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96화 (96/190)

제96화

119 안전센터.

“네. 119 안전센터입니다.”

- 딸이…….

“네? 목소리가 잘 안 들리거든요.

- 딸이 아…….”

안전센터 직원이 눈을 감고 상대의 말에 집중한다.

- 딸이 아파요. 도와주세요.

* * *

“안녕하세요.”

“민성이, 설아도 안녕. 설아 유치원 가는구나.”

“네, 안녕하세요.”

유설아가 배에 손을 얹고 꾸벅 인사한다. 그 모습이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민성이가 동생 바래다주는 거야?”

“네. 설아 유치원 보내고 학교 가려고요.”

확실히 유민성은 나이답지 않게 의젓했다. 유재성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분명 건물 주위 청소를 하고 있을 것이다.

건물 관리를 그에게 맡긴 건 참 잘한 선택이었다. 유재성은 도박중독자였던 과거를 반성하기라도 하듯 정말 열심히 살고 있었다.

아이들과 헤어져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다. 사무실 안 풍경은 복사해 붙여놓은 것처럼 항상 똑같았다.

이민정은 모니터를 보고 있고 사기꾼은 소파에 앉은 뚱보를 괴롭히고 있다. 영감은 고개만 내밀고 밖을 쳐다보고 있다.

“소장님 오셨어요. 좋은 아침이에요.”

“좋은 아침.”

이민정이 커피를 타 인호 앞에 내려놓는다.

“관리인 정말 잘 뽑은 것 같아요.”

“갑자기?”

“화장실이 정말 깨끗해요. 남자가 여자 화장실 청소한다는 게 처음에는 조금 그랬는데 배려해 주신다고 저 출근하기 전에 일찍 청소해 주시더라고요.”

“고마운 거 알면 간식거리라도 사드리고 그래.”

“안 그래도 어제도 민성이, 설아 떡볶이 사줬어요.”

“잘했네.”

인호가 언제나 그랬듯 이민정이 타 준 모닝커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일과의 시작이라고 해 봐야 휴대폰으로 이런저런 검색을 하는 것이다.

커피를 다 마셔갈 무렵 이민정이 말한다.

“소장님. 이거 좀 보세요.”

“뭔데 그래?”

“제목이 일단 장난 전화에요.”

“그걸 왜 보여줘?”

“앞에 ‘귀신’이 붙었으니까요. 귀신 장난 전화.”

그제야 인호의 흥미를 잡아끈다. 이민정이 보여 준 것은 괴담 카페였다.

- 119 안전센터에 근무하는 사람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들려드리는 이야기는 100% 사실입니다. 보름 전쯤부터 센터에 이상한 전화가 걸려 왔어요. 딸이 아프니 도와 달라고. 사정이 어떤지 알아보려고 이런저런 질문을 해도 딸이 아프고, 도와달라는 말만 할 뿐이었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전화를 건 상대의 번호가 뜨지 않는다는 거예요. 전화를 건 사람의 위치를 추적해 보려고 해도 추적불가. 나만 겪었으면 망상이라고 해도 되는데 저 말고도 몇 명이나 같은 경험을 했어요.

“정말 귀신의 장난 전화일까요?”

“흐음-.”

게시글이 사실이라면 단순히 안전센터의 직원들을 놀리기 위한 장난 전화라고 치부할 수 없었다.

“소울 크라이라고 알아?”

“영혼 외침?”

“맞아. 영혼의 외침. 외국에는 영혼들이 위험을 경고한 여러 사례들이 있어. 물론 우리나라도 그렇고. 조금 알아봐야겠네.”

인호가 곧 정재훈에게 전화하고 약속을 잡는다.

* * *

“인호 씨 말이 사실이었네요.”

정재훈이 인호의 맞은편에 앉는다.

“오늘 해당 지역 119 안전센터에 직접 연락해 직원분들과 통화해 봤습니다. 거의 모든 직원들이 같은 일을 겪었다고 하더라고요.”

“특이 사항이 있나요?”

“괴담 카페에 올린 내용이 전부입니다. 항상 일정한 시간대에 전화가 오고 발신 제한인지 번호가 뜨지 않고, 마지막으로 전화를 건 곳의 신호를 잡을 수 없다고 하네요.”

