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65화 (65/190)
  • 제65화

    - 유니콘 그룹의 정창수 회장이 1심 판결에서 징역 2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재철 판사는 검찰이 기소한 살인교사, 공금횡령, 배임, 뇌물수수 등 스물네 개 항목의…… 1심 판결이 발표된 후 정치권에서는 속칭 ‘정창수 게이트’라는 말이 떠돌며 그와 관련된 정치인, 사회 인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속속 전해지고……

    인호는 뉴스를 보고 있다.

    유니콘 그룹의 정창수 회장은 결국 법의 심판대에 올라 그간의 죄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되었다. 당연히 항소를 할 테고 그때 어떤 판결이 나올지 모르지만 1차 판결보다 적지는 않을 것이다.

    “우와-! 소장님. 3천만 원 입금됐어요.”

    “그래? 생각보다 많이 보내줬네.”

    정재훈을 도와 일을 처리하면 자문비 형식으로 돈이 지급된다.

    “이러다 우리 부자 되는 거 아니에요?”

    진실교와 중국 범죄조직을 소탕했을 때도 3천만 원을 받았다.

    “부자가 되도 내가 부자가 되지 왜 우리가 부자가 되니? 너 월급 안 올려 줄 거거든?”

    “에이씨. 좋은 기분 망치지 말아 주실래요?”

    “크크. 알았다. 돈도 벌었으니 간만에 회식이나 하자.”

    “오오오-! 회식!”

    뚱보가 벌떡 일어서며 외친다.

    * * *

    오랜만의 회식은 화기애애했다.

    줄곧 사무실이 아니라 밖에서 좀 하자고 노래를 부르던 이민정도 이제 사무실 내부 회식에 익숙해져 버린 것 같았다.

    뚱보는 오랜만에 고삐가 풀려서 그런지 엄청난 양의 음식을 씹어 삼켰다.

    술을 제법 마신 인호는 사무실에 차를 두고 택시를 탔다.

    술도 깰 겸 대로변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경사도가 제법 되는 언덕길을 오르며 대은 그룹 이철호 회장이 얻어 준 집으로 이사 갈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주 잠시였을 뿐이다.

    대로와 집의 중간쯤 되는 위치에 있는 슈퍼마켓은 평소에 인호가 자주 이용하는 곳이었다. 슈퍼마켓을 지나갈 때 즈음이었다.

    슈퍼마켓 앞에 두 명의 아이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저학년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처음 보는 아이들이었다.

    동네 아이들을 전부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알고 있었다. 슈퍼에 들어가 생수와 맥주 몇 캔을 사서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걸어가려다 걸음을 멈춘다.

    “이 동네 살아?”

    “…….”

    아이들이 인호를 바라본다.

    “이상한 아저씨 아니야. 이 동네 사는 아저씨야. 슈퍼마켓 아줌마한테 물어봐도 돼.”

    “네. 근처에 살아요.”

    “이사 왔어?

    “네. 지난달에요.”

    인호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남자아이였다. 여자아이는 오빠인 듯한 남자아이 뒤로 숨는다.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왜 나와 있어?”

    “아빠 기다려요.”

    “아-. 아빠 일이 늦게 끝나시나 보네.”

    “네.”

    남자아이가 대답할 때 슈퍼마켓 아주머니가 밖으로 나온다.

    “오늘도 아빠 기다리는 거야?”

    “네.”

    “이거 마시면서 기다려.”

    아주머니가 바나나 우유를 아이들에게 준다.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아. 집에 라면도 다 떨어졌지?”

    “…….”

    인호는 아주머니와 아이의 대화를 듣고 있다. 인호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아주머니가 말한다.

    “얘들 아빠가 매번 늦게 들어와요. 외박할 때도 많고.”

    “애들 엄마는요?”

    아주머니는 대답 대신 고개를 흔든다.

    어머니가 없는 것인지 아주머니가 보지 못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 늦은 시간까지 아이들이 밖에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집에 어머니가 없을 가능성이 컸다.

