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79화 (79/190)

제79화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가는 혼자 남아 거울 보다가-.”

거울 속 아이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엄마가 섬 그늘에…… 혼자 남아 거울 보다가…….”

아이의 눈이 빨갛게 변한다.

“왜 안 오는데! 왜 안 와! 헨젤과 그레텔은 어떻게 됐는데!”

* * *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제주도 공항에 도착해 렌트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이민정은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함께 온 인원이 많다 보니 30인승 버스를 렌트하고 기사분까지 고용했다.

“우와-!”

도착한 풀빌라를 본 이민정이 입을 쩍 벌린다.

“어때? 쥑이지?”

땡초가 어깨를 으쓱한다.

“네. 쥑이네요.”

“크크, 내가 이 정도야.”

땡초의 인맥으로 구한 풀빌라다. 워낙 고급 풀빌라라 몇 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하지만 풀빌라 주인이 땡초의 지인이라 바로 예약을 할 수 있었다.

각자 짐 정리를 위해 흩어졌다.

“휴우-, 이 조합 뭔데?”

인호가 땡초와 뚱보를 보며 고개를 흔든다.

“뭐 어때서? 좋고만.”

풀빌라의 방은 모두 네 개다.

그중 하나는 이민정과 정재훈 검사실에 있는 유미소가 사용하고 두 개는 각각 정재훈 일행, 땡초의 부하 일행이 사용하게 되었다.

남은 방에 인호와 땡초, 뚱보가 지내게 되었다.

“인호야. 여기 뒤뜰에 족구장도 있어. 저녁 먹기 전에 내기 족구 한 번 하자.”

“그러시든가.”

“하여튼 무미건조한 새끼.”

짐을 방에 두고 나가니 이민정이 유미소와 함께 풀빌라 곳곳을 누비고 있다.

“바닥이 대리석이에요. 밖에 히노끼 탕도 있고요. 대박. 풀도 굉장히 넓어요.”

“좋겠다.”

“엄청 좋아요. 흐흐, 비키니 챙겨 오길 잘한 것 같아요. 미소 언니. 언니도 비키니 챙겨왔죠?”

“아니. 나는 비키니 아닌데?”

“비키니를 챙겨왔어야죠. 호호. 우리 정원도 구경하러 가요.”

이민정이 정신을 쏙 빼놓고 밖으로 나간다.

인호가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소파에 앉는다. 일행이 하나 둘 모인다.

“태훈 씨 덕분에 호강하네요.”

“하하, 검사님도 별말씀을-. 이따 저녁에 한잔하셔야죠.”

“간만의 휴가니까 허리띠를 풀어볼까요?”

“좋지요. 제가 좋은 술 가져다 놓으라고 미리 얘기 다 해 뒀습니다.”

“술은 소주가 좋지요. 좋은 술 마시면 두드러기가 나는 체질이라.”

땡초가 크게 웃는다.

“검사님. 검사실 식구들하고 우리 애들하고 족구 한 번 어떻습니까?”

“족구요?”

정재훈이 유 형사와 눈을 맞춘다. 유 형사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족구 경기면 내기가 있어야죠.”

“당연하죠. 어떤 내기 할까요?”

땡초가 자신 있다는 듯 부하들을 바라본 후 묻는다.

“돌아가는 날까지 식사, 설거지 당번 어떻습니까?”

“하, 하하. 누가 검사님 아니랄까 봐 내기도 아-주 건전하네요. 좋습니다.”

* * *

“아이씨. 뭔 연기가 이렇게 많이 나는 거야?”

숯불 그릴 위에 고기를 굽는 내내 땡초가 투덜대고 있다.

“고기에 침 튀어요. 그만 궁시렁거려요.”

땡초가 인호를 쏘아본다.

“무슨 공무원들이 족구를 그렇게 잘 차? 범인 안 잡고 매일 족구만 했나?”

“하하, 저희들이야 몸으로 뛰는 사람들이잖아요.”

“검사님. 우리도 몸으로 뛰는 사람들이거든요.”

족구 경기는 땡초의 측근 땅콩이 고군분투했음에도 검사실이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승리했다.

“땡초 아저씨. 고기 엄청 맛있어요.”

