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94화 (94/190)
  • 제94화

    “으으으으-.”

    기지개를 쭉 켠 김은주가 앞치마를 벗는다.

    “사장님. 그만 갈게요.”

    “그래. 수고했어. 아참, 그리고 이건 아까 손님이 은주 너 열심히 일한다고 팁 주고 간 거다.”

    사장이 2만 원을 건네준다.

    “감사합니다.”

    식당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가끔 이렇게 팁을 주는 손님들이 있었다.

    “내일은 주말이니까 두 시간 더 해 줄 수 있을까?”

    “저야 감사하죠.”

    돈을 벌어야 한다.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했다. 그것만이 자신과 어머니가 악마 같은 사채업자들에게 안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가게를 나서 걸음을 옮긴다. 어깨에 곰 두 무리가 올라타 있는 것 같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조금 떨어진 곳에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때마침 타야 할 버스가 한 정거장 뒤에 있었다. 1분만 기다리면 버스가 올 것이다. 그걸 타면 편하게 갈 수 있다.

    “에이, 김은주. 흔들리지 마.”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정류장의 유혹을 뿌리친다. 걸음을 옮기다 잠시 걸음을 멈춘다.

    “예쁘다.”

    로드샵 쇼윈도에 진열된 옷을 잠시 구경한다. 그러다 유리창에 비친 반대편 거리를 본 김은주가 피식 웃는다.

    “오늘도 있네.”

    일주일 전 공원에서 자신을 구해 준 남자가 오늘도 도로 반대편 길에 보였다.

    그날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는다. 아르바이트하는 곳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에헴, 내가 좀 예쁘긴 하지.”

    직장에서도, 아르바이트하는 식당에서도 여러 번 고백을 받았었다.

    “내 주제에 연애는 개뿔.”

    다시 걸음을 옮긴다. 반대편 남자는 또 따라온다. 그래도 나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상대가 스토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하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저 느낌이기는 하지만 자신에게 나쁜 짓을 할 것 같지 않았다.

    실제로 저 남자가 자신을 도와준 이후로 사채업자들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도 잘 부탁해요.”

    * * *

    “도와주세요.”

    김은주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인호의 앞에 선다.

    “네?”

    “제발 도와주세요. 엄마가 어제 들어오지 않으셨어요.”

    “아-!”

    인호가 안타까운 탄식을 토해낸다.

    “바보 같았네.”

    “네?”

    “아니에요.”

    어째서 아귀의 표적이 김은주만 일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귀의 표적이 될만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지 않았던가.

    “평소에 집에 안 들어오고 그러신 적 없으시죠?”

    “네. 처음이에요.”

    “언제부터 연락이 안 된 겁니까?”

    “엄마 저녁 일 하시는 설렁탕집에서 어제 퇴근하신 이후에요.”

    인호가 따라오라는 듯 고개를 까딱인다.

    “여보세요. 검사님, 접니다.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어서요.”

    인호가 김은주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설명했다.

    “어머니 일하시던 곳이 어디라고요?”

    김은주의 말을 듣고 정재훈에게 전해준다.

    “퇴근 시간이 밤 열한 시라고 하네요. 네, 그곳에서 집까지 이동 루트에 있는 CCTV 조사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정재훈은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했다.

    정황상 납치가 분명하니 정재훈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다.

    “타세요.”

    차에 김은주를 태운 후 그녀의 어머니가 일하는 가게로 향한다. 그리고 집까지의 이동 루트를 따라 천천히 이동한다.

    끼익-

    인호가 길가에 차를 세운 후 내린다. 김은주가 따라 내리려 하자 인호가 괜찮다는 듯 손을 뻗는다.

    “거기.”

    “…… 네?”

    화단 근처에 몸을 숨기고 있던 망령 한 명이 슬그머니 머리를 든다.

    “나 누군지 알지?”

    “네. 잘 알죠. 그 옆에 있는 망령들도 잘 알고요.”

    “오랜만이야.”

    사기꾼이 히죽 웃으며 손을 흔든다. 하지만 망령의 눈은 인호의 옆에 서 있는 뚱보에게 고정되어 있다. 저승에 가지 않고 이승을 떠도는 망령이다 보니 저승사자를 무서워하는 듯 보였다.

