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80화 (80/190)
  • 제80화

    사무실 바로 윗층에 집이 있으니 참 편하다.

    세수하고, 옷을 입고, 한층 내려오면 출근 완료다.

    “좋은 아침.”

    “네, 소장님. 좋은 아침이요.”

    “그렇게 좋냐?”

    “네. 좋아요.”

    이민정이 핸드백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제주도 면세점에서 산 핸드백이었다. 예전부터 갖고 싶었던 거라며 무척이나 좋아했다.

    “커피 드릴까요?”

    “조금 이따.”

    인호가 사무실을 나선다.

    딱히 일이 있어 나선 것은 아니다. 1층으로 내려와 건물을 바라본다.

    크지 않은 꼬마 빌딩이지만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야, 거기.”

    건물 앞을 오가다 걸음을 멈춘 인호가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골목 앞에 멈춘다.

    골목 안에 딱 봐도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사내 녀석 둘과 여자 한 명이 담배를 물고 인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요?”

    “왜요? 왜요? 지금 왜요라고 한 거냐?”

    “아, 왜 그러냐고요.”

    “하, 하하. 거참 어이가 없네. 내가 묻고 싶은 말이거든. 딱 봐도 고등학생인데 담배를 피워? 어른한테 들켰으면 빨리 담배 끄고 갈 생각은 안 하고 왜요?”

    “요즘 담배 안 피우는 고등학생이 어디 있어요?”

    되바라진 대답에 인호가 잠시 할 말을 잃는다.

    “당장 담배 끄고 가라.”

    “아저씨가 뭔데 담배를 끄라 마라에요? 이거 다 돈 주고 산 거예요.”

    “니들 돈 아니고 니들 부모님 돈이겠지. 그리고 부모님이 담배 사 피우라고 돈 주셨겠냐?”

    “아, 씨발. 꼰대가 뭐래?”

    여학생의 말에 인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마지막 경고다. 담배 끄고 가라.”

    “씨발 존나 재수 없어. 그냥 가자.”

    학생들이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는 골목을 벗어나려 한다. 인호가 그 앞을 가로막는다.

    “또 왜요?”

    덩치가 큰 남학생이 위협적으로 인상을 쓰며 말하자 인호가 그들 뒤를 가리킨다.

    “담배 꽁초 주워.”

    “아, 정말 뭐래. 아저씨가 뭔데요? 환경미화원이세요?”

    “아니.”

    “그럼 왜 주우라 마라에요?”

    인호가 고개를 까딱이며 건물을 가리킨다.

    “건물주.”

    학생들이 건물을 힐끔 바라보고는 인상을 와락 구긴다.

    “코딱지만 한 건물 가지고 되게 잘난 척하네.”

    “뭐? 코딱지? 니들 코딱지는 이렇게 크냐?”

    “어? 저거 뭐지?”

    남학생 한 명이 인호 뒤쪽을 보며 말한다. 인호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다. 그 짧은 사이 학생들이 골목을 빠져나와 도망친다.

    “야! 담배꽁초 줍고 가라고!”

    학생들이 동시에 멈추며 몸을 돌린다. 약속이나 한 듯 손을 들어 올리고 중지를 편다.

    “이런! 이리 안 와!”

    낄낄대며 도망치는 학생들을 보며 인호가 피식 웃는다.

    “다음에 걸리기만 해봐라.”

    인호는 사무실로 올라가 이민정이 타 준 커피를 마시며 휴대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응, 나야. 사람 좀 찾아줘. 이름? 이름은 몰라. 대신 그 사람 누나가 제주도 살았었어. 누나 이름은 안민영, 딸 이름은 오혜민. 이 정도면 찾을 수 있나? 오케이. 찾으면 연락 줘.”

    전화를 끊자 이민정이 궁금하다는 듯 묻는다.

    “제주도요? 거기서 누굴 만났어요? 딸 있는 유부녀?”

    “그런 거 아니다.”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인호가 이민정을 바라보고는 다시 말한다.

    “아니라고.”

    “누가 뭐래요?”

    “어디 가는데?”

    이민정이 사무실 문고리를 돌리며 말한다.

    “비품 사러요. 커피도 다 떨어졌고. 이것저것 살 게 많아요.”

    인호가 피식 웃고는 ‘정말 아니라고’하며 중얼거린다.

    “그럼 왜 그러는데?”

    사기꾼이 묻는다.

    “그냥 좀 이상해서.”

    “거기 있었다는 어린애 망령 때문에?”

    “악령은 아닌데 기운이 굉장히 탁해.”

    “꼭 나쁜 짓을 한다고 악령이 되는 게 아니잖아.”

    “그렇지.”

