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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98화 (98/190)
  • 제98화

    인호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엄청난 속도로 운전을 하는 중이다.

    - 만신께서 위독하십니다.

    목적지는 지리산 능운정사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기 무섭게 인호가 미친 듯 달린다. 능운정사까지는 꼬박 한 시간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인호는 그 거리를 20분 만에 주파했다. 평지도 아닌 산길을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뛰어오른 것이다.

    능운정사라는 운치 있는 이름답게 고풍스럽게 지어진 한옥들이 보였다.

    여러 채의 한옥이 모여 능운정사를 이루고 있다. 가장 안쪽의 한옥 앞마당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만신 이혜옥의 사람들이다.

    나이가 많지 않은 아이들은 이혜옥이 거둔 아이들이다. 언제 왔는지 사람들 무리에 끼어 있던 박갑수가 인호를 보고 아는 체했다.

    “왔냐?”

    “어떻게 된 일이에요?”

    박갑수가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살에 맞으신 것 같다.”

    “감히 누가 만신께 살을 날립니까!”

    인호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다. 대부분 안면이 있는 이들이다. 그중 이혜옥의 주변 일을 대부분 처리해 주는 여자가 다가온다.

    “오셨어요.”

    “만신께서는 어떠세요?”

    여자가 씁쓸하게 웃는다.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인호가 한옥 안으로 들어간다. 안에는 익숙한 뒷모습이 보인다.

    “불계 스님.”

    불계가 앉아있고 그 앞에 만신 이혜옥이 누워있다. 눈을 뜨고 있는 것을 보니 의식을 잃은 것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새파랗다. 자세히 보면 얼굴에 한 겹의 얼음이 뒤덮여 있었다.

    “이놈아. 어째서 오자마자 소란을 떠는 것이냐!”

    인호가 불계의 옆에 앉는다.

    이혜옥의 전신에서 사악한 기운이 느껴진다.

    “정말 살이군요.”

    “그래. 살이다.”

    “누군지는 모르십니까?”

    “법 없이도 살 분이지만 미워하는 이들이 많은 분이기도 하지.”

    불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신의 이름을 팔아 삿된 이득을 취하는 모두가 이혜옥의 적이라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혜옥은 신기가 없는 무속인이 사기 치는 것을 눈뜨고 지켜보지 못했다.

    많은 가짜 무속인들이 이혜옥에 의해 밥그릇을 빼앗기고 말았다.

    인호가 이혜옥의 손을 꼭 잡는다.

    손이 얼음장처럼 차갑다. 맞잡은 부위가 따끔거린다. 악한 기운을 품고 있는 ‘살’ 때문이었다.

    “저 왔습니다.”

    이혜옥이 손에 힘을 주는 것 같다.

    “그러게 좀 둥글게 둥글게 사시지 그러셨어요. 가짜들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매번 밥그릇 빼앗으시니 화가 날 만도 하죠.”

    “그게 이 상황에서 할 말이냐?”

    “고칠 수 있겠습니까?”

    불계가 고개를 흔든다.

    “살이 너무 강해. 살을 날린 이는 만신과 비슷한 수준의 무속인일 확률이 높아. 현상 유지도 힘들겠어.”

    “시간은 얼마나 있습니까?”

    “길어봐야 일주일이야. 그 안에 살을 제거해야 해.”

    “제거해야 한다라…….”

    살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살을 날린 이를 제거해야 한다. 남을 해하기 위해 날리는 살이니 자신 역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만신 쉬시게 나가 있거라.”

    밖으로 나가니 박갑수가 기다리고 있다.

    “좀 걸을까?”

    박갑수와 함께 능운정사의 담을 따라 걷는다.

    “짐작 가는 사람은 없습니까?”

    무속인은 같은 무속인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다.

    “알겠지만 만신께는 적이 많다.”

    “만신이 죽길 바랄 정도로 원한이 깊은 사람은요?”

    “많지.”

    “하아-.”

    “나도 똑같은 질문을 능운정사에 머무는 이들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공통적으로 한 명을 꼽더구나.”

    “그게 누굽니까?”

    “너도 아는 사람이다.”

