

    박주완이 뒤로 밀려난다. 그의 입에서 한줄기 핏물이 흘러나온다.

    “하아-.”

    악령이 길게 숨을 토해낸다. 입김이 나오듯 검은 기운이 뭉클 피어오른다. 악령이 박경훈을 보며 히죽 웃는다. 귀까지 닿은 입이 기이하게 뒤틀린다.

    “최고야. 준비 잘했네. 아주 만족해.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이 신부 다음은 너니까.”

    악령이 망치를 들고 박주완에게 다가온다. 박주완은 기도문을 외우며 바닥에 꽂아 놓은 십자가를 힐끔 쳐다본다.

    “크크. 그러게 무기를 놓고 다니면 안 되지. 신부님. 만나서 즐거웠어요.”

    악령이 망치를 머리 위로 치켜든다.

    샤르륵- 펑!

    쩌정-

    그때 작은 불꽃이 날아들어 폭발을 일으켰다. 박주완의 머리를 노리던 악령의 망치는 푸른빛의 벽에 가로막혀 더 나아가지 못했다.

    뚜드득-

    악령이 몸을 돌리지 않고 고개만 뒤로 돌린다. 그곳에 한 사람이 서 있다.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면서요.”

    황동호가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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