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85화 (85/190)
  • 제85화

    경기도 논산.

    인호가 길을 거닐고 있다. 오후 2시의 거리는 한산하다. 별다방에서 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며 걷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인호의 앞을 막아서는 이들이 있다.

    “죄를 사죄하고 환생하세요.”

    여자 두 명이 앞을 막고 있다. 그중 한 명이 전단지를 인호의 앞에 내민다. 인호가 전단지를 받는다.

    전단지를 받으며 슬쩍 얼굴을 보니 이민정이 보여주었던 휴대폰 사진 속에 있는 얼굴이다. 이민정의 친구 오혜정이었다.

    모아 놓은 돈을 모두 바쳤다더니 포교 활동에도 발 벗고 나서고 있는 모양이었다.

    전단지를 확인한다. 어디선가 한 번쯤은 보았던 것 같은 지옥을 묘사한 사진과 그 위에 하얀 옷을 입은 임만덕이 양팔을 아래로 늘어트린 채 웃고 있었다.

    마치 지옥에 있는 망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전단지는 잘 뽑았네.”

    “네?”

    “아니에요. 전단지 내용이 참 인상 깊다고요.”

    “그렇죠? 교주님께서는 지옥으로 갈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죽음을 딛고 일어서신 분이세요.”

    말만 들으면 신의 아들쯤 되는 것 같다.

    “환생에 대해 관심 있으세요?”

    “네. 아주 관심 많죠.”

    “그러시면 저쪽으로 가서 차 한잔 드시면서 깊은 대화 나눠 보실까요?”

    “좋습니다.”

    인호는 이민정의 친구 오혜정을 따라간다. 근처에 파라솔이 펼쳐져 있고 그 아래 의자 몇 개가 놓여있었다.

    오혜정은 인호에게 자리를 권한 후 시원한 수정과를 가져다주었다.

    “안녕하세요. 정식으로 인사드릴게요. 전 환생교 본단 정식 신도 오혜정이에요.”

    “정인호라고 합니다.”

    “정인호 씨군요. 어디선가 들어봤던 이름 같은데…….”

    “제 이름이 조금 흔한 편이죠.”

    이민정이 오혜정에게 인호의 이름을 언급한 적 있는 듯했다.

    “호호, 제 이름도 여자 이름 중에서는 흔한 이름이죠.”

    “그런데 정식 신도는 뭐예요?”

    “교주님께 세례를 받은 신도들을 정식 신도라고 불러요. 세례를 받지 못한 신도들은 예비 신도라고 부르죠.”

    “세례를 받는 것이 어렵나요?”

    오혜정이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아니에요. 예배가 있는 날 교주님께서 무작위로 세례를 내려주세요. 그분도 힘이 드셔서 한번에 많은 신도들에게 세례를 하지는 못하세요. 전 운 좋게 첫 예배에 세례를 받을 수 있었죠.”

    “세례라는 것이 어떤 건가요?”

    순간 오혜정의 눈이 몽롱해진다.

    “정말 너무 은혜로운 순간이었어요. 교주님께서 기도를 하며 제 머리 위에 손을 올리시는 순간 그동안 제가 잘못했던 일들이 영화를 보듯 펼쳐지는 거예요. 잘못들을 들여다보며 얼마나 부끄럽고 또 제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알게 되었어요.”

    “아-, 그렇군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임만덕에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생긴 게 분명했다.

    “마침 오늘 예배가 있는 날인데 함께 가시겠어요? 교주님께서 일주일에 딱 하루만 본단에서 예배를 주도하시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에요.”

    “교주님이 바쁘신가 보네요.”

    “본단 말고도 지단들이 많으니까요. 지난 주에 서울에 지단이 생겨서 그쪽에 신경을 많이 쓰고 계세요.”

    “아, 그렇구나. 그 예배라는 것.”

    인호가 환하게 웃는다.

    “저도 참석하죠.”

