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83화 (83/190)

제83화

“저는 서울 중앙지검 특수 5부 부장검사 정재훈이라고 합니다.”

인호와 함께 온 남자, 정재훈이 자기소개를 하자 황석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하, 하하. 이 사장님 농담도 잘하시네.”

“농담이요? 제가 이런 것으로 농담할 사람으로 보이시나 보네요.”

정재훈이 검사 신분증을 꺼내 황석현 얼굴 앞에 내밀었다.

황석현이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자, 정재훈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들어오세요.”

유 형사를 선두로 건장한 체격의 남자 네 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누, 누구…….”

유 형사가 정재훈의 옆에 서며 말한다.

“황석현 씨. 당신을 라우로 오캄포 씨의 살인 용의자로 긴급체포합니다. 황석현 씨는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법정에서 본인에게 불리한 진술은 거부할 수 있습니다.”

유 형사가 황석현의 손에 수갑을 채운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누가 누굴 죽여요?”

“다시 말씀드려요? 황석현 씨는 직원으로 있던 필리핀 출신 해외 근로자 라우로 오캄포 씨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는 겁니다.”

“내가 라우로를 왜 죽여요?”

인호가 앞으로 나선다.

“형사님들. 힘 좀 쓰셔야겠는데요.”

유 형사와 함께 온 형사들이 쌓여 있는 자재들을 모두 들어내고 오함마 등을 들고 바닥을 부수기 시작한다. 시멘트를 모두 부수고는 삽으로 땅을 판다.

“이, 이-.”

황석현이 도망을 치려 몸을 돌린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해 누군가와 부딪힌다.

“인호야. 나 한 대만 때리면 안 돼?”

“안 돼. 그랬다가는 범죄자에게도 인권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발끈하실 거야.”

뚱보가 황석현을 보며 인상을 와락 찡그렸다.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내 과라고 했잖아. 사기꾼 아니라도 정상적인 놈은 아니라고 했잖아.”

사기꾼이 낄낄거렸다.

“시체 찾았습니다.”

시체 썩은 내가 코를 자극한다.

“내, 내가 죽인 것 아닙니다. 정말이에요. 내가 안 죽였어요.”

“직접 죽이지는 않았지요. 하지만 죽어가는데 치료도 해주지 않고 방치했잖아요.”

인호의 말에 황석현의 표정이 와락 구겨진다.

“저 새끼 불법 체류자라 의료보험도 안 돼요. 생돈으로 때려 막아야 한단 말입니다. 그리고 이 주변 공장들 다 그래요. 외국 애들 데려다 일 시키고 다쳐도 치료 안 해줘요.”

인호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팔목이 잘렸는데!”

인호가 눈을 부라리며 황석현을 쏘아본다.

“손가락 끝에 가시만 박혀도 아파. 그런데 라우로는 손목이 잘렸어. 그런데 돈 들어간다고 저 좁은 방에 처박아 둬? 그러다 라우로가 죽으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뭐라고 했어? 불법 체류자가 도망쳤다고 했지?”

인호가 좁은 기숙사로 들어가 무언갈 들고나온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죽은 라우로 오캄포가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도망을 쳤다고? 먼 타국까지 와서 고생하던 사람이. 자기 가족들 사진을 두고 도망쳤을 리가 없잖아!”

황석현은 인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순간 황석현이 고개를 들고 따지듯 말한다.

“증거 있어? 내가 라우로 죽였다는 증거 있냐고. 그리고 내가 직접 죽인 것도 아니잖아. 하, 하하. 검사님. 말 좀 해 보세요. 내 말이 맞죠?”

정재훈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는다.

“드라마 많이 보셨나보네요?”

“네?”

“드라마에서 그러잖아요. 증거 대 보라고. 드라마 속 형사들 증거 없다고 죄지은 사람들 막 풀어 주고. 그러잖아요.”

정재훈이 웃음기를 지우고는 황석현을 쏘아본다.

“…….”