    원한을 오랫동안 품고 있으면 꼭 사람에게 해코지하지 않아도 악령이 될 수 있었다.

    “어땠길래 그리 심각해?”

    영감의 물음에 인호가 제주도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흐음, 외삼촌을 따라갔나 본데.”

    “그런 것 같아요.”

    “찾아보라는 사람은 그 아이 외삼촌이고?”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애꿎은 외삼촌이 피해를 볼 수도 있겠네.”

    “어머니 때문에 갖게 된 원한이 핏줄이라는 이유로 외삼촌에게 이어질 수 있어.”

    사기꾼이 귀를 후비며 말한다.

    “참 애매한 상황이다. 아이의 입장에서 원한이 쌓일 만하지. 그런데 또 그걸 지켜볼 수도 없잖아.”

    “그러게.”

    * * *

    - 여보. 오는 길에 마트에 들려서 콩나물하고 계란 좀 사다 줘.

    안우민은 콩나물을 담고는 카트를 민다.

    아이들의 과자가 잔뜩 진열되어 있는 곳을 지난다.

    “우리 민서 저 과자 참 좋아했는데.”

    안우민이 쓰게 웃는다.

    계산하기 위해 가던 중 아이들 장난감이 진열되어 있는 곳을 지난다. 그냥 지나치려던 안우민이 그곳으로 카트를 밀고 간다.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변신 로봇과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인형이 한가득이다.

    안우민이 분홍색 머리칼을 가진 인형 앞에 멈춘다.

    - 너무 예뻐. 아빠 사랑해.

    인형을 안고 볼에 잔뜩 침을 묻혀 놓던 딸 안민서의 모습이 떠올라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은 곧 사라진다. 깊은 한숨을 토해낸 안우민이 카트를 밀다 다시 멈춘다.

    여러 종류의 거울이 진열되어 있다. 이를 꽉 깨문 안우민이 거울을 애써 외면하며 카트를 민다. 계산을 마치고 집에 돌아간다.

    “여보. 나 왔어.”

    “왔어?”

    식탁에 앉아있던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피곤이 잔뜩 묻어 있는 얼굴이다. 아니, 어쩌면 피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민서는?”

    아내가 고개를 돌려 닫혀 있는 문을 보고는 쓴웃음을 짓는다.

    “괜찮을 거야. 정말 괜찮을 거야.”

    안우민이 아내를 안는다. 결국 아내는 안우민의 품에 안겨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여보. 우리 민서 어떡해.”

    * * *

    “아저씨.”

    여자는 멍하니 앉아있는 안우민을 보며 짜증을 잔뜩 섞어 다시 부른다.

    “아저씨!”

    “아-, 죄송합니다. 뭐라고 하셨죠?”

    “타이어 바람이 빠졌다고 몇 번을 말해요.”

    “정말 죄송합니다. 금방 봐 드릴게요.”

    안우민이 여자의 차를 확인하고 타이어에 바람을 넣어준다.

    “얼마에요?”

    “서비스입니다. 다음에 또 이용해 주세요.”

    “또 오겠어요?”

    여자가 짧게 말하고는 차를 몰아 떠난다.

    끼익-

    안우민이 사무실로 들어가려는데 차가 카센터 안으로 들어온다.

    “어서오세요.”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내린다.

    “엔진 오일 교체하려고 하는데요.”

    “네. 시동 끄지 말고 내리세요.”

    차에서 내린 남자, 인호는 엔진 오일을 교체하는 안우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직 교체할 시기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냥 교체해 주세요.”

    “네.”

    인호가 사무실로 들어가 자판기 커피 버튼을 누른다. 커피를 들고 소파에 앉아 휴대폰으로 뉴스를 검색한다. 커피를 다 마시고 한참이 지나서야 안우민이 사무실로 들어온다.

    “엔진 오일 교체 마쳤습니다.”

    “얼마죠?”

    “8만 원입니다.”

    인호가 현금으로 지불한다.

    “감사합니다. 연락처 남겨 주시면 엔진오일 교체 시기 문자로 발송해 드리거든요.”

    “네. 010 3647…….”

    인호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안우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저기, 사장님.”

    “네?”

    “혹시 최근에 주변에서 이상한 일이 생기지 않았나요?”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일단 전 이런 사람입니다.”

    - 극락 흥신소 소장 정인호.

    “극락 흥신소요?”

    “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주 유명한 곳이죠.”

    “뭐 하는 곳이죠? 사람들 뒷조사하고 그런 곳입니까?”

    “뭐 조사도 하고, 해결도 하고 그래요. 그런데 가장 잘하는 일은…….”

    인호가 씨익 웃는다.

