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화
딸꾹-
박경훈이 딸꾹질을 한다.
“형사님들이 널 지키고 있으니 안전할 거 같아?”
인호가 몸을 돌려 입구에 있는 형사들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넨다.
“한 형사님, 유 형사님. 잘 지내시죠?”
“하하, 소장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형사들이 웃으며 인사한다.
인호를 여러 번 본 형사들이다. 차이나타운 중국 범죄조직 일제 소탕부터 굵직한 사건 세 개를 함께 해결했었다.
“한 형사님.”
“말씀하십시오.”
“증인보호 프로그램으로 보호되는 증인들 중 법정에 멀쩡하게 서는 이들이 얼마나 됩니까?”
한 형사가 곤란하다는 듯 인호와 박경훈을 바라본다. 인호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한다.
“한 30% 정도 되죠.”
“열 명 중 세 명 정도라는 뜻이네요?”
“그렇습니다.”
“네. 볼일 보세요.”
인호가 박경훈에게 시선을 준다.
“증인보호 프로그램이 발동하면 열 명 중 세 명만 법정 증인석에 선다는 뜻이다. 그러면 나머지 일곱 명은 왜 법정에 서지 못했을까?”
딸꾹- 딸꾹-
“우리나라 살기 좋은 나라지. CCTV, 자동차 블랙박스. 백 미터만 걸어가도 수십 번은 카메라에 찍힌다고 하더라. 그래서 범죄율이 많이 낮아. 그런데 우리 반대로 한번 생각해 보자고. 정체가 드러나면 안 되는, 다른 이들이 알면 안 되는 중요한 증인이 있어. 새장 속 새도 아니고 증인이 매일 안전한 곳에 숨어 지낼 수는 없어. 조심스럽게 밖에도 나가고 하겠지. 그런데 나가면 계속 어딘가에 흔적이 남네.”
인호가 소주를 비운다.
“니가 여기까지 오면서 몇 번이나 CCTV나 블랙박스에 찍혔을 것 같냐?”
“…….”
박경훈이 대답하지 못하자 인호가 소주병을 들고 일어나 박경훈의 잔을 채워준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었다. 이제 요약을 좀 해 보자. 너 아주 대단한 일 한 건 맞아. 몇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을지 모를 미친 연쇄살인마를 잡을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냈거든. 그런데 그게 여기저기 떠벌리고 자랑할 일은 아니라는 거야. 물론 나중에는 그래도 돼. 그 나중이 언제일 것 같냐?”
“버, 범인이 잡혔을 때요?”
“빙고. 그래. 범인을 잡은 후에는 그래도 돼. 지금까지 벌인 범죄가 있으니 교도소에 들어가면 평생 바깥세상 구경은 하지 못하게 될 테니까. 그러니까 제발 지금은 조용히 있자. 그게 널 지키겠다고 술집에 와서 잔에 물 따라 두고 술 냄새만 맡고 있는 형사님들에 대한 예의다. 알겠냐?”
* * *
- 소장님. 범인이 맞답니다.
유형사는 교도소에서 이충선을 만났다. 이충선은 동영상 속 남자를 보자마자 미친 듯 몸을 떨었다고 한다. 나중에게 크게 웃으며 ‘이것 봐. 지금도 눈이 빨갛게 빛나잖아’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사무실에서 박경훈이 올린 게시글에 달린 댓글을 확인하는 중이다.
- 와, 미친. 졸라 실감남.
- 이 정도면 카페 생긴 이후 최고 아님?
- 확대해서 보면 더 대박임 피 막 튀고, 살 튀고
- 나도 봤어야 하는데.
- 개멋있음. 저분 연락처 아는 분?
……
……
- 조작이고만. 딱 봐도 조작임.
- 그러게. 조작이 아니면 개나 돼지 같은 동물로 저러는 걸 수도 있음.
“하아-. 얘들은 도대체 정체가 뭐야?”
연쇄살인마를 보고 멋있다, 살인 장면을 보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최근 댓글들은 영상이 조작이 아니냐,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의 일부를 따 온 거 아니냐며 의심하고 있었다.
인호가 마지막에 달린 댓글을 보고는 피식한다.
