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77화 (77/190)
  • 제77화

    사실 이번 일에서 박갑수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아직 밝혀진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이후석에게 사실을 그대로 전달할 수도 없었다.

    자칫 분노한 이후석이 박갑수에게 해코지를 할 수도 있다.

    아무리 박갑수가 인맥이 넓다 해도 현 여당의 총재가 손을 쓰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인호처럼 망령을 직접 볼 수도, 만신당을 오랫동안 비워둘 수도 없으니 이번 일을 해결할 사람은 인호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곧장 만신당을 떠나려 했지만 한 사람의 방문으로 조금 미뤄지게 되었다.

    “먹구름이 낀 것처럼 음흉한 기운이 모여있다 했더니 귀신 들린 놈이 있었구나.”

    “하, 하하. 계율을 밥 먹듯이 어기는 스님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끼 이놈. 누가 계율을 어긴단 말이냐?”

    “계율을 지키지 않으려고 법명도 불계로 하신 것 아닙니까?”

    맨들맨들하게 머리를 민 스님이 안으로 들어온다.

    불계 스님.

    인호가 몸을 담고 있는 계통에서 아주 유명한 스님이었다.

    카톨릭에 구마 사제가 있다면 불교에는 제마승除魔僧이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은 구마 사제들과 흡사했다.

    불계 스님은 그런 제마승들 중 수장격에 있는 사람이었다.

    인호와 불계의 인연은 아주 깊다. 인호가 어렸던 시절 아버지가 먼 곳으로 갈 일이 있어 한 달 동안 불계에게 맡겼었다.

    아버지가 죽은 후 인호가 활동할 때도 여러 번 같은 일로 마주치곤 했다.

    “스님. 오셨습니까. 잘 지내셨지요?”

    “박수께서도 잘 지내셨습니까? 오는 길에 들으니 굿을 하신 거 같던데. 힘들 때 괜히 찾아온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바람 따라 구름 따라오며 가다 보니 예까지 오게 되었지요.”

    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뀐다.

    “또 밥 축내고, 술 축내려고 오셔놓고 딴소리하시긴.”

    “이놈아. 축내긴 뭘 축내. 그저 다 지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는 게지.”

    “숟가락 하나요? 혼자서 5인분은 드시는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니죠.”

    “오랜만에 만났는데 많이 까칠하다?”

    불계가 눈을 부라린다.

    “지난번에 제가 다 해결해 놓은 일 막타치고 꿀꺽하셨잖아요. 그때 제가 손해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 아세요?”

    “기껏해야 자동차 기름값이나 손해 봤겠지. 니놈 하는 일이 본래 투자금이 필요 없지 않느냐.”

    “누가 그래요? 누가! 조사하려고 발품 팔고, 그러면 밥도 먹어야 하니 식대 들어가고, 잠은 땅바닥에서 잡니까?”

    “하여튼 어린놈이 돈독이 올라서. 네 아버지는 안 그랬는데 누굴 닮아서 그러냐?”

    “아버지는 저보다 더 심했거든요.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저 어렸을 때 한 달 돌봐 주시고 아버지한테 돈 엄청 많이 받은 거 누가 모를 줄 알아요?”

    불계가 딴청을 피운다.

    “하하, 그만들 하세요. 굿을 했더니 출출하네요. 스님. 식전이시면 함께 식사나 하시죠. 혼자 먹으면 밥이 맛이 없지요.”

    “그러면 그럴까요? 그보다 식사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곳에 오다 보니 사특한 기운이 느껴지던데요.”

    불계가 인호를 바라본다.

    인호는 모르겠다는 듯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불계가 눈을 가늘게 뜬다.

    “내가 느낀 것을 네놈이 모를 리 없지 않느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저 이만 갑니다.”

    인호가 박갑수에게 인사한 후 자리에서 일어선다.

    “스님도 가뜩이나 돈 궁해서 굿 벌리는 판에 여기서 오래 빌붙지 마시고 바로 가세요.”

    “이놈아! 누가 빌붙는다고 그래!”

    인호는 손으로 귀를 막으며 밖으로 나가버린다. 그런 인호의 뒷모습을 보며 불계가 피식 웃는다.

    “저 녀석이 해결할 모양입니다?”

    “이런 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인호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 * *

    서울로 돌아온 인호는 가장 먼저 정재훈에게 연락했다.

    이후석의 딸이 죽은 후 시체를 부검했는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 부검하지 않았습니다. 의사의 사망 소견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이재인의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다른 병이라거나 큰 사고로 죽었다면 그러려니 했을 테지만 심장마비라고 하니 조금 걸리는 것이 있다.

    바로 박갑수의 굿에서 보았던 여자 망령이다.

