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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67화 (67/190)
  • 제67화

    “왜 그런 거야?”

    사기꾼의 물음에 인호가 인상을 와락 구긴다.

    “꼭 이런 곳에서 물어야 하냐?”

    인호는 소변을 보고 있었다.

    사기꾼은 인호의 정면 벽에 얼굴만 내밀고 있었다.

    “설마 그동안 내가 여자하고 모텔에 갈 때마다 따라온 게 여자를 보려고 온 게 아니라…….”

    “오우, 토 나오려고 한다. 거기까지만 하자.”

    “난 또 원래 이런 성향인 줄 알았지. 감춰왔던 너의 비밀을 커밍아웃하는 건 제발 참아줘.”

    “이런 미친-.”

    사기꾼이 몸을 쑥 잡아 뺀다.

    “그래서 왜 그런 거냐고.”

    “뭐가?”

    “돈 왜 잃어 주는데?”

    인호는 돈을 많이 잃었다. 아니, 잃어 주었다.

    돈을 딴 사람은 유재성이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따 유재성에게 몰아 주었다. 사기꾼이 다른 이들의 카드를 모두 보고 있기에 돈을 따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만큼이나 쉽다.

    “좀 아프게 하려고.”

    “뭔 말이야?”

    “원래 높은 곳에서 떨어져야 더 아픈 법이거든.”

    사기꾼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지금 한 6천만 원 정도 땄지?”

    “그 정도 땄지.”

    “2백만 원 있을 때는 잃어봐야 매일 잃는 것이니 크게 아쉽지 않을 거야. 하지만 6천만 원이면 말이 달라지지.”

    “아-! 너 보기보다 잔인하다.”

    “극약처방이지. 약한 자극으로는 정신 못 차려. 때리려면 세게 때려야지.”

    “그래서 언제 때릴 건데.”

    인호가 손을 닦고 밖으로 나가며 말한다.

    “지금.”

    인호가 자리로 돌아오자 유재성이 한마디 한다.

    “너무 많이 잃으신 것 아니에요?”

    “하하, 괜찮습니다. 재밌자고 하는 거잖아요.”

    인호의 말에 유재성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인호는 신경 쓰지 않고 1억 원을 더 환전한다. 테이블에 앉은 이들의 눈에 다시금 탐욕이라는 감정이 차오른다.

    인호는 이전과 다름없이 플레이 했다. 다른 이들에게 돈을 따 유재성에게 잃어 주었다. 유재성의 앞에 8천만 원이 쌓였다.

    인호에게 남은 돈도 비슷하다.

    새로운 판이 돌아간다. 인호는 카드를 확인하며 유재성을 힐끔 바라본다. 뒤에 서 있는 사기꾼이 손가락 여섯 개를 편다.

    6 메이드.

    바둑이에서 굉장히 강력한 패다.

    아니나 다를까 초반부터 유재성이 배팅을 크게 한다. 인호는 그에 맞불을 놓는다. 하나둘 다른 사람들이 떨어져 나간다.

    인호와 유재성만 남게 되었다.

    “레이스 2천.”

    유재성이 2천만 원을 배팅한다.

    “레이스. 2천 받고 4천……. 아니, 남은 돈 5천 정도인데 다 넣죠.”

    인호가 앞에 쌓인 돈을 앞으로 민다. 유재성의 눈동자가 떨린다.

    좋은 패를 들었지만 담이 작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앞에 놓인 돈을 모조리 테이블 중앙으로 밀어 넣는다.

    지금까지 자신이 인호에게 계속해서 이겨왔기에 이번에도 그럴 거라는 근거 없는 상상에 빠져 있으리라.

    “하하, 죄송해서 어쩌죠? 이번에는 6메이드네요.”

    유재성이 돈을 가져가려 한다. 인호가 손을 뻗어 유재성의 손을 잡는다.

    “제 패도 확인하셔야죠.”

    인호가 차례로 카드를 오픈한다.

    1, 2, 3, 5.

    바둑이라는 도박에서 두 번째로 높은 패였다.

    “으아악!”

    유재성이 비명을 내지른다.

    그러더니 세상 다 잃은 표정으로 인호가 돈을 가져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았다.

    “이번에는 제가 운이 좋았네요. 계속 지다 딱 한 번 이겼네요. 하하하.”

    인호의 앞에 2억이 넘는 돈이 쌓여 있었다.

    “계속하실 거죠?”

    “…….”

    유재성이 말을 하지 못한다. 돈이 없으니 당연하다.

    “끝발 괜찮으신데 조금 더 하시지.”

