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가는 혼자 남아 거울 보다가-.”
안민서는 계속해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립스틱으로 광대처럼 그린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눈은 울고 있었다.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민서야. 이리 와.”
인호가 안민서를 부른다.
안민서가 일어서려 할 때였다.
- 안돼! 민서 너는 내 친구잖아!
안민서가 다시 주저앉는다.
“괜찮아. 아저씨한테 와.”
안민서가 인호와 거울을 번갈아 가며 바라본다. 안민서의 눈빛은 ‘도와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 엄마가 거울 보면서 노래 부르면 온다고 했어. 그러니까 엄마가 올 때까지 민서는 노래 불러야 해.
거울 속 여자아이, 죽은 혜민이의 망령은 붉게 번들거리는 눈으로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인호가 방으로 들어선다.
- 오지 마! 오면 내가 민서 데리고 갈 거야.
“혜민아. 네가 지금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
- 몰라. 데리고 갈 거야. 데려가서 같이 엄마 기다릴 거야!
“혜민아. 민서는 네 사촌이야. 사촌이 뭔지 알지?”
- 몰라!
거울 속 혜민이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민서 아빠가 혜민이 엄마 동생이야. 혜민이 외삼촌이야.”
-몰라. 엄마 기다릴 거야.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가는 혼자 남아 거울 보다가! 엄마 기다릴 거야!
“혜민아.”
인호가 안타깝다는 듯 거울 속 혜민이를 바라본다.
“엄마는 이제 못 와.”
쩌적-
거울에 금이 간다. 거울 속 혜민이의 얼굴에도 금이 간다. 여러 개로 변한 혜민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다.
- 거짓말! 엄마가 그랬어. 거울 보고 노래 부르고 있으면 온다고. 헨젤과 그레텔 동화 읽어 준다고 했어!
“혜민아. 혜민이 엄마는…….”
인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못 와.”
쩌정-
거울이 깨진다. 깨진 거울 조각에서 붉은 기운이 일렁이며 피어오른다. 붉은 기운이 뭉쳐 작은 소녀, 혜민이가 된다.
“아니거든. 엄마는 올 거거든.”
“혜민이 엄마는 죽었어.”
인호는 눈물을 흘리며 안우민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 * *
- 우민아. 누나야. 누나가 정말 미안해. 그런데…… 정말 미안한데. 누나 좀 보러 오면 안 될까? 누나가 많이 아프거든.
“누나는 간암 말기라고 했어요. 가족력이었을 거예요. 아버지도 간암으로 돌아가셨거든요. 누나가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한 번만 만나면 안 되겠냐고 했어요.”
하필이면 안우민이 누나 안민영을 만나러 가는 날 안민서가 아팠다.
“민서가 이틀 동안 앓았어요. 민서가 병원에서 퇴원하고 누나에게 전화했어요.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았어요. 그때는 저한테 조카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 나머지는 엄마가 내일 읽어 줄게. 엄마 일 가면 우리 딸 혼자서 잘 놀 수 있지? 노래도 하고 거울도 보면서 놀고 있으면 엄마가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어올게.
안민영은 오랜만에 동생을 만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옷들 중 가장 예쁜 옷을 골라 입었다.
- 누나. 미안해. 우리 민서가 아파. 내가 다시 연락할게.
“그게 마지막 통화였어요. 제가 나쁜 놈이에요. 죽일 놈이에요. 누나가 아픈 걸 알면서도 가지 않았어요.”
* * *
“거짓말이야!”
혜민이가 외치자 방에 있는 장난감과 책들이 쏟아져 내린다. 놀란 안우민이 방으로 들어오려 했지만, 인호가 막아선다.
“혜민이 엄마는 많이 아팠어.”
인호가 한 걸음 다가선다.
“오지 마.”
혜민이가 안민서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인호가 다시 한 걸음 다가선다.
“혜민아. 그러지 마.”
“우리 엄마 바람난 거 아니야!”
“그래. 혜민이 엄마 바람나지 않았어. 그날 엄마는 혜민이 외삼촌 만나러 갔던 거야. 그런데 만나지 못했어. 민서가 많이 아파서 외삼촌이 오지 못했거든.”
