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01화 (101/190)
  • 제101화

    모든 일이 잘 해결되었다.

    추선미 등이 날린 살은 그녀들이 모시던 신의 힘을 잃고 난 후 소멸되었다. 최화란은 무사히 깨어나게 되었고 만신 이혜옥의 후계자 자리를 되찾았다.

    최화란은 당장 신을 모시지는 않을 것이다. 이혜옥이 은퇴하거나 세상을 떠나는 날 그녀가 모시는 ‘왕’을 모시게 될 것이다.

    추선미 등과 연관되어 있던 정치인, 법조인, 경제인들이 법의 심판대 앞에 섰다. 건설교통부 장관 윤세락은 법정에서 검찰이 기소한 여섯 가지 혐의가 모두 유죄로 판결되어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 고마운 마음에 보낸다.

    이혜옥이 선물을 보내왔다.

    커다란 상자에는 한우가 한가득 들어있다. 인호가 한 일에 비하면 큰 보상이라 할 수 없지만, 이혜옥의 마음이 가득 담긴 선물이었기에 인호는 만족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장 기뻐한 것은 뚱보였다.

    이혜옥의 일을 해결하고 일주일이 지난 수요일 인호는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었다.

    “인호 씨. 식사는 하셨어요?”

    “먹고 오는 길입니다. 검사님은요?”

    “저도 방금 먹었습니다. 그러며 바로 갈까요?”

    정재훈이 인호를 취조실이 한눈에 보이는 방으로 안내한다.

    “이름 이충선, 나이 37세, 제약회사 영업일을 하고 있습니다.”

    취조실 의자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불안한 듯 계속 주변을 살피고 있다. 책상 아래의 다리 역시 달달 떨고 있었다.

    “여전히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증인, 증거 확실하니 그냥 구속시키면 되지 않습니까?”

    인호의 물음에 정재훈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게 맞는데 그래도 조금 찝찝해서요. 이게 모두 인호 씨 때문입니다.”

    “네?”

    “이전이었다면 인호 씨 말대로 증거가 확실하니 바로 구속시켰을 겁니다. 하지만 인호 씨를 알게 된 후 겪은 일들 때문에 저 사람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바로 들어가면 되나요?”

    “네. 부탁드릴게요.”

    인호가 방을 나서 취조실로 들어간다.

    “안녕하세요.”

    이충선은 고개를 숙인 채 인호와 눈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두 명을 죽이셨네요? 그것도 반항할 힘이 없는 할머니 한 분과 젊은 여자 한 명을요.”

    “제가 죽인 게 아닙니다.”

    이충선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한다.

    “그럼 누가 한 일입니까?”

    인호가 앞에 놓인 파일을 연다. 이충선의 인적 사항과 범죄 현장을 찍은 사진, 그리고 범죄에 사용된 흉기의 사진도 있었다.

    “저도 잘 모릅니다. 정신이 희미해졌는데 깨어보니 주변이 온통 피바다였습니다.”

    “그러니까 그쪽 분 주장은 본인이 아닌 어떤 존재가 몸을 빌려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거네요.”

    “내 말이 그 말입니다. 전 지금까지 다른 사람과 말싸움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주변에 확인해 보시면 알 겁니다.”

    언제부터인가 이충선은 인호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믿음을 주려는 것인지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있다. 인호는 이충선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파일의 사진을 본다.

    “범죄에 사용한 칼은 화장실 인근의 공원 매점의 과도네요.”

    사진 속 범행도구는 손잡이가 빨간색인 날의 길이가 10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과도다.

    “혹시 그거 아세요?”

    “네?”

    “칼을 잘 다루는 칼잡이라 해도 과도로 사람 죽이는 게 쉽지가 않아요. 날이 잘 들지도 않을뿐더러 사람의 피부 아래 지방층을 뚫을 때 날에 지방이 엉겨 붙는다고 하더라고요.”

    “…….”

    인호가 종이 한 장을 접어 길쭉하게 만들고는 반대편 손바닥을 찌르는 시늉을 한다. 종이를 잡고 있는 손이 안쪽으로 조금 밀려 들어온다.

    “칼을 처음 쓰는 사람은 피하지방을 뚫기 위해 과도하게 힘을 쓰기 때문에 손이 안쪽으로 밀린답니다. 그래서 자기 손도 칼에 베이게 되죠. 방화범의 손이 화상이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하네요.”