    유재성이 담배갑을 들고 일어선다.

    “재밌게 놀았습니다.”

    “저기요.”

    몸을 돌리는 유재성을 인호가 부른다.

    “괜찮으시면 알바 좀 뛰실래요?”

    “알바요?”

    “네. 요즘 세상이 험해서 하우스에서 돈을 따도 위험하다고 하더라고요. 보디가드하시죠. 천만 원 드릴게요.”

    “처, 천만 원이요?”

    인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재성이 곁으로 다가온다.

    “그냥 뒤에 서 계세요.”

    인호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사람이 부족하네.”

    그때 빨간 원피스 여자가 다가온다.

    “어머. 오늘 사장님 운수대통이신가 보다. 이게 다 얼마야. 이쪽 사장님은 그만하시는 거예요? 괜찮으시면 제가 사람 한 명 넣어드릴까요?”

    “좋죠.”

    인호가 동의하자 다른 이들도 동의한다. 인호는 여자와 다른 사람들이 눈을 맞추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역시나 모두가 한통속이다.

    새로운 멤버가 자리에 앉는다. 조금 마른 체격인데 눈매가 날카롭다. 새롭게 앉은 남자를 본 인호가 씨익 웃는다.

    “반갑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인호가 고개를 까딱거린다. 그러자 사기꾼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어디론가 사라진다.

    * * *

    “레이스. 천 받고 2천 더.”

    “…… 죽었습니다.”

    새롭게 합류한 남자가 카드를 구겨버린다.

    “뭐 맞았는지 궁금한데…… 돈 내고 확인해야 하는데 제가 조금 구질구질했네요.”

    “아니에요. 뭐 어려운 일이라고요. 킹 맞았습니다.”

    “키, 킹이요?”

    남자의 눈이 거세게 떨린다.

    “그쪽도 잘 맞은 것 아닌 것 같아서 뻥카 한 번 쳐 봤어요. 하하, 제대로 통했네요.”

    인호의 앞에 쌓인 돈이 늘어간다.

    뒤에서 인호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유재성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분명 거지 같은 패인데 인호는 매번 승리하고 있다.

    “전 오늘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새로 합류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벌써요? 그러면 저도 그만해야 겠네요.”

    여자에게 돈을 고액권으로 환전한다.

    “다음에 또 오세요.”

    “그러죠. 여기 정말 물 좋네요.”

    유재성과 함께 지하실에서 위로 올라간다. 거실 소파에 누군가 앉아 있다.

    “아직 안 가셨어요?”

    마지막에 합류한 남자였다.

    “아, 네. 머리 좀 식히려고요.”

    인호가 남자의 맞은편에 앉는다.

    “오늘 재밌었어요.”

    “아-.”

    남자의 표정이 흉하게 일그러진다.

    “카드도 재밌었고 그쪽하고 같이 온 망령도 재밌었고.”

    “무, 무슨 말입니까?”

    “그쪽이 더 잘 알잖아요.”

    인호가 환하게 웃는다.

    처음에는 유재성이 하우스 타짜에게 당한 줄 알았다. 그래서 도박판의 쓴맛을 보여주고 조금 강한 훈계를 하려 했다.

    그런데 웬걸.

    이상한 기운을 풀풀 풍기는 사람이 왔다.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남자에게서 망령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의 곁에 망령이 있었다.

    인호가 사기꾼에게 그 망령을 치우라고 했다.

    남자는 인호가 다른 이들의 돈을 딴 방법과 똑같은 방법으로 돈을 땄을 것이다. 그런데 사기꾼이 망령을 끌고 나가니 돈을 모두 잃고 말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충고할 깜냥이 될지는 몰라요. 그런데 한 가지만 말해 줄게요. 망령 가까이 두면 좋지 않아요. 죽은 이가 산 사람의 기운을 야금야금 갉아 먹거든요. 충고를 해줬으니 경고도 하나 할게요.”

    인호가 남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인호의 눈에 일렁이는 푸른 기운을 본 남자가 흠칫 몸을 떨었다.

    “다시 한번 도박판 기웃거리면 정말 재미없을 거예요. 경고인지 협박인지 알아서 판단해요.”

    인호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러면 이만.”

    * * *

    인호가 차에 탄다. 유재성이 안절부절못한 채 인호를 바라본다.

    주기로 했던 천만 원을 아직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요.”

    “네.”

    유재성이 조수석에 타자 인호가 곧 차를 출발시킨다. 목적지도 알려주지 않자 유재성의 눈 속에 불안이 깃든다.

