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69화 (69/190)
  • 제69화

    인호는 황동호와 함께 오형민 회장의 집을 나섰다.

    “어딜 가려고?”

    “알아볼 게 좀 있어요.”

    “뭐 짐작 가는 게 있나 본데?”

    인호가 이정훈과 나눴던 대화를 황동호에게 들려준다.

    “인디언이라고?”

    도문에 속해 있는 황동호가 사용하는 힘도 구분을 짓자면 주술의 한 갈래였다.

    “그런데 그걸 어디서 알아보려고? 설마 인터넷으로 조사하려는 건 아니지?”

    “확실하진 않지만 인디언에 대한 지식이 있을지도 모르는 분이 계시거든요.”

    “누구? 나도 아는 사람이야?”

    “한두 번 얼굴은 마주쳤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니까 누군데?”

    인호가 황동호를 데리고 간 곳은 광혜원이었다.

    “여긴 뭐 하는 곳이야? 이름만 보면 고아원 같은데.”

    “맞아요.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운영하시는 곳이죠.”

    광혜원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인호에게 달려온다.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광혜원을 관리하는 안젤라 수녀가 다가온다.

    “인호 씨. 오랜만이네요.”

    “신부님 계세요?”

    “네. 바티칸에 가셨다 이틀 전에 귀국하셨어요.”

    “바티칸에는 왜요?”

    “저야 잘 모르죠. 함께 갈까요?”

    “아니요. 제가 갈게요.”

    황동호를 이끌고 박주완 신부의 방으로 향한다.

    똑- 똑-

    “들어오세요.”

    안으로 들어가니 박주완이 차를 마시고 있다.

    “아이쿠, 이게 누구신가? 응? 함께 온 분은 어디선가 뵌 분 같은데.”

    “신부님. 안녕하세요. 전에 해남에서 한 번 뵌 적 있습니다.”

    “아-. 지렁이 도사님?”

    “하하.”

    박주완이 황동호와 악수를 나눈다.

    “무슨 일로 두 사람이 함께 왔을까?”

    “식사하셨어요?”

    “아니. 저녁 먹을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 이상하게 먹고 싶지 않더라고. 아마도 네가 올 줄 알았던 모양이다. 막창으로 할까? 아니면 코다리찜으로 할까?”

    “메뉴는 신부님이 고르세요.”

    박주완의 선택은 막창이었다.

    광혜원에서 가장 가깝기도 하고 막창이 굉장히 푸짐하게 나오기도 했다.

    주문한 안주가 나오고 소주가 한 잔씩 돌아가자 인호가 박주완에게 묻는다.

    “신부님. 혹시 인디언에 대해 좀 아세요?”

    “인디언? 조금 알지. 젊었을 때 미국에서 몇 년 활동했었으니까.”

    박주완은 유럽뿐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구마 활동을 했었다.

    “그러면 인디언 주술에 대해서도 아시겠네요.”

    “흐음, 인디언 주술이라. 아주 특이한 경험이었지.”

    박주완이 소주 한 잔을 따라 마신 후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사람들은 인디언 주술사들이 환각성분이 있는 식물을 태워 그 연기를 마신 후 헛소리를 늘어놓는다고 말하지만, 그건 상당히 고차원적인 정신 의식이야.”

    인호는 박주완의 설명이 끊기지 않게 그의 잔을 채워주고 잘 익은 막창도 앞에 가져다준다.

    “인디언 주술사들은 의식을 통해 조상신들과 만나지. 그들을 통해 부족에 닥칠 흉사를 보는 거야. 자연의 재료와 강한 주술력을 합쳐 뛰어난 치료제를 만들기도 해. 그리고 조상신의 도움으로 불치병을 치료하기도 하지. 아무튼 내가 아는 주술사는 아주 대단한 사람이었어.”

    “도대체 신부님이 인디언 주술사는 왜 만나신 겁니까?”

    황동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묻는다.