    희미하긴 하지만 붉은 기운이 어려있었다. 악령으로 변하는 초기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굿이 진행되고 있을 때는 굿을 망칠 수 없어 입을 다물었고 이후에는 박갑수에게 일부러 말을 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연락한 것은 박갑수였다.

    - 딸의 시신을 봤냐고? 봤지. 고통스러웠는지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일굴이 일그러지는 경우는 단순히 고통을 느낄 때만이 아니다.

    “공포를 느낄 때도 얼굴이 일그러질 수 있지.”

    아직은 의심 단계이긴 하지만 배제할 수는 없다.

    “이번 일의 열쇠는 아무래도 너인 것 같다.”

    인호가 사진 한 장을 검지로 톡톡 두드린다.

    잘생긴 남자 사진이다. 사진 속 주인공은 바로 죽은 이재은과 결혼하기로 되어 있던 송경우였다.

    “소장님.”

    “말해.”

    “제주도 어떠세요?”

    “제주도 좋지.”

    “그럼 제주도로 할까요?”

    “민정아. 나한테 안 물어봐도 돼. 해외만 아니면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정해. 물론 정 검사 쪽하고 이야기는 해야겠지만.”

    “땡초 아저씨네는요?”

    “그 양반은 꼽사리인데 그냥 군소리하지 말고 따라오라고 하면 돼.”

    “아싸! 그럼 제주도다!”

    이민정이 자리에 앉아 제주도에 대해 검색하는지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인호가 휴대폰을 든다.

    “어, 난데. 사람 하나 좀 알아봐 줘.”

    * * *

    저녁 7시가 지나는 시간.

    송경우는 퇴근 카드를 찍고 회사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소주 한 잔 어때?”

    함께 퇴근한 동료의 말에 송경우가 고개를 흔든다.

    “조금 피곤하네.”

    “그래. 그런 일을 겪었으니 힘들 만도 하지. 들어가서 푹 쉬어. 나중에 기운 좀 차리면 그때 한잔하자.”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송경우가 의자에 앉는다. 잠시 후 버스가 도착했다. 피곤한지 빈자리로 가서 앉기 무섭게 눈을 감았다.

    누군가 옆에 앉자 송경우가 눈을 뜬다. 옆자리에 앉은 남자를 보고는 주위를 살핀다. 빈자리가 아직 많았다. 송경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재인 씨 떠나보내고 힘든가 봐요.”

    “누굽니까.”

    “내가 누군지 알 필요는 없고요. 아쉽네요. 동화 같은 일이 일어날 뻔했는데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렇잖아요. 평범한 사람이 재벌가, 정치인, 법조인의 자식과 결혼하는 일은 동화나 드라마 같은 곳에서나 가능하잖아요. 현실이 다른 건 경우 씨도 아시죠? 그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이너써클이 있어요. 누군가 그 안에 들어오는 걸 극도로 경계하죠.”

    송경우 옆에 앉은 남자, 인호가 시선 한 번 주지 않은 채 말을 잇는다.

    “아쉽지 않으세요?”

    보통은 슬프지 않냐고 물어보는 것이 정상이다. 정상적이지 않은 질문에 송경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두 분 어떻게 만났어요?”

    “대답할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요.”

    인호가 어깨를 으쓱한 후 벨을 누른다.

    “들어가서 푹 쉬세요.”

    그 말을 남긴 채 버스에서 내린다.

    “후우-.”

    멀어지는 버스를 바라본다.

    “아닌가?”

    송경우에게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 굿판에서 봤던 여자 망령이 송경우와 연관되어있다면 그에게 어떤 기운이라도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인했네.”

    송경우는 이재인을 사랑하지 않았다.

    아쉽지 않냐고 질문했을 때 송경우의 반응 때문이다. 그가 만약 이재인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래. 너무 간단하면 재미없지.”

    * * *

    “야, 야! 그거 조심해서 옮기라고! 덩치는 남산만한 놈들이 왜 이리 힘이 없어!”

    인호의 집 이삿날이다.

    땡초와 동생들이 이사를 돕겠다고 왔다.

    덩치가 큰 땡초의 동생들이 가구와 가전제품들을 하나둘 아래로 내린다.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은 인호가 위패를 모신 방에 들어온다.

    위패들은 미리 조심스럽게 이중 포장을 해두었다. 위패를 담은 상자만 열 개가 넘는다.

    “형님. 그것도 나를까요?”

    “됐어. 이건 내가 직접 날라.”

    넥타이, 화염병, 탕탕탕 등 망령들은 자기들의 유골함에 들어가 있다.

    “하하, 형님. 힘쓰는 건 저희들 전문입니다.”

