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인호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는 박경수가 타고 있었다.
“항상 함께 다니시는 거예요?”
“필요할 때만.”
박경수가 뒷자리를 힐끔거리며 묻는다.
“왜 불만이냐?”
“아뇨. 그럴 리가요.”
사기꾼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묻자 박경수가 어색하게 웃는다.
“나하고 일하려면 익숙해져야 한다.”
사무실에서도 박경수는 사기꾼과 영감을 계속 힐끔거렸다.
“그리고 정 검사님 열심히 도와 드려라. 네 죗값 치른다는 생각으로 말이야.”
“그래야죠.”
“그 이후에 능력 사용한 적 없지?”
“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모든 힘에는 대가가 따른다. 네가 가진 힘도 마찬가지야. 어떤 식으로 대가를 치르게 될지 몰라. 그러니 사용하더라도 꼭 필요한 순간만 사용하도록 해.”
“명심할게요.”
서울을 출발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주시 반포면.
며칠 동안 이곳에 있어야 할지 몰라 우선 숙소부터 잡았다.
“김인혜. 이 여자 집이 어디라고?”
박경수가 휴대폰을 조작한다.
“가시죠. 제가 안내할게요.”
실종자 중 한 명인 김인혜라는 여자의 집으로 이동한다. 인호는 경찰 신분이 아니기에 가족들을 만나지 않는다. 대신 그녀의 집에서 가까운 슈퍼마켓에 들어간다.
“안녕하세요.”
이온 음료를 사 계산대에 올려둔다.
“2천 원이요.”
“동네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네요.”
슈퍼마켓의 주인아주머니가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요즘 영 흉흉해요.”
“왜요?”
“저기 빨간 벽돌집 보이죠? 거기 딸이 실종됐거든요. 그리고 상신리에서도 한 명 실종됐다고 하고. 경찰들이 자주 왔다 갔다 해서 동네 분위기가 이런 거예요.”
“아, 그렇구나. 실종된 분은 어떤 분이에요? 가족들과 문제라도 있었나요?”
“그럴 리가요. 아주 효녀라고 소문이 난 앤데요. 동네 어르신들이 모두 며느리 삼고 싶어 하는 착한 아가씨였어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몇 가지 질문을 더 한 후 슈퍼마켓을 나선다.
“소장님. 지금 탐문 조사하는 거죠?”
“조사는 무슨-. 내가 경찰이냐?”
“귀신들은 모두 어디 갔어요?”
“귀신 아니라 망령. 혹시나 주변에 떠도는 망령들 있나 살피러 간 거야. 망령들 있으면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인호가 차로 걸어간다.
“몇 군데 더 들러보자.”
* * *
공주시 반포면 마암리.
박경수의 말을 들은 인호가 인상을 찌푸린다.
“열한 살하고 여덟 살이라고?”
“네. 이름은 오빠가 조현우, 동생이 조연희에요.”
유민성, 유설아 남매가 떠오른 인호가 안타까운 탄식을 토해낸다.
“작년에 아이들 어머니가 죽었네요.”
“아이들은 아버지와 살았던 거야?”
“그런 것 같아요.”
아버지만 있는 것도 유민성, 유설아 남매와 같았다.
차를 세운 인호가 근처의 슈퍼마켓으로 들어간다.
“아우 배불러.”
인호의 뒤를 쫓는 박경수가 배를 두드린다. 네 곳을 돌아다니며 계속 음료수를 마시다 보니 물배가 찬 것이다.
“계산 좀 해주세요.”
다행히 인호가 이번에는 음료수가 아닌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2천 5백 원이요.”
“여기서 아이들 실종됐다면서요?”
“어디서 듣고 오셨어요?”
“워낙 시끄러워서 듣지 않으려고 해도 들리던데요.”
“조 씨 집 애들이 없어졌어요.”
다행히 슈퍼마켓 주인아저씨가 실종된 아이들을 아는 것 같다.
“내가 봤을 때 실종이 아니라 가출이에요.”
“네?”
누가 들을세라 주변을 살피며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아저씨를 인호가 의아한 듯 바라본다.
