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02화 (102/190)
  • 제102화

    “찾았습니다.”

    수색 중이던 의경의 외침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간다.

    구덩이에서 캐리어를 끄집어내고 있다.

    “검사님. 일곱 구 모두 찾았습니다.”

    유 형사의 말에 정재훈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충선이 유기한 사체를 모두 찾은 것이다.

    “다른 쪽은 어떻게 됐습니까?”

    “아직 못 찾은 것 같습니다. 이충선이 말한 바위는 조금 전에 찾았다고 합니다.”

    “그리로 가 보죠.”

    정재훈과 유 형사가 도착했을 때 많은 경찰과 의경들이 주변을 수색하고 있었다.

    “그 새끼가 한 말이 사실일까요? 그냥 나오는 대로 지껄인 것 아닐까요?”

    “아닐 겁니다. 이미 범죄 사실이 모두 들통났는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들 보고 엿 먹어보라는 심정으로 그랬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정재훈이 고개를 흔든다.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할 때 이충선의 두 눈은 지독한 공포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 찾았습니다.

    정재훈과 유 형사가 외침이 들려온 곳으로 빠르게 달려간다.

    형사들이 수북이 쌓인 나뭇잎을 걷어내자 그 아래 사람의 뼈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재훈이 뼈의 두개골을 살핀다.

    “크흠.”

    이충선의 말대로 두개골의 한가운데가 함몰되어 있었다. 망치 같은 둔기로 강하게 내리친 것이다.

    “어떻습니까?”

    정재훈의 질문에 국과수 소속 검시관이 말한다.

    “여자가 맞습니다. 적어도 2년 이상 방치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다리뼈도 으스러져 있습니다.”

    이충선이 말한 그대로다.

    “개자식.”

    유 형사가 쓰게 뱉어낸다.

    “검사님. 어디 가세요?”

    “인호 씨 만나러 갑니다.”

    * * *

    “이충선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그가 말한 곳에 가니 두개골이 함몰된 사체가 있었습니다.”

    정재훈의 말을 들으며 인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 살인마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쉽지 않겠죠.”

    살인마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 악령이 빙의된 것 같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상대를 찾을 수 있는 단서는 되지 못한다.

    “후우-. 일단 사체가 발견된 지역을 중심으로 실종자들에 대해 조사해 볼 생각입니다.”

    “저도 나름대로 알아볼 테지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네.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재훈이 사무실을 떠난다.

    “연쇄살인마라니. 정말 끔찍해요.”

    이민정이 몸서리친다.

    그리고 보면 지난번 연쇄살인마도 우연이 겹쳐 잡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행운에 가까운 우연이 일어날까?

    “민정아.”

    “네, 소장님.”

    “괴담 카페 말고 연쇄살인마나 그와 관련된 카페는 없을까?”

    “찾아보면 있을걸요? 설마 그곳에서 단서를 찾으시게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나 집에서 조금 쉬고 올게.”

    “낮인데요?”

    “개인사업자 좋은 게 뭐냐? 급한 일 있으면 전화하고.”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올라간다. 위패를 모셔놓은 방으로 들어가 방석에 앉는다. 정장 상의에서 삼신령을 꺼낸다.

    딸랑- 딸랑-

    삼신령이 울리고 곧 그의 앞에 저승사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콜하면 오는 택시냐? 왜 시도 때도 없이 삼신령은 흔들고 지랄이야, 씨방새야.”

    “씨방새. 오랜만에 들으니 정감 있고 좋네요.”

    “너 도우라고 차사 하나 붙여놨는데 나는 왜 부르는데? 가뜩이나 일손 모자라 바빠 죽겠는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저승사자가 죽긴 왜 죽습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씨방새야.”

    저승사자가 주위를 둘러보다가는 인호를 쏘아본다.

    “장난하냐? 인도할 망자도 없는데 날 불러?”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 모셨습니다.”

    “내가 무엇이든 물어보면 알려주는 지식인이냐? 궁금한 게 있으면 검색을 해, 검색을.”

    “검색해서 알 수 있는 것 같았으면 욕먹을 것 뻔히 알면서 모셨겠습니까?”

    “욕먹을 짓인 건 아네. 바쁘니까 빨리 말해. 뭔데?”

    인호가 저승사자에게 묻는다.