- 진짜다.
“뭐야? 마치 지가 범인이라도 되는 것…….”
인호가 말끝을 흐린다.
“Lyh0911.”
마지막 댓글을 단 사람의 아이디였다.
“민정아.”
“네, 소장님.”
“보통 Lyh0911 이런 걸로 아이디를 만들면 이름 이니셜하고 자기 생일이지?”
“그렇죠.”
“탕탕탕 어디 갔어?”
이민정이 눈으로 위를 올려 본다.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올라갔어요.”
“사기꾼. 올라가서 탕탕탕 데리고 와.”
“아이씨. 나도 좀 쉬자.”
“요즘 매일 쉬잖아. 제발 일 좀 해라.”
“일감 안 물어와도 매일 바쁘잖아.”
사기꾼이 투덜대며 천장을 뚫고 사라진다. 잠시 후 사기꾼과 탕탕탕이 사무실로 내려온다.
당연히 천장을 통해 내려올 줄 알았는데 사무실 문으로 들어왔다.
“출근하는 건데 당연히 문으로 들어와야지.”
묻지도 않았는데 탕탕탕이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래서 왜 불렀는데?”
“사장이 직원 부르는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냐?”
“드라마 하이라이트에서 멈추고 왔단 말이야. 빨리 말해.”
“Lyh0911. 이 아이디로 활동한 모든 내역을 뽑아 봐.”
“Lyh0911……. 야!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알아?”
“지금까지 잘했잖아.”
“특정 사이트 지정해서 찾는 것하고 같냐?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거라고.”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컴퓨터를 턱으로 가리킨다.
“안 가고 뭐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아야 할 거 아냐?”
* * *
“역시 갈아 넣으면 안 되는 게 없다니까.”
소파에는 완전히 방전된 탕탕탕이 널브러져 있다.
“최근에 활동한 내역은 연쇄살인 카페밖에 없네요. 3년 사이에 딱 세 번 댓글을 달았네요. 나라면 저렇게 안 했어. 재밌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짜다’ 이거에요.”
이민정이 프린트한 종이를 보며 말한다.
“예전에 사용하던 SNS나 미니홈피 등이 아직 존재해요.”
“뭐 하는 놈인데?”
“이름은 이연호예요. 나이는 스물일곱 살이에요. 5년 전까지 화성실업이라는 회사에 다녔네요. 여기 보세요.”
이민정이 SNS에서 이연호의 사진을 찾아 보여준다. 5년 전이지만 지금의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터넷 활동 내역을 보면 특별할 게 없는 사람이에요. 평범하게 직장 생활 하고 친구들 만나고.”
“그렇겠지. 그거 정 검사님한테 보내줘. 나는 바로 중앙지검으로 간다.”
사무실을 나서 서울중앙지검으로 향한다. 인호가 도착했을 때 정재훈과 유 형사는 이민정이 보내준 자료를 검토 중이었다.
“이연호라는 사람 동영상 범인과 동일 인물입니다. 바로 조사 시작했으니 곧 결과 나올 겁니다.”
“뭘 조사하는데?”
“이연호 이름으로 된 휴대폰, 카드의 사용 내역을 조사할 겁니다. 그리고 과거에 사용하던 SNS를 통해 이연호의 친구나 가족들에게 접근해야죠.”
“설마 바보도 아니고 본인 명의의 휴대폰과 카드를 사용했을까?”
그런데 그 바보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최근에 홍대에서 카드를 사용했습니다. 이틀 전이네요.”
“홍대?”
인호가 인상을 와락 구긴다.
“왜 그러세요?”
“검사님. 저한테 박경훈 만나 보라고 하셨죠? 그때 박경훈 만났던 곳이 홍대였습니다. 정확히 이틀 전에.”
유 형사가 곧장 ‘시발’하며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뛰어나간다. 박경훈 주위에 있는 형사들에게 전화할 것이다.
“인호 씨는 어떨 것 같아요? 범인이 정말 박경호를 노리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충북 제천에서 사람을 죽이고 서울에 와 있을 이유가 없겠죠.”
“바보 같은 질문이었네요. 목격자를 살려 둘 리가 없죠.”