    “XX동 사시죠?”

    “어, 어떻게 하셨습니까?”

    “저도 그 동네 살아요. 일단 이거 받으세요.”

    차가 신호에 걸리자 인호가 오만 원 다발 두 개를 유재성에게 건넨다.

    “오늘 보셨죠?”

    “네?”

    “그쪽 분 실력으로는 도박판에서 절대 돈 못 따요.”

    “…….”

    “마지막에 온 사람. 그 사람 타짜예요. 물론 내가 더 뛰어난 타짜라 이겼지만.”

    “타짜세요?”

    “그 눈빛 뭐예요? 설마 제자로 받아 달라는 말 하려는 건 아니죠?”

    유재성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유재성 씨.”

    “네. …… 절 아세요?”

    “네. 민성이, 설아도 알죠. 같은 동네 산다고 했잖아요. 오며 가며 자제분들 봤어요. 재성 씨. 요즘 민성이하고 설아가 뭘 먹고 사는지는 아세요?”

    “…….”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떤 일을 겪는지는 아세요?”

    인호의 음성은 담담하다.

    “배가 고파 보여서 밥을 사줬어요. 그 작은 녀석들이 3인분을 먹더라고요. 많이 굶었냐고 물어보지 못했어요. 하루는 민성이가 라면 하나를 사 가더라고요. 아이들이 아무리 작다 해도 라면 하나로 끼니가 되겠어요?”

    유재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좋은 아빠, 나쁜 아빠. 재성 씨가 나쁜 아빠라고 말할 수 없어요. 세상에는 재성 씨보다 나쁜 아빠도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유재성이 입술을 질겅인다.

    “재성 씨보다 좋은 아빠는 셀 수도 없이 많다는 거.”

    인호가 창문을 연다.

    “속이 타죠. 입이 쓰죠? 담배 한 대 피워요.”

    유재성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아이들은 돈을 많이 벌어와서, 좋은 것을 사줘서, 좋은 집에 살게 해 줘서 아빠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아빠니까. 세상에 유일한 믿고 의지할 사람이니까. 그런데 그런 아빠가 아이들을 방치했네요. 그거 알아요? 민성이 하고 설아는 단 한 번도 나한테 아빠 원망을 안 했어요.”

    “후우-.”

    담배 연기를 길게 토해낸 유재성이 눈을 비빈다.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미안해요. 내가 원래 오지랖이 좀 넓어요.”

    “아닙니다.”

    유재성이 울먹이며 말한다.

    “제가 나쁜 놈이죠. 죽일 놈입니다.”

    “이제라도 아셨으면 됐어요. 이제 정말 다시는 도박판 얼씬거리지도 마세요.”

    “네. 그러겠습니다.”

    “제대로 된 직장도 좀 구하시고요.”

    유재성이 고개를 끄덕인다.

    “직장 구하기 힘들면 말해요. 대기업은 아니어도 재성 씨 취직할 곳 정도는 알아봐 줄 수 있으니까요.”

    인호가 차를 세운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세요. 저기 횡단보다 건너면 치킨집 있어요. 오늘은 아빠 노릇 좀 제대로 해 봐요.”

    * * *

    오늘도 남매는 슈퍼마켓 앞에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멀리 가로등 아래 누군가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익숙한 모습에 유민성이 벌떡 일어선다.

    “아빠다.”

    유설아도 아빠를 알아본 듯하다.

    남매를 향해 다가오는 사람은 유재성이었다.

    “아들, 딸. 아빠 기다리고 있었어?”

    “네.”

    “응.”

    “하하. 아빠가 뭐 사왔게?”

    유재성이 뒤로 손을 감추고 있다.

    “치킨. 치킨 냄새나.”

    “우리 딸 똑똑한데. 짜잔, 아빠가 치킨 사왔다.”

    “우와, 아빠 최고!”

    유설아가 유재성의 품에 폭 안긴다.

    유재성이 그런 유설아를 꼭 끌어안는다.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정말 미안해.”

    아빠 노릇도 못 했는데 아이들은 날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작 치킨 한 마리에 아빠가 최고라며 볼을 부비며 좋아한다.

    “민성아. 아빠가 정말 미안해. 앞으로 다시는 이러지 않을게.”

    “아니에요. 괜찮아요.”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아들은 조숙해져 있었다. 존댓말로 대답하는 유민성을 보며 유재성이 오열한다.

    “미안해. 아빠가 다 잘못했어.”

    조금 떨어진 가로등 밑 어둠 속에서 인호가 중얼거린다.

    “나도 아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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