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00화 (100/190)
  • 제100화

    “그 능운, 뭐라는 곳 사유지 맞아?”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확실하지 않다는 뜻이야?”

    “아닙니다. 확실히 사유지입니다.”

    “지리산 국립공원에 속한 곳일 수도 있잖아.”

    긴장했는지 부동자세로 선 남자가 들고 있는 서류철을 확인하고는 확신을 담아 말한다.

    “절대 아닙니다. 7년 전쯤 본래 땅 주인이 현재 주인에게 증여했습니다.”

    “증여? 지금 주인과 무슨 관계인데?”

    “혈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의자에 앉은 남자가 묘한 신음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본래 땅 주인 가족들 좀 알아봐.”

    “직계 가족은 없습니다.”

    “직계만 가족이야? 친척은 없어? 사돈의 팔촌까지 다 알아보란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보고하던 이가 나가자 남자가 인상을 와락 구긴다.

    “피곤하게 됐네.”

    * * *

    정재훈은 갑자기 자신을 방문한 손님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장관님께서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하하, 정 부장검사님.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옵니까. 그저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끼리 안부 인사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 그러세요? 안부가 궁금하셨나 보네요. 저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만 돌아가시죠.”

    정재훈이 보고 있던 서류로 시선을 옮기자 건설교통부 장관 윤세락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진다.

    “정 검사님. 나 윤세락이에요.”

    “압니다. 건교부 윤세락 장관님.”

    정재훈은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한다. 윤세락이 정재훈을 죽일 듯 노려본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추선미, 백예령 왜 조사하는 겁니까?”

    “별것 아닙니다. 고소가 들어와서요.”

    “무슨 죄목으로 고소가 들어온 겁니까?”

    “뻔한 거 아니겠습니까. 탈세죠. 사기에 관련된 고소도 두 건 있고요.”

    “거참, 누가 고소했는지 모르지만 너무한 것 아닙니까? 고소당한 사람들 무속인이에요. 소상공인이란 말입니다. 복비 현금으로 받기도 하는데 그 정도 되는 돈 번다고 탈세로 고소를 하면 되겠습니까?”

    “그 정도요?”

    정재훈이 서류를 내려 두고 윤세락을 바라본다.

    “복비가 기본이 천만 원이던데요? 부적이라도 쓰면 기본이 3천에, 많게는 억 단위던데요? 고소한 분들 중 한 분은 굿을 했는데 3억을 달라고 했더랍니다. 굿을 하기 전에는 5천만 원이라고 하고선 굿을 마친 다음에 3억을 내라고 했다네요. 들러붙은 귀신이 엄청 강력했다나 뭐라나.”

    “그거 다 무고에요.”

    “무고요?”

    정재훈이 서류철 하나를 윤세락 앞에 내민다.

    “통장 거래 내역이 버젓이 있는데 무고라고요?”

    “아니. 자기가 주기로 했으니까 주었겠죠.”

    “그러니까 탈세로 조사를 한다는 거 아닙니까? 작년에 세금 신고를 5억 했더라고요. 그런데 조사해 보니 그 수십 배를 벌었던데요.”

    “정 검사님. 내가 국세청장과도 잘 알아요.”

    “아-, 그러세요?”

    정재훈이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네, 청장님. 중앙지검 정재훈 부장검삽니다. 네. 오늘 저녁 약속에 한 분 더 모시고 가도 될까 해서요. 청장님과 아주 친하다는 분을 만나서요. 누구냐고요?”

    정재훈이 윤세락을 바라본다. 윤세락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정재훈의 시선을 외면한다.

    “아닙니다. 급한 일 있다고 돌아가셨습니다.”

    정재훈이 전화를 끊으니 윤세락이 쏘아붙이듯 말한다.

    “정 검사님. 그 지리산에 있다는 무당 사주받고 이러는 겁니까?”

    “사주요? 사주받으신 분은 따로 있는 걸로 알고요.”

    “그 무당이 선량한 사람에게 땅을 증여하라고 강요했다고 하네요. 그 땅 주인 조카가 억울하다고 고소하겠다고 하던데요.”

    “땅 주인 조카분이요? 억울하면 안 되죠.”

    정재훈이 인터폰을 든다.

    “그분, 안으로 잠시 들어오시라고 해줘요.”

    문이 열리고 60대 중 후반의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신다.

    “오선자 할머니.”

