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66화 (66/190)
  • 제66화

    “어서 와.”

    땡초에게 소개받은 흥신소를 운영하는 유정우가 안으로 들어온다.

    “잘 지내셨죠.”

    “나야 뭐 항상 똑같지. 커피?”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민정아. 커피 한 잔 부탁해.”

    유정우가 인호의 맞은편에 앉는다.

    “내가 너무 자주 부르는 것 같아 미안하네.”

    “아닙니다, 형님. 공짜로 일 시키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고. 이번에도 알아봐 줘야 할 일이 있는데.”

    “말씀만 하세요.”

    “한 사람에 대해 조사를 좀 해줘. 불법적인 일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니니 걱정하지 말고.”

    “누굽니까?”

    인호가 유민성, 유설아 남매가 사는 다세대 주택의 주인에게 알아낸 남매의 아빠에 대해 말한다.

    “이름은 유재성, 나이는 마흔둘. 주소는……. 뭘 하던 사람인지, 지금은 뭘 하고 있는지 알아봐 줄 수 있지?”

    “저하고 같은 유 씨네요. 흐음, 쉬운 일이죠. 최대한 빨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정우는 인호와 사소한 대화를 나눈 후 돌아갔다.

    “인호야. 유재성은 또 누구야? 우리 모르게 일거리 찾은 거야?”

    “그런 거 아니야.”

    사기꾼의 물음에 인호가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젓는다.

    “영감님하고 뚱보는 어디 갔냐?”

    “뚱보야 어디 먹을 것 없나 기웃거리고 있을 테고, 영감님은 모르지. 요즘 낮에 자주 나가더라. 고운 할머니 망령이라도 찾았나?”

    “미친놈.”

    * * *

    유정우가 유재성의 정보를 전해 준 것은 이틀 후였다.

    “하아-.”

    인호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뭔데 그래?”

    사기꾼이 인호의 손에 들린 서류를 힐끔거린다.

    “도박쟁이네.”

    사기꾼의 말대로 남매의 아버지 유재성은 도박중독자였다.

    유정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유재성은 제법 규모가 큰 식당을 두 곳이나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인생을 망치고 싶으면 마약을 하지 도박은 하지 말라는 말이 딱 맞다니까. 어떻게 40억이 넘는 재산을 1년도 안 돼서 다 날리냐?”

    “넌 도박은 안 했냐?”

    “크크, 안 했겠냐?”

    인호가 사기꾼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다 떡볶이와 순대를 엄청난 속도로 삼키고 있는 뚱보에게 한마디 한다.

    “며칠 잘 참는다 했다.”

    “나 지금 민감해. 그러니까 건드리지 마.”

    “아이구, 우리 저승사자님 민감하셨어요? 왜 민감하셨는데?”

    “우씨. 진짜 민감하다고.”

    뚱보가 남은 떡볶이와 순대를 들고 사무실을 나가버린다.

    “쟤 왜 저래?”

    “어제 좀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봐.”

    “무슨 안 좋은 일? 그리고 저승사자가 안 좋은 일 겪을 게 뭐가…… 혹시 내가 생각하는 그런 거냐?”

    “맞아. 일곱 살짜리였다고 하더라.”

    “병?”

    “응. 백혈병.”

    어린아이를 저승으로 안내한 것 같다.

    아이를 먼저 떠나보내는 부모의 모습도 봤을 테니 뚱보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앞으로 쭉 겪어야 할 일인데.”

    “알아서 이겨내겠지.”

    사기꾼의 말대로 다른 저승사자들도 모두 겪는 일일 것이다.

    “그나저나 도박쟁이는 왜 뒷조사 한 거야?”

    “그럴 일이 있어.”

    인호가 서류에 시선을 준다.

