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71화 (71/190)
  • 제71화

    “크으.”

    마실 때는 좋았지만 숙취가 좀 심했다.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난 인호가 주위를 살피더니 옆에 놓인 물병을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무더운 날씨지만 신기하게 물은 제법 시원했다.

    인호는 몸을 일으켜 텐트 밖으로 나온다. 박주완은 벌써 일어나 있었다.

    그의 주변에 부족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걸 보니 옛날이야기라도 해주는 듯했다.

    인호는 어제 봐두었던 우물에서 물을 길어 세수와 양치를 하기 시작했다.

    “오우-. 차가워.”

    예상과 달리 물이 차가웠다. 정신이 번쩍 든 인호가 가볍게 스트레칭을 할 때 황동호가 우물가로 걸어온다.

    “크흑, 죽을 것 같아.”

    “주는 대로 다 받아 마시니 그런 것 아닙니까?”

    “너도 그랬거든?”

    “세수해요. 물이 차가워서 정신이 번쩍 들어요.”

    황동호를 뒤로한 채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주위를 살핀다. 문명에서 떨어진 삶을 살고 있었지만, 하늘 부족 인디언들의 표정은 너무나 밝았다.

    발전하지 못한 국가일수록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다는 발표가 있었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었다.

    주변을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인호가 신기한지 그의 주변을 빙빙 돌았다. 인호는 아이들을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부족 곳곳을 돌아다녔다.

    가축들의 축사도 보고, 말을 타고 주변을 경계하는 인디언도 볼 수 있었다.

    그때, 누군가 빠른 속도로 달려온다.

    “손님.”

    어제 강철의지와 함께 일행들을 하늘 부족으로 이끌었던 세 인디언 중 한 명이다.

    “주술사님이 손님을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인호가 씨익 웃는다.

    고대하던 순간이 온 것이다.

    * * *

    주술사의 텐트 안으로 들어간 인호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뜬다. 바깥쪽은 환한 대낮인데 텐트 안쪽은 너무나도 어두웠다.

    “어서 오게.”

    텐트 중앙에는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다.

    신기한 것은 모닥불이 피워져 있음에도 텐트 안이 어둡다는 것이다. 모닥불은 그 주위를 겨우 밝힐 뿐이다.

    인호가 모닥불로 다가간다.

    “그리 앉게.”

    주술사의 맞은편에 앉는다.

    “살아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 사이에 선 그대를 환영하네.”

    화르륵-

    주술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루를 모닥불에 뿌리자 갑자기 불길이 높이 치솟았다.

    “아-!”

    치솟는 불길을 보는 순간 인호가 탄성을 토해낸다.

    불길 너머로 주술사의 뒤쪽에 날개를 활짝 편 큰 새 한 마리가 얼핏 보였던 것 같았다.

    새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인호라 해도 그 새가 독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늘 부족의 상징인 독수리.

    “서로 궁금한 것이 많을 테니 서로 한 가지씩 질문하는 것으로 하지. 어떤가?”

    “좋습니다.”

    “그대가 손님이니 먼저 질문하게.”

    인호는 주술사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중 가장 먼저 물은 것은 당연히 오민호에 관한 것이었다.

    “잠들어 있는 부족의 친구는 다시 깨어날 수 있습니까?”

    “깨어날 것이네. 물론 그대가 수고를 해야 할 테지만.”

    “제가요? 어떤 수고입니까?”

    주술수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든다.

    “질문은 한 번에 하나씩이네. 이게 규칙일세.”

    “아, 그렇군요. 질문하시죠.”

    “그대의 나라에는 죽음을 인도하는 자들이 어떤가?”

    ‘죽음의 인도하는 자’는 저승사자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말 그대로 죽은 이들을 죽은 자들의 나라로 인도합니다. 인간들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요.”

    “그렇군. 참고로 이곳의 죽음을 인도하는 자들은 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네. 죽은 이의 영혼을 부리로 물어 죽은 자들의 나라로 데리고 가지.”

