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75화 (75/190)
  • 제75화

    “오빠. 무서워.”

    “오빠가 옆에 있잖아. 괜찮아.”

    “나 배고파.”

    꼬르륵-

    동생의 배에서 난 소리가 아니었다. 소년, 조현우의 배에서 난 소리였다. 벌써 며칠 동안 남매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좁은 지하실에 갇혀 있었다.

    배도 고픈데다 어둠이 무서운 것인지 동생 조연희가 울먹인다. 조현우는 동생의 입을 틀어막는다.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면 악마가 지하에 내려올지 모른다.

    조연희는 자고 있어 보지 못했지만 조현우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악마가 사람의 몸을 톱으로 썰고 있는 모습을.

    악마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남매를 곧장 죽이지 않고 지하에 가둬두었다. 며칠 전 마지막 음식을 준 후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연희야.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게 뭐야?”

    “피자.”

    “그래. 여기서 나가면 오빠가 꼭 피자 사줄게. 그러니까 배고프고 무서워도 조금만 참자.”

    “알겠어.”

    조현우가 동생을 꼭 끌어안는다. 얼마나 위안이 될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동생의 체온으로 자신이 위안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쿵-

    그때 위쪽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남매가 몸을 부르르 떤다. 조현우는 동생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하지만 그런 노력조차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위쪽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온다.

    “끅-.”

    조현우는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울음을 억지로 참았다.

    빛 사이로 악마가 삐죽 얼굴을 내민다. 악마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저씨 보고 싶었지? 아니라고? 아저씨는 너희들이 많이 보고 싶었는데.”

    * * *

    “이런 산속에 집이 있겠어요?”

    “집이 아니라도 돼.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작업 공간, 그게 아니라면 아이들의 흔적이라도 찾아야 해.”

    인호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해둘 걸 그랬나 봐요.”

    “후회할 때는 이미 늦은 법이지.”

    인호는 걸으며 끊임없이 주위를 살핀다. 인호가 걸음을 멈추고 팔을 뻗었다. 작은 나무의 가지 끝에 무언가 걸려있었다.

    “옷 조각이네요. 딱 봐도 바지가 아니라 윗도리네요. 이 높이에 윗도리 조각이 걸려있다는 말은-.”

    “어린아이라는 뜻이지.”

    인호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진다. 아니, 뛰다시피 산을 오르고 있다.

    “소장님. 저기.”

    박경수가 본 것을 인호도 보았다. 희미하지만 불빛이 확실하다. 인호가 달리기 시작한다.

    박경수와의 거리가 점점 벌어졌지만 속도를 줄이진 않았다.

    불빛이 가까워진다. 근처에 도착한 인호는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곳이 어딘지 알 수 있었다.

    집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작고 볼품없는 오두막이었다.

    주변의 나무가 빽빽해 쉽게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밤이라 불빛이 새어 나와 그나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밤에 이곳에 올 사람은 없을 테니 쉽게 발견되지 않을 만한 장소인 것이다.

    호흡을 가다듬은 인호가 오두막으로 다가간다.

    “안에 누구 있습니까?”

    안쪽에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안에 누구 계십니까?”

    다시 한번 큰 소리로 불러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인호가 오두막의 문에 손을 뻗으려 할 때였다.

    “누구십니까?”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아-, 등산을 왔다 길을 잃었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날이 밝을 때까지만 신세를 질 수 있을까요?”

    인호가 생각하기에도 조잡한 변명이다.

    그리 높지도 않은 산일뿐더러 이곳은 등산로와도 한참이나 떨어진 중턱이다.

    “죄송하지만 그건 안 될 것 같네요. 제가 병이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전염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진 곳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 거죠.”

    인호가 오두막 안쪽을 보려 고개를 기울이자 남자가 인호의 시선을 차단한다.

    “그러면 이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가겠습니다.”

    짧은 순간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때 희미하지만 분명 누군가의 소리가 들렸다. ‘욱, 욱’하는 것이 입이 막혔을 때 내는 소리와 비슷했다.

    “무슨 소리 못 들으셨어요?”

    “아니요. 무슨 소리요? 바람 소리를 잘못 들으신 것 아닌가요?”

