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화
“민주는 착한 아이죠?”
- …… 네.
“착한 아이는 말을 잘 들어야죠?”
- …… 네.
“그래. 우리 민주 참 착하구나.”
* * *
“민정아.”
“네, 소장님.”
“너 여섯 살 때 뭐 했는지 기억나냐?”
이민정이 잠시 생각하다 쓰게 웃는다.
“주변의 망령들 피해서 도망 다니기 바빴죠. 소장님은요?”
“나? 비슷하지. 도망은 다니지 않았지만.”
여섯 살의 인호 주위에는 항상 망령들이 있었다. 함께 지내고 있는 영감은 그때도 인호의 주변에 있었다.
이민정처럼 망령들을 무서워해 도망 다닌 것은 아니지만 망령들 덕분에 친구도 사귀지 못하고 늘 혼자였다.
“민주라는 아이 때문에 그러세요?”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를 때리는 사람들 정말 나빠요. 반항도 하지 못하는 아이를 어떻게 때려요? 세상에서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부모라는 사람들이 말이죠.”
이민정이 분노를 그대로 담아 토해낸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짝-
“눈 떠.”
아직은 어린 나이의 인호는 아버지가 뺨을 때렸지만, 눈을 뜨지 못했다. 오히려 눈을 더 꼭 감았다.
“네가 눈을 감는다고 저것들인 사라지지 않아. 오히려 널 더 괴롭히고 끝내 잡아먹으려 들겠지. 그러니 눈 떠. 당당하게 맞서. 네가 만만한 놈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란 말이야.”
인호는 눈을 떴다.
끔찍한 외형의 망령들이 길게 찢어진 입을 벌려 당장이라도 집어삼키려 한다. 인호는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았지만. 눈앞이 환해진다. 아버지가 다시 뺨을 때린 것이다.
“눈을 감으면 두려움은 더 커진다. 눈을 뜨고 똑바로 쳐다봐. 네깟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외쳐!”
인호가 다시 눈을 뜬다.
망령들은 여전히 인호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더 큰 두려움은…….
자신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실망이 담긴 눈빛이었다.
“애들 때리는 부모는 다 손을 잘라버려야 해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
회상에서 깨어난 인호가 중얼거리며 뺨에 손을 올린다.
“뭐가 그렇지 않아요? 애들 때리는 부모는 다 쓰레기에요.”
“아, 거참. 아니라니까!”
인호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이민정이 놀란 눈이 된다.
“소장님?”
“아니라고. 아니라는데 왜 자꾸 맞다고 그래? 자식을 때리는 부모는 물론 나쁘지. 하지만 그중에는 정말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도 있어.”
아버지가 그랬다.
자기가 곧 떠나게 되면 혼자 남게 될 인호가 걱정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모질게 대했을 것이다.
어렸을 때는 그런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나이가 드니 이해가 되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 * *
습관처럼 민주라는 아이가 있을 동네를 거닐고 있다. 커피전문점에서 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횡단보도 앞에 선다.
인호가 옆을 힐끔 바라본다.
요 며칠 계속 보았던 남자다. 인호가 묘한 눈빛으로 남자를 본다. 며칠 동안 본 남자는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다. 세상의 근심을 모두 가진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저기-.”
“…….”
남자가 인호를 본다. 그의 눈은 멍했고, 공허했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남자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가끔은 그런 사이이기 때문에 하지 못할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 겁니다. 낯선 바에서 처음 만나는 바텐더에게 가슴속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잖아요.”
“하아-. 아내가 죽었습니다.”
“…….”
“아내의 빈자리를 제가 채워 줄 수는 없나 보네요. 아이가 말도 없고 절 피하는 것 같아요.”
아내가 죽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 같다.
“이해도 되는 게 매일 자길 유치원에 데리러 오던 엄마가 눈앞에서 차에 치여 죽었으니까요. 우리 애도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아-!”
안타까움에 위로의 말도 건네지 못했다.
“하하, 전 괜찮습니다.”
남자가 애써 웃어 보이려 한다. 그런데 인호의 눈에는 남자가 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정말 괜찮습니다. 언젠가 제게도 마음을 열어 주겠죠.”