    인호가 이충선의 손을 쳐다본다.

    “할머니와 아가씨를 죽이려고 스무 번이 넘게 찌르셨네요? 그런데 손이…….”

    인호가 바라보자 이충선이 왼손으로 오른손을 가린다.

    “지나치게 깨끗하네요. 아닌가?”

    인호가 씨익 웃는다.

    “그 상처 언제 난 거예요? 꽤 오래전에 난 상처 같은데요? 길쭉한 모양이 뭔가에 베인 것 같은데. 맞아요?”

    “일하다 다친 겁니다.”

    “아-, 일하다 다치셨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이라고 들었어요. 도대체 영업사원 일을 어떻게 하면 손에 자상을 입게 되는지 궁금하네요.”

    덜컥-

    취조실 문이 열리며 정재훈과 유 형사가 안으로 들어온다. 거울 너머의 바에서 인호의 말을 듣다 들어 온 것이리라.

    “평소에 다른 사람과 말싸움도 해 본 적이 없다고 하셨죠? 주변에 확인해 보라고 하셨고. 그런데 그거 아세요? 유명한 연쇄살인마들도 주변에서 볼 때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더 친절하게 대하죠. 그래서 연쇄살인마가 검거되면 주변에서 이런답니다. ‘저 사람이 진짜?’, ‘그럴 리가 없어’,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이죠.”

    정재훈이 인호를 바라본다.

    “저 사람 안에 또 다른 누군가 있냐고 물어보셨죠? 그런 것 없어요. 아-, 있을 수도 있겠네요.”

    인호가 손으로 얼굴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 내린다.

    “평범함, 선량함으로 위장한 가면 속 뒤틀린 본성이라는 녀석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정재훈이 이번에는 이충선을 바라본다. 이충선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크크크.”

    이충선이 웃기 시작한다.

    이전과는 달리 잔뜩 뒤틀린 웃음이었다.

    “아, 시발.”

    이충선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인호와 눈을 맞춘 이충선이 씨익 웃는다.

    “들켰네?”

    의자에 몸을 기대며 다리를 꼰다.

    “지금까지 걸린 적 없는데. 저 형사님 대단하시네.”

    “나 형사 아닌데?”

    “아나, 형사도 아닌 사람한테 걸렸다고? 하긴. 우리나라 형사들이 날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유 형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이충선을 가장 먼저 취조한 사람이 유 형사였다.

    인호가 대번에 알아본 것을 형사 경력이 오래된 유 형사가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지금까지 몇 명이나 죽였어요?”

    “하나, 둘, 셋…… 일곱? 아, 두 명 더 죽였으니까 아홉이구나.”

    인호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묻는다.

    “지금까지는 조심스럽게 취미생활을 즐겼다는 뜻인데 갑자기 왜 바뀐 거예요?”

    “…….”

    이충선이 인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한다.

    “질렸거든. 매번 같은 방식에 질렸다고. 자극이 필요했어. 그리고 궁금하기도 했고.”

    “뭐가 그리 궁금했지?”

    정재훈이 차가운 음성으로 물었다.

    “왜 영화 같은데 보면 그러잖아. 내가 정신과 진료 이력이 있어서, 내가 술을 많이 마셔서, 내 안에 또 다른 뭔가가 있어서. 심신미약. 뭐 그게 통하는지 궁금했거든. 내가 사람 죽이는 것도 잘하지만 연기도 곧잘 하거든. 검사님하고 형사님은 잘 아시겠네.”

    이충선의 말을 모두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믿고 인호에게 부탁했기에 정재훈과 유 형사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진다.

    “이충선 씨.”

    “말해. 그쪽이 묻는 거라면 성실하게 대답해 줄 용의가 있으니까.”

    “이게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아요. 자극이 필요했다면 다른 방법도 많았을 텐데 어째서 빙의라는 이상한 핑계를 댄 거죠?”

    인호가 가장 궁금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마약류를 복용했다거나, 술에 만취했다거나 등의 변명이 있었을 텐데 어째서 사람들이 잘 믿어주지도 않을 빙의라는 변명을 택한 것일까?

    인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충선의 입꼬리가 슬며시 말려 올라간다.