    “그냥 놔두라고!”

    인호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다가서던 땡초의 부하들이 흠칫 몸을 떤다. 평소 인호에게서 볼 수 없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후우-.”

    인호가 손을 들어 마른 세수를 한다. 자신을 떨떠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듯 손을 든다.

    “미안, 미안. 나한테 엄청 중요한 물건이라.”

    “아닙니다. 형님.”

    땡초의 동생들이 나가자 인호가 한숨을 푹 내쉰다.

    “니들 때문에 내가 이게 무슨 꼴이냐.”

    * * *

    이삿짐은 두 대의 트럭을 가득 채웠다. 작은 빌라에서 나온 짐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양이었다.

    “넌 도대체 집에서 뭘 한 거냐? 애들 몇 딸린 집보다 살림이 많은 것 같아.”

    미리 사무실에 와 기다리고 있던 땡초가 도착한 트럭을 보며 혀를 내두른다.

    “애들 몇 딸린 집? 만만치 않을걸요.”

    인호가 피식 웃는다.

    인호는 자기가 날라야 할 물건들을 따로 분류한다.

    “기왕이면 엘리베이터 있는 건물을 사지.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무거운 거 들면 허리하고 도가니가 엄청 아파요.”

    땡초가 작은 상자 하나를 들고 투덜댄다.

    “아니. 깡패였던 사람이 그 작은 것 하나 들고 앓는 소리 하는 거예요?”

    “야! 나 깡패 아니었어.”

    “그럼 뭐였는데요?”

    “대부업자.”

    “어이가 없네.”

    인호가 짐을 내려놓는다. 며칠 동안 날림으로 한 인테리어치고는 꽤 훌륭하다. 짐들이 차례로 옮겨진다. 한가득 쌓여 있는 박스를 보며 인호가 한숨을 내쉰다.

    “일단 사무실로 내려가죠.”

    “정리하는 거 도와 드릴게요.”

    이민정의 말에 인호가 고개를 흔든다.

    “그냥 나 혼자 천천히 할래. 이삿날인데 짜장면 먹어야지.”

    “오오-, 짜장면!”

    땡초의 동생들의 반응이 과하다.

    “형님. 탕수육 먹어도 됩니까?”

    “팔보채도 먹어도 된다.”

    밖으로 우르르 나가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남은 뚱보가 인호에게 은근한 투로 말한다.

    “인호야. 나는 유산슬하고 라조기도.”

    * * *

    아직 짐 정리는 시작도 못 했지만, 이사를 마치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오늘은 아무래도 사무실에서 자야 할 것 같아 소파에 자리 잡는다.

    그때 휴대폰이 울린다.

    “여보세요. 그래? 알았어.”

    인호가 몸을 일으켜 정장 상의를 걸친 후 밖으로 나간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바로 출발한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마포의 바bar였다.

    안으로 들어가 바 테이블 구석진 곳에 자리 잡는다. 술을 주문한 후 반대편 바 테이블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송경우가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아름다운 바텐더가 앉아있었다. 서로 잘 아는 사이인지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주문하신 술 나왔어요.”

    또 다른 바텐더가 술을 내려놓는다.

    “오빠. 저도 한 잔 마셔도 돼요?”

    인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술을 한 잔 따라 앞에 앉는다.

    “이 근처 사세요?”

    “아니요. 그냥 지나다 우연히 들렸어요.”

    “우리 가게 목이 좋긴 하죠. 뭐 하시는 분이세요? 회사원은 아니신 것 같고…… 공무원이세요?”

    “공무원 같아요?”

    “그냥 느낌이 그럴 것 같아서요.”

    인호가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그냥 작은 사업 하나 하고 있어요.”

    흥신소도 사업이라면 사업이다. 엄연히 개인사업자 등록 내고 하는 일이니 말이다.

    인호가 반대편 바 테이블을 보며 묻는다.

    “저분 여기 자주 오세요?”

    바텐더가 인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아-, 경우 오빠요? 아시는 사이세요?”

    “그냥 낯이 좀 익어서요.”

    “자주 오는 편이죠. 예전에 여기서 일하던 동생하고 사귀었거든요.”

    “이야, 능력자신가 보다. 이런 곳에서 일하는 분이랑 사귀기 쉽지 않잖아요.”

    대부분 남자 손님들이 비슷한 마음을 품고 있을 테지만 말이다.

    “오빠가 참 착해요. 그래서 더 안타깝죠.”

    “안타까워요?”

    “네. 그 동생이 2년 전에 죽었거든요.”

    “왜요?”

    바텐더가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자살했어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 바텐더에게 묻는다.

    “혹시 저분이랑 사귀었다는 바텐더 분 사진 있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