인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재훈이 말을 잇는다.

“인호 씨 오는 동안 비슷한 사례가 없나 조사를 해 봤어요. 우리나라에는 없고 일본에 유사한 사례가 있었네요.”

일본 혼슈 중부 아이치현의 119 센터에 구조를 요청하는 여자의 전화가 지속적으로 걸려왔다. 하지만 번호도 신호의 위치도 잡히지 않아 장난 전화로 치부했다.

전화는 계속 왔고 이상함을 느낀 센터장이 전화를 건 이와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상대는 계속해서 도와달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센터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상대에게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 자신이 있는 곳을 알 수 있는 특징을 짧게 설명해 달라고 했다.

정성이 통한 것인지 상대가 정확히 한 글자를 더 말했다고 한다.

- 井.

한국에서는 ‘정’, 일본에서는 ‘이’라고 발음하는 글자였다. 뜻은 ‘우물’이었다.

센터장은 자신의 담당 구역 내에 우물이 있는 곳을 파악해 보았다. 결국 그곳이 어디인지 찾게 된다. 하지만 그곳은 몇 년 전 주민들 전체가 타 지역으로 이주하며 아무도 살지 않은 유령 마을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방대원들에게 협조를 구해 그 마을을 조사했고 결국 폐가 안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 남자의 곁에는 연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누워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녀는 이미 죽음을 맞이한 후였다. 남자가 구조된 폐가 앞에는 아주 오래되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작동되지 않는 공중전화가 한 대 있었다고 한다.

“이것도 유사한 일일까요?”

“아직은 모르죠. 혹시 제가 119 안전센터에 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부탁드리려고 했습니다.”

* * *

119 안전센터.

인호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센터 안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다. 센터 직원들은 바쁘게 전화를 받고 있었다. 119에 이렇게 전화가 많이 오는 줄 몰랐다.

장난 전화부터 긴급한 사고 전화까지.

사고 전화의 경우는 전화를 건 신고자와 출동하는 소방대원들 간의 연락을 유지하며 긴박한 상황을 연출했다.

“참 바쁘네요.”

“그렇죠. 저희가 바쁘지 않은 것이 베스트인데 유감스럽게도 매일 이렇게 바쁘네요.”

119 안전센터가 바쁘다는 말은 그만큼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센터장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확인한다.

오후 9시가 지나가는 무렵이다. 항상 이맘때 즈음 전화가 온다고 했다.

“119 안전센터입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이 벌떡 일어나 몸을 돌린다. 직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다. 기다리던 그 전화가 온 것이리라.

인호가 달려가서 직원을 대신해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 딸이…… 아파요. 도와주세요.

인호의 눈이 파랗게 빛난다. 인호의 손에서 시작된 푸른 기운이 전화기로 흘러 들어간다.

“나는 전화 거신 분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도와줄 수 있도록 정보를 주셔야 해요. 도움이 필요한 딸 이름이 뭐죠?”

- 민- 주.

“민주요. 예쁜 이름이네요. 나이는요?”

- 여섯 살.

“여섯 살 민주군요.”

센터장이 옆의 직원에게 눈치를 주자 바로 필기를 시작한다.

“혹시 민주가 있는 곳을 알 수 있을까요?”

- 딸이 아파요. 도와주세요. 민주. 여섯 살. 유…….

인호가 한숨을 토해낸다.

“왜 그러십니까? 전화가 끊겼습니까?”

“네.”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음성은 분명 살아 있는 사람의 음성이 아니었다. 망령의 음성이었다. 그런데 사는 곳을 말하려 할 때 망령의 기운이 희미해지더니 사라졌다.

“마지막에 ‘유’라고 했죠?”

“네. 그런 것 같네요.”

센터 내의 모든 직원들이 인호가 망령과 통화하는 내용을 들었다.

자신들이 통화를 할 때는 항상 도와 달라는 말만 하고 끊었는데 오늘은 딸의 이름과 나이까지 말했다.

