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84화 (84/190)

제84화

분명 움직이고 있는데 걷는 것이 아니라 몸이 붕 떠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다행이라면 몸이 제멋대로 아무 곳으로나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향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모두가 한쪽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사람들과 함께 이동했다.

특이한 점이라면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누구도 다른 이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만나게 된 강에는 엄청난 크기의 배가 있다. 안개가 너무 짙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데 거대한 배만큼은 선명하게 보였다.

배에 올라타고 또 한참이나 이동했다. 반대편 강기슭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차례로 줄을 서서 내린다. 사람들의 뒤를 쫓다 도착한 곳은 거대한 문 앞이었다.

판타지 영화, 혹은 괴수 영화에서 등장할 법한 기괴한 형상을 한 생명체가 거대한 문을 막고 있다.

괴물은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호통을 쳤고 그럴 때마다 한 사람씩 문 안으로 사라졌다.

차례가 돌아오자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괴물은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괴물을 지나쳤고 문도 그냥 통과했다.

끔찍한 경험은 문을 통과한 후부터였다.

‘말도 안 돼.’

끔찍한 광경의 연속이었다.

날카로운 칼들이 사람들의 몸을 자르고, 화염이 몸을 태웠다.

기괴한 생명체가 그들의 몸을 물어뜯고, 영혼까지 얼어버리는 추위에 꽁꽁 얼어붙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비명이 끝없이 이어졌다.

죽어도 다시 살아나 고통을 겪어야 했다. 다행히 자신은 고통과는 무관했다. 그저 둥둥 떠다니며 사람들의 고통을 지켜볼 뿐이었다.

몇 개의 층을 이동했는지 모른다.

멀리 희미한 빛이 보였고 그 빛을 향해 갔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왜 이러고 있지?’

그리고 깨달았다.

‘아-, 나 칼 맞았지? 나 죽은 건가? 그래서 지옥에 온 건가?’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졌을 때 빛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빛이 몸을 휘감는다. 그리고 희미하게 누군가의 음성이 들렸다.

- 형님. 이 새끼 깨어난 것 같은데요.

* * *

차가 신호에 걸려 창밖 풍경을 보고 있던 인호가 한 곳을 응시했다.

“당신이 지은 죄를 사죄하지 않으면 환생할 수 없습니다. 죄를 뉘우치고 환생의 길을 걸으세요.”

창문을 열어두었기에 밖에서 하는 말이 잘 들렸다.

자신의 종교를 전도하고 있는 30대 여자는 ‘사죄하고 환생하세요’라는 글이 적힌 피켓을 들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며칠 전 땡초와 함께 갔던 사우나에서 보았던 뉴스가 떠올랐다.

“환생교라고 했나? 서울까지 온 거야?”

충남 지역에서 교세를 확장한다더니 벌써 서울까지 영역을 넓힌 듯하다. 신호가 바뀌고 인호가 가속 페달을 밟는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이민정이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야, 이 미친년아. 아무리 그렇다고 가진 돈 전부를 다 갖다 바쳐? 니가 정말 미치지 않고서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됐어. 내가 거길 왜 가? 너나 실컷 사죄하고 환생하세요. 끊어.”

이민정이 버럭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는다.

“아침부터 사무실 분위기가 아주 활기차고 좋네?”

“소장님 오셨어요? 죄송해요.”

“누구 전환데 그렇게 받아?”

“친구요.”

“너 친구도 있었어?”

이민정의 인상을 찌푸린다.

“뭐 저는 친구도 없는 왕따인 줄 아셨어요?”

“어.”

인호가 곧바로 대답하자 이민정이 빽하고 소리 친다.

“아, 잘 알고 계셨구나. 나 왕따 맞아요. 찌질해서 친구도 없고 그래요. 알아주셔서 아-주 고맙습니다!”

“그런 뜻으로 한 말 아닌 거 알잖아. 그러니까 적당히 하자.”