“부하직원이 큰 부상을 입었음에도 치료해 주지 않고 방치한 것은 엄연히 직무유기입니다. 그 직무유기의 결과 사람이 죽었다면 살인죄에 버금갑니다. 아시겠습니까? 데리고 가세요.”

정재훈이 유 형사에게 말을 한다.

황석현은 끌려가면서도 자기가 죽인 것이 아니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세상이 참 거지 같아요.”

라우로 오캄포의 시체를 바라보며 정재훈이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그깟 돈 몇 푼 한다고 죽어가는 사람을 골방에 가둬 둔 걸까요?”

“자기가 술 마시면서 여급들 가슴에 꽂아주는 팁은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이런 데 쓰는 돈은 아까워하는 거죠.”

감식반이 들어와 현장을 보존하고 라우로 오캄포의 시신을 밖으로 옮긴다.

인호가 몸을 돌린다.

그곳에는 까만 피부에 큰 눈을 가진 라우로 오캄포가 서 있다.

“고마습니다.”

망령이 되어서도 한국어가 서툴다.

“고맙긴요.”

인호가 밖으로 걸음을 옮기니 라우로 오캄포가 그 뒤를 쫓는다.

“남은 가족들 걱정 많이 되시죠?”

“네. 그렇습니다. 저 돈 많이 벌어야 됩니다. 가족들에게 돈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러지 못합니다.”

인호가 입술을 질겅인다.

“다행이라고 말을 하긴 그렇지만 조금 전 봤던 검사님이 황석현에게 돈을 받아내 주실 거예요. 그 돈이 라우로 가족들에게 갈 겁니다.”

라우로 오캄포가 환하게 웃는다.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내 마누라, 딸 리나 돈 있으면 행복합니다. 다행입니다.”

자신은 죽었음에도 보상금으로 가족들이 행복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라우로 오캄포를 보며 인호가 쓰게 웃는다.

“네, 다행이네요.”

인호가 라우로 오캄포에게 애써 웃으며 말한다.

“마지막 선물을 준비했어요.”

“네? 선물 줍니까?”

“우리나라에 와서 열심히 일해 줬잖아요. 그러니 선물 받아도 돼요.”

인호가 공장 앞에 세워 놓은 차의 뒷문을 연다. 그곳에서 두 사람이 내린다. 라우로 오캄포처럼 약간 검은 피부를 가진 여자와 소녀였다.

두 사람을 본 라우로 오캄포가 입을 틀어막는다. 그들은 바로 라우로 오캄포의 아내와 딸이었다.

* * *

일주일 전.

아무도 없는 공장에 불이 켜지고 기계가 작동하자 인호가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라우로 오캄포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라우로 오캄포가 인호에게 처음 한 말은 우습게도-.

- 사장님. 나빠요.

였다.

라우로 오캄포는 자기가 어떻게 다쳤고 죽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었다.

직원이라고는 라우로 오캄포 한 명 밖에 없는 공장인데 돈 욕심이 많은 황석현이 일거리를 무리해서 많이 받아 왔다고 한다.

라우로 오캄포는 피곤했지만 돈을 벌어야 했기에 군소리 없이 늦은 시간까지 일을 했었다.

사고가 나던 날도 그는 전날 새벽까지 일하고 또 새벽까지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 너무 피곤해서 깜빡 조는 순간, 기계의 날카로운 날에 손이 빨려 들어가 버린 것이다.

황석현은 크게 다친 라우로 오캄포를 치료해 주지 않았다. 약국에서 소염진통제를 사다 던져 준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 약으로 며칠을 버티다 결국 라우로 오캄포는 죽게 되었다. 황석현은 라우로 오캄포가 죽자 겁이 났는지 자재를 쌓아둔 곳 아래에 시체를 묻었다고 한다.

그리고 불법 체류자인 라우로 오캄포가 야반도주했다며 주변에 소문을 낸 것이다.

사실을 알게 된 인호는 곧바로 정재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검사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라우로 오캄포라는 외국인 근로자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노동착취를 당하고 크게 다쳤지만,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의 가족들을 한국에 데려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 * *

“마누라, 니나. 나 못 봐요. 그래서 슬퍼요.”