“자-, 모두 들었지? 관내에 여섯 살 여아, 이름은 민주, 사는 곳은 ‘유’로 시작한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합니까?”

센터장이 씨익 웃고는 직원들에게 큰 소리로 외친다.

“발로 뛰어!”

* * *

인호는 사흘 동안 안전센터에 상주하며 망령과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첫날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오늘은 정재훈도 센터에 와 있었다.

“흐음-. 영혼이 전화를 건 거라고요?”

인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재훈이 말한다.

“이곳 센터에서 관리하는 지역 내에 민주라는 이름을 가진 여섯 살 여자아이는 모두 스물두 명입니다.”

아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하필이면 흔한 이름이다.

“그중 사는 곳이 ‘유’로 시작하는 아이는 모두 여섯 명입니다. 유성 아파트에 두 명, 유한 맨션에 한 명, 유정 탑 힐스에 한 명……. 하지만 아쉽게도 그 아이들 중 아픈 아이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119는 119대로 정재훈은 경찰을 동원해 알아보는 중이다.

“꼭 몸이 아픈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인호의 말에 정재훈이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내일부터는 아동 심리 전문가도 동행하라고 지시를 내려 두겠습니다.”

그때 센터로 전화가 온다. 인호가 반사적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 21 : 27

직원이 고개를 돌려 인호를 바라본다.

인호가 달려가 전화를 받는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 딸이 아파요. 도와주세요.

“민주가 많이 아픈가요? 우리 민주가 어디 사는지 자세히 알려 주셔야 해요. 그래야 민주를 도울 수 있어요.”

- 민주가 아파요. 도와주세요. 나쁜…….

망령의 기운이 희미해진다.

정재훈이 인호의 곁으로 다가온다.

“분명 마지막에 ‘나쁜’이라고 했죠?”

“네.”

“혹시…….”

인호가 이를 꽉 깨문다. 인호와 정재훈이 서로를 바라보며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한다.

“가정 폭력.”

* * *

“민주는 오늘 뭐 하고 놀았어?”

“유치원에서 친구들하고 인형 놀이 했어요.”

“오, 그렇구나. 민주는 어떤 인형 좋아해?”

“곰인형 좋아해요.”

“곰인형이 왜 좋을까?”

아동 심리 전문가의 질문에 민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춘다.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빠 곰은 뚱뚱해…….”

전문가가 뒤를 보며 고개를 흔든다.

“이 아이는 아빠를 굉장히 좋아해요. 학대와는 거리가 멀어요.”

인호와 정재훈이 집 밖으로 나간다.

아이의 아빠는 1층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검찰에서 요청을 하니 협조하긴 하지만 무슨 일인지 말씀은 해 주셔야죠.”

“죄송합니다. 별일 아니었습니다. 따님이 아버님을 아주 많이 사랑하던데…… 예쁜 따님을 두셔서 부럽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환하게 웃는다.

“우리 민주가 예쁘긴 하죠. 하하하.”

전형적인 딸바보 아빠의 미소다.

남자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 정재훈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토해낸다.

“마지막 아이였습니다. 어떻게 하죠?”

인호도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전화를 기다려야죠.”

* * *

딱히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망령은 항상 같은 말만 할 뿐이다. 정재훈은 ‘유’로 시작하는 거주지에 사는 민주들 말고도 다른 민주들에 대해 알아보는 중이다.

인호가 망령과 전화 통화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이민정과 점심을 먹은 후 사무실을 나선다. 망령의 전화에 대한 실마리를 잡지 못해 답답한 마음에 거리를 거닌다.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거리였다.

망령의 전화가 온 119 안전센터의 관할 구역이었다.

커피전문점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아웃한다. 조금 오래 걸었더니 갈증이 난 것이다.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차도 위에 노란 승합차들이 자주 보인다. 어린이집, 유치원 차량들이다. 걸음을 옮기던 인호가 횡단보도 앞에 선다. 횡단보도를 건너 다시 사무실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무의식중에 옆을 바라보니 한 남자가 누군갈 기다리는지 서 있었다.

신호가 바뀌고 인호가 횡단보도를 건넌다.

그때 남자의 앞에 노란 승합차가 와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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