    “악령이 사람에게 빙의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승에서 왜 손을 놓고 있는 겁니까? 두 세계의 질서를 파괴하는 일 아닙니까? 제 말이 틀렸습니까?”

    “응, 틀렸어.”

    “네?”

    인호가 놀란 눈으로 저승사자를 바라본다.

    “악령이 빙의된 연쇄살인마한테 죽던, 지나가다 꼬마 애가 쏜 비비탄 총에 맞아 죽던. 이미 죽을 운명이었던 거야. 니가 매번 세계의 질서를 어지럽히니 정해진 운명의 무게에 대해 잘 모르나 본데. 말 그대로 운명이다. 정해진 운명은 상제께서도 어찌하지 못한다. 알겠냐?”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도 악령에게 빙의 된 이에게 죽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저승사자가 고개를 흔든다.

    “악령이 빙의된 연쇄살인마를 쫓나 본데. 그렇게 말한다고 뭔가를 말해 줄 수 없다.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우리들은 인간들의 삶에 관여할 수 없어. 악령이 빙의되었다고 해도 그는 살아 있는 생자다. 네가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말리지 않아. 오히려 응원하지. 하지만 우리들에게 뭔가 도움을 받을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저승사자가 몸을 돌린다. 그의 몸이 희미해진다.

    “돕고 싶어도 도울 수도 없고.”

    인호가 깊은 한숨을 내쉰다.

    사실 저승사자에게 뭔가를 들을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실망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인호가 밖으로 나간다. 거실에는 세 지박령들이 소파에 앉아 티비를 시청 중이었다.

    “아-. 이렇게 끝내면 어떻게 하라고?”

    화염병이 짜증 섞인 음성으로 말한다.

    “그러게. 미애가 살았는지는 알려 줘야지. 드라마 작가 너무하네. 다음 편을 안 볼 수가 없잖아.”

    지박령들은 한참 인기 끌고 있는 드라마를 시청하는 중이었다. 드라마가 끝나자 화염병이 탕탕탕을 툭 친다.

    “빨리 딴 거 틀어. 빡 선생의 맛탕 로드 할 시간이야.”

    “그렇지. 맛탕 로드는 놓칠 수 없지.”

    둘이 보채자 탕탕탕이 모습이 흐릿해진다. 그의 몸이 푸른 기운으로 변해 옆에 놓인 리모컨으로 스며든다. 놀랍게도 잠시 후 티비의 채널이 변경되었다.

    푸른빛이 일렁이며 탕탕탕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세 지박령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티비 시청을 하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야, 탕탕탕.”

    “응? 왜 불러?”

    탕탕탕이 티비에서 시선을 고정한 채 건성으로 대답한다.

    “방금 그거 어떻게 한 거냐?”

    “뭐?”

    “채널 어떻게 바꾼 거야?”

    이사 오기 전에도 세 지박령의 가장 중요한 일과는 티비 시청이었다.

    생각해 보면 티비 시청 말고는 딱히 하는 일이 없기도 했다. 가끔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세상 구경하는 것 말고는 말이다.

    “채널이 왜? 드라마 끝났으니 다른 채널 봐야지. 당연한 걸 왜 물어보는 건데.”

    “그게 왜 당연해? 니가 어떻게 물리력을 행사해?”

    “물리력? 아닌데.”

    “물리력을 행사하지도 않고 채널을 바꿀 수 있다고?”

    탕탕탕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냥 되던데?”

    “탕탕이도 처음에는 조금 헤맸는데 계속하니까 되더라고.”

    화염병이 보조 설명이랍시고 해준다. 인호가 혹시나 싶어 물어본다.

    “리모컨에 빙의한 거냐?”

    “이런 것도 빙의 축에 끼기는 하는 거야?”

    빙의의 의미는 ‘영혼이 옮겨붙음’이다. 꼭 다른 생명체에 깃드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내가 군대 가기 전에 전자공학 전공했잖아.”

    탕탕탕이 비록 군대에 적응하지 못해 총기 자살을 하였지만 대한민국 최고 공대에 다닐 정도의 훌륭한 재원이었다.

    “리모컨이 작동하는 기본 원리 정도는 알고 있지. 그래서 리모컨 안으로 들어가 봤어. 각 부품들 사이에 흐르는 전기 신호를 파악했어.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는데 하다 보니까 그 흐름이 눈에 보이더라고.”