혜민이가 입술을 질겅거린다.
“그럼…….”
혜민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우리 엄마 어딨는데요?”
혜민이의 눈에서 붉은빛이 사라진다. 인호가 다가가 혜민이를 안아준다. 품에 안겨 서럽게 엉엉 우는 혜민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저씨가 찾아 줄게. 혜민이 엄마…… 아저씨가 꼭 찾아 줄게.”
* * *
- 엄마가 돈 많이 벌어온다고 했어요.
택시에서 내린 인호가 혜민이의 집으로 걸어간다. 인호의 손에는 작은 손거울이 들려있다.
혜민이의 거울이었다.
깨진 거울을 본드를 발라 다시 맞췄다.
“집에 오랜만에 오지?”
거울 속에 혜민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왜 또 왔어?”
집 입구에 전에 만났던 할머니가 서 있었다.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 그 거울.”
할머니가 거울을 손으로 가리키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맞아요. 혜민이 거울이에요. 죄송한데 혜민이 엄마가 해녀라고 하셨잖아요.”
할머니가 거울을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린 채 대답한다.
“맞아.”
“혹시 혜민이 엄마가 주로 일하던 곳이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혜민 엄마는 물질이 서툴러서 깊은 바다에는 못 들어갔어. 갯바위 가까운 곳에서만 일했지. 거긴 파도가 센데 돈벌이가 안 돼서 다른 해녀들은 잘 가지 않는 곳이야.”
“거기가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 * *
할머니가 알려준 곳에 도착했다.
인호는 갯바위에 올라 주변을 살폈지만, 딱히 이상한 것을 발견하진 못했다.
휴대폰을 꺼낸 인호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죠. 죄송한데 스킨스쿠버 장비 좀 빌릴 곳이 있을까요?”
전화를 끊고 30분 정도 지나자 갯바위로 한 사람이 다가왔다.
휴가 동안 머물렀던 풀빌라의 대표 이상두였다.
“서울 간다고 하시더니 아직 안 가셨나 봐요?”
“갔다 다시 왔어요.”
“스쿠버 장비는 왜 필요하신데요?”
“그냥 좀 필요해서요.”
이상두가 주변을 살핀다.
“여긴 스쿠버 하기에는 안 좋은 곳이에요. 갯바위 근처라 파도가 세거든요. 잘못하다 큰일 나는 수가 있어요.”
“혹시라도 장비 망가지면 제가 배상해 드릴게요.”
“그런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인호가 괜찮다는 듯 웃고는 스킨스쿠버 장비를 착용한다. 산소통까지 맨 후 수경을 쓴다. 조심스럽게 갯바위를 내려가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이상두의 말대로 파도가 거칠었다.
그대로 바닷속으로 잠수한다. 갯바위 주변을 살핀다. 한참 동안 주변을 살피던 인호가 그 자리에 멈춰서는 주먹을 꼭 말아쥔다.
갯바위 가까운 곳에 무언가 흐느적거리는 것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간 인호가 눈을 감는다. 흐느적거리는 것은 해골이었다.
해골의 한쪽 발이 무언가가 얽혀있다.
폐그물이었다.
인호가 다시 해골을 바라본다. 해골에 누군가가 겹쳐 보인다.
- 안민영 씨?
- 네. 누구시죠?
- 혜민이 하고 잘 아는 아저씨에요.
- 우리 혜민이를 아세요?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혜민이 잘 지내죠?
- …….
- 왜 그러세요? 우리 혜민이 어디 아파요?
- 일단 밖으로 나가시죠.
인호가 해골, 안민영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그물을 떼어낸다. 안민영의 유골을 안은 채 물 밖으로 나온다.
“헛-! 그게 뭡니까?”
인호는 대답을 하지 않고 수경과 스킨스쿠버 장비를 벗는다.
“죄송한데 자리 좀 피해 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이상두가 멀어진다.
“이렇게밖에 만나게 해줄 수밖에 없어…….”
인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미안합니다.”
인호의 앞에 두 망령이 마주 보고 있다.
