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90화 (90/190)
  • 제90화

    흥신소 유정우를 통해 김정아의 부모가 이사 간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멀리도 이사 왔네.”

    사기꾼이 바다를 보며 말한다.

    “부산은 오랜만이네.”

    영감의 자식들이 제사를 지낼 때만 해도 일 년에 한 번은 꼭 부산에 방문했었다.

    “영감님 큰딸 음식 솜씨가 참 괜찮았는데. 그치?”

    “나는 안 먹어봐서 잘 모르겠다.”

    “아-, 그렇구나. 니가 제삿밥 먹을 처지는 아니지. 영감님도 같이 왔으면 좋잖아. 오랜만에 자식들 얼굴도 보고.”

    “그 얼굴이 보기 싫어서 안 온다고 한 거잖아.”

    제사를 모시는 것이 귀찮아하는 자식들을 보기 싫다며 영감은 함께 오지 않았다.

    “그런데 뚱보는 또 왜 끌려간 거야?”

    “명부의 일을 내가 어떻게 알아? 그리고 끌려간 게 아니라 비상소집이라잖아.”

    “저승사자하고 비상소집이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냐?”

    해운대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좋다! 역시 해수욕장은 해운대지. 이제 제법 바람이 차가운데도 사람들이 많은데? 인호야 저기 봐라. 이 날씨에 비키니도 있다.”

    “취향은 존중해 줘야 하는 거다.”

    인호가 휴대폰으로 유정우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한다.

    “다행히 먼 곳은 아니네.”

    김정아의 어머니가 일하는 곳이 해운대 해수욕장 인근이었다. 5분 정도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부산 갈매기. 가게 이름 매력적이네.”

    인호가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이른 시간임에도 회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 인호가 비어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혼자세요?”

    서빙을 하는 아주머니가 다가온다.

    “네, 혼자예요. 광어 작은 걸로 하나 주시고 소주 한 병 주세요.”

    “소주는 뭐로 드릴까요?”

    “부산 왔으니 부산 소주 마셔야죠. 대선 주세요. 아참, 잔은 두 개 주세요.”

    주문받은 아주머니가 멀어진다.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사기꾼이 묻는다.

    “저 아줌마야?”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밑반찬과 소주가 나오자 인호가 잔 두 개에 소주를 채운다.

    “건배.”

    잔을 들어 소주를 꿀꺽 삼킨다.

    “크으-.”

    횟집답게 밑반찬이 훌륭하다. 소주를 몇 잔 마시고 있을 때 주문했던 광어가 나온다. 광어를 안주 삼아 소주 두 병을 비웠다.

    한 병을 더 주문하려는데 일을 하던 김정아의 어머니가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퇴근 시간인 것 같았다. 인호가 일어나 계산대로 간다.

    계산을 하고 나오니 김정아의 어머니 양정숙이 멀리서 걸어가고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그녀의 뒤를 쫓는다.

    양정숙이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는 것을 본 인호가 그 옆에 앉는다.

    “안녕하세요.”

    “…….”

    양정숙이 인호를 보고는 ‘아’하며 고개 숙인다.

    “조금 전 가게에서 본 손님이시죠?”

    “네, 맞아요.”

    인호가 멀리 바다를 보며 말한다.

    “서울에서 왔습니다.”

    “아, 네.”

    “어머님도 작년까지 서울에 사셨죠?”

    “누, 누구세요?”

    인호가 우연히 자기 옆자리에 앉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양정숙이 경계를 담아 묻는다.

    “정인호라고 합니다. 극락 흥신소라는 곳을 운영하고 있어요. 전 보통 사람하고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죽은 이들을 보고, 그들의 말을 듣죠.”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양정숙이 일어나 도망치듯 멀어져간다. 인호는 쫓을 생각이 없는지 앉은 자리에서 한마디만 한다.

    “김정아.”

