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76화 (76/190)
  • 제76화

    인호가 건물주 할아버지를 보며 눈을 깜빡인다.

    “정말 그 가격에 주시겠다고요?”

    “그래. 왜 싫어?”

    할아버지는 보기 좋은 인자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가격은 아니잖아요.”

    “내가 너무 세게 불렀나? 그래도 그 정도는 받아야 하는데.”

    “제가 하는 말이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5억이 말이 돼요? 아무리 골목 안쪽에 외진 곳이라도 서울이잖아요. 꼬마 빌딩들도 수십억은 넘어요.”

    건물주는 인호에게 건물 가격으로 5억 원을 불렀다.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흥분해서 열변을 토하는 인호를 보며 웃기만 할 뿐이다.

    “알잖아. 재산 물려줄 자식도 없고 돈 쓸 곳도 없어. 5억이면 좋은 실버타운 들어가서 대접받을 수 있어. 다른 영감, 할망구들하고 어울리며 마무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래도 5억은…….”

    “자네 아버지한테 내 이야기 들은 적 있어?”

    “아니요.”

    “도움을 많이 받았어. 아니, 자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죽었을 목숨이야. 그러니 더 이상 말하지 말고 내가 하자는 대로 해.”

    “정말 그래도 되겠어요?”

    “안 될 게 뭐가 있어? 파는 사람이 그 가격만 받겠다는데.”

    “죄송해서 그러죠.”

    할아버지가 피식 웃는다.

    “자네는 아버지와 다르네. 자네 아버지는 이 사무실을 5백만 원에 꿀꺽했거든.”

    “정말요?”

    “그래. 말했잖아. 내 목숨을 구해 줬다고. 그래서 그 가격에 준 거야. 자네 덕분에 이제는 조금은 편안하게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할아버지가 마음만 먹었다면 이 건물은 진즉에 팔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인호가 건물을 매입하겠다고 말하길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감사합니다.”

    무슨 말을 해도 할아버지의 마음이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감사는 무슨. 그저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하면 되는 거야.”

    “그럴게요.”

    “그리고 또 하나. 내가 할 말은 아닐 수도 있지만, 결혼은 하도록 해.”

    “…….”

    인호의 시선을 받은 할아버지가 허허 웃는다.

    “자네의 마음 알아. 나는 자네 할아버지도 본 사람이니까. 자네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자네 같은 생각을 했어. 하지만 결국 결혼하고 자식을 낳았지. 그 이유가 무엇일 거 같나?”

    “자기 혼자 당하기 싫어서?”

    인호의 농담에 할아버지가 크게 웃는다.

    “하하하, 그래. 그럴 수도 있겠어.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라.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자네의 어머니, 할머니는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결혼했을까?”

    “생각해 볼게요.”

    “그래. 결정은 자네가 하는 거지. 말 나온 김에 바로 계약하자고.”

    할아버지와 함께 곧바로 공인중개소로 갔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건물을 매입하게 되었다.

    * * *

    “아이쿠, 갓물주님 잘 부탁드립니다.”

    정재훈과 유형사, 박경수가 화장지를 비롯한 몇 가지 선물을 손에 들고 사무실에 방문했다.

    땡초도 동생 몇 명을 데려왔다.

    “아이구, 내가 올 자리가 아니었나 보네.”

    “왜요? 죄지었어요?”

    “설마.”

    인호가 정재훈에게 땡초를 소개해 준다.

    “제 일을 많이 도와주는 형이에요. 술집 몇 곳을 운영하는데 불법적인 일은 일절하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서울지검 특수 5부장 정재훈이라고 합니다.”

    “땡…… 최태훈이라고 합니다.”

    “알아요. 땡초 씨죠? 인호 씨와 자주 만나는 사이시길래 실례를 무릅쓰고 조금 알아봤습니다. 예전처럼 사셨다면 저와 만날 일이 많았을 텐데 아쉽네요.”

    “하, 하하. 하나도 안 아쉬운데요.”

    넓지 않은 사무실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런 모습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인호가 웃는다.

    그리고 보니 조합이 참 묘하다.

    검사와 형사, 그리고 전직 사채업자, 마지막으로 저승사자와 망령들.

    “사람이 많으니까 커피 타는 것도 일이네요.”

    이민정이 웃으며 투덜거린다.

    “나는 그래도 민정 씨가 타주는 커피가 제일 맛있던데요.”

    “검사님. 미소 씨 들으면 섭섭해할 겁니다.”