“엄마.”
“우리 혜민이…….”
안민영이 혜민이를 꼭 끌어안는다.
“우리 혜민이 어쩌다 이렇게 됐어?”
“으앙-! 데리러 온다고 했잖아. 착하게 거울 보고 노래 부르면 온다고 했잖아.”
혜민이가 안민영의 품에 안겨 서럽게 운다.
“미안. 엄마가 미안. 엄마도 혜민이한테 가고 싶었는데…….”
안민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못 갔어. 그래서 더 미안해.”
* * *
동생 안우민을 만나려 제주 공항으로 향하던 안민영은 갑자기 딸이 아프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딸 혜민이는 거울을 손에 꼭 쥔 채 잠이 들어 있었다.
안민영은 사랑스러운 딸의 볼을 쓰다듬는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우리 딸하고 오랫동안 같이 살고 싶은데 정말 엄마가 미안해.”
안민영은 곧 옷을 갈아입는다.
“엄마가 돈 많이 벌어올게. 돈 많이 벌어서 우리 딸 예쁜 옷도 사주고 인형도 사줄게.”
마당으로 나와 해녀복을 챙겨 집을 나선다.
평소 물질을 하던 갯바위에 온 안민영은 해녀복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간다. 갯바위에 붙은 자연산 홍합을 채취한다.
“웁-, 웁-.”
무언가에 발이 걸렸다.
누군가 버린 그물에 발이 걸린 것이다. 그물이 갯바위에 단단히 묶여 있어 발이 빠지지 않는다.
“웁-.”
어떻게든 그물을 풀어 보려 하지만, 점점 호흡이 가빠져 온다.
- 혜민아.
* * *
뿌연 거울을 슥슥 닦는다.
검은 문양이 가득한 상체가 보인다. 인호가 손을 들어 왼쪽 가슴을 살살 만진다. 왼쪽 가슴 주위에 검은 문양이 없는 곳을 바라본다.
샤워를 마친 후 주방으로 가 음식을 준비한다.
“역시 돈은 많고 봐야 해. 요즘은 일주일에 세 번은 소고기뭇국이잖아.”
“누가 아니래? 며칠 전에 먹은 육전 맛있었는데.”
“인호야. 요즘 너무 육식만 한 것 같다. 도라지나 더덕무침 안 되냐?”
세 지박령의 말을 들은 인호가 인상을 찌푸린다.
음식 준비를 마친 후 위패를 모신 방에 상을 차린다.
“하아-, 왜 다 여기 있는데?”
사기꾼과 영감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인호가 인상을 와락 구긴다.
“넌 거기 왜 끼어 있는데?”
영체화한 뚱보가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운다.
“적당히 좀 하자.”
가벼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사무실로 내려간다. 9시를 막 지나는 시간이기에 사무실은 썰렁했다.
또각- 또각-
들려오는 하이힐 소리에 인호가 인상을 찌푸린다.
문이 열리고 부장이 안으로 들어온다.
“죄송한데 영업시간 끝났거든요.”
“네, 알아요.”
“알면 날 밝고 다시 오시죠?”
“좋은 소식 전하려고 왔는데 야박하게 그러지 말아요.”
“좋은 소식이요? 로또 번호라도 알려주시게요?”
“인호 씨 돈 많잖아요.”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거든요. 무슨 소식인데요.”
부장이 환하게 웃는다.
“상제께서 이번 일 처리에 굉장히 흡족해하셨어요.”
“끝?”
“네, 끝.”
“아니. 저기 위에 계신 분이 흡족해하시던 짜증을 내시던 그게 저하고 무슨 상관인데요?”
“쓰읍-. 모든 화는 입에서 나오는 거예요. 말조심하세요.”
인호가 입을 꾹 닫는다.
“그리고 왜 상관이 없어요. 상관이 있는 걸 인호 씨가 더 잘 알고 있잖아요. 좋은 소식 전했으니 전 이만.”
문을 열고 나가던 부장이 몸을 돌리며 주먹을 말아쥐고 ‘화이팅’하고 사라진다.
그런 부장을 보며 인호가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잘 알아서 문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