    저승사자의 모습은 국가, 문화, 전통 등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네 차례일세.”

    “…… 잠든 이가 어떤 일을 겪었던 겁니까?”

    원래는 오민호를 깨울 방법이나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어보려 했다.

    하지만 그 질문은 대화를 이어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 같아 뒤로 미뤘다.

    “오민호. 우리 부족이 친구에게 지어준 이름은 ‘소통하는눈’이라네.”

    “좋은 이름이군요.”

    “그래. 좋은 이름만큼 아주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 있지. 소통하는눈은 우리 인디언 부족의 역사와 풍습, 그 밖의 모든 것들에 관심이 많았지. 다른 부족들을 방문하고 마지막으로 방문한 것이 우리 부족이라네. 그는 나에 대해, 정확히는 주술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지. 주술사들이 주술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말이야.”

    오민호가 인디언 문화에 관심이 많아 부전공으로 미국 역사를 택했을 정도였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나는 소통하는눈에게서 가능성을 보았지.”

    화르륵-

    주술사가 다시 가루를 뿌렸다.

    인호는 이번에도 주술사의 뒤에 날개를 활짝 편 독수리를 보았다.

    독수리는 검게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인호를 정확히 바라보고 있었다.

    “가능성이라시면…….”

    “내 뒤를 이을 가능성.”

    “불가능한 일이군요. 그는 한국에서 대단한 가문에 속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군. 그래서 나도 포기했네. 물론 우리 부족원이 아니기에 결국 포기를 했었겠지만. 소통하는눈은 나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에게도 특별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그래서 부탁하더군. 그 힘을 경험해 보고 싶다고.”

    “그래서 경험하게 해 주셨습니까?”

    주술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부족은 독수리의 가호를 받고 있네. 독수리는 하늘의 제왕이지.”

    이 부족의 이름이 ‘하늘’인 이유가 이것인 듯하다.

    “우리 부족의 주술사들은 대대로 위대한 조상신의 힘을 통해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네. 그중 하나가 독수리의 눈으로 과거를 보고 미래를 보는 것이지. 나는 소통하는눈에게 독수리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

    주술사가 컵에 주전자의 내용물을 담아 인호에게 건넨다. 한 모금 마시니 입이 매우 썼다.

    “몸에 좋은 약이라네.”

    “감사합니다.”

    “소통하는눈이 잠에 빠진 이유는 바로 그때의 경험 때문일 게야. 그가 독수리의 눈을 통해 무엇을 보았는지 모르네. 맞을지 모르지만 한국으로 돌아간 소통하는눈은 다시 이곳에 돌아오려 했을 것이네. 그렇지 않나?”

    오민호의 아버지 오태수는 오민후가 한국에 돌아온 후 자주 ‘돌아가야 해’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자네의 반응을 보니 내 예상이 맞는 것 같군.”

    “그렇습니다.”

    “독수리의 눈으로 본 것을 다시 보기 위해 돌아오려 했겠지. 하지만 그러지 못하니 망각의 세계에 자신을 감춘 것이네. 그곳에서 독수리의 눈을 통해 본 무언가를 다시 만나려 했을 가능성이 크지.”

    “잠에 빠진 것이 병이나 다른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것이란 말입니까?”

    “그렇지.”

    주술사가 다시 가루를 뿌린다.

    “이번엔 내 차례일세. 자네의 몸에 남은 흔적들. 혹시 이것과 비슷한 것인가?”

    주술사가 자신의 몸을 덮고 있는 천을 아래로 조금 내린다. 인호의 눈동자가 거세게 떨린다. 주술사의 몸에도 자신의 몸처럼 검은 문양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조상신들이 알려주더군. 신의 힘을 엿본 대가라고. 이것이 몸을 모두 덮으면 나는 조상들의 곁에 가게 될 거라고.”

    주술사는 자신의 죽음을 말하고 있다.

    사용하지 말아야 할 힘, 하지 말아야 할 일.

    그것이 몸에 남긴 흔적이라는 뜻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한 일을 알고 있기에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자. 그래서 그대와의 만남을 기다렸지.”