    “삼일 전인가? 아무튼 그때 라면 다섯 봉지 사 갔거든요. 얘들 아빠라는 사람이 뭔갈 사 가는 걸 못 봤어요.”

    아주머니는 주변을 한번 휘휘 둘러보고는 몸을 돌린다.

    “아직 어린 애들인데 아빠라는 사람이 해도 너무 해. 오늘은 손님도 없는데 일찍 문 닫아야겠어요.”

    아주머니가 안으로 들어가자 인호가 아이들 옆에 쪼그려 앉는다.

    “아빠 언제 오는지 몰라?”

    “…….”

    “밥은 먹었어?”

    “…….”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둘 모두 바짝 말라 있었고 여자아이는 아주머니가 준 우유를 벌써 다 마셨다. 빨대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남은 우유를 마시려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아줌마가 아저씨 아는 척하는 것 봤지? 아저씨 이상한 사람 아니거든. 조기 아래 가면 늦게까지 하는 식당 있는데 아저씨하고 밥 먹으러 갈래?”

    남자아이가 인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밥을 먹자는 말에 여자아이가 오빠 등 뒤에서 얼굴을 쏙 내밀어 인호를 본다. 인호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오빠 등 뒤로 숨는다.

    “아저씨도 배가 고파서 그래. 외로움을 많이 타서 혼자 밥 먹는 걸 싫어하거든. 아저씨하고 같이 밥 먹어 줄래?”

    * * *

    설렁탕 가게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남자아이는 설렁탕을, 여자아이는 돈가스를 시켰다. 함께 밥을 먹자고 했기에 인호도 설렁탕을 주문했다. 회식을 한다고 이것저것 많이 먹어 배가 가득 찬 상태였지만 억지로 떠넘기고 있었다.

    “먹을만 해?”

    “…… 네.”

    남자아이가 바쁘게 입을 놀리며 대답했다.

    “이모님. 여기 밥 한 공기 더 주세요. 돈가스 더 먹을래?”

    여자아이가 인호의 눈치를 살피다 고개를 끄덕인다.

    “돈가스도 하나 더 주세요.”

    깍두기를 하나 씹으며 아이들에게 말한다.

    “많이 먹어. 그런데 이름이 뭐야? 아저씨 이름은 정인호야. 자-, 이게 아저씨 명함.”

    흥신소 명함 한 장을 남자아이 앞에 밀어준다. 남자아이가 명함을 챙기며 말한다.

    “유민성이에요. 동생은 유설아고요.”

    “민성이, 설아. 좋은 이름이네.”

    “우리들한테 왜 잘 해주세요?”

    유민성이 묻는다.

    “글쎄.”

    인호가 씨익 웃는다.

    “누군갈 도울 때 꼭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야.”

    “…….”

    아직 나이가 어려 인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냥. 그냥 너희들하고 같이 밥 먹고 싶었어. 이야기는 그만하고 마저 먹어. 더 주문했으니 빨리 먹어야겠다.”

    아이들은 다시 먹는 것에 열중한다.

    유설아는 저 작은 체구에 돈가스 2인분이 어떻게 들어가나 싶을 정도로 잘 먹었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먹을까?”

    “네.”

    유설아가 먼저 대답한다.

    인호가 그런 유설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 * *

    “수고하셨어요. 오늘은 약속 있어서 먼저 퇴근할게요.”

    오후 6시가 되자 이민정이 칼퇴근을 한다.

    “남자친구 생겼나?”

    “남자친구는 얼어 죽을. 저 성격 받아 줄 남자가 있겠어?”

    사기꾼에 공감한다는 듯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민정이 얼굴은 정말 예쁘지만 성격이 굉장히 드셌다. 인호 앞에서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이민정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는 인호와 망령들에게는 가증스러운 연기로 보일 뿐이었다.

    인호가 점심에 사다 둔 소화제를 먹는다.

    “갑자기 웬 소화제?”

    “어제 먹은 게 조금 얹혔나 봐.”

    “그래? 그렇게 많이 먹었어? 저놈이 다 먹었잖아.”

    사기꾼의 말에 뚱보가 발끈한다.

    “그냥 얹혔어.”