이민정이 입안 가득 쌈을 우물거리며 엄지를 세운다. 투덜거리던 땡초가 어깨를 으쓱한다.

“내가 평소에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또 잘하거든.”

부하와 고기 굽기를 교대한 땡초가 인호의 맞은편에 자리 잡는다.

“인호야. 나도 한 잔 줘.”

인호가 땡초의 잔에 소주를 채워준다.

테이블 위에는 고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땡초의 부하들이 밖으로 나가 현지조달해 온 조개와 생선들이 한가득이다.

“멍게가 자연산이라 그런지 향이 죽인다.”

안주가 좋으니 술이 술술 넘어간다.

오랜만에 일상에서 벗어나니 모두가 행복한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아이고, 검사님. 저 이제 나쁜 짓 안 해요. 나쁜 짓 하면 죽는다고 어떤 놈이 엄청 협박을 해서요.”

어느새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른 땡초가 큰소리로 자신은 선량한 사람이라며 외쳐댄다.

유 형사는 검사실 계장과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고 이민정과 유미소는 내일 날이 밝기 무섭게 쇼핑을 가겠다며 계획을 세우고 있다.

테이블 옆 티테이블 위에도 음식들이 차려져 있다. 앉아있는 사람은 없지만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곳에는 사기꾼과 영감, 그리고 영체화한 뚱보가 자기들만의 먹방을 찍고 있다.

한참 즐거운 식사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어, 왔어.”

땡초가 아는 체한다.

“여기 주인.”

땡초의 소개로 모두가 고맙다며 인사를 건넨다. 덕분에 좋은 곳에서 잘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풀빌라의 주인은 은근슬쩍 땡초 옆자리를 차지한다.

“안녕하십니까. 정 검사님이시죠. 정현 건설 이상두라고 합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이제 정말 건설사 대표님이시죠?”

“당연하죠. 저 이상두 정말 착실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건 제가 보증합니다. 이 녀석 깨끗하게 손 씻었습니다.”

이상두의 이전 직업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은 대화다.

“땡초 형님.”

“응?”

“전에 해주신 말씀 있지 않습니까?”

“어떤 말?”

“그, 귀신.”

“아-.”

땡초가 인호를 힐끔 바라본다. 이상두가 명함을 꺼내 인호에게 건넨다.

“정현 건설 이상두라고 합니다.”

“네, 정인호에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대단한 일 하고 계신다죠.”

“대단한지는 모르겠고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죠.”

“하하, 저한테도 이상한 것들이 붙어 있습니까?”

‘이상한 것들’이라는 표현에 사기꾼 등이 이상두를 쏘아본다.

“다행히 없네요.”

이상두의 곁에는 악령들이 들러붙어 있거나 하지 않았다. 깡패로 살면서 아주 나쁜 짓은 하지 않은 듯했다.

“저기 괜찮으시면 제가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부탁이요? 죄송한데 제가 쉬러 온 거라서요.”

“아-, 그러시죠. 당연히 쉬러 오셨죠.”

이상두가 머쓱하게 웃으며 땡초 앞에 놓인 잔을 들어 마신다.

“무슨 일로 그러시는데요?”

“제가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여기하고 비슷한 풀빌라를 지으려고 했었거든요.”

과거형으로 말하는 것을 보니 계획을 철회한 듯하다.

“제가 풀빌라 지으려는 동네에 이상한 소문들이 돌아서요.”

“이상한 소문이요?”

“네. 밤만 되면 어린 여자애가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가까이 다가가면 막 비명소리도 들리고요.”

“그래요? 정말 이상한 일이네요. 그래서 건설 포기하신 거예요?”

이상두가 인호의 잔을 채워준다.

“그건 아니고요. 작년부터 노랫소리하고 비명소리도 안 들리긴 하는데. 그냥 찝찝해서 포기했어요.”

“그러세요? 그러면 뭘 부탁하려고 하셨는데요?”

“그냥 찝찝해서요. 여기서 그리 안 멀거든요. 뭐가 있는지라도 알면 덜 찝찝할 것 같아서 말이죠.”

“위치 알려주세요. 오며 가며 확인해 볼게요.”

작년부터 이상 현상이 멈췄다면 그곳에 있는 망령이 저승사자와 함께 먼 길을 떠났거나 다른 곳으로 갔다는 뜻이다.

