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화
“여-, 오랜만이다.”
한 남자가 사무실로 들어오며 인사를 건넨다.
“이게 누구셔? 대한민국 1등 도사 토룡 도사님 아니십니까.”
큰 키에 커다란 덩치, 얼굴의 절반을 뒤덮고 있는 수염,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복장의 남자다.
토룡 황동호.
도문의 본류라는 중국에서도 인정하는 최고의 도사 황동호가 사무실에 방문한 것이다.
“크크, 내가 1등이었어?”
“애초에 2등이 없으니까요.”
한국 땅에도 도사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황동호만큼 도력이 높은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인호와 친분이 있는 현학 김명운이 그나마 황동호에 비벼볼 수 있다지만 김명운은 도사라기보다는 사주명리학에 특화된 사람이었다.
“나만 만나면 이상한 일에 엮인다고 안 볼 것처럼 말하더니 왜 오셨데?”
“인연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자르고, 지우려고 해도 결국 다시 이어지게 되어 있는 거야. 어-, 민정이 오랜만이다.”
“네.”
이민정이 커피를 가져다준다.
“잘 지내고 있어?”
“죽지 못해 살고 있죠.”
“말을 왜 그렇게 무섭게 하냐. 주변에 계신 분들도 여전하고?”
평소라면 사무실에서 빈둥거리고 있을 영감과 사기꾼이 자리를 비웠다.
“매일 땡땡이죠. 식사는 하셨어요?”
“먹고 오는 길이야. 너는?”
“저도 조금 전에 민정이랑 먹었어요. 자-,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왜 오셨어요?”
“흐음. 잠에서 깨질 않아.”
“설명할 거면 제대로 해요. 무슨 말을 앞뒤 다 자르고 해요?”
“일단 가자. 가면서 설명해 줄게.”
* * *
“이야, 우리 인호 출세했네. 벤츠를 다 끌고 다니고. 부럽다 야.”
“형님도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살 수 있잖아요.”
황동호의 인맥은 가히 황금 인맥이라고 할 수 있다. 대기업, 정계인사, 법조인 등 그의 도움을 받은 이들이 상당하다.
그들을 도와주는 대가로 돈을 원했다면 지금 황동호는 수백 억, 아니 수천억 대의 자산가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 황동호는 ‘배부르면 도사 짓 못한다’라는 지론으로 재물을 멀리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성북동.”
“오우, 재벌가 일입니까?”
“그래. 그것도 우리나라 1등 재벌가다.”
“설마 신성 일갑니까?”
황동호가 대답 대신 고개를 주억인다.
신성 그룹.
대한민국 제계 서열 1위이자 세계 기업 순위에서도 당당히 10위 권 안쪽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었다.
“신성하고도 인연이 있었던 겁니까?”
“아니, 없었어. 이번에 생긴 거지.”
“하여튼 무적 인맥이라니까. 그런데 신성에서 형님을 왜 찾았데요?”
“현 신성 그룹 회장 오형민의 장남 오태수, 그의 둘째 아들 오민호.”
“신성 그룹 족보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요.”
“오민호가 잠에서 깨어나질 않아.”
신성 그룹 회장의 손자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병원에서는 뭐래요?”
“주치가 무슨 무슨 병이라고 하는데 전문 용어라 잘 모르겠어. 그런데 내가 볼 때 병은 아니야.”
“잠에서 깨지 못한다. 몽령일까요?”
몽령은 서구권에서 몽마라 부르는 존재다. 이름 그대로 꿈속에 나타나는 망령이다.
“그럴 가능성이 높지.”
“직접 보신 것 아니에요?”
“봤어. 그런데 확신을 하지 못하겠어.”
인호가 의아한 듯 묻는다.
“형님 도력으로도 구분이 안 된다고요?”
“뭔가 느껴지긴 하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거야. 그러니까 니가 직접 확인해 봐.”
* * *
“와우-. 이게 주차장이에요?”
수십 대의 차량이 동시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다. 티비에서, 미튜브에서나 보았던 고가의 차량들이 종류별로 다 있었다.
“이 차들 다 팔면 수백억 하겠죠?”
“내가 아냐? 나는 네 차 가격도 몰라.”