    “하하, 미소 씨한테는 비밀입니다.”

    유 형사의 말에 정재훈이 뜨끔한 표정을 짓는다.

    “앞으로 계획 있으십니까?”

    “좀 쉬려고요.”

    최근 너무 바쁘게 달려왔다. 정재훈도 그것을 알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인호 씨 덕분에 총장님께 칭찬 많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 한 건데요. 그리고 검사님도 고생 많이 하셨잖아요.”

    “우리 직업이 그래요.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결과를 냈는지가 중요하지.”

    4박 5일 동안 고생하며 잠복을 해봐야 범인을 잡지 못하면 말짱 꽝이다. 우연히 길을 가다 범인과 마주쳐 잡을 수 있다면 그게 최고다.

    “소장님. 우리 이번에는 진짜 워크샵 가면 안 돼요?”

    “워크샵?”

    “기계도 가끔은 쉬게 해줘야 쌩쌩 잘 돌아가는 거예요. 우리 놀러 가요.”

    생각해 보니 놀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경치 좋은 곳에서 며칠 쉬면 힐링도 되고.

    “그럴까?”

    “인호 씨. 그러면 우리도 같이 가죠.”

    “검사님도요?”

    “네. 최근 실적이 좋으니 며칠 휴가 내도 뭐라고 안 할 겁니다. 유 형사님 어때요?”

    “저야 좋죠.”

    생각해 보니 정재훈이 함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극락 흥신소 사무실만 휴가를 간다고 하면 이민정, 그리고 망령들뿐이지 않은가.

    “인호야.”

    “말해요, 형.”

    땡초가 정재훈을 힐끔 쳐다본 후 말한다.

    “나도 같이 가도 되냐?”

    “뭘 그런 걸 물어보면서 눈치까지 보고 그래요? 가고 싶으면 가는 거죠.”

    그렇게 즉석에서 휴가가 결정되었다.

    정재훈이 휴가 날짜를 결정하면 이민정이 일정을 잡기로 약속했다.

    * * *

    이민정이 휴가지 선택으로 머리털을 쥐어뜯고 있을 때, 인호는 계룡산 만신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차를 주차해 놓고 여느 때처럼 산을 올랐다.

    만신당에 도착하니 뛰어놀던 아이들이 인호 주변으로 모여든다.

    이 아이들 모두 평범하지 않기에 바깥세상에서 배척받았다. 심지어 몇몇 아이들은 부모에게까지 귀신 들린 아이라며 버림받기도 했다.

    오늘 따라 만신당 주변이 시끌시끌했다.

    “오늘 굿 있어?”

    아이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진오귀굿하고 있어요.”

    죽은 이의 한을 풀어 주는 진오귀굿은 박갑수의 전공이라 할 수 있었다.

    인호가 아이들을 뒤로한 채 만신당 건물을 돌아 뒤뜰로 간다.

    뒤뜰에는 굿이 한창이었다.

    징, 꽹가리, 장구가 신명 나게 흥을 돋운다. 현장의 열기로 볼 때 굿의 절정이다. 방울과 칼을 들고 춤을 추는 박갑수를 인호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평소에는 말도 험하고 짓궂은 사람이지만 굿을 할 때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특히 진오귀굿을 할 때의 박갑수는 신성해 보일 정도였다.

    죽은 이의 한을 풀어 주는 굿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인호는 오랜만에 박갑수의 굿을 구경할 수 있었다.

    원래는 돈을 주고도 구경하기 힘들었다. 박수무당들의 정점에 서 있는 박갑수기에 굿을 요청한다고 해서 아무나 다 해주진 않았기 때문이다.

    굿이 끝났다.

    박갑수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만신당 안으로 들어갔다. 한바탕 굿을 벌였으니 한동안 앓아누울 것이다.

    다시 앞뜰로 돌아와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들어오시랍니다.”

    “벌써요?”

    굿이 끝난 직후라 기진맥진할 줄 알았는데 벌써 자신을 찾는다는 말에 인호는 조금 놀랐다.

    안으로 들어가니 박갑수는 자기 키만큼이나 큰 쿠션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힘들면 내일 봐도 되지 않습니까.”

    “괜찮아.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돈 필요할 때만 하시잖아요. 돈 떨어지셨어요?”

    “크크, 요즘 애들이 워낙 잘 먹어야지. 그리고 바깥 아이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가르치려면 이것저것 살 것도 많다.”

    인호가 휴대폰을 들어 조작한다.