    “내가 직접 봤거든.”

    * * *

    2년 전.

    이충선은 죽인 이의 사체를 여행용 캐리어에 싣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길게 한숨을 토해내고는 주변을 살피며 히죽 웃는다.

    근처에는 이전에 죽인 이들의 사체가 묻혀 있다.

    “동서남북. 이번에는 중앙.”

    히죽히죽 웃으며 땅을 파기 위해 삽을 잡을 때였다.

    - …… 세요.

    누군가의 음성이 들린 것 같다. 화들짝 놀란 이충선이 자세를 낮추고는 귀를 기울인다.

    - 제발…….

    분명 누군가 있다.

    그것도 멀지 않은 곳에 말이다. 이충선이 조심스럽게 걸음을 뗀다. 작은 나뭇가지를 밟았을 때는 귀에 천둥이 치는 것 같아 심장이 두근거렸다.

    멀리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이는 곳까지 이동한 이충선이 바위 뒤에 몸을 숨긴다.

    “살려주세요.”

    여자의 음성이 들린다.

    이충선은 고개만 빼꼼 내밀어 상황을 살핀다. 한 남자가 서 있고 그 앞에 여자가 쓰러져 있다. 몸이 정상이 아닌지 일어나려 버둥거리고 있었다.

    이충선의 시선이 남자의 손에 고정되었다.

    ‘망치.’

    가정집에 하나 정도 있을 법한 평범한 망치다. 이충선은 저 망치가 피로 흠뻑 젖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자신과 같은 부류다.

    이충선이 혀로 입술을 훑는다. 다른 살인마의 살인 현장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득한 긴장감과 함께 알 수 없는 희열이 척추를 타고 흐른다.

    ‘너는 어떻게 죽이니? 망치로 죽을 때까지 때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즐기는 거냐?’

    칼을 쓰는 자신과 달리 둔기를 쓰는 이들은 상대의 고통을 즐기는 부류라고 들은 적 있다.

    ‘어서 때려. 그 망치로 여자의 정수리를 내리찍어. 아니지. 그러면 너무 쉽지. 뼈를 하나, 하나 부숴버려.’

    이충선이 살인마의 다음 행동을 기대하며 희열을 느낄 때였다.

    “싫어. 이제 그만.”

    살인마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친다.

    아무리 인적이 드문 산속이라고 해도 저렇게 크게 외치는 것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든다.

    ‘초보자인가? 아니지. 피 냄새가 짙어.’

    그랬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상대 살인자의 몸에 밴 피 냄새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자신보다 월등히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지가 분명했다.

    “날 제발 놓아줘.”

    살인자가 왼손으로 망치를 든 오른손을 붙잡으며 외친다. 아니, 울부짖고 있다. 이충선은 도대체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하지만 ‘왜’라는 의문이 든다.

    “나는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아. 더는 네게 조종당하지 않을 거야.”

    누군가를 향해 절규하고 있다.

    망치를 든 살인자의 오른손이 조금씩 위로 올라간다.

    “싫어. 그만해.”

    왼손으로 오른손을 내리누르려 하지만 오른손이 조금씩 위로 올라가고 있다.

    “제발-. 아가씨. 도망쳐요. 이 미친 녀석에게서 도망쳐요.”

    그 미친 녀석이 본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일까?

    그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조종당하지 않는다고 했지? 몸속에 또 뭔가가 있나?’

    “제발 도망쳐요. 제발 이러지 마. 나는 이러고 싶지 않아.”

    살인마의 울부짖음이 계속된다.

    하지만 그런 울부짖음과는 달리 오른손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 최고점에 오른 오른손이 빠른 속도로 내려온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머리를 망치로 맞은 여자가 쓰러진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여자는 죽었을 것이다.

    여자를 죽인 살인마가 천천히 몸을 돌린다. 이충선이 깜짝 놀라 고개를 바위 뒤로 숨긴다. 살인마는 정확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살인마의 눈은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그의 눈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마주하는 것만으로 공포를 느낄 정도의 눈빛이었다.

    바위 뒤에 몸을 숨긴 이충선에게 살인마의 음성이 들려온다. 조금 전 울부짖던 것과는 전혀 다른, 쇳가루를 잔뜩 삼킨 듯 탁한 음성이었다.

    “어땠어? 재밌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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