    유재성은 40억이 넘던 재산을 1년도 안 돼서 모두 날려 먹었다. 당연한 수순인지 몰라도 아내는 일방적으로 이혼을 통보했다.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유재성의 도박중독은 치료되지 않았다. 아이들을 반지하 골방에 방치한 채 일용직으로 돈을 벌어 또 도박장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완전히 개자식이네. 애들은? 아직 초등학생들인데 밥은 먹고 사는 거야?”

    “일단 조치는 해뒀어.”

    “오지랖 발동이시고만.”

    “됐고. 영감님은 오늘도 외출?”

    “그렇지 뭐.”

    인호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나 좀 나갔다 온다.”

    인호가 나간 후 사기꾼이 서류를 마저 읽는다. 서류의 가장 아래 적인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 출입하는 하우스가 뺀찌라는 사람의 소유인데 땡초 형님과 아는 사이입니다.

    * * *

    “오랜만.”

    “오셨습니까!”

    땡초의 부하들 중 막내가 허리를 반으로 접으며 큰 소리로 인사한다.

    “얌마. 내가 깡패야?”

    “죄송합니다.”

    “좀 작게 말하라고.”

    “알겠습니다.”

    작게 말하라고 했다고 작게 속삭이는 막내를 보며 인호가 피식 웃는다.

    “땡초 형은 안에 있고?”

    “네. 기다리고 계십니다.”

    “수고해.”

    “네.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좋은 시간은 개뿔.”

    인호가 안으로 들어가니 땡초의 심복 땅콩이 꾸벅 인사한다.

    “인호 형님 오셨습니까요.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요.”

    “그래. 수고가 많어.”

    룸으로 들어가니 땡초가 먼저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치사하게 혼자 마시고 그래요.”

    “기다리다 지쳐서 먼저 한잔했다. 딱 한 잔. 됐냐? 쉰 소리 그만하고 앉아.”

    인호가 앉자 땡초가 잔을 채워준다.

    “이번에는 무슨 일로 온 거냐?”

    “꼭 일이 있어야 오나.”

    “응. 넌 일 있을 때만 와. 치사한 새끼야.”

    “미안해요. 요즘 많이 바빠요.”

    “바빠서 술 한잔할 시간도 없냐?”

    “미안하대도 그러네.”

    땡초와 건배한 후 잔을 비운다. 독한 위스키가 마시니 목이 화끈하다.

    “그래서 왜 온 건데?”

    “혹시 뺀찌라고 알아요?”

    “뺀찌? 내가 아는 그 뺀찌?”

    “네.”

    “니가 뺀찌에 대해 왜 물어?”

    “사연이 조금 있네요. 친한 사이에요?”

    땡초가 인상을 찌푸리고는 잔에 술을 채워 단숨에 비운다.

    “친해?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사이지.”

    “그 정도예요?”

    “뺀찌 그놈 사채하는 놈이야. 내가 사채할 때 경쟁 관계였지. 몇 번 푸닥거리도 했고. 내가 사채에서 손 뗀 후에 내 구역까지 다 잡아먹었지.”

    “그 사람한테는 형이 은인이겠네. 형 은퇴하면서 구역이 뻥튀기됐으니까요.”

    “그렇게 볼 수도 있지. 그런데 뺀찌는 왜? 혹시 그놈한테 돈 빌렸냐? 그 새끼 완전 악질인데.”

    인호가 빙긋 웃으며 잔을 비운다.

    “내가 사채 쓸 사람이에요?”

    “하긴 나한테도 돈 안 빌렸었지. 너하고 엮일 일이 없을 텐데 무슨 일이야?”

    “뺀찌라는 사람이 하우스도 운영한다면서요.”

    “이 바닥에서 하우스 운영 안 하는 놈들 거의 없어. 알겠지만 하우스가 캐시가 잘 돌잖아. 내가 아는 것만 해도 뺀찌가 운영하는 하우스가 세 개가 넘을걸. 그 새끼 아주 돈에 미친놈이거든.”

    인호가 땡초의 잔을 채워준다.

    “그러면 형하고 대단한 사이가 아니라고 봐도 되네요?”

