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99화 (99/190)
  • 제99화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걸으시면 앞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데요.”

    “죄를 짓고 쫓겨나 집에 돌아온 못난 딸이 무슨 낯이 있어 고개를 들고 가겠습니까.”

    능운정사로 이어진 산길을 오르며 최화란은 줄곧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넘어질까 위태로웠지만 인호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뒤를 쫓기만 할 뿐이다.

    능운정사의 입구가 보인다. 최화란의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하얀 소복의 치맛단을 꽉 쥔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게 보였다.

    인호가 먼저 능운정사의 문턱을 넘는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화란과 함께 오며 인호가 미리 연락을 한 까닭이다.

    능운정사의 문턱 앞에 선 최화란이 천천히 몸을 낮춘다. 그녀는 두 손과 무릎을 땅에 댄다. 절을 하나 싶었는데 그대로 기어서 문을 넘는다.

    “서, 선녀님.”

    최화란은 그 자세 그대로 손과 무릎으로 기어 앞으로 나아간다. 하얀 소복이 금방 더럽게 변한다. 마당의 돌조각 때문에 그녀의 무릎이 피로 물든다.

    고통스러울 텐데 최화란은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지켜보는 이들의 눈빛은 차갑기만 하다.

    인호와 눈이 마주친 박갑수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인다.

    그냥 두고 보기만 하라는 뜻이다.

    이혜옥의 처소 앞까지 기어간 최화란이 그대로 이마를 땅에 찧는다.

    “어미를 속이고, 기만한 나쁜 딸이 돌아왔어요.”

    다시 머리를 찧는다.

    얼마나 세게 찧었는지 그녀의 얼굴에 빨간 선이 그어진다. 턱을 타고 피가 뚝뚝 떨어진다. 그녀의 볼을 타고 흐른 눈물도 떨어진다.

    “용서를 바라진 않습니다. 어머니 얼굴만 잠깐 뵐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쿵-

    최화란은 지면에 이마를 댄 채 그대로 멈춘다.

    “하아-. 들어가거라.”

    이혜옥의 수족이라 할 수 있는 여자의 말에 최화란은 두 팔과 무릎으로 계단을 오른다.

    최화란과 함께 이혜옥이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불계는 여전히 이혜옥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이혜옥 앞까지 기어간 최화란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얼굴은 눈물과 피로 얼룩져 있다.

    “어머니.”

    최화란이 오열한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최화란은 이혜옥의 손을 꼭 잡는다.

    “어머니. 마지막으로 죄송할 짓을 할게요. 부디 절 용서하세요.”

    인호는 최화란이 무슨 말을 하나 싶어 바라본다. 하지만 그녀의 다음 행동을 보는 순간 당장 달려들 듯 앞으로 나서려 한다.

    불계가 손을 들어 올리지 않았다면 최화란을 내동댕이쳤을 것이다.

    최화란이 들어 올린 이혜옥의 팔을 꽉 깨물어 버린 것이다. 팔에서 금방 피가 흐른다. 최화란은 이혜옥의 팔에서 난 피를 쭉, 쭉 소리가 나게 빨아 마시고 있다.

    인호가 다시 한번 앞으로 나서려 할 때 불계가 가만히 고개를 흔든다.

    잠시 후.

    “컥-!”

    최화란이 마신 피의 몇 배나 되는 양의 피를 토해낸다. 그녀가 토해낸 피가 이혜옥이 덮고 있는 이불, 그녀의 얼굴을 흠뻑 적신다.

    최화란의 몸이 거세게 떨린다.

    인호가 놀란 눈으로 최화란을 바라본다.

    최화란의 얼굴이 파랗게 변해가더니 피부 위로 얇은 얼음이 덮이고 있었다.

    “어머니. 허락을 구하지 않아서 죄송…….”

    말을 끝내지 못하고 최화란이 쓰러진다.

    “선녀님!”

    인호가 놀라 소리칠 때였다.

    “쯧쯧, 멍청한 것.”

    들려선 안 될 음성이 들려와 인호가 다시 한번 놀란다. 만신 이혜옥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만신님.”

