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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82화 (82/190)
  • 제82화

    똑- 똑-

    “네, 들어오세요.”

    사무실 문이 열리며 앞머리가 시원하게 벗겨진 50대 남자 한 명이 들어온다.

    “앉으세요. 차는 커피로 드릴까요?”

    “네.”

    이민정이 커피를 타 남자 앞에 내려놓는다.

    “저-, 혹시 그쪽 분이 여기 소장님이세요?”

    “아니에요. 소장님은 지금 잠깐 볼일 보러 가셨어요. 일단 상담은 저한테 받으시면 돼요. 무슨 일로 오셨죠?”

    “듣기로 여기가 이상한 일 생기면 해결해 준다고.”

    “네, 맞아요. 어떤 이상한 일을 겪으셨어요?”

    “그게…… 소장님은 언제 오시죠?”

    “금방 오실 거예요. 소장님 오시면 상담하실래요?”

    “네.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남자가 사무실을 둘러보며 커피를 마신다.

    “딱 봐도 우리 과인데?”

    사기꾼이 남자 맞은 편에 앉아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사기꾼이라고? 그걸 어떻게 알아?”

    “눈알 굴리는 것만 봐도 딱 알아요. 사기꾼이 아니라도 정상적으로 벌어먹는 사람은 절대 아닐걸요.”

    “잘났다.”

    사기꾼과 영감이 남자의 품평을 하고 있을 때 인호가 들어온다.

    “손님이 계셨네.”

    “소장님이십니까?”

    “네. 제가 극락 흥신소 소장 정인홉니다.”

    “안녕하세요. 전 이런 사람입니다.”

    남자가 명함을 인호 앞에 내민다.

    - 태성 정밀 대표 황석현

    “사업가시네요.”

    “사업가는 무슨 딱 봐도 사기꾼이라니까.”

    인호가 사기꾼을 힐끔 바라본다.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소장님이 기괴한 일을 전문적으로 잘 해결한다는 소문을 들어서요.”

    “잘 찾아오셨네요. 어떤 일을 겪으셨죠?”

    “제 회사가 인천 남동 공단에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공장에 이상한 일이 자꾸 생기지 뭡니까?”

    갈증이 나는지 커피가 담겨 있던 빈 컵을 입으로 가져간다. 이민정이 물을 가져다주자 벌컥벌컥 들이킨다.

    “전원을 다 끄고 퇴근을 했는데 주변 공장에서 밤새 누가 기계를 돌렸다지 뭡니까? 처음에는 장난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계속 똑같은 말이 들려 확인해 보니 정말이지 뭡니까?”

    “다른 직원분이 일하신 건 아니고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작은 마찌꼬바 운영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직원이 한 명 있기는 했는데 지금은 그만둔 상태고요.”

    마찌꼬바란 소규모 공장을 일컫는 일본식 표현이었다.

    “다른 공장 직원이 장난치는 것은 아니고요?”

    “아닙니다. 제가 퇴근 후에 근처에 숨어서 지켜봤어요.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갑자기 불이 켜지더니 막 기계가 돌았다니까요.”

    “흐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공장 주소 하나 적어 주세요. 제가 곧 찾아뵙도록 하죠.”

    황석현은 비어 있는 머리를 긁적인다.

    “그게…… 사실 조금 무서워서요.”

    보통 사람이 이런 일을 겪는다면 무서워할 만도 했다.

    “그러면 내일 오전에 바로 가 보겠습니다. 이 명함 전화번호로 연락드리면 되죠?”

    “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남자가 사무실을 떠나자 사기꾼을 눈을 가늘게 뜨고 말한다.

    “딱 봐도 우리 과인데.”

    “개 눈엔 똥만 보이고 사기꾼 눈에는 사기꾼만 보이는 거다.”

    인호의 말에 사기꾼이 와락 구기며 쏘아붙인다.

    “맞다니까. 나중에 봐라. 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 * *

    출근 시간을 피해 경인고속도로를 이용해 남동 공단에 진입했다.

    출근 시간이 아닌데도 차가 제법 많아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끔은 이런 곳에서 먹는 음식도 간식으로 좋지.”

    뚱보는 테이블 가득 라면과 꼬마김밥, 삶은 계란 등을 올려두고 폭풍흡입 중이었다.