인호가 고개를 젓는다.
“목격자라서 죽이려는 게 아닐 겁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죠?”
“그냥 박경훈을 다음 타겟으로 정한 것뿐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범인이 아니니 확실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왠지 그럴 것 같군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는요?”
“살인을 저지르는 몸. 그 몸이 자기 것이 아니잖아요. 그 악령에게는 자신의 유희를 풀어 줄 도구에 지나지 않아요. 수년 동안 한 사람에게 빙의가 되어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닌 악령이라면 다른 이의 몸으로 갈아타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닐 테니까요.”
정재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범인을 잡아도 잡는 것이 아니겠군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인을 저지른 불쌍한 사람일 뿐이다.
“동영상 속에서 볼 수 있었던 오른손의 자해 자국은 본래의 몸 주인이 한 것일 겁니다. 몸을 통제할 수 있을 때 어떻게든 악령의 악행을 막으려 했겠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재훈이 경찰력을 동원해 범인 이연호를 잡는다고 해도 빙의된 악령을 잡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 되어 버린다.
“인호 씨라면 그 악령을 잡을 수, 아니 해치울 수 있겠죠?”
인호가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판을 제대로 깔아야 합니다.”
“판이요?”
“일단 주변에 박경훈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있어선 안 됩니다.”
“악령이 갈아탈 또 다른 몸이 있으면 안 된다는 뜻이군요.”
“그리고 악령을 소멸시키는 데 특화된 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 문제는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두 명의 얼굴이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박경훈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합니다.”
박경훈은 악령을 낚을 수 있는 미끼다. 하지만 악령이 이연호의 몸에서 박경훈의 몸으로 갈아타게 되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게 된다.
“그것 역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건 첫 번째 조건. 박경훈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악령을 유인하는 겁니다.”
서울에서 주변에 사람이 없는 공간을 찾는 것은 어렵다. 아무리 외진 곳이라도 조금만 벗어나면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것도 가능할 것 같네요.”
“어떤 방법입니까?”
“간단합니다. 박경훈을 사람이 없는 곳으로 보내면 됩니다. 산이든, 강이든 말입니다.”
“악령이 따라올까요? 자기를 유인하는 것인 걸 뻔히 알 텐데요.”
인호가 빙긋 웃는다.
“올 겁니다.”
어차피 자기 몸이 아니니까. 아직 인호와 같은 이들을 만난 적이 없을 테니까. 그리고 자신이 가진 힘을 믿고 있을 테니까.
“꼭 올 겁니다.”
* * *
악령을 잡을 수 있는 계획이 세워졌다.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문제가 있었다.
“아니. 제가 거길 왜 가야 하는데요?”
그건 바로 박경훈의 의사였다.
“살인마가 쫓아온다면서요? 그런데 경찰도 없이 저 혼자 가라고요?”
“이분들이 함께할 겁니다.”
정재훈의 말에 박경훈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한다.
“이 아저씨는 지난번에 봤고. 신부님하고 스님이요? 아, 정말 미치겠네. 뭐 이 신부님이 드라마에 나오는 엄청 싸움 잘하는 신부님이세요? 저분은 소림사 출신이시고?”
“크크, 저 녀석 말 재미있게 하네.”
인호의 옆에 앉아 있는 불계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한참을 웃는다.
“인석아. 소림사 스님들이 무술 잘하는 거 다 뻥이다. 소림사는 그냥 관광 상품일 뿐이야.”
“그런 말을 하면 더 신뢰가 안 되잖아요.”
“날 믿어 달라고 강요하고 싶은 마음 없다. 나도 여기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니 말이다.”
“후우-. 불계 형제님. 지금 꼭 그런 말씀을 하셔야겠습니까?”
“아이고, 스테파노 시주님. 본승은 인호 저 녀석하고 엮여서 좋은 꼴 본 적이 없습니다.”
박주완이 피식 웃는다.
그때 박경훈이 다른 이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이를 가리키며 묻는다.
“저 사람은 누군데요?”
인호가 뒤를 힐끔 보고는 말한다.
“토룡.”
“네?”
“토룡 몰라?”
인호가 씨익 웃는다.
“지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