    “온 것은 알고 있었다. 이 모자란 것을 데리고 온 것이 네놈이렸다?”

    “그, 그것이-. 그보다 선녀님은 왜 이렇게 된 겁니까?”

    이혜옥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쓰러져 있는 최화란을 바라본다.

    “내게 온 살을 제 몸으로 품었다.”

    “그게 가능합니까?”

    “이 아이라면 가능하지. 나로 인해 신내림을 받았고, 유일하게 살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준 아이니까. 미련한 것, 미련한 것. 그냥 식당이나 하면서 편안하게 살 것이지.”

    이혜옥은 최화란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두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인호야.”

    “네.”

    “네가 좀 뛰어다녀야겠다.”

    이혜옥은 얼굴에 잔뜩 묻어 흘러내리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싸늘한 음성으로 말한다.

    “뭘 하면 됩니까?”

    “나를 대신해 이리된 아이를 이대로 둬서야 되겠느냐? 찾아줘야 할 금수들이 있다.”

    “짐승들입니까?”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하는 짓이 금수만도 못하다.”

    “그 짐승들이 누굽니까?”

    이혜옥이 최화란의 볼을 쓰다듬는다.

    “이 아이를 내게서 빼앗아 간 것들. 이 아이의 귀에 독을 심은 것들.”

    최화란의 볼에서 손을 뗀 이혜옥이 인호를 바라본다. 그녀의 눈에서 지독한 분노가 느껴졌다.

    “이리로 잡아 와.”

    * * *

    “푸흡-.”

    신당에서 치성을 드리던 여자가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여자를 바라본다.

    “어찌 된 일입니까?”

    피를 토하고 쓰러졌던 여자가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흰 비단 손수건을 꺼내 피를 닦은 여자가 숨을 헐떡이며 말한다.

    “살이 다른 곳으로 비껴갔어.”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가장 젊어 보이는 여자가 놀란 눈으로 묻는다.

    “불가능하지. 하지만 그 늙은 요괴라면 가능할지도.”

    “늙은 요괴는 살을 맞고 쓰러져 있잖아요. 이미 다 확인한 사실이잖아요.”

    능운정사 내부에 이들에게 소식을 전해주는 입이 있었다. 이혜옥은 살을 맞은 후 의식을 잊고 쓰러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년이라면 가능할지도.”

    “누구요? 설마…….”

    “그래. 그 설마가 맞을 게야.”

    “월궁선녀.”

    모인 여자들이 중얼거리며 서로를 살핀다.

    “하지만 그년은 모시던 신이 떠났잖아요.”

    가장 젊은 여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하자 피를 토한 여자가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늙은 요괴가 그년에게 뭔가를 가르쳤던 게지.”

    “그러면 큰일이잖아요. 요괴가 깨어났단 뜻이잖아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지.”

    피가 묻은 손수건을 꽉 쥐며 말한다.

    “요괴의 눈을 피해 숨던가. 아니면 맞서 싸워야지.”

    여자가 밖을 향해 외친다.

    “박 장관하고 고 의원에게 연락해.”

    * * *

    - 사람과 사람의 싸움이 아닌 권력과 권력의 싸움이 될 게야. 나는 나대로 이리저리 연락을 돌릴 테니 박수와 네가 아는 이들에게도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한 대가는 내가 지불한다.

    “권력과 권력의 싸움이라.”

    이혜옥이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 이해한다. 다만 그녀가 가진 인맥과 박갑수, 인호가 가진 인맥까지 모조리 동원해야 할 정도라면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회장님. 안녕하세요. 정인홉니다.”

    가장 먼저 전화한 사람은 대은 그룹 김철호 회장이다.

    “네. 아무래도 상대 쪽에서 정치권의 힘을 등에 업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성 그룹의 오형민 회장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마지막으로 정재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 걸려고 했다.

    “인호 씨.”

    정재훈이 검은 봉지 하나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온다. 유 형사는 어디로 가고 정재훈 혼자 왔다.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

    “이제 막 퇴근하려고 했습니다.”

