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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70화 (70/190)

제70화

그들은 황량한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후아-. 끝이 보이지 않는 황무지라니.”

한국에서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광경에 황동호가 혀를 내둘렀다.

“오늘은 여기서 쉬어야 할 것 같은데요.”

인호의 말에 일행이 걸음을 멈춘다.

인호는 짊어 지고 있던 텐트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후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것도 힘드네.”

오민호가 누워 있는 침대를 미는 것은 박주완과 이정훈의 몫이었다.

인호와 황동호가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텐트라기보다는 큰 천막에 가까웠다.

두 사람이 천막을 설치하는 사이 이민형이 불을 피웠다. 오민호의 침대 아래쪽에 공간에는 고체연료와 먹거리들이 실려있었다.

오민호의 주치의는 그 공간에 의료장비들을 실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박주완에 의해 막혔다.

- 인디언의 영역에 들어선 이상 민호 군이 잘못될 일은 없을 겁니다. 만약 민호 군에게 문제가 발생한다면 바로 이곳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주치의는 박주완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그 모습을 본 황동호는 주치의가 천주교 신자일 것이라 주장했다.

천막을 설치하고 오민호의 침대를 그 안에 넣었다. 추운 날씨는 아니지만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줄 곳이 없는 황무지다 보니 천막에 들어가야 흙먼지를 피할 수 있었다.

“이야, 이런 멋진 곳에서 캠핑이라니. 너무 낭만적인데.”

“형님. 우리가 캠핑 온 겁니까?”

“말이 그렇다 그거지. 그런데 저녁 메뉴는 뭐냐?”

“당연히 바비큐죠.”

“거봐. 너도 캠핑이라고 생각하는 거잖아.”

“아니거든요. 소고기 가격이 너무 싸서 잔뜩 사서 그런 거잖아요.”

미국은 소고기의 가격이 한국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쌌다.

인호는 이 기회에 실컷 먹어보자는 생각에 상당한 양의 소고기를 구입했다.

인호가 준비한 그릴에 소고기를 구우며 박주완에게 묻는다.

“어디쯤인지 기억나세요?”

“말했지? 찾아가는 게 아니라 그들이 찾아올 거야. 어쩌면 이미 우리들이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선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고기를 굽고 끓는 물에 즉석밥을 데운 후 식사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김치를 비롯한 밑반찬 통조림을 잔뜩 챙겨왔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별이 정말 많네요.”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한국이라면 시골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운치 있는데요.”

박주완이 소주 한 병을 꺼내 한 모금 마신 후 인호에게 건넨다. 인호도 한 모금 마시고 황동호에게 넘겨준다.

“신부님. 혹시 인디언들이 아직도 사람 머리 가죽 벗기고 그럽니까?”

“하하하. 과거에는 그랬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문명에서 비켜나 있다고 하지만 그들 역시 보고 듣는 것이 있지 않겠나.”

한국 사람들에게 인디언이란 아파치, 코만치와 같은 호전적인 부족들이 전부였다. 티비 드라마나 영화에서 인디언들이 적의 머리 가죽을 벗긴다는 식의 표현이 많이 나왔기에 황동호가 저런 말을 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고기 정말 맛있네요. 한국 소고기하고는 많이 다르네요.”

“말 그대로 소고기지. 한국 사람들은 마블링에 지나치게 민감해. 이런 고기도 나쁘지 않지.”

박주완은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소고기를 입에 넣고는 소주 한 모금을 마셨다.

“이곳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와도 변한 것이 하나도 없군.”

* * *

다음 날, 일행은 아침 일찍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오민호의 침대를 밀며 이동해야 했기에 이동 속도가 느렸다.

“교대해요.”

인호가 이정훈에게 말했다.

무거운 텐트를 메고 있었지만, 인호는 크게 힘들어하지 않았다. 반면, 이정훈은 침대를 밀며 상당히 힘들어하고 있었다.

인호는 텐트를 그대로 멘 채 침대를 밀기 시작했다.

“괜찮은데.”

“안 괜찮아 보여요. 조금 쉬세요.”

