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78화 (78/190)
  • 제78화

    “하, 하하.”

    “왜 웃으세요?”

    “아니에요.”

    바텐더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보여주었다. 여자 세 명이 분수를 배경으로 나란히 앉아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다.

    그중 두 명은 인호에게 사진을 보여준 바텐더와 송경우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바텐더다.

    마지막으로 한 여자는 바로 박갑수의 굿판에서 본 여자 망령이었다.

    “자기가 죽었는데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고 원한을 품은 건가?”

    “네? 뭐라고 하셨어요?”

    “아니에요. 혼잣말이에요. 그런데 저 두 분은 원래 친했습니까?”

    송경우가 저 바텐더와도 연인 관계로 발전한 상황이라면 여자 망령이 또 해코지할 수도 있다.

    “네. 친하죠. 윤아 소개해 준 것도 선영 언니에요.”

    “저분 성함이 선영 씨세요? 죽은 분이 윤아 씨고?”

    바텐더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오늘 이상하네요. 처음 보는 손님이 묻는다고 이런 얘기를 모두 하고.”

    “제가 조금 편한가 보죠. 술 잘 마셨어요.”

    “가시게요?”

    “네.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생겨서요.”

    * * *

    인호는 차에 탄 채 바의 입구를 지켜보고 있다. 간판 불이 꺼지고 인호를 상대했던 바텐더가 먼저 나온다. 그녀는 곧 다가오는 택시에 올라타 떠난다.

    잠시 후 선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바텐터가 밖으로 나온다. 마지막으로 나온 것인지 문단속을 한다. 인호가 차에서 내려 다가간다.

    “안녕하세요.”

    “누구-. 아-, 조금 전에 오셨던 분이죠?”

    “네. 전 이런 사람입니다.”

    인호가 명함을 건넨다.

    박선영은 명함을 보고는 의아한 듯 인호를 쳐다본다.

    “흥신소요?”

    “네. 극락 흥신소 소장입니다.”

    “혹시 누가 제 뒷조사시켰나요?”

    “그런 일 없습니다. 그저 궁금한 것이 있어 여쭈려고요.”

    박선영이 인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걸음을 옮긴다.

    “저도 피곤해서 시간 오래 못 드려요.”

    “하하, 금방이면 됩니다. 커피 한잔하실까요?”

    근처에 24시간 운영하는 커피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긴다. 주문한 커피를 들고 박선영이 기다리는 테이블로 향한다.

    “늦은 시간인데 커피 드셔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괜찮아요. 궁금하신 건요?”

    “윤아 씨라는 분에 대해 알고 싶어서요.”

    “…….”

    박선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뭐 하는 분이세요? 혹시 형사님이세요?”

    “아까 명함 드렸잖아요. 극락 흥신소 소장이에요.”

    “흥신소 분이 왜 윤아에 대해 궁금해하는데요? 윤아 죽은 거 몰라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시는데요? 억울하게 죽은 아이 일은 왜 자꾸 캐고 다니는데요?”

    억울하게 죽었다는 말에 인호가 볼을 긁적인다. 박선영은 윤아라는 여자의 죽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선 오해를 풀어야 할 것 같다.

    “명함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대한민국 영매협회 회장입니다.”

    “영매협회요? 거긴 뭐 하는 곳인데요?”

    “말 그대로 영혼과 소통하는 사람들이 속해 있는 곳이죠. 제가 회장이고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인호가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 박선영을 똑바로 바라본다. 그의 눈에 푸른 기운이 일렁인다. 박선영이 흠칫 몸을 떤다.

    “잠시 실례할게요.”

    인호가 테이블 위에 올려 둔 박선영의 손을 살짝 터치한다.

    “저기 밖을 보세요. 전봇대 옆에 누가 있죠?”

    “네. 그러네요.”

    누군가 등을 보이고 서 있다. 이상하게도 그의 몸 주변에 희미한 푸른빛이 일렁인다.

    그때 등을 보이고 있던 이가 천천히 몸을 돌린다.

    “꺄악-!”

    박선영이 뾰족한 비명을 토해내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몸을 돌린 이의 얼굴이 너무나도 흉측했기 때문이다.

    “딱 봐도 교통사고, 그것도 뺑소니에 죽은 망령이네요. 자기가 사고 난 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예요.”

    인호가 다시 박선영의 손을 살짝 건드린다.

    “이제 괜찮아요.”

    “네?”

    “괜찮다고요. 이제 안 보일 거예요.”

    “저, 정말이에요.”

    “그렇다니까요.”