이민정은 어렸을 때부터 귀신 보는 아이라며 사람들이 멀리했다. 심지어 부모조차도 이민정을 무서워해 거리를 둘 정도였다.

“사회 친구예요. 얘는 제가 어떤지 잘 모르거든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황동호에게 부탁해 만든 부적을 지닌 후 이민정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 이후에 만난 친구인 듯하다.

“그런데 친구한테 왜 그렇게 화를 내? 들어 보니 환생 뭐 어쩌구 하는 것 같던데.”

“맞아요. 얘가 미쳤는지 환생교인지 뭔지에 빠져서 그동안 모은 돈 다 갖다 바쳤다고 하잖아요. 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뭐라더라? 아, 교주인지 하는 사람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면 과거에 했던 잘못들이 다 떠오른대요. 잊어버렸던 작은 잘못까지 싹 다.”

“신기한 재주네.”

“과거를 보는 건 박수님이나 만신님도 하시지 않아요?”

“정확히 말하면 과거를 보는 게 아니라 영에 묻어 있는 과거의 잔재를 보는 거지. 그리고 두 분도 다른 사람의 과거 잘못을 보여주거나 하지는 못해.”

이민정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때 인호가 휴대폰으로 환생교에 대해 검색해 본다. 가장 상단에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의 사진이 보인다.

“임만덕?”

환생교 교주의 이름이었다.

환생교와 관련된 정보들을 두루 살핀다. 이민정의 말대로 교주 임만덕이 기도를 통해 신도의 과거 잘못을 떠올리게 해준다는 말들이 많다.

“하, 하하. 환생을 했다고?”

교주 임만덕 본인이 환생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환생이 정말 가능한 거예요?”

“흐음, 교주라는 이 사람 주장은 자기가 죽음의 문턱까지 갔고 사후 세계를 경험한 후 다시 살아났다는 거잖아. 그러면 환생이라기보다는 부활이라고 해야지.”

“부활이요?”

“그래. 부활. 좀비야 뭐야. 부활은 무슨.”

인호가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소파에 등을 기댄다. 그러자 사기꾼이 옆에 와서 말한다.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은 법이지. 그리고 저 임만덕인지 하는 놈 사기꾼이야.”

“또 사기꾼 타령이냐?”

“내가 그 공장 사장 놈도 나쁜 놈인 것 맞췄잖아.”

사기꾼이 발끈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사기꾼이다?”

“그렇지.”

“그런데 대부분 사이비 종교 교주들이 사기꾼들 아니냐?”

“그렇긴 하지.”

사기꾼이 바로 수긍한다.

“근데 저놈은 진짜 사기꾼 맞아.”

“사기꾼 찾아내는 신기라도 생겼냐? 그냥 얼굴만 딱 보면 알아?”

“얼굴만 딱 보면 알지. 저놈 뉴스에도 나왔던 놈인데.”

“무슨 말이야?”

“저놈 이름 검색해봐. 2년 전쯤인가 기사 있을걸.”

인호가 바로 임만덕이라는 이름을 검색한다. 기사들을 아래로 쭉 내리니 사기꾼의 말대로 2년 전 기사가 있었다.

“임모 씨를 비롯한 세 사람이 시골의 노인들을 상대로 거액의 땅 사기를…….”

사진 속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있었지만, 확실히 환생교 교주라는 임만덕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야, 대단하네. 이걸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어?”

“내가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데 이런 사기꾼 놈들 기사, 뉴스에는 관심이 많거든.”

잠자코 듣고 있던 영감이 한마디 한다.

“새로운 사기 수법 배우려고?”

“아-, 범죄자들이 교도소 다녀오면 더 나쁜 범죄자가 되는 거하고 비슷한 거구나?”

“아니. 왜 말을 그렇게 해요? 그리고 이미 죽은 내가 사기 수법 배워서 뭐하게요?”

영감이 피식 웃는다.

“너 망령들한테도 사기 치고 다니잖아.”

“내가 언제 사기를 쳤다고.”

임만덕이 전직 사기꾼이었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대로 지나칠 수 없었다. 인호가 정재훈에게 전화를 건다.