    “이제는 티비에 들어가서 채널 바꾸지 않고도 뭐 방영 중인지도 알아맞힌다니까.”

    넥타이는 탕탕탕이 자랑스럽다는 듯 어깨를 두드린다.

    “티비에 들어가서 다른 채널도 볼 수 있다고?”

    인호가 탕탕탕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탕탕탕. 나하고 일 좀 하자.”

    “일? 무슨 일?”

    “가 보면 알아.”

    * * *

    “이야. 이제 이 자리가 내 자리란 말이지?”

    탕탕탕이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넓지 않은 책상과 컴퓨터를 보며 신기하다는 듯 말한다.

    “그래. 네 전용석이다.”

    인호가 말하자 이민정이 다가오며 조용히 묻는다.

    “정말 탕탕탕을 사무실에서 일하게 하실 거예요?”

    “응. 저 녀석 보기와는 달리 아주 유능하더라고. 컴퓨터 켜봐.”

    이민정이 컴퓨터를 켠다.

    인호가 갑자기 컴퓨터 한 대를 주문하고 인터넷 연결해 놓으라고 할 때만 해도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새로운 직원이 탕탕탕일 줄은 몰랐다.

    “미튜브 들어가서 연쇄살인 검색해봐.”

    이민정은 이게 뭐 하는 짓이냐는 표정으로 인호의 말대로 미튜브에 접속한다.

    “민정아. 깜짝 놀랄 준비해라. 탕탕탕. 악령 빙의 관련 연쇄살인마 이야기만 골라 봐.”

    “그거야 쉽지.”

    탕탕탕의 몸이 흐릿해지며 컴퓨터 본체로 스며들자 이민정이 깜짝 놀란다.

    “이게 무슨 일이래요?”

    “빙의. 탕탕탕이 컴퓨터에 빙의한 거야.”

    “우와.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하더니 대단하네. 매일 밥만 축내는 식충이인 줄 알았더니.”

    “흥-! 자기소개하는 거야?”

    모니터에서 탕탕탕의 얼굴이 쑥 튀어나온다.

    “아쭈? 니들 제사상 차리는 식재료 누가 사 오는지 모르나 본데? 오늘부터 똥국만 먹고 싶어?”

    “어, 미안.”

    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윽박지르는 이민정과 급하게 사과하는 탕탕탕을 바라본다.

    5분 정도 지났을까 탕탕탕이 컴퓨터 본체에서 빠져나온다.

    “끝났어.”

    “그래?”

    “응. 표시해 뒀으니 확인해 봐.”

    이민정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탕탕탕을 바라본다.

    “어떻게 표시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인호나 민정이 너는 볼 수 있어. 못 믿겠으면 스크롤바 내려봐.”

    이민정이 의자에 앉아 스크롤바를 내린다.

    “어, 어머. 우와.”

    이민정의 입에서 연신 탄성이 터져 나온다. 인호도 그녀의 뒤에서 모니터를 보는 중이다. 이민정이 스크롤바를 내리자 몇몇 영상에 푸른빛이 어려있다.

    “거봐. 대단하다고 했지?”

    “인호가 말한 영상에 내 흔적을 남겨 놨어.”

    의기양양한 탕탕탕이 어깨를 으쓱한다.

    “대단한 거 인정.”

    탕탕탕이 표시해 둔 영상을 따로 확인해 보니 인호가 말한 ‘악령에 빙의된 연쇄살인’과 연관된 동영상들이었다.

    “자-, 이제 내 능력이 검증되었으니 보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보수?”

    인호가 탕탕탕을 쏘아본다.

    “군대 화장실에서 빌빌대는 녀석을 거둬서 지금까지 먹여줬더니 뭐라고? 보수? 보수?”

    “야! 원래 공짜로 사람, 아니 망령 쓰면 일의 효율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거야.”

    “하, 하하. 틀린 말이 아니라 할 말이 없네. 그래. 원하는 게 뭔데?”

    “일주일에 두 번은 한우 무국에 육전 해줘.”

    보수를 달라고 하기에 거창한 부탁을 할 줄 알았는데 참 소박하다.

    “민정아. 탕탕탕을 너에게 맡긴다. 어떻게 쓸지는 네가 결정해.”

    “이미 다 생각해 뒀죠. 탕탕탕. 이제 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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