라우로 오캄포가 입을 틀어막고 오열한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마누라, 니나 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라우로. 너무 행복합니다.”

고개를 돌리는 인호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 재빨리 눈물을 닦아낸 후 웃으며 말한다.

“아니요. 볼 수 있어요.”

인호의 눈에 푸른빛이 어린다.

“놀라지 마세요.”

그가 영어로 말하자 라우로의 아내와 딸은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것 같았다.

인호가 아내와 딸의 손을 잡는다. 손에서 푸른빛이 흐른다.

“오, 신이시여.”

아내가 갑자기 앞에 나타난 라우로 오캄포를 보며 손을 뻗는다. 라우로 오캄포 역시 아내에게 손을 뻗는다. 생자와 망자의 경계로 인해 두 사람의 손은 닿지 않는다.

“아빠.”

“내 사랑하는 딸 니나. 아빠 많이 보고 싶었지? 아빠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아빠 사랑해요. 아빠를 볼 수 있어 너무 행복해요.”

필리핀어로 대화를 하고 있어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었지만, 인호는 이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알 것 같았다.

인호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저승사자를 바라본다. 저승사자는 가족들의 마지막 만남을 지켜보고 있다.

서럽게 우는 가족들을 보고 있던 인호 역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 *

“어라. 인호 너 문신 지웠냐?”

탕 안으로 들어오는 인호를 보며 땡초가 묻는다.

“무슨 말이…… 아, 네. 이제부터 조금씩 지워 보려고요.”

“그래. 잘 생각했어. 내가 너하고 사우나 올 때마다 섬뜩섬뜩했잖냐. 아무리 요즘 문신을 패션으로 하고 다닌다지만 너는 너무 과해.”

“하하, 그래요?”

땡초가 주위를 한 바퀴 둘러 보고는 말한다.

“지금도 봐라.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탕 속에 나랑 너 딸랑 둘밖에 없다. 저 사람이 탕에 들어오기 싫어서 안 들어오는 걸까?”

“그러니까 안 온다는 사람을 왜 자꾸 끌고 와요?”

“술 한잔한 다음 날 사우나는 국룰이지. 땀 쭉 빼고, 주독도 쭉 빼고 좋잖아.”

“형이나 많이 좋아해요.”

땡초가 탕의 뜨거운 물을 손에 담아 얼굴을 닦는다.

“푸우-. 좋다. 인호야. 뭐 재미있는 일 없냐?”

“재미있는 일이요? 그게 어떤 일인데요?”

“왜 전에 무당 잡은 일, 그리고 터줏대감인지 하는 귀신 일. 그런 재미있는 일 없어?”

“형은 그런 일이 재미있어요?”

“왜? 스릴 있잖아.”

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땡초를 바라본다.

“내가 몇 번이나 말했죠. 형은 망령들 근처에 가면 안 돼요. 자꾸 망령들하고 엮이면 예전처럼 된다니까.”

“끔찍한 말은 하지도 마라.”

땡초가 탕 속으로 잠수한다.

“푸하-! 그런 일이 또 생기면 니가 도와줄 거잖아. 그치?”

“내가 왜요? 아, 이런 형이 뭐 좋다고 가까이 지내는지 몰라.”

“크크, 내가 좀 호감형이잖아.”

“형은 호감형 아니고 그냥 깡패 형. 오케이?”

“미친놈.”

두 사람은 건식 사우나에서 땀을 한바탕 흘린 후 밖으로 나왔다.

“역시 사우나는 이 맛에 오는 거야.”

땡초가 삶은 계란을 까 바나나 우유와 함께 먹는다.

“너도 하나 먹어라.”

“나는 됐어요. 조금 있다 밥 먹어야죠.”

인호가 평상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다.

-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충남 일대에서 급속도로 교세를 넓히고 있는 환생교는…….

인호가 고개를 갸웃한다.

“환생교? 그런 종교도 있었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