    * * *

    환생교의 본단이 있는 곳은 중심가와는 많이 떨어진 외진 곳이었다. 본래는 밭이었던 곳에 가건물을 지어 본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차를 세우니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다가온다.

    “어서 오세요, 형제님.”

    남자는 인호가 타고 온 차를 힐끔 바라보고는 환하게 웃는다. 정재훈의 사무실에 화이트보드에 사진이 붙어 있던 사람 중 하나였다.

    망둥어 파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범죄조직에 몸을 담고 있던 전직 깡패인 것이다.

    “하하, 지금은 본단 모습이 초라해 보이지만 곧 멋진 본단으로 이전하게 될 겁니다. 저기 보이시죠?”

    중장비들이 넓은 터를 다지고 있었다.

    “곧 본단 신축 공사가 시작될 겁니다. 신도분들 중에 건축업에 종사하고 계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아, 네.”

    가건물이긴 하지만 규모가 상당하다. 입구로 가니 여자들이 예배 순서가 프린트된 종이를 나눠준다. 그들 중에는 오혜정도 끼어 있었다.

    “오셨네요.”

    “네. 온다고 했잖아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오혜정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교회처럼 긴 의자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장판이 깔린 바닥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방석이 깔려 있다.

    “이쯤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교주님이 세례를 하실 때마다 쭉 지켜봤는데 이동하시는 동선이 매번 비슷하셨거든요. 여기 앉으시면 세례를 받을 확률이 높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좋은 말씀 많이 듣고 가세요.”

    오혜정이 입구로 돌아간다.

    앞에 책 한 권이 놓여있다. 두께가 얇은 책이었는데 환생교의 교리가 담긴 책이었다.

    “그럴싸하네.”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제법 잘 만들었다. 기독교와 불교 등 유명한 종교에서 좋은 부분만 따왔다. 책의 뒷부분을 보니 환생교에서 사용하는 성가도 몇 곡 기재되어 있다.

    “천주교 성가를 살짝 바꿨네.”

    인호가 주위를 살핀다.

    몇몇 여자들이 교주가 설교할 곳에 마실 것 등을 준비할 때 몇몇 남자들이 신도들을 살피며 돌아다닌다.

    ‘박세훈, 전현교.’

    임만덕과 함께 사기를 치던 일당들이다. 지금은 환생교의 사도라 불린다고 한다.

    ‘사기꾼이 말하는 전형적인 사기꾼들이네. 눈동자 움직이는 게 참 버라이어티하다.’

    그들은 돌아다니며 신도들을 살피고 있다. 아마도 입고 있는 옷 등을 보며 돈이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는 것이리라.

    “정인호 신도님. 반갑습니다.”

    박세훈이 다가온다.

    “전 사도인 박세훈이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다른 이들도 많은데 굳이 인호에게 다가와 아는 체하는 이유야 뻔했다. 타고 온 차가 고가의 차량이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말씀 듣고 가세요. 운이 좋으면 교주님께 세례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임만덕과 두 사람이 사기꾼 일당이라면.

    임만덕이 다른 이들에게 과거의 잘못을 보여주는 힘을 얻었다면.

    ‘가장 먼저 이들에게 과거의 잘못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인호의 추측이 맞을 것이다.

    다만 이 두 사람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칠 마음이 없는 것뿐이리라.

    “그럴 수 있다면 참 좋겠네요.”

    박세훈이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고는 멀어진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제법 넓어 보이던 실내가 사람들로 거의 가득 찬다.

    “어쭈. 제법이네.”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 등의 악기가 일제히 제 목소리를 낸다. 천주교 성가와 비슷한 음률의 연주가 이어진다.

    잠시 후 연주가 끝날 때 즈음 ‘뎅, 뎅’ 종이 울리고 뒤쪽 커튼 사이에서 하얀 다리까지 내려오는 하얀 옷을 입은 임만덕이 등장한다.

    “안녕하세요. 신도님들. 죄인 임만덕입니다.”

    주위에서 ‘환생’, 혹은 ‘교주님’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오늘은 제가 직접 겪었던 신비로운 일에 대한 간증을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성가를 부르고 기도를 한 후 임만덕의 간증이 시작된다.