    “네, 검사님.”

    “할머니 조카분에게 땅 물려주시기로 하셨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동생 아들놈 말하는 것 같은데 얼굴 안 본 지 30년도 넘었어요. 그 망할 녀석이 그래요?”

    정재훈이 오선자가 아닌 윤세락을 보며 씨익 웃으며 말한다.

    “아니. 그런 소리가 들려서요. 오늘 여쭤 볼 것은 다 여쭸으니 돌아가셔도 되요.”

    “네, 검사님. 수고하세요.”

    오선자가 돌아가자 정재훈의 표정을 굳힌다.

    “윤 장관님. 제가 누구 사주를 받고 일을 하던 장관님이 상관할 바는 아니에요. 제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국정감사 때 가루가 되도록 까세요. 아-, 윤 장관님은 국정감사 때까지 버티실 수 있으시려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정재훈이 서류철 몇 개를 꺼내 책상 위에 던진다.

    “작년에 장관님 처남분께서 땅을 사셨네요? 그 땅이 두 달 후에 재개발 발표가 났구요. 그 재개발 추진하신 분이 장관님이시고요. 그리고 아내분도 3년 전에 차명으로 땅을 사셨네요. 거기도 재개발이 됐고요. 장관님 가족분들은 땅을 보는 눈이 아주 좋으신 것 같아요.”

    “그거야 그냥 운이 좋아서…….”

    “건설사 여러 곳에서 돈 받은 건요? 장관님 아들이 국영기업 임원으로 취업한 건요?”

    윤세락이 이를 꽉 깨문다.

    “남의 뒤 봐주실 생각하지 말고 장관님 허물 먼저 신경 쓰셔야 할 것 같은데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다음에도 웃는 낯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협박을 담은 말을 뱉어낸 후 윤세락이 몸을 돌린다.

    “멀리 안 나갑니다.”

    윤세락을 문을 닫고 사라지자 정재훈이 쓰게 웃는다.

    “하아-. 검찰, 경찰 정보력이 일개 기업보다 못하네.”

    * * *

    깊은 숲속.

    키가 큰 나무들에 가려진 넓지 않은 터에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건물이 지어져 있다. 주변 나무들에 색색의 끈이 묶여 있다.

    “이제 어떻게 하죠?”

    질문에 답을 하는 이가 없었다.

    이들의 리더라 할 수 있는 상석에 앉은 추선미가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윤 장관은 뭐라고 해요?”

    “전화 안 받아.”

    “언니가 자기 약점 잡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전화를 안 받는다고요?”

    “내가 잡고 있는 약점보다 무서운 약점을 틀어쥐고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겠지.”

    추선미의 말에 모두가 입을 꾹 다문다.

    건설교통부 장관 윤세락이 연락을 피한다는 의미는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이제 어떻게 하죠?”

    “일단 납작 엎드려야지. 늙은 요괴가 깨어났으니 우리들은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야. 요괴에게 잡히는 순간 끝이야.”

    나이가 가장 어린 여자가 휴대폰을 조작하며 울상을 짓는다.

    “휴대폰도 안 터져요. 목동에 건물 계약해야 하는데. 어쩜 좋아요.”

    “건물이 중요해? 아니면 네 목숨이 중요해?”

    추선미의 말에 여자가 날카롭게 쏘아붙인다.

    “왜 가만히 있는 저는 끌어들이셔서 그래요?”

    “내가 강요한 거야? 아니잖아. 늙은 요괴의 것이 탐이 났던 거잖아. 그리고 빠져나갈 생각이라면 하지 않는 게 좋아. 날린 살에 네 기운이 섞인 것을 요괴가 모를 것 같아.”

    “아이, 짜증 나.”

    추선미가 모인 이들을 차례로 둘러보며 말한다.

    “소나기는 피해가 라고 했어. 조용히 지내면 잊혀질 거야. 요괴도 천년만년 사는 것은 아니니까.”

    그때였다.

    똑- 똑-

    모두가 깜짝 놀란다.

    그들이 있는 곳에 찾아올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누구도 찾아와서는 안 된다.

    추선미가 체념한 듯 말한다.

    “누구세요?”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온다. 검은 정장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인호였다. 그의 뒤에는 땡초와 그의 동생들이 서 있다.

    “안녕하세요. 너무 꽁꽁 숨으셔서 찾는 데 한참 걸렸잖아요.”

