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93화 (93/190)
  • 제93화

    김은주는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뒤를 쳐다보고 싶지 않지만, 자꾸 고개가 돌아간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히죽히죽 웃으며 따라오는 남자들이 보인다.

    그중 가운데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다리에 힘이 풀린다. 어떻게든 걸어보려 노력한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김은주가 걸음을 멈추자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크크, 왜? 더 가보지 그래. 조금만 더 가면 큰길로 나가겠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외쳐보지 그래.”

    “죄송합니다. 제가 어떻게든 돈은…….”

    “아니, 아니. 돈 필요 없어. 이제 다른 게 필요해졌거든.”

    김은주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남자의 눈은 꼭 뱀의 눈을 닮아 있었다.

    “내가 뭘 했다고 그렇게 벌벌 떨어? 야, 내가 무섭게 생겼냐?”

    “네? 아, 아닙니다.”

    남자의 질문에 옆에 있던 남자가 대답했다. 그 대답에 남자는 인상을 사납게 찌푸렸다.

    “씨발 하나도 신뢰가 안 생기잖아.”

    “죄송합니다.”

    남자가 김은주에게 다가온다. 어떻게든 뒤로 물러서려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마치 뱀 앞에 있는 쥐가 된 것 같다. 남자가 손을 뻗으려 할 때였다.

    “그만하지?”

    “…….”

    남자가 김은주의 뒤를 바라보고는 씨익 웃는다.

    “정의의 사도 납시셨습니다. 크크, 왜? 짠하고 나타나서 얘 구하고 알콩달콩 연애해 볼려고?”

    “연애를 하던 뭘 하던 니가 상관할 바는 아니고. 서로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그냥 가라.”

    “아이쿠, 네. 그래야죠. 정의의 사도가 납시셨는데 당연히 제가 죄송합니다하고 가야죠.”

    남자가 씨익 웃는다. 남자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들거린다.

    “이러면 되는 거냐?”

    인호가 김은주의 옆에 선다.

    “응. 그러면 되는 거야. 말귀를 잘 알아듣네.”

    “거참, 정말 씨발스럽네. 야, 정의의 사도. 너 그거 아냐? 영화 보면 꼭 여자 앞에서 나대는 놈들 결국 개같이 뚜드려 맞다가 훅 가는 거야.”

    “미안. 내가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러면 너는 그거 아냐? 가라고 할 때 안 가다가 결국 네발로 기어가는 거.”

    “그렇구나. 이제 조금 있으면 내가 기어가겠구나. 아유, 무서워라.”

    남자가 낄낄거린다.

    그때 인호의 눈에 푸른빛이 일렁인다.

    “뭘 믿고 그러는지 알겠다. 그런데 과연 그게 나한테도 통할까?”

    인호의 눈동자에 어린 푸른빛을 보는 순간 남자가 흠칫한다.

    인호는 남자를, 정확히는 그의 정수리 위에 떠 있는 둥근 검은 덩어리를 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덩어리와 남자 사이에 가느다란 선이 연결되어 있다.

    “자-, 기회는 끝났어. 이제는 가고 싶어도 못가.”

    “씨발. 누가 쫄 줄 알고? 야, 조져!”

    남자의 말에 그의 뒤에 서 있던 부하들이 일제히 인호를 향해 달려든다.

    퍽-

    가장 먼저 다가오는 이의 주먹을 흘린 후 턱에 주먹을 꽂는다. 남은 두 명도 인호의 주먹 한 방에 한 명씩 바닥에 눕는다.

    “하, 새끼. 빠르네.”

    세 명을 제압하는 동안 남자는 제법 멀리 도망가고 있었다.

    쫓기에는 늦었기에 인호가 입맛을 다신다. 설마하니 부하들에게 싸움을 시킨 후 곧장 도망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저어-, 감사합니다.”

    “아, 네.”

    인호가 몸을 돌리니 낯빛이 창백하게 변한 김은주가 고개 숙이고 있었다.

    “일단 가시죠. 사람들 많은 곳까지 함께 가 드릴게요. 참고로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보통 이상한 사람이…… 아, 아니에요.”

    인호는 김은주를 공원 밖 대로변까지 데려다준다.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실 수 있으시죠?”

    “네. 정말 감사해요.”

    김은주가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난다. 인호가 옆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망령에게 묻는다.

    “사연을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 * *

    사연은 이러했다.

    망령, 김명호의 아버지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아버지는 나이도 있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한사코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아버지를 떠나보낼 수 없었던 김명호는 고심 끝에 수술하는 쪽으로 결심했다.