    “전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뒤에 보시면 당시 절 담당하셨던 의사 선생님의 소견서가 보이실 겁니다.”

    빔프로젝트로 임만덕 뒤쪽에 화면을 송출한다. 인호가 정재훈을 통해 보았던 것과 흡사한 소견서였다.

    “의사 선생님은 제가 살아날 확률이 1%도 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죽을 사람이었다는 뜻이죠. 그리고 실제로 전 죽어서 흔히 저승, 지옥이라고 말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은 아주 참혹한 곳이었습니다.”

    임만덕이 자신이 본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영화라도 한 편 보고 왔나?’

    정말 지옥을 직접 다녀온 것처럼 설명이 너무 디테일했다. 선대들에게서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온 지옥의 모습이 임만덕의 입을 통해 들려오고 있다.

    “지옥에서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계속 죽어갑니다. 하지만 죽었다고 끝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사람들은 다시 고통을 겪게 되었죠. 그때 전 깨달았습니다. 아-, 나도 지옥에 오게 되면 저들과 똑같이 고통을 받겠구나.”

    갈증이 나는지 임만덕이 물로 입을 축인다.

    “하지만 저 높은 계신 분께서는 제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셨습니다. 끔찍한 지옥 여행이 끝날 무렵 성스러운 빛이 보였습니다. 너무나도 황홀한 빛을 쫓아갔습니다. 그 빛은 절 받아 주었습니다. 감싸 주었습니다. 그리고.”

    임만덕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제게 새로운 삶을 주셨습니다.”

    신도들이 ‘오오오’하며 탄성을 토해낸다.

    “죽음에서 돌아온 전 생각했습니다. 어째서 저 높은 곳에 계신 분께서 날 다시 깨어나게 했을까?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아-! 그분께서 날 다시 보낸 이유는 나처럼 후회가 많은 삶을 사는 이들에게 내가 본 것을 전하라는 계시였던 것입니다.”

    쾅-

    임만덕이 힘차게 발을 구른다.

    “우리들은 모두 크고 작은 죄를 지은 죄인입니다. 참회하십시오. 그리고 저처럼 새로운 삶, 은혜로운 삶을 얻으십시오.”

    때를 맞춰 연주가 시작된다.

    임만덕의 간증 때문인지 몰라도 연주가 성스럽게 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느끼는 것은 인호 혼자만이 아닌지 많은 신도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신도들이 한목소리로 성가를 부른다. 인호는 대충 따라하며 임만덕을 살핀다. 인호가 묘한 눈빛으로 임만덕을 바라본다.

    지금 그에게서는 조금의 가식이나 거짓도 느껴지지 않는다. 눈물을 흘릴 때 역시 진심이 느껴졌다.

    “다 같이 참회의 기도를 하겠습니다.”

    임만덕의 말에 사방에서 환호가 터져 나온다. 세례를 하는 시간이 온 것으로 보였다.

    임만덕이 눈을 감고 기도를 시작한다.

    “전 너무나도 작고 보잘것없습니다. 지은 죄가 너무 커 당신의 이름도 부르지 못합니다. 저의 기도는 참회의 절규요 제 눈물은 새로운 삶의 씨앗을 움트게 할 생명수입니다.”

    임만덕을 시작으로 신도들이 한목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한다. 어떤 이는 기도를 하는 것인지 비명을 내지르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깊이 빠져있었다.

    임만덕이 신도들 사이로 파고든다. 멀지 않은 곳의 중년 남자의 머리에 손을 올린다.

    그러자 곧 남자가 서럽게 오열하기 시작한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죽어 마땅한 놈입니다. 잊고 있었던 저의 죄들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겠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임만덕은 신도들 사이를 돌며 세례를 내린다. 그때마다 세례를 받은 신도들이 울부짖는다. 임만덕이 가까워지자 인호가 슬며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잠시 후 누군가 앞에 서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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