    박갑수는 옆에 놓아둔 휴대폰에서 ‘띠링’하는 소리가 들리자 바로 확인한다.

    “뭐 하자는 거냐?”

    “뭐가요?”

    “왜 돈을 보내고 그래?”

    “돈을 줘도 뭐라고 해요?”

    “애들 용돈 주듯 30억을 준다고?”

    박갑수의 말에 인호가 씨익 웃는다.

    “요즘 벌이가 좋아서 지갑이 뚱뚱해요. 지갑 다이어트가 절실한 시기입니다.”

    적어도 4, 50억 원 정도를 예상했던 건물을 너무 싸게 매입했다.

    당장 급하게 돈 쓸 곳이 있는 것도 아니라, 박갑수의 선행에 한 손 거들 수 있다면 그것 역시 보람된 일이었다.

    “생각난 김에 만신께도 보내드려야겠네요.”

    곧장 지리산 만신 이혜옥에게도 30억 원을 이체시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혜옥에게 전화가 왔고 대충 얼버무린 후 전화를 끊었다.

    “하여튼 하는 짓만 보면 딱 미친놈이 맞는데.”

    “아직도 돈 많이 남았습니다. 더 필요하시면 말하세요.”

    “됐다. 오늘 굿 5억짜리였다. 한동안 돈 걱정 없었어.”

    “거기에 30억 더하면 꽤 오랫동안 굿한다고 고생 안 하셔도 되겠네요. 그런데 무슨 굿인데 5억이나 해요?”

    박갑수가 서랍에서 사진 두 장을 꺼내어 인호에게 건넨다. 60대로 보이는 남자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다.

    “누군지 알아보겠냐?”

    “흐음-, 여자는 모르겠고 남자는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요.”

    “여당인 민국당 총재 이후석이다.”

    “아-, 뉴스에서 봤구나.”

    여당인 민국당의 총재이다 보니 뉴스에 얼굴이 자주 나와 낯이 익은 듯했다.

    “그 여자가 이후석 딸 이재인이야. 올해 서른 살 됐는데 요절했어.”

    “왜 죽었는데요?”

    “결혼을 이틀 앞두고 심장마비로 죽었어. 대기업 가문 자재하고 결혼하라는 지 애비 가슴에 못 박고 평범한 사람하고 사랑에 빠졌다나 뭐라나.”

    “그렇구나. 그런데 이상하네요.”

    박갑수가 의아한 듯 인호를 바라본다.

    “뭐가 이상한데?”

    “아까 굿판에서 봤던 얼굴은 이 얼굴이 아니었거든요.”

    인호가 이재인이라는 여자의 사진을 들어 올리며 말한다. 박갑수의 눈이 커진다.

    “정말이냐?”

    “설마 제가 이런 걸로 거짓말하겠어요?”

    사진 속의 이재인은 예쁜 편이기는 하지만 눈에 확 띌 정도의 미녀는 아니다. 하지만 인호가 굿판에서 본 여자 망령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이재인과 미모를 비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말이다.

    “아까 굿판에 있던 남자가 결혼하기로 했던 남자인가요?”

    “맞아. 평범한 회사원이지. 그런데 정말 다른 여자였어?”

    “네. 20대 중반 정도? 굉장히 아름다운 여자였어요. 뭐가 그리 좋은지 생글생글 웃고 있던데요.”

    박갑수가 눈을 감는다.

    “나도 이제 늙었나 보네. 신기가 예전만 못한 거야. 여자의 영이 와 있다는 것은 알았어. 당연히 이재인의 영인 줄 알았지.”

    박갑수가 인호처럼 망령을 직접 볼 수 있는 힘은 없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사실 이대로 마무리 지어도 된다.

    어차피 죽은 이들의 문제였다. 이재인의 아버지인 이후석이 굿판에서 위로받은 망령이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턱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박갑수는 이 문제를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다.

    “밝혀내야지.”

    아니나 다를까 박갑수의 눈빛이 변한다.

    “내 굿을 망친 잡귀가 누군지 밝혀내야지.”

    남들은 손가락질하는 무당이지만 박갑수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했다. 그를 통해 신내림을 받아 박수의 길에 들어선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는 한국 내에서 활동하는 박수들의 자존심이자 대부와도 같은 존재였다.

    “감히 내 굿을 망쳐?”

    박갑수가 분노했다.

    이내 분노를 거둔 박갑수가 예의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인호를 바라보았다.

    “도와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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