    하지만 집을 사며 대출을 최대치까지 받은 상태였기에 추가 대출이 어려웠다.

    다행히 딸인 김은주가 직장에 다니고 있어 수술비는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아버지의 수술이 끝난 후였다. 입원비며 치료비가 상당했다. 아버지의 보험을 들지 못한 것을 후회했지만 뒤늦은 후회일 뿐이었다.

    중환자실의 하루 입원비가 15만 원, 거기에 수액을 비롯한 투약 비용까지 하면 하루 20만 원이 웃도는 큰 금액이었다.

    형편이 좋지 못한 김명호 가정에 한 달에 6백만 원이라는 돈은 감당하기 힘든 큰 금액이었다.

    아버지는 2년을 투병한 후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김명호와 아내, 딸 김은주가 버는 돈 모두를 병원비로 사용했다. 그러고도 2년 동안 빚진 돈이 6천만 원이 넘었다. 더 이상 대출이 힘든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사채를 빌려야 했다.

    “알겠지만 사채빚이라는 것이 눈덩이처럼 금방 불어나지 않나.”

    “알면서 사채는 왜 쓰셨어요?”

    “그렇다고 아버지를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않나.”

    “할아버지라도 수술받고 치료받으시면서 마음이 편하셨을까요? 당신 때문에 아들 가족이 모두 힘들 걸 아셨을 텐데요.”

    “후회는 없어.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

    인호가 한숨을 토해낸다. 자신이 똑같은 상황이었어도 김명호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았다.

    물론 자신은 어떻게 손도 써보지 못하고 아버지를 보내 드렸지만 말이다.

    “그래서 빚이 얼만데요?”

    “나도 정확히 몰라. 계속해서 금액이 불어나고 있을 거야. 애 엄마하고 우리 은주가 정말 많이 힘들 거야.”

    김명호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안 도와줄 것처럼 하더니 갑자기 왜 도와준 건가? 혹시 그 사채업자 머리 위에 있는 이상한 것 때문에 그런 건가?”

    “네, 맞아요.”

    “그게 뭔가? 굉장히 불길한 느낌이던데.”

    “기생령이요.”

    “기생령?”

    기생령이란 복살령, 즉 태어나지 못하고 엄마의 뱃속에서 죽은 망령이나 동물의 망령이 사람의 몸에 들러붙은 것을 부르는 이름이다.

    기생령의 경우 대부분 선악의 구분이 없다. 특히 복살령이 기생령이 된 경우 빌붙은 이의 성향에 따라 악령이 될지가 결정된다.

    조금 전 보았던 사채업자의 경우 기생령이 들러붙어 보통 사람에 비해 힘이 강해졌을 것이다.

    그렇게 강해진 힘으로 지속적으로 악행을 일삼고 있기에 기생령이 악령이 되어 버린 것이다.

    기생령이 붉은빛이 아닌 검은 빛을 띠는 이유는 기생령 자체가 악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죽어 망령이 되었지만 무서운 일이군. 그런 무서운 놈이 우리 은주를 노리고 있다니. 우리 은주를 도와주면 안 되겠나?”

    인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피식 웃는다.

    “말했잖아요. 이유가 생겼다고.”

    * * *

    “아귀?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인데? 내가 은퇴한 후에 활동 시작한 놈이겠지.”

    땡초는 한때 명동 사채 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그리고 여전히 사채 판에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었다. 유명한 사채업자들이 땡초와 이래저래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땡초가 모른다니 그의 말대로 사채 판에 들어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것이다.

    “곤란하네요.”

    김명호가 돈을 빌리기 위해 갔던 아귀의 사채 사무실은 다른 곳으로 옮긴 후였다.

    “한번 알아봐 줄까?”

    “그래 주면 고맙죠.”

    “잠시만. 그 정도야 전화 몇 통 돌리면 끝나지.”

    땡초가 전화를 건다.

    “오랜만이다. 혹시 아귀라는 놈 아냐? 모른다고? 어, 알았어.”

    몇 군데 전화할 때까지 아귀라는 사채업자에 대해 아는 이들이 없자 땡초가 인상을 찌푸린다.

    “뭐 하는 녀석이지? 보통 동종업계 사람들끼리 친분도 다지고 하거든. 정보공유도 하고 말이야. 잠시만 마지막으로 한 군데만 더 전화해 보자.”