    박선영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린다. 조금 전 흉측한 얼굴의 망령이 서 있던 곳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전 죽은 이를 볼 수 있고 소통도 할 수 있어요. 잠깐이긴 하지만 조금 전처럼 다른 사람에게도 그 힘을 부여할 수도 있고요. 이제 믿으시겠어요?”

    박선영이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윤아 씨의 죽음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오늘 그쪽 분이 만난 송경우 씨 때문이에요.”

    “경우 오빠요? 경우 오빠가 왜요?”

    “그분 결혼 직전이었던 것은 아세요?”

    박선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그 결혼할 여자분이 죽은 것도 아시겠네요.”

    “네. 경우 오빠에게 들었어요.”

    “제가 죽은 예비 신부분 한풀이 굿하는 곳에 갔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죽은 예비 신부가 아니라 윤아 씨를 봤어요.”

    쨍그랑-

    “어머-!”

    잔을 들어 올리다 떨어트린 박선영이 깜짝 놀란다. 인호가 직원을 불러 수습한다.

    “왜 그렇게 놀라세요?”

    인호가 박선영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조금 전 윤아 씨가 억울하게 죽었다고 했죠? 혹시 그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 * *

    인적이 드문 도로.

    인호는 정재훈 검사와 함께 시동이 꺼진 차에 타고 있다.

    - 경우 오빠와 윤아는 아주 많이 사랑했어요. 윤아의 꿈이 배우가 되는 거라서 결혼을 하진 못했지만요.

    정재훈이 휴대폰을 인호에게 보여준다.

    “임유성. SS 엔터테인먼트 대표예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다.

    “상계동 일대에서 활동하던 유성파 라는 조직의 보스였어요. 다른 조직에게 밀려난 후에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했어요. 조연급 배우 몇 명 데리고 있고 아이돌 그룹도 하나 있어요. 배우 지망생, 아이돌 연습생들도 스무 명이 넘고요.”

    인호는 정재훈의 설명을 들으며 박선영의 말을 떠올린다.

    - 윤아는 SS 엔터테인먼트라는 곳에 소속되어 있었어요. 드라마, 영화 단역 배역 따다 주기도 하고 피팅 모델, 모터쇼 모델 일을 알선해 주기도 했어요.

    “뭐 보이는 것 없습니까?”

    정재훈이 무전기에 대고 묻자 이런저런 대답들이 흘러나온다.

    그때 밝은 빛이 어둠을 밀어낸다. 인호와 정재훈이 몸을 숙인다. 검은색 외제 세단 두 대가 연이어 지나간다.

    “47 러 XXXX, 36 오 XXXX. 차적조회 바랍니다.”

    5분이 지나기 전에 두 대의 차가 더 지나간다.

    “제일 먼저 간 차는 XX 그룹 기획실장 차고, 그 다음은…… 하아, 안양지검 박수광 차장 검사 차네요. 그 다음은…….”

    - 하루는 윤아가 파티에 초대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파티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잘 모른다고 대표님이 가자고 했다더라고요. 기분이 이상해서 가지 말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냥 가서 자리만 채워주면 된다고 했다고 기어코 거길 갔죠.

    “검사님. 2년 전 CCTV 자료는 폐기가 됩니까?”

    “진즉에 폐기됐죠.”

    “도로에 있는 CCTV는 보통 얼마나 보관합니까?”

    “정확하진 않지만 한 달은 넘지 않을걸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 그 파티에 다녀온 후 윤아가 평소와 달라 보였어요. 경우 오빠 전화도 피하고 바에 온다고 하면 급한 일 있다고 나가기도 했어요.

    인호와 정재훈이 자세를 낮춘다.

    “검은색 벤 번호는 29 하 XXXX.”

    - 치익-. SS 엔터테인먼트에서 렌트한 차량입니다.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은 정재훈이 인호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 * *

    - 속보입니다. 서울 중앙지검 정재훈 특수 5부 부장검사가 연예 기획사의 성상납 현장을 급습하여 관련자들을 전원 검거했습니다. 성상납 대상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대기업 오너 일가, 현직 차장 검사, 언론 관계자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었습니다.

    고급 세단 한 대가 멈추자 곧 주차장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주차장 문이 열리는 사이 한 남자가 차로 다가간다.

    똑- 똑-

    뒷자리 창문을 두드린 사람은 인호였다.

    창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안녕하세요. 이후석 총재님이시죠?”

    “누구신가?”

    “전에 한 번 본 적 있는데요.”

    “흐음-, 우리 당 당원이신가?”

    “아니요. 따님 한풀이 굿할 때 저도 거기 있었거든요.”

    이후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잠시 대화 가능할까요?”

    “아니. 할 이야기 없네.”