    “아, 그런가요?”

    “그럼 이만.”

    남자가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저기요.”

    인호가 다시 남자를 불러 세웠다.

    “왜 그러세요.”

    남자의 얼굴에 짜증이 그대로 묻어난다. 인호가 그런 남자를 보며 씨익 웃는다.

    “연기력이 좋으시네?”

    “네?”

    “연기는 좋으신데.”

    인호가 남자 주위를 빙 둘러보며 싸늘하게 말한다.

    “몸에 덕지덕지 달고 있는 망령들을 감추는 방법은 모르셨나 봐요.”

    “그게 무슨…….”

    인호가 앞으로 내달린다. 위기를 느낀 남자가 황급히 문을 닫았다. 인호는 멈추지 않고 어깨를 앞세워 닫히는 문에 부딪혔다.

    콰직- 쾅-

    “오, 오지 마.”

    남자가 뒷걸음질 친다.

    실내를 확인한 인호가 인상을 와락 찌푸린다.

    금속으로 만든 테이블이 보인다. 사람을 올려두고 죽일 때 사용하던 것 같다.

    피가 흘러 빠져나가는 장치까지 되어 있다. 주위 벽에는 칼, 망치, 톱 등의 도구들이 수십 개나 걸려있었다.

    사방에서 피 냄새가 진동했다.

    남자가 발로 지면을 긁는다. 그러더니 남자의 신형이 푹 꺼지며 사라졌다.

    달려가 보니 아래쪽이 뚫려 있었다.

    인호가 급하게 아래로 내려가니 남자가 헝겊으로 입을 막은 두 아이의 목을 감싼 채 히죽이죽 웃고 있었다.

    “씨발놈아. 그냥 가라고 할 때 갔어야지. 니가 안 가니까 얘들이 죽잖아. 애들아. 너희들 저 아저씨 때문에 죽는 거야. 알겠지? 귀신이 돼서 원망들 해라.”

    인호는 남자의 말에 신경도 쓰지 않고 아이들을 바라본다.

    “현우, 연희 맞아?”

    남자아이, 조현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이다.”

    조금 전 밖에서 남자와 대화할 때 누군가의 소리가 들려 작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두 아이가 살아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니 안심이 됐다.

    “너한테 내가 죽을 수도 있어. 그런데 내가 죽기 전에 이 애들도 죽일 거야. 저승길 혼자 가면 심심하지 않겠어?”

    “후후, 그건 걱정하지 마. 널 기다리는 존재들이 아주 많으니까.”

    남자의 주위에는 이곳에서 죽은 망령들이 원한이 가득한 눈으로 남자를 쏘아보고 있었다.

    개중 몇몇 망령들은 남자를 죽여 달라고 인호에게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헛소리하지 마. 그런다고 내가 쫄 것 같아? 크크, 귀신이 무서웠으면 내가 사람을 죽였을까?”

    “아니. 무서워해야 할 거야.”

    “개수작 부리지 마.”

    “잠시 후면 내 말이 헛소리인지 개수작인지 알게 될 거야. 그리고 넌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

    남자가 인호를 쏘아본다. 인호가 싸늘하게 웃는다.

    “왜 내가 혼자 왔을 거라고 생각해?”

    콰직-

    “으아아악-!”

    아이들의 목을 조르고 있던 남자의 팔이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꺾인다.

    어둠 속에서 박경수가 걸어 나온다.

    “경수. 수고했어.”

    “뭘요.”

    뒤늦게 오두막에 온 경수는 주변을 떠도는 망령들 중 하나의 힘을 빌렸다. 그리고 인호가 대화로 남자의 신경을 긁는 사이 몰래 그의 뒤로 돌아갔다.

    망령의 힘을 빌려 강해진 박경수에게 남자의 팔을 단숨에 꺾어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인호가 남자를 향해 다가간다.

    “경수야. 애들 챙겨라.”

    “네, 소장님.”

    박경수가 애들을 데리고 물러선다.

    “지금부터 고민할 거야.”

    “…….”

    남자는 고통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인호를 바라본다.

    “당장 널 죽이고 싶어. 그게 깔끔하거든.”