이정훈은 사양하지 않았다. 스스로도 일행 중 자신이 체력이 가장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호는 침대를 밀며 잠들어 있는 오민호의 얼굴을 살폈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이곳에 오기 전보다 얼굴이 더 밝아 보였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앞에서 침대를 끌고 있는 박주완이 걸음을 멈춘다. 침대에 몸이 살짝 부딪친 인호가 박주완을 바라본다.

“왔네.”

“네?”

“그들이 왔다고.”

인호가 박주완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바라본다.

멀리 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일행은 이동을 멈춘 채 다가오는 먼지구름을 응시했다.

잠시 후 박주완이 ‘그들’이라 칭한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 진짜 인디언이네.”

머리에 새의 깃털로 만든 특이한 형태의 모자를 쓴 세 명의 인디언이 말을 탄 채 다가오고 있었다.

인디언들은 일행에게서 일정 거리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만 앞으로 걸어 나온다.

“박 신부님. 오랜만이군요.”

나이가 아주 많아 보이는 인디언이었다.

“하하, 강철신념. 오랜만입니다.”

박주완과 인연이 있는 인디언인 듯했다.

박주완에게 말을 건 인디언은 유창한 영어를 사용하고 있기에 인호도 두 사람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강철신념이라 불린 인디언이 박주완 뒤에 있는 침대를 바라본다.

“부족의 친구를 데려오셨군요.”

“네. 이상한 병에 걸렸습니다. 사실 병인지도 잘 모릅니다.”

“흐흠, 제가 주술사가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병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병이 아니라고요?”

“자세한 이야기는 주술사님께 들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가시죠.”

박주완이 의아한 듯 묻는다.

“이곳에 처음 방문하는 두 사람이 있는데 그냥 가도 되겠습니까?”

“주술사님께서 두 분도 모셔오라고 했습니다. 부족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인호가 묘한 웃음을 짓는다.

인디언 부족의 주술사와의 만남이 기대되었다.

* * *

황량한 평야 지대 한가운데 우뚝 솟은 돌산.

이 주변의 주인인 하늘 부족의 보금자리는 돌산 인근에 있었다.

마을을 보호할 울타리도 없다.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텐트들이 상당히 많다. 강철신념은 일행을 부족의 중앙으로 안내했다.

중앙에는 주변 다른 텐트들에 비해 큰 텐트 두 동이 있었다. 박주완은 그중 하나는 추장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술사의 것이라 설명해 주었다.

중앙 공터에는 이정훈이 보았다는 부족의 상징물이 긴 막대에 걸려있다.

“부족의 친구를 환영합니다.”

다른 이들의 모자보다 화려한 깃털 모자를 쓴 큰 체격의 인디언 한 명이 다가와 박주완과 포옹했다.

“하하, 흐르는칼. 아버지의 뒤를 이어 추장이 되었군요.”

“예전처럼 편하게 대해 주십시오, 신부님. 제가 목숨을 부지하고 추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신부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박주완이 이곳까지 와 구마 의식을 치른 대상이 바로 현재의 추장인 듯하다.

“그럴 수 없지요. 흐르는칼은 이제 일족을 이끄는 추장이지 않습니까.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그만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추장으로써 위엄이 서는 거예요.”

“알겠습니다. 신부님.”

흐르는칼은 박주완과 인사를 나눈 후 침대에 누운 오민호에게 다가온다. 그는 오민호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는다.

“깨지 않는 잠에 빠졌군요.”

“깨지 않는 잠이요?”

흐르는칼이 인호를 바라본다.

“죄송합니다. 제 소개를 먼저 해야 했는데. 저는 신부님과 함께 한국에서 온…….”

“알고 있소. 영매라지요?”

“네?”

인호가 놀란 눈으로 묻자 추장이 허허 웃는다.

“주술사가 그랬소.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이와 유사하지만 사뭇 다른 능력을 지닌 이들이 올 거라고.”

흐르는칼이 그 말을 할 때 오른쪽 텐트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온다. 길고 화려한 두 개의 깃털이 꽂힌 머리 밴드를 한 인디언 노인이었다.

노인을 보는 순간 인호가 흠칫 몸을 떤다. 노인의 두 눈은 눈동자가 보이지 않고 온통 흰색이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않아도 된다오. 신의 힘을 엿본 대가라오.”