    “자네도 알겠지만 우리들처럼 특별한 힘을 지닌 이들은 자신에게 딱 맞는 전문 분야가 존재하지. 인호에게 귀신을 부리는 힘이 있고 자네에게 도문의 힘이 있는 것처럼 말이야. 인디언 주술사가 대단한 존재이긴 하지만 구마 의식에도 해박한 것은 아니야. 자기가 가진 힘으로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 노력하다 결국 구마 사제단에 도움을 청한 것이지. 때마침 그때 미국에서 활동하던 구마 사제가 나였고.”

    박주완이 소주를 마시고 막창을 우물거리며 묻는다.

    “그런데 갑자기 인디언 주술을 불어보는 이유가 뭐야?”

    “그게 말이죠.”

    인호가 박주완에게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목걸이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네.”

    “그렇죠. 하지만 지금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할 때니까요. 혹시 아신다는 그 인디언 주술사분을 모셔올 수 있을까요?”

    박주완 곧바로 고개를 흔든다.

    “그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떠나지 않아. 조상신의 가호가 깃든 땅을 벗어나지 않는 거지.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 인디언 부족도 있지만, 그들은 대부분 부족의 전통보다 현대 문물의 편리함을 택한 이들이지.”

    이정훈에게 했던 말과 같다.

    “만약 그 친구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그 목걸이 때문이라면 방법은 하나뿐이야.”

    듣지 않아도 그 방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 친구를 데리고 그 인디언 부족으로 가야 해.”

    * * *

    인호는 박주완에게 들은 이야기를 오형민 회장에게 전달했다. 반응은 딱 인호가 예상했던 정도였다.

    - 그 말을 지금 믿으라는 건가?

    오형민 회장의 반응을 예상했기에 이후의 상황도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 후에도 별다른 성과가 없다면 결국 인호가 제시한 방법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곤란하게 되었다.

    - 민호가 가던 인디언 부족은 아무나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부족원들이나 그들에게 친구로 선택받은 이들만이 찾을 수 있습니다. 제가 민호를 찾기 위해 며칠을 헤매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민호가 깨지 않는 잠에 빠져 있는 동안은 인디언 부족을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막상 미국에 가게 되더라도 그 주변을 맴돌며 그들이 나타나 주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났을 때 오형민에게 전화가 왔다.

    - 자네와 황 도사가 민호를 미국으로 데리고 가 주게.

    초자연적인 힘을 다루는 우리 두 사람이라면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리라.

    “뭐 나라고 해서 딱히 좋은 방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형민의 치료를 도와 큰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인호는 일을 하면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맡은 일이기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어떻게 할 거냐? 우리 둘이 간다고 뭐 달라지겠어? 난 인디언은 둘째치고 영어도 잘못해.”

    “자랑입니까?”

    “그래도 중국어는 제법 한다.”

    “저도 중국어 잘합니다.”

    “흥! 재수 없어.”

    황동수가 고개를 휙 돌린다.

    인호는 오형민에게 한 사람 더 같이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오형민의 승낙이 떨어지고 인호는 곧장 박주완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부님. 오랜만에 미국 여행 가시죠.”

    * * *

    “이야, 역시 신성.”

    황동호가 입을 쩍 벌린다.

    김포 공항에 도착해 일반적인 게이트가 아닌 특수한 게이트를 통과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신성 그룹의 전용기였다.

    “민호는 이미 비행기에 타고 있습니다. 민호를 살피기 위해 주치의와 간호사들도 함께 갈 겁니다.”

    전용기에 타니 오민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곳에 있는 듯했다.

    대신 경호원으로 보이는 남자들 십여 명이 먼저 탑승해 있었다.

    “미쳤네. 신부님. 신부님도 전용기는 처음이시죠?”

    “내가 자네인 줄 아나? 유럽의 부호 가문에서 구마 의식을 의뢰했을 때 전용기 타 봤네.”

    “이야, 역시 클라스가 다르시네요. 인호는?”

    “처음이에요.”

    비행기를 많이 타 본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일반 비행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전용기는 탑승자의 편안함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었다.

    곧 기장의 기내 방송이 나왔다. 김포 공항을 출발해 애리조나주 피닉스 스카이 하버 국제공항까지 직행한다는 내용이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떠올라 본격적인 미국행이 시작되었다. 어느 정도 고도에 오르자 뒤쪽에서 누군가 앞으로 왔다.

    “어, 정훈 씨도 함께 가는 겁니까?”