    “그렇기는 하지. 그런데 왜? 그놈 뭐 잘못했어?”

    “사채업자가, 그것도 도박장까지 운영하는 사채업자가 잘못한 일이 없겠어요?”

    “듣고 보니 그러네. 걔네 조직 싹 쓸어버리게?”

    땡초도 인호가 검사, 형사와 함께 일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정도는 아니고요.”

    인호가 잔을 비운다.

    “키다리 아저씨 노릇 좀 제대로 해보려고요.”

    “키다리 아저씨? 야, 말을 좀 알아듣게 해라.”

    인호가 유민성, 유설아 남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땡초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잔을 비운 후 한숨을 내쉰 땡초가 말한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도 참 많이 나빴어. 사채로 사람들 눈에서 눈물 빼고, 하우스 운영하면서 사기도박으로 사람들 돈 뺐고. 나 때문에 망가진 사람, 가정 참 많을 거야.”

    “그걸 알면 앞으로 착하게 살아요.”

    “그렇게 살고 있잖아. 내가 관리하는 가게들은 술 떡이 돼서 인사불성 된 손님한테도 눈탱이 안 씌워. 이 정도면 성인군자지. 안 그래?”

    “하하, 맞네요. 형.”

    인호가 땡초의 잔을 채워준다.

    “왜 목소리를 깔고 지랄이냐? 무슨 말을 하려고?”

    “별 건 아니고. 형 이름 한 번 팝시다.”

    * * *

    평범한 주택가 골목.

    인호가 차를 세운 후 내렸다. 가로등 아래 덩치가 큰 두 남자가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둘 다 귀에 인이어를 착용하고 있다.

    인호가 다가가자 남자들이 눈을 가늘게 뜨며 경계한다.

    “안녕하세요. 여기 물이 좋다고 해서 놀러 왔어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남자 중 한 명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딴청을 피운다.

    “나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땡초 형 알죠? 땡초 형 소개로 온 사람이에요.”

    “땡초 형님이요?”

    땡초의 이름을 파니 바로 고분고분해졌다. 은퇴하긴 했지만 아직 이 바닥에서 이름이 통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현역에 있을 때 악명이 높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쪽 모시는 형님한테 땡초 형하고 통화해 보라고 해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남자가 곧 인이어로 누군가와 대화한다. 그리고 잠시 후 남자가 인호에게 꾸벅 인사한다.

    “확인됐습니다. 들어가시죠.”

    가로등에서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주변의 집들과 다를 것 없는 이층집으로 인호를 안내한다.

    남자가 인이어로 무슨 말인가를 하자 문이 열린다.

    “건승하십시오.”

    남자의 인사를 받고 또 다른 남자의 안내를 받아 집 안으로 들어간다.

    1층은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남자는 인호를 지하실로 안내한다.

    문을 열자마자 후끈한 열기와 매캐한 담배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남자가 문을 닫고 나가자 이번에는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다가온다.

    “어머! 어서 오세요. 땡초 오라버니 소개로 오신 분 맞죠?”

    “네. 그게 접니다.”

    “땡초 오라버니 요즘 잘 지내시죠? 은퇴하신 후에 영 얼굴 보기가 힘들어서요.”

    이 여자가 땡초와 아는 사이인지 모른다.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다.

    “물 좋다고 소문이 나서요.”

    “혹시 꾼은 아니시죠?”

    “설마요. 그냥 재미 삼아 노는 거죠. 여기 주 종목이 뭡니까?”

    “바둑이도 하고 세븐도 하죠. 오빠는 뭘 좋아하세요?”

    “바둑이로 하죠.”

    “잘됐네요. 저쪽 테이블에 마침 한 자리 났거든요.”

    여자가 인호를 안쪽으로 안내한다.