    “늙은 요괴가 보냈나?”

    “그쪽이 만신을 어떻게 부르는지는 상관하지 않아요. 다만 제 앞에서는 말을 가려서 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늙은 요괴를 늙은 요괴라고 한 것뿐이야.”

    “만신을 미워하는 마음 이해합니다. 신의 이름을 팔아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것을 금지하셨으니 손해가 컸겠죠.”

    이혜옥은 무속인들의 중 주류라 할 수 있는 이들의 정점이다. 하지만 그녀를 시기하는 이들은 수없이 많다. 그녀가 무속인들에게 걸어 둔 제약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돈을 요구하지 말 것, 거짓으로 사람들을 속이지 말 것, 부당한 무리와 연계하지 말 것 등 여러 가지 제약을 두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그 제약들을 모두 지키지 않는 이들이다. 굿 한 번, 부적 한 장에 수억 원의 돈을 받고 거짓된 신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기만했으며 윤세락과 같은 부정한 관리들과 연계했다.

    인호가 웃으며 말한다.

    “이만 가시죠. 기다리시는 분이 계신다는 거, 다들 알고 있잖아요.”

    땡초와 부하들이 안으로 들어온다.

    “괜히 힘 빼게 만들지 말고 자발적으로 갑시다.”

    땡초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 * *

    능운정사.

    이혜옥은 넓은 마당에 무릎을 꿇고 있는 다섯 무속인들을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선미. 오랜만이구나.”

    “네, 오랜만이네요.”

    “내가 그렇게 미웠니?”

    “무속인들 중 진심으로 만신을 따르는 이들이 몇이나 될 것 같으세요?”

    이혜옥이 피식 웃는다.

    “선미야. 과거의 국가들을 경영하던 왕들 중 백성들에게 진심으로 존경받았던 왕이 몇 명이나 될 것 같니? 요즘 말로 그들은 독재자였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가 불필요했을까?”

    이혜옥이 고개를 젓는다.

    “그렇지 않아. 그 독재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회가 유지된 거야. 그들이 없었다면 모르긴 해도 야만이 판치는 세상이 되어 버렸을 거야. 요즘이라고 다를까? 내가 그어준 것은 최소한의 선이야. 그 선마저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니? 우리들은 신을 모시는 사람들이야. 신을 모시는 사람들이 자신의 사리사욕 때문에 사람들에게 외면받아서야 되겠니?”

    이혜옥이 뒤를 바라본 후 말한다.

    “너희들이 날린 살 덕분에 애꿎은 아이가 고통받고 있어. 이제 너희들이 대가를 치러야 할 때야.”

    “우리들 모두를 죽이실 생각이세요?”

    이혜옥이 고개를 젓는다.

    “우리들을 살려두면 살이 소멸되지 않을 텐데요.”

    “네 지식이 짧아 그 정도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게야. 나는 너희들이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거둘 생각이야.”

    “서, 설마…….”

    “그 설마가 맞을 거야.”

    추선미가 빽 소리를 지른다.

    “동자님을 제게서 떼어내시겠다고요? 아무리 만신이라고 해도 그것이 가능할 것 같아요?”

    무속인들에게 줄 수 있는 최악의 형벌은 그들이 모시고 있는 신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지. 네 배움이 모자라니 그 정도밖에 볼 수 없는 게야. 내가 모시는 분은 왕이라 불리시던 분이다. 너희들이 모시는 신들 모두 그분의 신하이며 백성이지.”

    인호가 놀란 눈으로 이혜옥을 바라본다. 그녀 뒤에서 강력한 기운이 솟구친다. 형체를 볼 수 없지만 뿜어내는 기운은 지금까지 인호가 접했던 그 어떤 영적 존재보다 강력했다.

    “이것이 너희들과 나의 차이이고, 내가 만신이라 불리는 이유란다.

    “왕-.”

    인호가 중얼거린다. 이혜옥이 모신다는 ‘왕’이라는 존재일 것이다. 이혜옥이 모시는 신을 부르자 무릎 꿇고 있는 다섯 무속인들이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그녀들의 몸에서 기운이 피어오른다.

    꺄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온다.

    거대하고 강력한 기운이 무속인들의 토해낸 기운을 순식간에 집어삼켜 버렸다.

    약속이나 한 듯 다섯 무속인들이 동시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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