    “뚱보 차에 타 있어.”

    “응.”

    “물어볼 게 있어. 어제 저녁 11시 조금 넘을 무렵 이 근처에 있었어?”

    망령이 고개를 끄덕인다. 인호가 휴대폰을 꺼내 김은주가 보내 준 어머니 사진을 망령에게 보여준다.

    “이 아주머니 알아?”

    “가끔 보지.”

    “어제는?”

    “글쎄. 어제는 못 본 것 같아. 아니, 못 봤어. 그래도 내가 여기 제법 오래 있어서 자주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은 다 알 거든. 어제는 분명히 안 지나갔어.”

    인호가 몸을 돌려 차에 올라타 정재훈에게 전화한다.

    “검사님. 조사 범위가 좁혀질 것 같습니다.”

    망령과 만난 장소를 알려 준 후 가게와 그곳 사이에 있는 CCTV만 조사하라는 말을 전한 후 전화를 끊었다. 김은주가 인호를 빤히 쳐다본다.

    “왜 그렇게 봐요?”

    “차에서 내리더니 갑자기 이러시니까요. 엄마가 이곳을 지나가지 않은 걸 어떻게 아셨어요?”

    “초능력입니다.”

    “네?”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니 그냥 초능력이라고 알고 있으세요.”

    30분 정도가 지난 후 정재훈에게 전화가 왔다.

    - 28 로 4996 검은색 아우디 차량입니다. 대포차고요. 인호 씨 말 듣고 따로 조사를 해 봤습니다. 인호 씨가 그분 도와주셨다는 날 공원 인근에 그 차량이 정차해 있었습니다.

    일단 아귀의 차를 찾은 것 같다.

    - 그런데 조금 곤란하게 됐어요.

    “네? 곤란하다니요?”

    - 그 자식 목적지가 가리봉동이에요.

    “흐음, 정말 곤란하게 됐네요.”

    인호가 전화를 끊는다.

    “왜 그러세요?”

    “가리봉동이라네요.”

    “가리봉동이 왜요?”

    “조금 되긴 했는데 범XX시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보셨어요?”

    “형사 영화요?”

    “네. 그 형사 영화 배경이 되는 곳이 가리봉동이에요. 중국계 조선족들이 엄청 많이 살죠.”

    “아-. 그러면 찾기 어려운가요?”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주택 밀집 지역이에요. 그리고 조선족들이 범죄를 은닉하려고 설치되어 있는 CCTV를 파손하거든요. 멀쩡히 돌아가는 CCTV가 많지 않아요. 자칫 조선족 폭력조직과 마찰이 있을 수도 있고요.”

    인호가 차 방향을 튼다.

    “은주 씨는 집으로…… 아니, 오늘 하루는 다른 곳에 가서 자야겠네요. 저희 직원이 근처에 살아요. 참고로 저 나쁜 사람 아니고요.”

    “알아요.”

    인호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김은주가 희미하게 웃는다.

    “좋으신 분인 것 알아요. 검사님도 알고 계신 분이고. 직원분 집에 데려다주세요. 그런데 민폐가 되지 않을까요?”

    “전혀 아닐 거예요. 오히려 좋아할걸요.”

    * * *

    김은주를 이민정의 집에 데려다주고 곧장 가리봉동으로 출발했다.

    “자-, 이제 일 시작하자. 뭘 찾아야 하는지 알지?”

    똥보가 영체화하고 사기꾼과 함께 사라진다.

    “영감님. 잘 좀 해주세요.”

    “내 걱정을 다 하네?”

    “하하, 그러게요.”

    영감이 웃으며 사라진다.

    - 인호 씨. 그 차가 마지막으로 찍힌 곳 위치 찍어드릴게요. 두 블록 다음에나 작동되는 CCTV가 있는데 그곳에는 찍히지 않았어요.

    사라진 곳부터 정상 작동하는 곳까지 두 블록을 모두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집의 수만 해도 수백 채가 넘어간다.

    그래서 인호가 내린 결론은 일단 사람이 아닌 차를 찾는 것이다.

    사기꾼과 뚱보가 사라진 이유가 차를 찾기 위해서였다. 영감은 주변에 망령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정보를 얻으러 갔다.