신호가 바뀌고 인호가 남자에게 인사한 후 횡단보도를 건넌다.
그때 노란색 유치원 차가 남자 앞에 멈춘다. 횡단보도의 중간쯤에 멈춰 선 인호가 몸을 돌린다.
남자는 자세를 낮춰 여자아이와 눈을 맞추고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는 남자의 시선을 피하는 듯 보였다.
띠리리- 띠리리-
신호음이 울리며 어서 빨리 건너라며 그를 재촉했다.
* * *
인호와 정재훈, 유 형사가 둥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망령에게 전화를 받고 열흘이 지났지만,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정재훈이 잔을 채워주자 인호가 단숨에 비운다. 인호가 정재훈의 잔을 채워주니 그 역시 단숨에 비운다.
“안주들 좀 드세요. 그러다 속 버리세요.”
유 형사가 잘 익은 삼겹살을 두 사람 앞에 놓아주지만. 누구도 먹을 생각을 하질 않는다.
주문한 삼겹살은 모두 익은 고기가 되었지만 양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다른 민주들은 다 만나봤어?”
“만나보긴 했어요. 그런데 일이 쉽지가 않네요. 뭔가 사건이 벌어진 것도 아니라 아이를 만나게 해달라고 강요를 할 수도 없어요. 부탁을 하는 정도인데 몇몇 부모는 거부하더라고요. 이해는 되는 게 갑자기 형사가 찾아와 어린 자식 만나게 해 달라면 제가 부모라도 싫겠더라고요.”
인호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이웃들을 통해 조심스럽게 알아봤는데 정말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어요. 가정 폭력 당한 아이는 없는 것 같아요.”
유 형사가 답답하다는 듯 소주를 마신다.
“그런데 이상한 아이가 한 명 있기는 해요.”
“누구?”
“그게 누굽니까?”
인호와 정재훈이 동시에 유 형사를 바라본다.
“얼마 전에 엄마가 죽은 아이예요. 가서 만나 봤는데 이상하게 절 슬금슬금 피하더라고요. 전문가 선생님이 가정 폭력은 아니라고 하셨어요.”
인호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 아빠라는 사람 키 170 정도 되고 머리 덥수룩하고, 두꺼운 뿔테 안경 꼈어?”
“어? 어떻게 아셨어요?”
“몇 번 봤거든.”
“혹시 그 사람이?”
유 형사의 물음에 인호가 고개를 흔든다. 자신이 본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때릴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아이를 걱정하고 있었다.
물론 인호가 사람을 잘못 봤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횡단보도에서 보았던 아버지의 눈빛은 딸을 정말 사랑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조금 더 알아볼까요?”
“그래. 그렇게 해. 대신 조심스럽게 조사해.”
* * *
“소장님. 커피 드세요.”
119 안전센터의 직원이 커피 한 잔을 건넨다. 직원 휴게실 겸 흡연실이었다. 매일 얼굴을 맞대었더니 이제 제법 친해졌다.
남직원 한 명과 여직원 두 명이 인호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다.
“오늘도 전화가 올까요?”
“매일 왔으니 오늘도 오겠지.”
“처음에는 그 전화 받으면 엄청 무서웠는데 이제 조금 불쌍해요. 죽은 엄마가 딸이 얼마나 걱정이 되었으면 119에 전화를 다 했을까요?”
인호의 귀에 ‘죽은 엄마’라는 말이 비수처럼 꽂힌다. 그리고 들려오는 다른 직원의 말에 인호의 몸이 부르르 떨린다.
“그런데 그 ‘유’라는 글자가 꼭 사는 집을 말하는 걸까? 여섯 살 아이, 그리고 유. 그러면 유치원이 떠오르지 않아?”
콰당-
인호가 벌떡 일어서자 의자가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힌다.
“유치원!”
인호가 그 말을 크게 외치고는 휴게실에서 달려 나간다.
* * *
헉- 헉-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인호는 그래도 계속해서 달렸다. 목적지가 가까워져 온다. 저 멀리 노란 승합차가 멈추는 게 보인다. 인호는 다리를 더 빨리 움직인다.