안쪽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걸어 온다. 드라마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연미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였다.
“안녕하십니까. 집사 이연우라고 합니다.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인호와 황동호는 이연우의 뒤를 쫓는다.
멋진 정원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주차장에서 집으로 바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었다.
1층으로 향하는 계단 앞을 검은 정장 남자 두 명이 지키고 있다.
“실례인 줄 알지만 가벼운 검사를 하겠습니다. 불쾌해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남자들이 인호와 황동호의 몸을 수색한다.
경호원이 인호의 품 속에서 삼신령을 꺼낸다.
딸랑-
“그 방울 흔드시면 안 됩니다.”
인호가 삼신령을 돌려 받아 품속에 넣었다.
“올라가시면 됩니다.”
경호원들이 막고 있던 계단 통로에서 비켜선다.
이연우와 함께 1층으로 올라간다. 통로를 지나니 넓은 응접실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시선을 두는 곳마다 멋진 그림과 고풍스러운 조각들이 자리하고 있다.
거실의 중앙 소파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나이에 비해 건강해 보이는 노인과 50대의 중년인.
대한민국 제계 서열 1위 신성 그룹의 주인 오형민 회장과 그의 아들인 부회장 오태수였다.
“오셨습니까. 함께 오신 분이 말씀하셨던 그분입니까?”
“네, 맞습니다.”
오태수의 물음에 황동호가 대답한다.
그때 오형민이 인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묻는다.
“혹시 철호 일 봐준 적 있나?”
“대은 그룹 이철호 회장님 말씀하시는 거라면 맞습니다.”
“그렇군. 둘러 둘러 이야기 들었네. 일 처리가 아주 깔끔하다지?”
“네?”
이철호가 인호의 이야기를 남들에게 했을 리가 없다.
“정 검사 일도 도와주고 있다는 말 들었네.”
“아, 그러셨군요.”
신성 그룹의 정보력이 국정원 못지않다는 말이 사실인 듯했다.
“자네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할 수 있나?”
“죽은 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오형민의 표정이 딱딱해진다.
“우리 민호는 아직 죽지 않았네.”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자네의 전문 분야가 아니지 않나?”
“혹시나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나 해서 온 겁니다. 그렇게 따지면 동호 형님의 전문 분야도 아니죠.”
오형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한 번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집사. 안내해줘.”
“네, 회장님. 절 따라오시면 됩니다.”
이연우가 인호와 황동호를 2층으로 안내했다. 가장 안쪽의 방이었는데 상당히 넓은 방에 의료장비가 가득했다. 침대에는 한 남자가 누워있었다.
아직 서른이 안 되었을 것 같은 젊은 남자.
신성 그룹 부회장 오태수의 차남 오민호일 것이다. 오민호의 안색은 평온했다.
온몸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의료장비만 아니라면 꿀잠을 자고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황동호의 말대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진 않았다.
주치의로 짐작되는 남자가 들어와 전문적인 의학용어를 섞어 한참이나 설명해 주었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절반이 넘었다.
의사가 나간 후 오민호의 아버지 오태수와 집사 이연우가 안으로 들어온다. 두 사람의 뒤에는 오민호 또래의 청년이 서 있었다.
“이 아이는 제 아들입니다.”
이연우가 청년을 소개해 준다.
인호는 잠들어 있는 오민호를 꼼꼼히 살핀다. 어디에도 망령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몽령에 의해 의식이 잠식당한 상태라면 인호가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인호가 황동호를 바라본다. 그 역시 짐작되는 것이 없는지 가볍게 고개를 흔든다.
두 사람의 반응을 본 오태수가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아드님이 잠들기 전 특이한 점은 없었습니까?”
“민호는 한 달 전에 미국에서 귀국했습니다. 유학 중이었거든요. 미국에서 돌아온 후 혼잣말을 중얼거리곤 했습니다.”
“혼잣말이요?”
“돌아가야 한다.”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인가요?”
“나도 잘 모릅니다. 내가 몇 번 들었을 정도면 계속해서 그 말을 반복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오태수의 말을 들은 후 인호가 다시 오민호를 살핀다.
“이건 뭡니까?”