    “비상식. 초자연. 이쪽 계통이에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네요.”

    “최근 1년 사이에 집에 새로운 물건이 들어왔을 겁니다. 그리고 그 물건이 들어 온 이후 가족 중 누군가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했을 거예요.”

    “당신 누구야?”

    안우민이 이를 꽉 깨물며 말한다.

    “뭐 하는 사람이야!”

    인호가 눈으로 아래쪽을 바라본다.

    “극락 흥신소 소장 정인홉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상식적이지 못한 일, 초자연적인 일을 전문적으로 해결하죠. 후우-, 안우민 씨.”

    “날 알아?”

    인호가 안우민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네. 안민영 씨 동생 안우민 씨 되시죠?”

    * * *

    “누나는 미혼모였어요.”

    안우민이 잔을 비운다.

    “부모님은 당장 애를 지우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누나는 싫다고 했죠. 결국 누나는 집을 나갔어요. 꼭 누나 때문은 아니지만 다음 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 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죠.”

    인호가 안우민의 잔을 채워준다.

    “저도 사람이다 보니 누나가 미웠어요. 부모님 돌아가신 게 누나 때문인 것 같고 그래서요. 인연을 끊었죠. 찾아볼 생각도 안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전화를 받았어요.”

    안우민이 입술을 질겅이고는 다시 잔을 비운다.

    “조카가 죽었다고. 제주도로 갔죠. 사람들이 소곤대더라고요. 누나가 조카를 놔두고 바람이 나서 도망쳤다고. 조카는 누나를 기다리다 그렇게 죽었다고. 그래서 밤마다 서럽게 운다고.”

    안타까운 이야기다.

    “그때 누나가 보자고 했을 때 봤어야 했는데.”

    안우민이 괴로운 듯 머리를 쥐어뜯는다. 테이블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뭘 가지고 오셨죠?”

    “…… 거울이요. 죽은 조카가 손에 꼭 쥐고 있던 거울이래요. 누나와의 추억이 담긴 거울 같아 챙겨왔어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누나는 왜 만나지 않으신 겁니까?”

    “누나를 만나기로 한 날이었어요. 비행기 표를 끊고 공항까지 갔어요. 그런데 비행기를 타기 직전 와이프한테 전화가 왔어요. 우리 민서가 아프다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갔어요.”

    “하아-.”

    인호가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그렇게 된 거군요.”

    안우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호를 향해 허리를 숙인다.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우리 민서 좀…….”

    안우민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우리 민서 좀 도와주세요.”

    * * *

    현관문이 열린다.

    “왔어?”

    식탁에 앉은 아내는 들어서는 안우민을 보지도 않고 말한다. 그러다 뭔가 이상함을 느껴 고개를 든다.

    “누-, 구세요?”

    “우릴 도와주실 분이야.”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릴 돕다니?”

    안우민이 닫혀 있는 딸 안민서의 방문을 바라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민서가 무슨 문제라도 있다는 거야?”

    아내가 인호를 쏘아보고는 안우민의 팔을 잡아 흔든다.

    “아니야. 아니잖아. 우리 민서 이상한 거 아니야. 그냥 조금 힘들어서 그래. 내성적인 애들 많잖아. 우리 민서도 그런 거야. 곧 괜찮아질 거야.”

    “여보!”

    안우민이 아내의 어깨를 잡고 큰 소리로 외친다.

    “그게 아닌 거 당신도 잘 알잖아.”

    “아니야. 정말 아니야.”

    초점 없는 눈으로 중얼거리듯 말하는 아내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우리 민서 아니야. 괜찮아질 거야. 의사 선생님도 그랬잖아.”

    인호가 안우민을 바라본다. 안우민이 고개를 끄덕이자 닫혀 있는 방문 앞으로 간다.

    “저기요. 거길 왜 가요?”

    “여보!”

    안우민이 아내를 뒤에서 꼭 끌어안는다.

    인호가 문고리를 잡아 돌린다. 하지만 문은 안에서 잠겨 있다.

    “문 앞에 열쇠 있습니다.”

    방문 앞에 열쇠가 떨어져 있다. 열쇠로 문을 연다. 문을 열고 안을 살핀다.

    안우민의 딸 안민서가 인호를 등진 채 방 가운데 앉아 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가는 혼자 남아 거울 보다가.”

    안민서가 천천히 몸을 돌린다. 몸이 많이 아픈 듯 눈 밑이 새카맣다. 입 주변에 립스틱으로 웃는 모양을 그렸다. 안민서는 거울을 들고 있다.

    인호가 거울을 바라본다.

    그 거울 속에는 환하게 웃는, 눈동자가 붉은 여자아이가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