    인호가 무언갈 생각하다 눈살을 찌푸린다. 한 여자의 얼굴이 떠오른 것이다.

    “그래. 맞아. 월궁선녀.”

    월궁선녀 최화란.

    십여 년 전만 해도 이혜옥의 뒤를 이어 능운정사의 주인이 될 것이라 여겨지던 여자다. 만신 이혜옥의 후계자로 대한민국 무속인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무당.

    외모가 너무 아름다워 이혜옥이 직접 ‘달의 궁전에 사는 선녀’라는 의미의 ‘월궁선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만신께서 워낙 쉬쉬하셔서 월궁선녀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혹시 아시는 게 있습니까?”

    “세상 사는 이치가 다 똑같지. 무리가 있으면 그 안에 파벌이 생기지. 네가 알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무속인들의 규모가 상당하다. 나와 만신을 중심으로 잘 돌아가고 있었지. 하지만 개중에는 우리 둘이 너무 오랫동안 해 먹는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어. 그것들이 뭉쳐서 파벌을 만들었지.”

    “월궁선녀가 그 파벌의 수괴였습니까?”

    박갑수가 답답한지 한숨을 내쉰다.

    “수괴라기보다는 파벌이 그 아이를 꼬드긴 것이지. 가만히 있어도 만신의 뒤를 잇게 될 텐데 무슨 욕심이 생겨서 내림굿을 하였을까.”

    “내림굿을 하였다고요?”

    내림굿은 흔하다.

    말 그대로 신병을 앓는 이를 굿을 통해 무당으로 이끄는 굿이다.

    하지만 그 흔한 내림굿을 능운정사에서 할 수 있는 무당은 만신 한 사람뿐이다. 만신 이혜옥을 신어미로 둔 신딸들은 내림굿을 하지 않는다.

    이혜옥이 죽은 이후에나 내림굿을 하게 되는 것이다.

    “파벌을 이룬 것들이 그 아이를 살살 꼬드긴 것이지. 내림굿을 해 신딸들을 만들어 세를 불리라고. 그런데 첫 내림굿을 하다 만신께 딱 걸렸어. 그리고 쫓겨났지. 벌써 13년 전 일이다.”

    “만신께서는 어째서 신딸들이 내림굿을 못 하게 하셨을까요?”

    “지금까지 말했잖아. 파벌. 적어도 자신을 통해 무당이 된 신딸들은 이런저런 파벌에 휩싸이지 않길 바라신 게지.”

    “혹시 박수께서도 그러십니까?”

    박갑수가 고개를 흔든다.

    “애초에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던 상관 없다. 나는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면 그만인 거야.”

    “월궁선녀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걸 어떻게 알아? 그걸 알면 이렇게 발 동동 구르면서 있겠냐?”

    “이만 가 보겠습니다.”

    “벌써 가려고?”

    인호가 쓰게 웃는다.

    “일주일밖에 시간이 없다네요. 어떻게든 만신 저렇게 만든 것들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호가 몸을 돌릴 때 박갑수가 말한다.

    “거짓으로 신을 모시는 것들도 한 패거리일지 몰라. 그러니 몸조심해라.”

    “후후, 지금 제 걱정하시는 겁니까?”

    인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는 손을 흔들며 멀어진다.

    “그래. 니놈 걱정을 하는 것이다. 나이 먹은 우리들이 재주가 없어 젊은 네게 매번 업을 강요하는구나.”

    * * *

    인호는 월궁선녀 최화란을 찾기 위해 가진 인맥을 모조리 동원했다.

    흥신소 유정우와 정재훈, 그리고 대은 그룹의 김철호 회장과 신성 그룹의 오형민 회장까지.

    두 사람에게 연락한 까닭은 신력이 뛰어난 무속인들이 정치인, 경제인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연락이 온 것은 기대치가 가장 낮았던 정재훈에게서였다.

    - 사기죄로 복역했었네요. 2년을 복역하고 7년 전에 출소했습니다. 출소 후에는…….

    죄를 짓지 않는 이상 정재훈이 최화란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기라고? 그렇게 대단한 무당이?”