    “간식치고는 조금 많아 보인다만?”

    “딱 허기만 면할 정도라고.”

    뚱보는 입 주변에 삶은 계란 노른자를 덕지덕지 붙이고 씨익 웃어보였다.

    인호는 라면에 꼬마 김밥 세 줄로 점심 식사를 대신했다.

    식사를 마친 후 황석현이 알려 준 주소로 찾아갔다. 주변에는 작은 공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황석현의 공장의 입구에는 쇠사슬이 칭칭 감겨 있었다.

    인호가 옆 공장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에게 다가간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옆 공장에 이상한 일이 있다면서요?”

    “그건 왜 물어보세요?”

    남자가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인호를 바라본다.

    “매물이 싸게 나와서 매입을 할까 하는데 부동산 업자가 이상한 말을 하네요.”

    “아-, 그러세요. 웬만하면 저 공장 사지 마세요.”

    “왜요?”

    “귀신 들린 공장이거든요. 밤만 되면 지 혼자 불 켜지고 기계 돌아가고 아주 생난리 부르스를 쳐요.”

    “아우, 오싹한 데군요.”

    “저 공장 황 사장이 빨리 팔아 치우려고 하는데 이미 소문 날대로 다 나서 누가 사요. 그러니까 절대 살 생각하지 말아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대답한 후 다시 걸음을 옮긴다.

    “자-, 보자. 오른쪽 담에 뚫린 구멍에 손을 넣으면…… 찾았다.”

    인호의 손에 열쇠 하나가 들려 있었다.

    황석현이 자기는 공장에 오기 싫다며 열쇠를 구멍에 넣어 둔 것이다.

    열쇠로 문을 열고 공장 안으로 들어어 가니 좁은 공장 안에 기계 두 대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쇠 까는 곳이네.”

    “그런 것도 아냐?”

    “광혜원 나와서 잠깐 밀링 업체에서 일했었어.”

    “너하고 참 안 어울린다.”

    인호가 공장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안쪽으로 가니 문 하나가 있었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러 종류의 자재들이 쌓여 있었다.

    양쪽으로 문이 하나씩 있는데 오른쪽에서 구릿한 냄새가 나는 것을 보면 화장실인 듯했다.

    인호가 왼쪽 문을 열어본다.

    “이야. 이게 뭐니? 설마 여기 사람이 살았던 거야?”

    고작해야 한 평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은 공간이다. 가로세로 2미터가 채 되지 않은 공간에 작은 책상과 천으로 된 장롱이 있다.

    이불이 깔려 있는데 이불 밖으로는 발 디딜 공간도 없었다. 베개가 놓인 쪽 벽에 사진 하나가 붙어 있다. 동남아인으로 보이는 남자와 그의 아내인듯한 여자, 그리고 어린 소녀의 사진이었다.

    인호가 볼을 긁적였다.

    “이건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

    * * *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다 저녁이 되어 다시 공장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안 갔어요?”

    낮에 만났던 옆 공장 사람이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가 인호를 다시 보고 물었다.

    “정말 귀신 붙은 공장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요. 귀신도 없는데 있다고 소문난 거면 싸게 매입할 수 있는 기회잖아요.”

    “에휴. 그러다 큰일 당하지. 나는 분명히 돌아가라고 말했어요.”

    남자가 담배를 멀리 튕겨낸 후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다들 일감이 많은지 주변 공장들에는 전부 불이 켜져 있었다.

    인호는 공장 앞에 앉아 휴대폰을 검색하며 시간을 보냈다.

    “인호야.”

    옆에 앉은 뚱보가 인호를 부른다.

    뒤쪽에서 밝은 빛이 비추고 있는 것은 인호도 알고 있다.

    “자-, 어떤 망령이 우릴 기다리고 있는지 가 볼까?”

    벽 구멍에서 열쇠를 다시 꺼내서 공장 문을 열고 들어간다.

    사람이 없는데도 오른쪽 기계가 혼자 작동하고 있었다.

    인호가 주변을 둘러보다 안쪽을 향해 말한다.

    “거기 있는 거 다 아니까 나와요.”

    “…….”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인호가 고개를 흔들며 안쪽 문을 열고 나간다.

    좌측의 문을 확 열어젖히며 인호가 말했다.

    “찾았다.”