    양정숙이 우뚝 멈춰 선다. 천천히 몸을 돌리는 양정숙. 그녀는 인호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인호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간다.

    “우리 정아를 아세요?”

    “네. 며칠 전에 만났거든요.”

    “거짓말하지 말아요. 우리 정아는-.”

    양정숙은 말을 끝맺지 못한다.

    “죽었다고요? 네, 알고 있습니다. 말씀드렸잖아요. 전 죽은 사람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말을 저더러 믿으라고요?”

    “믿으셔야 합니다. 정아가 아직 그 학교에 있거든요.”

    양정숙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그대로 두면 정아가 안 좋은 일을 겪을 수 있어요.”

    김정아는 원한을 품고 죽었다. 며칠 전 보았을 때까지 김정아는 악령이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자신을 괴롭힌 일진 아이들에게 복수라도 하는 날에는 김정아의 지옥행이 확정되는 것이다.

    “안 믿어요. 사기를 치려거든 돈 많은 사람들에게 가요. 먹고 죽으려고 해도 돈 없으니까.”

    “돈 같은 것 필요 없습니다. 순수하게 정아가 걱정돼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온 겁니다. 그리고-.”

    인호가 눈에 힘을 주어 양정숙을 응시한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죠. 왜 잘못하지도 않고 사랑하는 딸을 잃은 어머님이 도망치듯 부산으로 오신 겁니까?”

    “…….”

    “저한테 말해 주세요. 그래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양정숙이 세차게 고개를 흔든다.

    “아니요. 해결할 수 없어요.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면 그쪽 말처럼 부산까지 도망쳐 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상대가 권력자이기 때문인가요? 그런 것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권력을 가진 사람들 여럿 알고 있습니다.”

    정재훈 검사가 있고 대은 그룹의 이철호 회장, 제계 서열 1위 신성 그룹의 오형민 회장이 있다.

    오민호의 일을 해결해 주었을 때 오형민 회장은 반드시 신세를 갚겠다고 했다. 큰돈을 주었음에도 아직 빚이 남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양정숙이 한숨을 내쉰다.

    “우리 집에 가서 소주 한잔 더 하실래요?”

    * * *

    - 쪼르르

    인호의 잔에 소주가 찬다.

    “대접이 형편없어 죄송합니다.”

    말을 하는 이는 김정아의 아버지 김문수였다.

    “이 정도면 만찬이죠.”

    “우리 정아를 보셨다고요?”

    김문수가 인호를 보고는 소주를 마신다.

    “솔직히 잘 믿기지 않습니다.”

    인호의 눈에 푸른빛이 일렁인다. 인호가 김문수의 손을 가볍게 터치한다.

    “헛-!”

    김문수는 인호 옆에 앉아있는 사기꾼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양정숙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남편을 본다.

    “믿으세요.”

    사기꾼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며칠 전 정아가 다니던 학교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정아를 봤죠.”

    “우리 정아는…… 잘 있습니까?”

    “아직까지는요.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인호는 망령이 악령이 되는 이유와 악령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설명해준다. 김문수와 양정숙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양정숙은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린다.

    “정아가 일진 아이들에게 따돌림당하는 것은 알고 계셨습니까?”

    “짐작은 하고 있었어요.”

    김문수가 놀라 양정숙을 바라본다.

    “이이는 잘 몰라요. 제가 이야기를 하지 않았거든요. 가끔 정아 몰래 책가방 안을 보곤 했어요. 정아 교과서에 입에 담기도 무서운 낙서들이 가득했어요. 선생에게 몸을 팔아 1등을 했다느니, 돈 많은 유부남을 꼬셨다느니. 그런 말들로 가득했어요. 어떤 책은 날카로운 칼로 난도질이 되어 있었어요.”

    “왜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

    김문수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미안해요.”

    양정숙이 서럽게 운다.

    “정아가 아빠한테는 말하지 말아 달라고 했어요. 자기 괴롭히는 아이들 중 한 명이 학교 이사장 딸이라고. 그 아이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라고.”