    땡초가 휴대폰을 두 손으로 쥔 채 공손하게 전화한다.

    “네, 형님. 오랜만입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혹시 아귀라는 놈 아십니까? 아-, 그렇습니까? 네, 형님.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형님.”

    “누군데 이렇게 공손해요?”

    “마귀 형님이라고 서울 사채 판에서는 일등이시지. 나도 처음에 이 형님 도움 많이 받았고. 그냥 살아있는 전설 같은 분이야.”

    “뭐 좋은 일 한다고 전설까지 찾아요.”

    땡초가 인상을 찌푸린다.

    “얌마. 사채도 엄연히 직업이야. 직업에 귀천이 없는 거라고.”

    “그 덕분에 악령들 주렁주렁 달고 사셨죠.”

    “그 얘긴 왜 또 하고 그래?”

    “그래서 그 전설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혹시 그놈 눈깔이 조금 이상하냐?”

    공원에서 만났던 아귀를 떠올린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파충류처럼 눈동자가 세로로 찢어졌어요.”

    “아, 그럼 맞네. 1년 전쯤인가 마귀 형님이 그놈하고 마찰이 있었나 봐. 마귀 형님 동생들이 여럿 다쳤고. 그래서 그 이후로 그놈 뒤를 캐고 계신 것 같아.”

    “어디 있는지 안대요?”

    “한곳에 계속 붙어 있는 놈이 아닌 것 같아. 사무실도 다른 놈이 운영하는 것 같다고 하네. 최근에 구로 쪽에서 봤다고 하더라.”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네요.”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이 될 것만 같다.

    * * *

    아귀를 찾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권력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정 검사에게 이야기해 공원 일대의 CCTV를 통해 아귀의 이동 루트를 알아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아귀의 정확한 범죄 행위를 알지 못했다. 법정 금리보다 높은 이자를 받았다는 것만으로 정재훈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었다.

    다음은 망령들에게 수소문하는 것인데 그것도 큰 성과를 보기 어려웠다.

    아귀가 보통 사람이라면 상관없지만 기생령을 통해 힘이 강해진 자다. 자칫 망령들이 그에게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다.

    결국 선택한 방법은 김은주의 주변을 맴돌며 아귀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정말 착실하다.”

    사기꾼의 말에 영감도 고개를 끄덕인다.

    뚱보는 커피전문점에서 함께 판매하는 조각 케이크를 세 개째 먹는 중이었다.

    “저러다 몸 축나는데.”

    영감의 말대로 김은주는 몸이 축날 정도로 힘들게 일하고 있었다. 회사를 마친 후 아르바이트까지 하고 있었다.

    김은주의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로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었다.

    “저렇게 죽기 살기로 벌어봐야 이자 내기도 힘들 텐데.”

    “사체의 무서운 점이 바로 그거죠. 짜고, 또 자고. 국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쥐어짠 다음에 최후의 선택을 강요하잖아요.”

    인호의 중얼거림에 영감이 씁씁한 표정을 짓는다.

    “요즘 젊은것들 사채 무서운 줄 모르고 돈 쓰다 결국 나쁜 길로 빠지잖아. 그런데 저 아가씨는 아니잖아. 할아버지 수술비, 병원비 때문이잖아. 아직 젊은 나이인데 자길 위해 뭔가를 해 보지도 모하고. 참 안쓰러워.”

    김은주의 아버지 김명호가 돈 많아 보이는 사람을 찾는 이유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

    자신의 선택 때문에 어려운 생활을 강요받은 딸이 돈 많은 남자를 만나 돈 걱정 없이 살길 바라는 것이리라.

    “나왔다.”

    맞은편 가게에서 김은주가 나왔다. 아르바이트가 끝난 것이다.

    “그만 좀 먹어라.”

    뚱보가 남은 케이크를 입에 욱여넣고는 히죽 웃는다. 입 주변에 하얀 생크림을 범벅하고 웃는 모습에 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고 만다.

    밖으로 나가 걸음을 옮긴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김은주와 나란히 걸었다.

    “집까지 세 정거장은 될 텐데 매일 이렇게 걸어 다니네.”

    “버스비라도 아껴보겠다는 거겠죠.”

    사기꾼의 말에 영감이 고개를 끄덕인다.

    며칠 동안 살펴본 김은주는 정말 돈을 잘 쓰지 않았다. 쓴다 해도 최소한일 뿐이었다. 젊은 여자라면 당연히 써야 할 돈도 쓰지 않고 있었다.

    “저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 보상받는 그런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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