“조 씨 그 인간이 완전 개차반이거든. 애들 엄마 죽기 전까지 하루가 멀다고 두드려 팼어. 동네 사람들이 곡소리 때문에 잠을 설친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아-.”
가정폭력이다.
“애들 엄마가 죽은 후 보험금이 나왔거든. 조 씨가 그 돈으로 매일 술 처먹고 도박하고, 계집질한 거야. 그래도 돈 있을 때까지는 애비 노릇을 하더니 돈 떨어지니 또 개차반 버릇 나온 거지. 때릴 마누라도 죽고 없으니 그 화가 어디로 가겠어요?”
“애들을 때렸나요?”
“내가 직접 본건 아니고 조 씨 옆집 아줌마한테 들은 이야긴데. 애들 밥도 잘 주지 않고 술 마시고 들어가서 매질했다더라고요.”
아이들이 가출했을 것이라 예상하는 이유일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가출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 아닙니까?”
“조 씨가 동네 떠들썩하게 고아원 보내 버린다고 떠들고 다녔거든요. 그 애들이 남매간 우애가 무척 좋았어요. 혹시라도 떨어지게 될까 무서워 가출했을 수도 있죠.”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그리고 이건 경찰서에 있는 내 조카한테 들은 말인데. 하루는 조 씨가 지구대에 왔다는 거예요. 술도 마시지 않고 맨정신으로 와서 뭘 묻더라는 거지.”
“뭘 물었습니까?”
“실종 신고하고 얼마나 지나야 사망처리할 수 있냐고 물었대요.”
인호가 이를 꽉 깨문다.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야 뻔하다. 아이들 이름으로 보험에 가입해둔 것이다.
문득 아이들의 아버지라는 조 씨가 연쇄살인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아저씨의 말에 의심을 지웠다.
“몇 년을 매일같이 술을 마셔서 아주 피골이 상접하고. 힘도 없어서 여자도 드는 걸 못 들어요. 그런 애비한테 맞으면 얼마나 아프다고. 어떻게든 버텨야지. 가여운 것들.”
아무리 아이와 여자만을 노래는 연쇄살인마라 해도 그들을 제압할 힘은 있어야 한다.
조 씨라는 사람은 연쇄살인마가 아니라 그냥 인간 쓰레기인 것이다.
“혹시 그날 이후로 아이들 봤다는 사람은 없나요?”
“저 윗동네 사는 내 친구가 그날 아주 늦은 밤에 누군가 명덕산으로 가는 걸 봤다고 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친구도 그날 술을 많이 마셔서 헛걸 봤을 수도 있어요. 평소에도 술 마시고 이상한 말 많이 하는 친구거든요.”
인호가 아저씨에게 묻는다.
“그 친구분 어디 사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 * *
경찰과 인근 군부대 군인들이 산속을 들쑤시고 있다.
정재훈과 유 형사는 수색작업을 하는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다른 산에 유기한 것 아닐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아, 공주에 산이 너무 많아요.”
이틀에 걸쳐 사체가 최초 발견된 성화산을 수색하고 있다.
“인호 씨하고는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있죠?”
“네. 경수하고 연락하고 있습니다. 실종자 주변 탐문하고 있다던데요.”
주변 탐문은 정재훈과 유 형사도 하고 있었다.
“아까 통화할 때 들어보니 남매 실종자들이 사는 곳에 있다고 하던데요.”
정재훈이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어린 남매가 동시에 실종되었다. 실종 신고자는 아이들의 아버지다.
“그 아버지 만나 봤어요?”
“네. 밥도 못 먹는지 얼굴이 반쪽이던데요.”
“그래요? 아이들이 동시에 없어졌으니 그럴 만하죠. 아직 그쪽 탐문은 안 했죠?”
“네, 내일이나 모레 하려고 했는데 소장님이 먼저 가 계신다니 다른 곳 먼저 들려보려고 합니다.”
정재훈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찾았습니다!”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온다. 정재훈과 유 형사가 외침이 들려온 곳으로 내달린다. 경찰들이 삽으로 땅을 파고 있었다. 이전에 발견된 것과 같은 파란 김장 봉투였다.