흰자밖에 없는 눈이 인호에게 고정되어 있다.

“나는 부족의 주술사라오. 주술사에게는 이름이 없지. 그저 주술사라 불릴 뿐.”

“한국에서 온 정인호라고 합니다.”

“저는 황동호입니다.”

황동호가 어설픈 영어로 자기를 소개한다.

“두 분과의 대화가 상당히 기대된다오.”

주술사가 허허 웃고는 다시 텐트 안으로 들어간다.

“오랜만에 부족에 손님이 방문했다.”

흐르는칼이 두 손을 번쩍 들며 큰소리로 외친다.

“손님을 환영하는 축제를 벌일 것이다.”

* * *

오- 오오오오- 오오오오-

하늘 부족의 축제는 흥겨웠다.

인디언들이 입을 두드리며 춤을 추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특이한 점이라면 춤을 추는 것이 여자들이 아닌 남자들이라는 것이다.

여러 종류의 새 깃털로 만든 망토 같은 것을 입은 남자들이 빙빙 돌며 겅충겅충 뛰며 춤을 춘다. 악사들은 속이 빈 나무를 두드려 흥을 돋운다.

“인디언 전통 술이라오.”

흐르는칼이 흙으로 빚어 만든 잔에 술을 한가득 채워 건넨다. 인호는 술을 받아 단숨에 비운다. 시큼 텁텁한 맛이었지만 색다른 맛과 풍취가 있었다. 소주나 양주와는 또 다른 맛에 인호가 엄지를 세웠다.

“술맛이 아주 좋군요.”

“하하, 술을 즐길 줄 아는군요. 미국인들은 이 술맛을 모르지. 인디언 전통주를 마시면 오줌을 마신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단 말이오.”

인호가 크게 웃는다.

인디언들이 키우는 가축들을 도축해 구운 고기 역시 맛이 좋았다. 어떤 향신료를 사용한 것인지 비린내가 조금도 나지 않는다.

입안 가득 퍼지는 육즙을 느끼며 인호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술과 잘 어울리는 고기군요.”

“보는 것처럼 우리 부족은 풍요롭지 않다오. 이렇게 가축을 잡고 빚어 놓은 술을 꺼내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이지.”

마음 같아서는 하늘 부족에 도움을 주고 싶지만 흐르는칼은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풍요로운 삶을 원했다면 황무지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벗어나 문명과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주술사가 그대를 많이 기다렸다오.”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알 수 있을까요?”

흐르는칼이 하늘을 보며 말한다.

“달이 가득 찼을 때였다오.”

보름달을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에서 보는 달이 다르기에 그것으로는 날짜를 알 수 없었다.

인호의 표정을 읽은 흐르는칼이 미소를지으며 말한다.

“4일 전쯤이라오.”

“그렇습니까?”

4일 전이라면 인호가 오형민 회장의 집에 가 오민호를 처음 본 날이었다. 주술사는 그때부터 인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주술사님은 큰 사고가 있었던 겁니까?”

신의 힘을 엿본 대가라지만 뭔가 사고가 있지 않을까 싶어 묻는 것이다.

“사고는 없었소. 주술사가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오. 부족의 주술사들은 모두 앞을 보지 못했다오.”

“네? 모두 말입니까?”

“그렇소. 선대 주술사는 자신의 뒤를 이을 주술사에게 가진 힘을 물려준다오. 신을 만나는 방법, 신의 지혜를 엿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오. 그렇게 선대 주술사에게 임무를 이어받게 되는 순간 빛을 잃게 되는 것이오.”

“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는 말이다.

어쩌면 대를 잇는 과장에서 특수한 약품을 사용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굳이 자신의 뒤를 이을 후대의 눈을 의도적으로 멀게 할 리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을 동정할 필요는 없다오. 그들은 빛을 잃었지만, 여전히 세상을 볼 수 있으니. 아니, 다른 이들은 볼 수 없는 것까지 볼 수 있으니 오히려 축복받은 존재라 할 수 있다오. 부족원들 모두가 주술사를 존경하니 말이오.”

“그렇군요.”

인호는 새삼 주술사와의 다음 만남이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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