    “씨발. 내가 죽는 걸 무서워할 것 같아?”

    포기를 한 것인지 남자가 발악하듯 소리친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너같이 다른 사람 목숨 하찮게 여기는 놈들은 자기도 언젠가 그렇게 죽을 거라는 걸 알거든. 그래서 널 죽이지 않을 거야.”

    “개수작 부리지 마. 이 개새끼야.”

    “대신 죽이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해줄게.”

    인호가 남자의 두 다리를 발로 밟는다. 두 다리마저 부러트린 후 그의 어깨를 툭 친다. 푸른 기운이 일렁이며 남자의 몸으로 스며든다.

    - 니가 날 죽였지? 너도 죽여 버릴 거야!

    - 목을 자르고 팔다리를 자를 거야.

    - 너도 아파야 해. 너도 아파야 해!

    “으아아아아악!”

    남자가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한다. 절대 보여선 안 될 존재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죽인 이들의 망령이 그를 둘러싼다.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야!”

    인호는 무심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사, 살려줘. 제발 이것들을 치워줘.”

    지린내가 난다. 남자가 공포에 못 이겨 오줌을 싸 버린 것이다. 팔다리가 없고, 목이 없고, 머리만 둥둥 떠다니는 망령들에게 감싸여 있으니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인호는 망령들에게 잠시 남자를 맡긴 후 위로 올라갔다.

    그 사이 박경수는 아이들의 입에서 헝겊을 벗겨두었다.

    “고생 많았어.”

    “흑흑, 으앙-!”

    조현우가 크게 울기 시작한다. 오빠가 울자 조연희도 운다. 그간 동생을 지키기 위해 무서운 것도 참고 있었을 것이다.

    인호가 그런 남매를 꼭 안아주었다.

    “잠시 애들 좀 보고 있어.”

    오두막 밖으로 나온 인호가 휴대폰을 꺼낸다.

    “검사님. 접니다.”

    밤하늘을 보며 인호가 긴 한숨을 토해낸다.

    “범인 잡았습니다.”

    * * *

    -충남 공주, 논산 일대에서 십여 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마가 검거됐습니다. 범인 윤 씨는 삼 개월간 공주, 논산 일대를 오가며 여성과 어린아이들을 납치, 연쇄살인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검찰은 이 사건이 알려질 경우 사회적 파장이 크고, 범인이 은닉할 수 있다는 판단에 은밀히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연쇄살인마 윤 씨를 검거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 5부의 정재훈 검사의 브리핑이 있겠습니다.

    인호가 사무실에서 뉴스를 보고 있다.

    “이야, 정 검사 화면빨 죽이네.”

    사기꾼의 말에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사기꾼의 말대로 정재훈은 실물보다 화면으로 보는 편이 훨씬 더 카리스마 넘쳐 보였다.

    “인호 네가 다 잡은 거잖아. 안 억울해?”

    “그럴 것 같냐?”

    “아니.”

    “알면서 뭘 물어.”

    이민정이 인호의 앞에 커피를 내려놓으며 묻는다.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됐어요?”

    “광혜원에 가게 될 거야. 거기라면 아이들이 떨어질 일이 없잖아.”

    광혜원은 나이가 차면 떠나야 하는 다른 보육시설과는 달랐다.

    그대로 광혜원에서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해도 된다. 광혜원 출신 아이들 중 반수 이상이 신부와 수녀의 길을 택한다.

    현우, 연희 남매가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지만 앞으로 이유 없는 학대를 당하지도, 배를 곯지도, 서로 떨어지지도 않게 될 것이다.

    “아빠라는 그 자식 완전 쓰레기던데요.”

    “맞아. 쓰레기.”

    자기 자식이 실종되었다는데 언제 사망 처리되는지 알아보고 다닐 정도이니 쓰레기라는 말도 과분했다.

    남매의 아버지는 가정폭력, 아동학대로 구속되었다. 주위에 증언해 줄 사람들이 너무 많아 무죄로 풀려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정재훈의 사건 브리핑까지 보고 뉴스를 껐다.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린다.

    “오셨어요.”

    문 앞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인자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 건물을 사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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