“거기가 어딘가 하면…….”

* * *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를 본 후 이민정과 유미소는 면세점으로 쇼핑을 떠났다. 몇몇은 어제 마신 술 때문인지 풀빌라로 돌아갔다.

“인호 씨는 어디 갈 거예요?”

정재훈이 묻는다.

“어제 들은 곳에 들려보려고요. 가서 별거 없으면 돌아가서 히노끼 탕에서 몸이나 풀려고요.”

“같이 갈까요?”

두 사람이 30인승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없어 버스는 풀빌라로 돌려보내고 택시를 탔다.

“이 주소로 가주세요.”

주소를 들은 택시 기사가 룸미러로 뒷자리를 본다. 거울 속에서 기사와 눈이 마주친 인호가 묻는다.

“왜 그러세요?”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알고 가시는 겁니까?”

“대충은요.”

“거기 귀신집 있는 곳이에요. 그래도 가시려고요?”

“네, 가주세요.”

거리가 멀지 않고 도로에 차가 많지 않아 택시는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택시 기사는 둘을 내려주고는 바로 돌아갔다.

몇 가구 살지 않는 동네였다. 인호가 주위를 살피다 한쪽에 시선을 고정한다.

“저긴가 봅니다.”

“네.”

제주도 특유의 현무암으로 쌓은 낮은 담 너머로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고 방치된 것으로 보이는 집이 한 채 있었다.

방이 하나, 그리고 창고 용도로 사용했을 것 같은 독립된 작은 건물 하나가 전부다.

안으로 들어서니 마당에는 잡초가 한가득이다.

“누군데 귀신 집에 들어가는 거야?”

두 사람이 들어온 입구에 한 할머니가 서 있다.

“잠시 둘러보려고요.”

“거기 있다 큰일 나. 빨리 나와.”

“네, 할머니. 지금 나가려고 했어요.”

인호가 몸을 돌리자 정재훈도 그 뒤를 쫓는다.

“왜 이렇게 일찍 나오세요?”

“저기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요? 마을 할머니도 귀신집이라고 하잖아요.”

“전에는 망령이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없어요.”

흐릿하지만 망령의 기운이 분명 남아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흔적일 뿐이었다.

“왜 그러세요?”

걸음을 옮기다 몸을 돌려 집을 바라보는 인호에게 정재훈이 물었다.

“그게 조금 묘해서요.”

“네?”

“분명 저기 있던 망령은 악령이 아니에요. 그런데 기운이 매우 탁해요.”

인호가 여전히 집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에게 묻는다.

“할머니 저기 살던 사람 아세요?”

“알지. 잘 알고말고.”

“누가 살았었어요?”

“엄마하고 딸이 살았지. 엄마가 과부 해녀였는데 바람이 나서 도망쳤어.”

“도망을 쳐요? 딸을 두고요?”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그날 분명히 봤어. 혜민이 엄마가 예쁘게 차려입고 버스 타는 거 내 두 눈으로 봤어. 그리고 본 사람이 없어.”

인호가 안타까운 듯 탄성을 토해낸다.

엄마가 떠나고 혼자 남은 딸이 결국 죽었다는 뜻이리라.

“혜민이 그 어린 것이 혼자 엄마를 기다렸어. 무섭다고 밖에 나왔으면 동네 사람들이 챙겨줬을 텐데 미련한 것이 혼자 그렇게 가 버렸어. 동네 사람들이 장례도 치러주고 뼈도 바다에 잘 뿌려줬어. 그런데 원한이 컸던 게지. 계속 남아서 바람나 도망친 엄마를 기다렸으니.”

“작년부터 갑자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면서요.”

“혜민이 엄마 동생이라는 녀석이 왔다 갔어. 그 이후로 혜민이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아.”

할머니가 혀를 쯧쯧 찬다.

“혜민이 떠난 후에도 귀신집이라고 아무도 저 집을 사려고 하지 않아. 덕분에 동네 집값도 죄다 떨어졌어.”

“네, 잘 알겠습니다. 저희는 이만 가 볼게요.”

인호가 몸을 돌린다.

택시를 기다리는데 정재훈이 묻는다.

“가족을 만나서 한을 푼 걸까요?”

인호가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뒤를 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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