    지하에는 일곱 개의 테이블이 있고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모두 차 있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인호가 빈자리에 앉으며 인사하니 다른 이들이 눈인사를 건넨다. 인호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이들의 얼굴을 확인한다. 왼쪽 두 번째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고는 씨익 웃는다.

    “오늘 제가 운이 좀 좋을 것 같네요.”

    뜬금없는 말에 사람들이 인호를 바라본다.

    “어제 돼지 꿈을 꿨거든요. 하하.”

    인호가 손을 들자 빨간 원피스 여자가 다가온다.

    “환전 좀 할게요. 일단 이 정도?”

    지갑에서 천만 원권 수표 세 장을 꺼내 여자에게 건넨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여자는 곧 오만 원권 다섯 다발과 만 원권 다섯 다발을 가져다준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인호의 앞에 쌓인 돈을 바라본다. 그들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린다.

    인호는 돈을 챙기며 좌측 두 번째 앉은 남자를 힐끔 바라본다.

    ‘유재성.’

    민성, 설아 남매의 아버지 유재성이었다. 찾을 필요도 없이 초장부터 유재성과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된 것이다.

    유재성의 앞에는 돈이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2백만 원이 조금 넘어 보였다.

    저 정도 돈이면 당장 남매가 밥을 굶을 걱정은 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 자식들은 밥을 굶는지, 학교 준비물은 잘 챙겨 가는지 관심도 없이 도박에 미쳐 있는 것이다.

    “바로 플레이하시죠.”

    카드를 들고 있는 남자가 말을 하며 카드를 돌린다.

    바둑이는 네 장의 카드로 승부를 보는 도박이다. 네 장의 카드 모두 무늬와 숫자가 서로 달라야 한다. 그렇게 무늬와 숫자를 다르게 한 후 낮은 숫자로 승부를 가르는 도박.

    서로의 카드를 볼 수 없기에 소위 뻥카라 부르는 블러핑이 난무하는 도박이다.

    “다이.”

    “다이.”

    “다이.”

    “하하, 오늘 카드 영 안 오네요. 다이.”

    인호는 연거푸 몇 판을 죽기만 한다.

    “이야. 이번에는 좀 괜찮네. 얼마라고 했죠? 5만 원? 레이스 5에 15 더.”

    인호가 배팅을 하자 옆 사람이 죽고 유재성의 차례가 되었다.

    “레이스. 5에, 15에, 40 더.”

    테이블 위에 폭우가 쏟아지듯 지폐가 떨어져 내린다. 두 사람이 죽고 남은 한 사람이 콜을 받는다.

    “레이스. 40에 100 더.”

    인호가 다시 한 번 배팅을 올린다.

    “레이스. 100에 나머지 오링.”

    유재성이 남은 돈을 모조리 쏟아낸다. 옆 사람이 카드를 덮는다.

    “도대체 뭐가 맞았길래 불꽃 레이스들을 하실까?”

    아쉽다는 듯 자기 패를 확인하고 던져버린다. 인호는 물끄러미 유재성을 바라본다. 콜을 받는다고 해도 얼마 되지 않는 돈이다.

    잠시 후 인호가 카드를 들어 테이블 중앙으로 던진다.

    “다이.”

    “하, 하하.”

    유재성이 환하게 웃으며 쌓여 있는 돈을 쓸어간다. 인호의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묻는다.

    “도대체 뭘로 죽은 겁니까? 100을 레이스치고 30도 안 되는 돈을 콜을 안 받아요?”

    “저요? 6이요.”

    “그 패로 죽었다고요?”

    “저분 5일 것 같아서요.”

    인호는 순간 유재성의 표정에 금이 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호가 콜을 했다면 유재성은 가진 돈을 모두 잃었을 것이다.

    이미 인호는 유재성이 어떤 패를 들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호가 허리를 쭉 펴며 유재성 쪽으로 시선을 둔다.

    정확히는 유재성 뒤에 서 있는 사기꾼을 바라본다. 인호와 눈이 마주친 사기꾼이 씨익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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