    * * *

    공장에서 나온 인호가 사슬로 입구를 묶고 자물쇠를 채운다.

    뚱보와 함께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바로 출발한다.

    “씨발.”

    “저승사자씩이나 되는 녀석이 왜 이렇게 입이 거치냐?”

    “욕이 나오잖아.”

    “그렇긴 해.”

    인호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다.

    “검사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하하, 일을 하고 계셨어도 늦은 시간에 전화하는 건 실례죠. 다름이 아니라 부탁 하나 드리려고요.”

    전화를 끊은 인호가 검게 물든 창밖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 *

    - 아직 해결 안 됐나요?

    - 언제쯤 해결될까요?

    - 빨리 해결하고 공장을 팔아야 해서요.

    - 해결해 주시면 공장 판 돈에서 1할 드리겠습니다.

    인호가 공장을 직접 보고 온 후 황석현은 하루가 멀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소장님. 우리 옥상에 있는 짐들 정리하고 바비큐 파티할 수 있게 파라솔하고 의자 같은 것 가져다 두면 안 돼요?”

    “주변 건물에서 욕한다.”

    “누가 욕을 해요? 주변 건물에 다 식당 있는데.”

    “듣고 보니 그러네. 나중에 한가해지면 사러 가자.”

    “아싸.”

    인호가 벽에 고개를 내밀고 밖을 보고 있는 영감에게 묻는다.

    “매일 뭘 그렇게 봐요?”

    “그냥 무슨 일 있나 보는 거지 뭐.”

    “야경꾼은 여전해요?”

    영감이 좁은 골목을 걸어가는 푸른 망령을 바라본다. 고개를 돌리다 영감과 눈이 마주친 망령이 웃으며 손을 흔든다.

    “여전하네.”

    인호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온다.

    “여보세요.”

    - 접니다. 황석현.

    “네, 사장님. 안녕하세요.”

    - 도대체 언제쯤 해결이 되는 겁니까?

    “내일이요. 내일 해결돼요.”

    -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황석현은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일이냐?”

    영감의 물음에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내일이네요. 벌써 일주일 지났잖아요. 내일은 해결해야죠.”

    * * *

    인호가 차에서 내린다.

    “소장님. 여깁니다.”

    황석현이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무섭다고 하시더니 나오셨네요.”

    “낮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같이 오신 분은 누구세요?”

    “공장 파신다면서요? 이쪽 공장에 관심이 많다고 하셔서 겸사겸사 모셔왔어요. 해결하고 대화 나누시다 가격 맞으시면 바로 계약하시면 되잖아요.”

    “하하, 좋지요.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 공장이 목이 아주 좋아요. 조만큼만 가면 큰 도로로 나갈 수 있거든요. 좀 좁아서 그렇지 정말 좋은 공장입니다.”

    인호와 함께 온 남자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공장문 열까요?”

    황석현이 문을 열자 인호가 안으로 들어간다. 인호의 뒤를 따라 들어온 황석현이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핀다. 별다른 일이 없자 어깨를 쭉 펴고는 말한다.

    “환기가 아주 잘 되는 편입니다. 공장 문 열어두고 창문 열어두면 여름에도 에어컨 없이 버틸 수 있어요. 엄청 시원하거든요. 어떠세요? 괜찮죠?”

    “나쁘지 않네요.”

    인호가 안쪽으로 들어가며 말한다.

    “안쪽도 좀 볼까요?”

    “거긴 자재를 쌓아 둔 곳입니다. 화장실도 있고 직원 기숙사도 있죠. 기숙사가 조금 좁긴 한데 잠만 자는 거라면 문제없습니다.”

    인호가 함께 온 남자와 눈빛을 교환한 후 턱으로 한 곳을 가리킨다.

    “그런데 저곳은 바닥을 최근에 깔았나 봅니다?”

    남자의 물음에 황석현이 움찔한다.

    “네?”

    “저기요. 자제 쌓여있는 곳 밑에요. 다른 곳은 오래된 것 같은데 저곳만 최근에 시멘트 바른 것 같잖아요?”

    “하, 하하. 무거운 쇠를 쌓아 둬서 공구리가 깨졌거든요. 그래서 새로 한 겁니다.”

    황석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남자에게 말한다.

    “저 그런데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냥 사장님이라고 부를까요?”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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