    이후석이 창문을 올린다. 인호가 창문 틈 사이로 팔을 넣는다.

    “그러다 다쳐!”

    “괜찮습니다. 그리고 잠시면 됩니다.”

    “5분.”

    짧게 말하는 이후석을 보며 인호가 씨익 웃는다.

    “5분이면 충분하죠. 성윤아라는 이름 아세요?”

    이후석의 몸이 움찔한다.

    “모르네.”

    “아실 텐데요. 아니, 모르시려나? 그런 곳에서 만난 여자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아셔야 할 텐데요. 따님 죽음과도 연관이 되어 있는 일이니까요.”

    “헛소리! 우리 재인이는 심장마비로 죽었어.”

    인호는 호통을 치는 이후석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따님의 사인이 심장마비가 아니라면요? 아, 심장마비이기는 했겠네요. 너무 놀라서, 너무 무서워서 심장이 멈췄을 테니까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꼭 이렇게 딸을 잃은 아비의 가슴을 헤집어야 하나!”

    “그러면 총재님은 왜 그러셨어요? 남의 집 귀한 딸에게, 한 남자의 사랑하는 연인에게 왜 그러셨어요?”

    “뭘 말이야?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2년 전 9월이었을 거예요. 가평 별장, SS 엔터테인먼트, 연예인 지망생. 이래도 모르시겠어요?”

    “몰라! 김 기사. 그냥 들어가.”

    인호의 눈에 푸른 빛이 일렁인다. 인호가 이후석의 어깨를 가볍게 터치한다.

    “크헉-. 뭐, 뭐야!”

    이후석은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여자를 보고는 비명을 내지른다. 푸른빛과 은은한 붉은빛이 오묘하게 섞여 있는 망령은 성윤아였다.

    “모두 다 너 때문이야!”

    성윤아가 손을 뻗어 이후석의 목을 조르려 한다.

    “윤아 씨. 거기까지 합시다.”

    “네가 뭔데! 죽여버릴 거야!”

    “산 사람은 산 사람의 법으로 처벌받아야 합니다. 이미 윤아 씨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어요.”

    인호가 고개를 까딱인다.

    성윤아가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린다. 인상을 와락 구기고 있는 저승사자가 서 있다.

    “망자 성윤아.”

    성윤아가 저승사자의 시선을 외면한다.

    “망자! 성윤아!”

    저승사자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펑- 퍼펑- 펑-

    주변의 가로등과 이후석의 차 라이트가 일제히 터지며 주위가 어둠으로 물든다.

    인호가 저승사자를 힐끔 바라보며 ‘잠시만’이라고 속삭인다. 못마땅한 눈빛으로 인호를 쏘아보는 저승사자.

    “총재님. 2년 전 그날 총재님은 옆에 있는 성윤아 씨를 성폭행하셨어요. SS 엔터테인먼트 대표라는 사람이 수면제를 탄 술을 마시고 잠이 든 성윤아 씨를 말이죠.”

    “나, 나는……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런 일은 비일비재해.”

    “그렇죠. 이 주옥같은 세상이 너무 썩어서 그런 더러운 일이 아주 많죠. 그런데 그 일 때문에 성윤아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성윤아의 무서운 눈빛에 이후석은 고개도 돌리지 못한다.

    “왜인지 아세요? 단 한 번, 그 단 한 번에 성윤아 씨가 아이를 가져 버렸거든요. 그래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 밀어내고 결국 죽음을 택한 거예요.”

    인호가 이후석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당신 때문에. 아시겠어요? 그래서 따님이 죽은 거예요.”

    한숨을 길게 토해낸 인호가 저승사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망자 성윤아.”

    “네.”

    “산 사람들 일은 산 사람들에게 맡깁시다. 복수를 해 봐야 당신 손에 더러운 피가 묻을 뿐이에요. 어서 갑시다. 해가 뜨기 전에 가려면 서둘러야 해요.”

    차 뒷좌석에 있던 성윤아가 저승사자 옆에 서 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길 바랍니다.”

    이미 악한 기운에 물들었기에 좋은 곳으로 가긴 힘들 것이다.

    뒷좌석의 이후석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성윤아가 저승사자와 함께 떠난다.

    인호가 정장 상의 윗주머니에서 펜을 꺼낸다.

    “도청기입니다. 우리들이 나눈 대화는 서울중앙지검 특수 5부 정재훈 부장검사가 모두 들었습니다. 그러니 날이 밝으면 직접 가도록 하세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이후석을 뒤로한 채 인호가 걸음을 옮긴다.

    송경우가 이후석의 딸 이재인을 만나 결혼을 약속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성윤아의 죽음에 대한 대가를 받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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