    “제 차례군요. 만약 주술사님의 몸에 남은 흔적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술사의 주름으로 가득한 입매가 뒤틀린다. 웃고 있는 것이다.

    “이미 늦었지. 나의 뒤를 이을 아이에게 알려줄 수 있겠지만, 알고 있다고 해도 알려주지 않을 것이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주술사들은 부족원들을 위해 존재하네. 조금 더 살기 위해,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 부족을 위해 사용할 힘을 가두는 것은 옳지 않으니까.”

    “이번엔 내가 묻지. 자네는 그렇게 할 텐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전 주술사님처럼 사명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위쪽에 계신 분들도 그것을 원하지 않으시는 것 같고요.”

    “흐음, 그럴 수도 있겠군. 어찌 되었건 세상의 균형을 헤치는 일이 될 테니. 자-, 이제 자네의 마지막 질문에 대답해 주겠네. 소통하는눈을 깨우기 위해서는…….”

    화르륵-

    불길이 치솟고 독수리가 매서운 눈빛으로 인호를 쏘아본다.

    “그대가 직접 소통하는눈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네.”

    * * *

    달이 뜨지 않은 어두운 밤.

    하늘 부족의 중앙 공터에 큰 불길이 치솟는다. 높게 쌓여 있는 나무들이 불타오르고 있다. 그 주변을 하늘 부족원들이 빙빙 돌며 춤을 추고 있다.

    타타탁- 탁탁- 타타탁-

    악사들이 나무로 만든 전통 악기를 미친 듯 두드린다.

    모닥불은 기묘한 향을 내는 연기를 피워올렸고, 인디언들은 무아지경에 빠져 춤을 추고 있었다.

    저렇게 춤을 추다 탈진하지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였다.

    인호는 모닥불 가까이에 앉아있었는데 차림새가 심상치 않았다.

    춤을 추고 있는 인디언들처럼 가죽으로 만든 하의만 걸치고 있었다.

    몸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검은 문양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인호는 모닥불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여자가 다가온다. 그녀는 커다란 잔을 인호에게 건넨다. 잔을 받아든 인호는 망설이지 않고 단숨에 비운다.

    여자는 칼로 자신의 손끝을 베고 피가 흐르는 손을 인호의 얼굴에 갖다 대었다.

    그녀는 자신의 피로 인호의 눈 주변에 타원형을 그린다.

    인호는 여자의 손이 얼굴에 닿자 화끈거림을 느꼈다. 그리고 여자가 손을 떼는 순간 신비로운 일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지며 시야가 밝아진다. 모닥불 주위를 도는 인디언들의 춤사위가 선명하게 눈에 담긴다. 모닥불 너머, 커다란 텐트 안에 앉아있는 주술사의 모습이 보인다.

    - 이리 오시게.

    주술사가 손짓하고 있다.

    인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걸음을 옮겼다.

    “인호야!”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들렸다. 불길을 향해 걸어가는 인호를 보고 황동호가 외친 것이다.

    인호는 황동호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지 그대로 불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뜨겁지 않다. 오히려 포근한 기분이다. 불길을 그대로 지나쳐 주술사의 텐트 안으로 들어간다.

    화르륵-

    주술사가 작은 모닥불에 가루를 뿌린다. 불길이 치솟고 묘한 향기를 내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바깥쪽에 피어오르는 연기와는 다른 향기다.

    걸음을 옮기는 인호의 코와 입으로 연기가 흘러든다.

    인호가 주술사의 맞은편에 앉았다.

    “지금부터 그대는 독수리가 되어 높은 하늘을 날게 될 것이네. 그대가 무엇을 볼지, 누구를 만날지 모르네. 결국 해답을 구해야 하는 것은 그대 자신이니까.”

    인호가 눈을 감은 채 주술사의 말을 들었다.

    주술사가 다시 가루를 뿌린다. 불길이 치솟는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새파란 불길이다.

    그 순간 인호가 눈을 뜬다.

    인호의 눈에 파란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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