봉투를 꺼낸 후 입구를 여니 썩은 내가 진동한다. 비위가 약한 이들은 몸을 돌려 구토를 한다.
“감식반은요?”
“곧 올 겁니다.”
사체를 찾을 것을 대비해 국과수 감식반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감식반원들이 와 사체를 확인한다. 이번에도 토막 난 신체의 일부분들이다.
그들 중 상급자가 정재훈에게 다가온다.
“이번에도 입니까?”
“네. 네 개의 팔다리 모두 다른 사람 겁니다.”
정재훈이 이를 까득 깨물며 주먹을 움켜쥔다. 두 눈에는 살기가 충천했다. 범인이 눈앞에 있다면 때려죽일 기세였다.
“실종자와 DNA 비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 * *
이른 저녁 선술집 안에는 손님이 많지 않다.
구석진 자리에 한 남자가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다.
“안녕하세요.”
“누구슈?”
“아랫동네 슈퍼마켓 사장님 친구분 되시죠?”
“재철이? 친구이긴 한데. 무슨 일로 오셨소.”
“뭣 좀 여쭈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술 드시는데 안주가 너무 부실하시다. 이모님. 여기 좋은 안주 몇 가지만 더 해주세요.”
남자가 의아한 듯 인호를 바라본다.
“술도 더 시키세요. 오늘 술값은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흐응, 나한테 뭘 물을 게 있다고…… 궁금한 게 뭡니까?”
“친구분 말로는 얼마 전 늦은 밤에 누군가 명덕산으로 가는 것을 보셨다고요.”
“아-. 그날. 확실히 봤수. 그날도 내가 여기서 술을 한잔했거든. 11시 조금 넘어서 집에 가려고 나갔지. 뭐 수중에 쥔 돈이 얼마 없어서 술도 많이 마시지 않았어. 그래서 내가 분명히 기억하지.”
“자세히 이야기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소주 한 병을 더 시켜주자 입이 헤벌쭉해지더니 술술 털어놓는다.
“체구가 크지 않았어요. 어두워서 자세히는 못 봤는데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 같았어요. 늦은 시간에 왜 산으로 가나 궁금했지만 집에 가서 자고 싶은 생각에 그냥 지나쳤죠.”
“혹시 그 산에 집이 있습니까?”
“대덕산에요? 내가 여기 오래 살았지만 집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어 봤습니다.”
“집이 아니라 작은 건축물 같은 것도 없나요?”
“잘 모르겠네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 남자에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인호는 술값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가게 앞에 세워 둔 차 안에 박경수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오셨어요?”
“피곤하면 모텔 가서 자지 그랬어?”
“아니에요. 소장님 계속 일하고 계신데 저 혼자 어떻게 잠을 자요. 일은 잘되신 거예요?”
“대충. 지금부터 산에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
“이 시간에 산엘요?”
박경수가 움찔한다. 그 모습을 본 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
“하하, 망령도 보는 녀석이 산을 무서워해?”
“귀, 아니 망령이 무섭나요? 사람이 무섭지.”
“하긴. 네 말이 맞다. 사람이 무섭지. 그래서 가겠다고 안 가겠다고?”
“가야죠.”
차를 몰아 조금 전 남자가 말한 위치로 이동했다.
인호와 박경수는 포장도 되어 있지 않은 길에 차를 세워두고 사람이 올라갈 만한 길을 찾고 있었다.
“소장님. 여기요.”
박경수가 찾은 곳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니라 멧돼지 같은 짐승이 다니는 길이었다.
주변에 길이라 부를 만한 것이 이것밖에 없기에 인호와 박경수는 좁은 길을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이 험하네요.”
“등산로가 아니니까.”
“으으, 이상한 소리 들리는데요.”
“산 새 소리야.”
인호는 계속해서 떠드는 박경수에게 주의를 준 후 계속해서 산을 올랐다.
“소장님. 그 아이들 아직 살아 있을까요?”
“발견된 사체에 그 아이들의 DNA는 없었다고 하니까…….”
인호가 산을 오르는 발에 힘을 준다.
“살아있길 기도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