인호가 오민호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가리킨다.
가죽인가 싶어 봤더니 가죽이 아니었다. 어떤 동물의 힘줄을 가공해 줄로 만든 것 같았다.
제대로 가공되지 않은 원석에 가까운 보석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의 송곳니로 장식된 목걸이다.
“민호가 미국에서 돌아올 때 끼고 있던 목걸입니다.”
“위험할 수도 있는데 왜 벗기지 않은 겁니까?”
대답한 것은 이연우였다.
“목걸이를 벗기면 발작을 일으킵니다.”
“그래요?”
인호가 목걸이를 손으로 쥔다.
“흐으윽, 흐으윽.”
눈에 띄게 오민호의 호흡이 거칠어진다.
목걸이를 건드리지 않고 의식을 집중한다. 목걸이에 어떤 초자연적인 기운이 깃들어 있다면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집중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몇 번이나 확인했어. 그냥 평범한 목걸이야.”
“아직 모르죠. 우리가 세상의 모든 초자연적인 힘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긴 하지.”
인호가 이연우의 뒤에 서 있는 청년을 힐끔 바라본다.
목걸이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이상하게 초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한 번 봐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조금 쉬고 나서 다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 * *
인호는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정원은 운동장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넓었다. 나무들과 꽃들, 바위들로 아름답게 조경되어 있어 볼만 했다.
한쪽에는 인공 호수도 만들어져 있었다. 호수의 중앙에는 정자가 지어져 있는데 돌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인호가 정자를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저기-.”
누군가의 목소리에 인호가 몸을 돌렸다.
이연우의 아들이라는 청년이었다. 인호는 그가 자신을 쫓아오고 있음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성함이?”
“이정훈이라고 합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민호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저도 함께 미국에 있었습니다.”
“아, 그래요? 우리 저기 정자로 가서 이야기할까요?”
이정훈과 정자로 자리를 옮긴다.
“민호의 전공은 경영학이었습니다.”
전부가 될지, 일부가 될지 몰라도 앞으로 신성을 경영해야 하니 경영학을 전공한 것이리라.
“부전공은 미국 역사였죠.”
“그건 조금 특이하네요.”
“민호는 특히 아메리카 대륙의 본래 주인이었던 인디언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인디언이요?”
아메리카 대륙의 본래 주인으로 아직도 미국에는 인디언들의 자치구가 존재했다.
“민호는 와튼 스쿨에서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방학 기간 내내 애리조나주에 있는 인디언자치구에서 지냈죠.”
“두 주가 상당히 멀지 않나요?”
“동부 끝과 서부 끝이죠.”
미국의 서부 끝이라 할 수 있는 캘리포니아주 바로 아래 있는 것이 애리조나주다. 펜실베니아주는 동부의 끝이라 할 수 있는 뉴욕 아래쪽이다.
“민호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바로 인디언들이 준 겁니다.”
“인디언이라.”
한국 사람들에게 인디언이란 야만, 투사 이미지가 강하다.
그리고 또 하나.
“주술. 혹시 요즘 인디언 부족들에게도 주술사가 있습니까?”
“당연하죠. 자치구 내 대부분 부족들은 관광객들로 돈을 벌기 위한 이익 단체죠. 하지만 인디언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는 진정한 인디언 부족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주술로 미래를 점쳐주는 짝퉁 주술사가 아닌 진짜 주술사들이 있죠.”
“민호 씨가 주술사와 만났습니까?”
이정훈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한다.
“민호에게 목걸이를 준 사람이 바로 주술삽니다.”
“다른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했습니까?”
“말을 하면요? 당연히 절 이상한 놈 취급하겠죠. 그리고 민호가 잠에 빠진 것이 저 목걸이 때문인지도 확실하지 않고요.”
“원인을 찾지 못할 때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합니다. 아실지 모르지만 전 영매입니다. 죽은 이의 영혼을 볼 수 있고 그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죠.”
“아버지께 들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온 동호 형님 같은 사람들도 있죠. 주술사의 존재, 그가 사용하는 주술을 믿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이정훈이 가벼운 한숨을 토해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믿지 않죠.”
“덕분에 한 가지 가능성은 찾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