    “아버지가 회장님댁의 집사라면 전 민호의 개인 집사나 마찬가집니다.”

    “아, 그래서 미국에도 함께 가신 겁니까?”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유학을 했죠.”

    이정훈이 인호의 옆쪽에 앉는다.

    “인사시켜 드릴게요. 저기 계신 분은 박주완 신부님이세요. 이름보다는 스테파노라는 세례명으로 더 유명한 신부님이시죠.”

    “혹시 구마 사제십니까?”

    “그런 것도 아세요?”

    “영화에서 자주 나오지 않습니까. 인호 씨와 친분이 있으시다기에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겁니다.”

    박주완이 이정훈에게 묻는다.

    “그쪽 분이 환자분과 함께 인디언 부족에 갔던 분입니까?”

    “네, 맞습니다.”

    “혹시 그 부족의 상징물이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그것이 상징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족 중앙에 세워둔 나무에 새의 깃털로 만든 둥근 구조물에 역시나 새의 것으로 짐작되는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발이 여러 개 달려 있었습니다.”

    박주완의 표정이 밝아진다.

    “설마-.”

    인호가 말끝을 흐리자 박주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와 인연이 있었던 하늘 부족인 것 같네.”

    “비슷한 상징물을 사용하는 부족이 있지 않을까요?”

    박주완이 고개를 흔든다.

    “인디언들에게 독수리는 굉장히 성스러운 동물이야. 아무 부족이나 독수리를 상징물로 사용할 수 없어. 하늘 부족은 애리조나주 일대에 넓게 퍼져 있는 인디언 부족들의 수장격의 부족이야. 그들만이 독수리의 깃털과 발로 부족을 상징할 수 있지.”

    “신부님. 최곱니다.”

    오민호와 관련된 인디언 부족을 찾는 것이 이번 미국 일정의 핵심이었다.

    인디언 부족과의 인연이 있기에 도움이 될까 싶어 박주완에게 미국까지 동행을 부탁한 것인데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오래전 일인데 찾아갈 수 있겠습니까?”

    인호의 물음에 박주완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흔든다.

    “인디언 부족은 찾아가는 것이 아니야.”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가다 보면 저절로 도착하게 되는 것이지.”

    박주완은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채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 * *

    미국 서남부 애리조나주 인디언자치구 엔텔로프 캐니언.

    “사실인지는 몰라도 협곡의 모습이 양의 내장을 닮았다 해서 엔텔로프(영양) 협곡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정훈이 가이드 대신 설명해 준다.

    인호와 일행은 차 한 대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그 뒤로 세 대의 차가 따라붙었다.

    그중 오민호가 타고 있는 차에는 최신 의료장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나머지 차량은 경호원들이 타고 있었다.

    “미국 인디언 부족 중 가장 규모가 큰 부족이 이곳 엔텔로프 협곡 주변 나바호족입니다.”

    “미국의 인디언 부족은 5백 개가 넘어.”

    박주완이 이정훈의 설명에 덧붙인다.

    한나절을 꼬박 달린 후 차가 멈추었다. 박주완이 운전사에게 차를 멈추라고 말한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평원이다. 멀리 산인지 무엇인지 모를 것이 불쑥 솟아올라 있다.

    “여기부터는 걸어가야 해.”

    박주완의 말에 오민호의 주치의가 사색이 되었다.

    “불가능합니다. 이동식 침대에 설치할 수 있는 장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들어가면 안 되는 것이 차 뿐은 아닙니다. 그쪽 의사분과 간호사분, 그리고 경호원분들도 가지 못합니다.”

    경호원들의 리더가 앞으로 나선다.

    “불가합니다. 도련님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조금도 이동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는데?”

    박주완이 인호를 바라본다. 인호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박주완이 말한다.

    “한국으로 연락을 하려거든 지금 해야 해. 인디언들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면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어.”

    “사실입니다. 제가 민호를 찾지 못하고 며칠 동안 주변을 헤맨 이유가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한국으로 전화한다.

    “회장님. 정인홉니다.”

    인호는 잠시 통화를 하다 휴대폰을 경호원들의 리더에게 건넨다.

    - 시키는 대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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