    최화란은 이혜옥의 후계자답게 신력이 대단했다. 이혜옥이 부재중일 때 유명정치인들이 최화란을 찾을 정도였다.

    “그랬던 사람이 저렇게 산다고?”

    인호가 차에 탄 채로 길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다.

    - 월궁 식당

    테이블 네 개 정도의 작은 식당.

    그 안에 한 여자가 손님들에게 음식을 나르고 있다. 오래전에 몇 번 본 것이 전부였지만 저 여자가 최화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호가 차에서 내려 월궁 식당에 들어간다.

    “어서오…….”

    인사를 하며 몸을 돌리던 최화란이 얼음이라도 된 양 굳어버린다.

    “오랜만입니다.”

    “네.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죠?”

    “저야 늘 똑같죠. 하지만 선녀님께서는 많이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최화란이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인다.

    “식사하러 오신 것 같지는 않고 절 만나기 위해 오신 거예요?”

    “그렇긴 한데 맛있는 냄새 맡으니 갑자기 배가 고프네요. 여기서 제일 맛있는 것으로 하나 주세요.”

    “잠시 기다리세요.”

    작은 식당답게 음식도 직접 하는 듯하다. 잠시 후 최화란이 음식을 내온다. 돼지고기 두루치기였다.

    “맛있네요.”

    인사치레가 아니라 정말 맛있었다.

    “능운정사에 있을 때도 음식을 하셨었나요?”

    “아니요. 그때는 해주는 밥만 먹었죠. 먹고 살려다 보니 뭐든 하게 되더라고요.”

    인호가 최화란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어쩌다 이렇게 되신 겁니까?”

    최화란에게서 신력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어머니께 내침받고 장군님께서 떠나셨어요.”

    “하아-.”

    “제가 나쁘죠.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조금도 없어요. 어리석은 선택을 했죠. 저도 어머니처럼 될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교도소는 왜 가신 겁니까?”

    “전부 알고 오셨네요.”

    최화란이 고개 숙인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요. 장군님께서 떠나셨지만 할 줄 아는 것이 그것밖에 없어서 장군님 이름을 팔았죠. 모시는 신도 없는 무당 명줄이 얼마나 길겠어요? 이전에 알던 정치인 분께 몇 마디 해 드린 것이 화가 되었어요.”

    최화란을 교도소에 보낸 정치인이 누군지 궁금했다. 아무리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지만 무속인의 말을 전적으로 믿은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은가.

    “출소 후에 줄곧 이렇게 사신 겁니까?”

    “네. 몇 번이고 어머니를 찾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그런데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혹시 어머니…….”

    이혜옥이 자신을 찾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대가 묻어있다.

    “만신 때문에 온 것은 맞지만 생각하시는 그런 이유는 아닐 겁니다.”

    인호가 고기를 삼키고 물로 입을 행군 후 말한다.

    “만신께서 살을 맞으셨습니다.”

    쨍그랑-

    최호란의 몸이 휘청하며 그녀의 팔이 테이블 위의 접시를 밀어 바닥으로 떨어트린다.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최화란이 떨리는 손으로 컵에 물을 따른다. 입으로 가져가는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물을 마신 최화란이 최대한 담담한 투로 말한다.

    “제가 어머니께 살을 날렸을 거라고 생각하고 찾아오신 거군요.”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직접 뵈니 제 생각이 많이 틀렸네요. 혹시 짐작 가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네.”

    인호가 눈을 부릅뜬다.

    “그게 누굽니까?”

    질문을 하면서도 인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계룡산 박수의 말씀에 의하면 만신께 살을 날릴 정도의 신력을 지닌 분은 선녀님뿐이라던 데요.”

    “감히요. 꿈도 꾸지 못하죠. 어머니는 거대한 산이신데요.”

    “짐작하시는 사람이 누굽니까?”

    최화란이 고개를 흔든다.

    “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조금 전 직접 말했잖아요. 우리나라에 어머니께 살을 날릴 정도의 신력을 지닌 무속인은 없어요.”

    인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최화란을 바라본다. 최화란의 눈매가 매서워진다.

    “혼자서는 힘드니 여럿이 힘을 합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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