    까득-

    김문수가 이를 꽉 깨문다.

    잔에 소주를 채워 연거푸 비운다.

    “모두 저 때문입니다.”

    김문수가 고해성사를 하듯 중얼거린다.

    “정아가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직장으로 국회의원 보좌관이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정아가 자살한 것을 공론화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걸 받아들이셨습니까?”

    “당연히 안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딸이 죽었습니다. 내가 거절하자 그 사람이 사진 몇 장과 녹음파일을 줬습니다.”

    “약점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딱 한 번 뒷돈이라는 것을 받아 봤습니다.”

    김문수는 7급 공무원이다.

    “남들은 공무원이 철의 도시락이다 뭐다 말을 하지만 정말 박봉입니다. 공무원 월급으로 서울에서 세 아이를 키우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집사람이 함께 벌어줘서 겨우 유지는 되었죠. 5년 전에 셋째 녀석이 크게 아팠던 적이 있었습니다. 수술비가 3천이 넘는데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집을 사며 대출을 너무 많이 받아서 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죠.”

    인호가 빈 잔을 채워준다.

    “그때 상사 중 한 명이 그러더군요. 딱 한 번 눈 질끈 감으라고. 그러면 된다고. 그때까지 오랫동안 공무원 생활하면서 단 한 번도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도 어쩔 수 없는 아버지였습니다. 아이가 아픈데 돈이 없으니 강도짓을 해서라도 돈을 마련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보좌관이라는 사람이 아버님의 부정에 관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김문수가 처연한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둘째가 중3, 셋째가 중1입니다. 뇌물수수로 제가 교도소에 가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정아가 자살한 이유가 그 아이들 때문이라고 증명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공무원이니 여러 방법을 다 시도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현실의 벽이 얼마나 두껍고 높은지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주변에 이사 갈 거라고 말하지도 말고 조용히 떠나라고 하더군요. 서울에서 최대한 멀리. 배려랍시고 절 부산으로 전출시켰습니다.”

    김문수는 소주를 들이켜며 울고 있다.

    그가 우는 이유는 딸의 죽음 앞에 침묵한 자신에 대한 무력함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시니까.”

    아버지이기에 그런 것이다.

    김정아의 죽음이 억울하지만 남은 가족들도 생각해야 하는 아버지이지 않은가.

    “곤란하게 됐네.”

    사기꾼이 중얼거린다.

    김정아의 죽음을 공론화시키거나 증거를 찾아 상대 학생을 처벌하게 되면 그 부모들이 김문수의 비리를 들출 수도 있었다.

    “저기 인호 씨라고 하셨죠?”

    “네, 어머님. 말씀하세요.”

    양정숙이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말한다.

    “우리 정아 한 좀 풀어주세요.”

    인호가 김문수를 힐끔 쳐다본다.

    “뭘 걱정하시는지 다 알아요. 괜찮아요. 그러니까 꼭 좀 우리 정아…… 불쌍한 우리 딸 억울함 좀 풀어주세요.”

    그 말을 하고는 남편의 손을 꼭 잡는다.

    “당신. 아이들에게 정직하게 살라고 항상 말했잖아.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당신이 지은 죄 때문에 우리 형우 수술 잘 받고 살았잖아. 그러니 그걸로 위안 삼자. 당신 없는 동안 내가 정말 열심히 할게. 애들하고 어떻게든 살아볼게. 그러니까.”

    김문수가 양정숙의 눈물을 닦아준다. 그리고는 애써 웃음을 짓는다.

    “그래. 내가 참 바보 같았다.”

    김문수가 인호에게 말한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죠. 저도. 그리고 우리 정아 죽음으로 내몬 못된 아이들. 그리고 우리 정아 죽음을 묻으려고 했던 그 부모들까지.”

    김문수가 고개를 푹 숙인다.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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