“검사님. 환생교라고 들어 보셨어요?”

* * *

정재훈의 사무실.

화이트보드 가장 상단에 ‘환생교 조직도’라고 적혀 있고 그 아래 사진들이 붙어 있다.

“교주 임만덕. 사기전과 5범이에요. 주로 부동산에 관련된 사기를 많이 쳤어요. 그 아래 보이는 두 사람. 박세훈하고 전현교라고 예전에 임만덕하고 세트로 함께 다니며 사기 치던 놈들이에요. 환생교 내에서 직위는 ‘사도’고요. 그 아래 있는 놈들은 충남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깨진 망둥어 파라는 조직의 조직원이었던 놈들이에요.”

유 형사가 환생교에 관련해 브리핑해 준다.

“사무실 민정이 아시죠? 민정이 친구가 논산에 사는데 저 환생교에 푹 빠져 있나 봐요. 모은 돈 전부를 가져다줬다네요.”

“아직까지 강제 헌금에 관련된 신고는 없습니다.”

정재훈이 자료를 살피며 말한다.

“인호 씨에게 연락받기 전부터 환생교에 대해 나름대로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교주라는 놈이 사기전과 5범이기도 하고 주변에 종교인이라고 생각되는 놈들이 단 한 명도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조사를 하다 특이한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정재훈이 서류 한 장을 인호 앞에 내려놓는다. 의사가 자신의 생각을 적어 놓은 소견서였다.

“넉 달 전쯤 임만덕이 깡패 새끼들에게 칼을 맞았습니다. 이유는 깡패들 돈으로 사기를 치려다 실패해 돈을 모두 날렸다고 하네요. 아무튼 그때 칼을 맞은 임만덕은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임만덕을 담당했던 의사는 그가 살아날 가능성이 단 1%도 없다고 했답니다. 그렇게 의식불명 상태로 한 달을 지내다 갑자기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환생교를 만들었다?”

“그렇죠. 이후 환생교를 만들고 자기가 사후세계를 경험했다고 주장하고 있죠. 그런데 정말 사후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겁니까?”

정재훈이 궁금하다는 듯 묻는다. 인호라면 자신의 궁금증을 풀어 줄 것 같았던 것이다.

“일단 사후세계를 경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르페우스죠.”

“아-, 그건 저도 압니다. 죽은 아내를 구하기 위해 저승에 갔지만,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지키지 못했죠.”

“맞아요. 말 그대로 신화일 뿐이에요. 현대에도 사후세계를 경험했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들은 자신이 본 사후세계의 모습을 아주 디테일하게 설명하죠.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 사람들 이야기가 다 엇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모두 똑같은 것을 보고 왔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인호가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지옥의 모습을 약간씩 각색한 것뿐이에요. 그리고 저 위에 계신 분이나 그 밑에서 일하는 분들이 일처리를 그렇게 띄엄띄엄하게 할 리가 없어요.”

“아무리 완벽한 시스템도 빈틈이 있게 마련이죠.”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라면 몰라도 초월적인 존재가 만든 시스템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

“인호 씨는 지옥이 어떤지 아시나요?”

“일단 가 본 적이 없으니 안다고는 할 수 없죠. 하지만 가업이 가업이다 보니 들은 풍월이 조금은 있죠.”

“인호 씨가 아는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잠시 생각을 한 인호가 말한다.

“검사님이 생각하시는 최악에 1조 배 정도 곱하면 될 것 같네요.”

“어후, 듣는 것만 해도 오싹하네요.”

“후후, 그러니 나쁜 짓하지 마세요. 그보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정재훈이 화이트보드를 보고는 말한다.

“아직 이렇다 할 범죄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민정 씨 친구라는 분도 자발적으로 헌금을 한 것이라면 범죄 행위가 성립되지 않아요.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으니 미리 체포한다? 불가능한 것 아시잖아요.”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법은 그렇죠.”

인호가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하지만 전 원래 법 잘 안 지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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