    인호가 주변을 훑어보고 걸음을 옮긴다. 크지 않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이다.

    간혹 CCTV가 보이긴 했지만, 이미 저것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정재훈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저 CCTV를 믿고 늦은 밤 이곳을 지날 사람들을 생각하니 한숨만 나온다. 골목 이곳저곳을 누벼보지만 차는 찾을 수 없었다.

    김은주를 통해 알게 된 번호로 어머니에게 전화해 보았지만 전원이 꺼져 있다는 음성만 들릴 뿐이다.

    “어디에 있냐?”

    돈을 받는 것이 목적일 테니 바로 죽이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이곳 가리봉동은 사람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온갖 범죄들로 가득한 곳이니 말이다.

    갑자기 든 생각에 인호가 땡초에게 전화한다.

    - 여보세요.

    “형. 혹시 가리봉동 쪽에 아는 사람 없어요?”

    - 갑자기 가리봉동은 왜? 거기 살벌한 동넨데.

    “알죠. 그런데 그놈이 여기로 온 것 같아요.”

    - 흐음, 숨을 곳을 찾는 거라면 잘 찾았네. 거기 중국 애들 무서워서 웬만한 담력 가진 놈 아니면 쉽게 못 들어가거든. 일단 아는 사람이 있긴 해. 독사라고 예전에 내가 돈 받아야 할 놈이 그쪽으로 숨으면 찾아 주던 사람이거든. 그쪽에 발도 넓고 해서 도움이 될 거야.

    * * *

    “그쪽이 정 사장이오?”

    “네. 정인호라고 합니다.”

    “독사라고 부르쇼. 사람을 찾는다고?”

    “네. 이름은 모르고 아귀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인호가 아귀의 생김새와 그가 탄 차에 대해 설명한다.

    “눈까리가 특이하게 생겼다? 일단 주택가로 숨었으면 찾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오.”

    인호가 손가락 하나를 편다.

    “천만 원 드리죠.”

    “2천 주시오. 아무래도 부리는 애들 용돈도 찔러줘야 하고 2천 받아봐야 남는 것도 없소.”

    “알겠습니다. 2천 드리죠.”

    “이리 이체해 주시면 되오. 입금되는 데로 바로 일 시작하겠소.”

    독사가 건넨 계좌번호에 2천만 원을 이체하자 그가 여기저기 전화를 건다.

    “얼마 안 걸릴 거요. 자랑 같지만 이 동네는 이 안에 있거든.”

    독사가 웃으며 손바닥을 편다.

    “번호 하나 남겨 놓고 가시오. 바로 연락드릴 테니.”

    사무실에서 나와 1층으로 내려간다. 1층은 독사가 경영하는 양꼬치 가게다.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한데 인호가 내려오자 일제히 고개를 돌려 쳐다본다.

    “야야, 먹던 거 마저 먹으라. 바로 일해야 하니 술은 먹지 말라. 알겠니?”

    인호에게 향했던 시선이 독사에게로 옮겨간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꾸벅 고개를 숙인 후 음식을 먹는다.

    밖으로 나온 인호는 아귀가 사라졌다는 곳으로 이동한다.

    “찾았어?”

    다가오는 사기꾼과 뚱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안 보이네. 벌써 다른 곳으로 갔을 수도 있어.”

    “이 동네 망령들이 엄청 많아.”

    뚱보가 몸서리친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지. 그나저나 저승사자들은 그런 망령들 보이면 다 끌고 가야 하는 거 아니냐?”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하루에 할당된 양만 처리하려고 해도 허리가 휜대.”

    “너는? 바빠 보이기는커녕 엄청 한가해 보이는데?”

    “나는 특수한 경우지. 부장님께서 인호 니 옆에 딱 붙어 있으래.”

    사기꾼이 뚱보의 허리를 폭폭 찌른다.

    “아이쿠, 이 지방질로 가득한 허리가 휘려면 얼마나 일을 빡세게 해야 하는 거야?”

    “하지 마라.”

    “해쥐 뭬라.”

    “우쒸-!”

    사기꾼과 뚱보가 투닥거리고 있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독사의 음성이 들린다.

    - 정 사장이오? 하하, 찾은 것 같소.

    “벌써요?”

    독사를 만나고 온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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