승합차가 곧 출발한다. 달려가는 인호와 승합차가 점점 가까워진다. 혹시나 해서 승합차 안을 살피려 고개를 돌린다. 그때 운전석에 앉은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승합차는 곧 인호를 지나쳐간다.
다행히 아이, 민주는 횡단보도 앞에서 내렸다. 오늘도 민주 아버지는 자세를 낮춘 채 민주와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헉-, 헉-.”
민주의 아버지인 정찬혁이 의아한 눈으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인호를 바라본다.
“헉-. 민주- 아버님?”
“우리 민주 아세요? 아-, 그쪽 분도 형사님이세요?”
인호가 고개를 흔든다.
“형사는 아니고요. 괜찮으시면 저하고 잠시 대화 나누실까요?”
“왜 그러시는지 몰라도 거절하겠습니다. 딸하고 집에 가야 해서요.”
“따님. 민주와 관련된 이야깁니다.”
정찬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인호는 정찬혁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아이, 정민주와 눈을 맞춘다.
“안녕, 민주야.”
정민주가 인호의 시선을 피한다.
“아저씨 이상한 사람 아니야. 민주 엄마하고 아주 잘 아는 아저씨야.”
정찬혁이 뭐라고 이야기를 하려 할 때 인호가 손을 뻗어 제지한다. 그리고는 최대한 밝게 웃으며 말한다.
“민주 엄마가 매일 전화하시거든. 우리 민주 지켜달라고. 이 아저씨가 우리 민주 지켜 줄 테니까.”
정민주가 인호를 힐끔 바라본다. 정찬혁이 깜짝 놀란다. 자신과도 눈을 맞추지 않는 딸이 인호를 바라본 것이다.
“아저씨한테 말해 줄래?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민주의 커다란 눈이 물기로 가득하다. 정민주는 정찬혁의 다리를 잡고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으앙-. 민주는 착한 아이야. 착한 아이는 말 잘 들어. 으앙-!”
* * *
“검사님.”
“네, 말씀하세요.”
“저한테 딱 1분만 주실 수 있습니까?”
“하아-. 이러면 안 되는데…… 딱 10초로 하시죠. 그 정도면 충분하잖아요. 10초 정도는 근처에 있는 CCTV가 오작동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차가 멈춰 선다. 승합차에서 유 형사를 선두로 두 명의 형사가 내린다. 인호와 정재훈도 차에서 내린다.
“저기 맞는 것 같네요.”
“어떻게 그런 개자식이 유치원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겁니까?”
“조사를 해 보니 유치원 원장의 동생이더군요.”
“아무리 자기 동생이라도 소아성범죄자를 유치원에서 일하게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 원장도 처벌받게 될 겁니다.”
정민주는 어머니가 죽은 후 유치원에서 계속 성폭행을 당하고 있었다.
범인은 바로…….
“야, 이 개새끼야!”
인호가 달려 유 형사에게 끌려 나오는 남자에게 달려든다.
빠각-
남자의 몸이 붕 떠 분리수거함에 부딪힌 후 쓰러진다.
“니가 사람이야!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런 짓을 할 수 있어!”
바닥을 뒹구는 범인은 바로 유치원 승합차를 운전하던 기사였다. 인호가 다시 달려들려고 하자 형사들이 뜯어말린다. 유 형사가 황급히 범인을 데리고 간다.
“민주의 어머니가 죽은 후 나쁜 마음을 먹은 것 같습니다. 보통 아이들이 엄마들에게 모든 다 이야기하잖아요. 민주에게 들어줄 엄마가 없어져 버렸다고 생각한 거죠. 가시죠.”
인호가 고개를 흔든다.
“아니요. 혼자 좀 걸을게요. 먼저 가세요.”
정재훈이 떠나가고 혼자 남게 된 인호가 몸을 돌려 걷는다. 정신없이 걷다 보니 정민주가 다니던 유치원 앞이었다. 길 건너 유치원 앞에 푸른 기운이 일렁인다.
원피스를 입은 여자 망령이다. 여자 망령은 건너편에 있는 인호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한다. 인호도 고개를 숙인다.
“민주 어머니. 이제 편히 쉬세요. 빨리 해결하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