    “잘됐네요. 저하고 소주나 한잔하시죠. 지검 근처에 족발 잘하는 집이 있는데 그 앞을 지나다 인호 씨 생각나서 사 왔습니다.”

    “그 핑계로 또 무슨 일을 시키시려고요?”

    “하하, 역시 눈치가 빠르시네요.”

    정재훈이 소파 옆 협탁에 사온 족발과 소주를 꺼내놓는다.

    “잘됐네요. 저도 검사님께 부탁드릴 일이 있었거든요.”

    “아이쿠, 벌써 불안한데요.”

    족발의 포장을 뜯고 서로의 잔을 채워준다.

    “인호 씨가 먼저 말할래요?”

    “아니요. 검사님이 먼저 말하세요.”

    “알겠습니다. 지난주 뉴스 보셨어요?”

    “요즘 바쁜 일 때문에 정신이 없어 뉴스 볼 시간도 없었네요.”

    정재훈이 소주를 마신다.

    “묻지마살인이 있었습니다. 흉기를 든 범인이 공원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 두 명을 무참히 살인했죠.”

    “그런 일이 있었군요. 세상이 점점 무서워지네요. 조심한다고 안전한 세상이 아니에요.”

    “그렇죠.”

    “범인을 못 잡았습니까?”

    묻지마살인이라면 자신이 아닌 경찰들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아니요. 현장 검거했습니다. 무슨 생각인지 현장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대단한 놈이네요.”

    “화장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벌벌 떨고 있었다고 하네요. 형사들에게 잡혀가면서고 계속 ‘내가 아니야, 내가 한 게 아니야’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검찰에 와서도 똑같습니다.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네요.”

    “미친놈일까요?”

    인호의 물음에 정재훈이 고개를 흔든다.

    “멀쩡한 사람입니다. 살인을 하기 전까지 평범하게 직장 생활하던 말 그대로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변의 평판도 절대 누굴 죽이고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하네요. 겁이 워낙 많아 벌레도 잘 못 죽인다고 말이죠.”

    정재훈이 인호의 빈잔을 따라준다.

    “묻지마살인이라고 해도 살인을 저지르는 동기는 반드시 있습니다. 사회에 대한 불만, 비참한 현실에 대한 분노 등이죠. 그런데 이 사람은 그런 게 전혀 없어요. 휴대폰을 확인하니 살인을 저지르기 10분 전에 어머니와 통화를 했더라고요. 자동 녹음 기능이 있어 통화 내용을 들어봤습니다. 치킨 사가지고 금방 들어갈 테니 저녁 드시지 말고 기다리라는 내용이었어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빙의를 의심하고 계신거죠?”

    “외국의 사례를 조사해 보니 그런 경우가 있었더군요. 미국에서만 세 건이나 됩니다.”

    “그 사건들이 정말 빙의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범죄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변명일 수도 있어요. 일단 이번 사건은 제가 빠른 시일 내로 그 사람을 만나 보도록 할게요.”

    “그러면 이제 인호 씨 차례인가요?”

    “조만간 정치인들 몇 명을 압박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재훈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인호가 이혜옥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아주 훌륭하신 분이세요. 신병에 걸린 아이들, 남들과 다른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돌봐 주시는 분이죠. 덕분에 세상에 소외당하고 살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그분께 몹쓸 짓을 한 종자들을 비호하는 정치인들이 있을 거란 말이시죠?”

    “네. 그들을 압박할 수단은 제가 찾겠습니다. 물론 부담되시면 도와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인호 씨답지 않은 말이네요. 죄를 지었다면 정치인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도 기소할 겁니다. 그러니 걱정은 넣어두세요.”

    정재훈이 웃으며 소주를 마신다.

    “그런데 그 무속인들은 처벌하기 쉽지 않을 텐데요.”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들에게 벌을 줄 사람은 따로 있거든요.”

    “만신이라는 분이십니까?”

    “네.”

    인호가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그들은 절실하게 느끼게 될 거예요. 절대 건드려선 안 될 존재를 건드린 대가가 어떤 것인지. 자신들이 치러야 할 대가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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