    회식이 끝난 후 곧바로 설렁탕 한 그릇을 더 먹어서 그런 것 같다.

    “퇴근해야지?”

    “그래야지. 집에 있는 녀석들도 밥 챙겨줘야지.”

    “젯밥 차리는 것도 일이다, 일. 고생하고.”

    사무실을 나선 인호가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동네의 슈퍼마켓을 지날 때 혹시나 싶어서 주위를 살폈다.

    막 슈퍼마켓을 지날 때였다.

    유민성이 슈퍼마켓에서 나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인호가 차를 멈춘다.

    아이의 손에는 라면 한 봉지가 들려있다. 그 모습을 본 인호가 한숨을 푹 내쉰다.

    “설마 저거 하나로 둘이 나눠 먹는 거야? 민성아.”

    창문을 열고 유민성을 부른다. 인호를 본 유민성이 꾸벅 인사한다.

    “설아는?”

    “놀이터에 있어요.”

    조금 더 올라가면 놀이터가 있다. 미끄럼틀과 그네 밖에 없었지만 이 동네 아이들에게는 하나뿐인 놀이터였다.

    “타. 아저씨가 데려다줄게.”

    “괜찮아요.”

    “그냥 타. 어서.”

    유민성이 주뼛거리며 다가와 차 문을 연다. 조수석에 타고는 곧바로 안전벨트를 멘다.

    그 모습을 본 인호가 유민성에게 묻는다.

    “안전벨트 메는 습관을 잘 들였네.”

    “아빠가 차에 탈 때는 항상 안전벨트 메라고 해서요.”

    “아빠 차?”

    “…… 네.”

    뭔가 사정이 있는 듯하다.

    놀이터에 도착하자 유민성이 차에서 내린다. 인호가 놀이터를 바라본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그런데 한 아이는 아이들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구경만 하고 있다.

    유설아였다.

    “흐음-.”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친구를 사귀지 못한 것일까?

    유설아는 유민성을 보자 쪼르르 달려와 팔에 매달린다. 남매는 손을 잡고 놀이터를 벗어난다. 집에 가려는 듯했다.

    인호는 차를 근처에 세우고 차에서 내려 아이들을 따라간다.

    큰길에서 골목 안으로 들어가 한참이나 걸어간 아이들이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로 들어간다.

    “여기는…….”

    다세대 입구 옆쪽에 종이박스와 공병 등이 잔뜩 쌓여 있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사는 곳이었다.

    인호는 아이들이 들어간 반지하 방을 잠시 본 후 2층으로 올라간다.

    똑- 똑-

    “할머니 계세요?”

    “누구여?”

    문이 열리며 할머니가 얼굴을 빼꼼 내미신다.

    “인호 총각이네.”

    멍- 멍-

    지난번에 할머니에게 선물해 준 해피가 제법 컸다. 인호를 알아보는 것인지 열린 문틈으로 빠져나와 꼬리를 힘차게 흔든다.

    “잘 지내셨죠?”

    “총각 덕분에 잘 지냈지. 해피가 있어서 적적하지도 않고 좋아.”

    “다행이네요.”

    “무슨 일로 온 거야?”

    “할머니. 혹시 반지하 사는 아이들 아세요?”

    “민성이 하고 설아?”

    “네.”

    다행히 아이들을 알고 있는 듯하다.

    “불쌍한 애들이야. 애비라는 놈이 일주일에 한두 번밖에 안 들어와. 돈도 안 주는지 애들이 제대로 먹지도 못해. 가끔 내가 챙겨주기는 하는데 나도 형편이 좋은 편이 아니잖아.”

    “그렇죠.”

    인호가 아래쪽을 한 번 바라본 후 말한다.

    “할머니. 저 좀 도와주실래요?”

    * * *

    유민성은 가지고 있던 동전을 끌어 모아 산 라면을 끓이기 위해 물을 받은 냄비를 버너 위에 올렸다.

    도시가스비를 내지 못해 가스가 차단되었기 때문에 버너를 사용하고 있었다.

    버너의 불을 키려고 할 때였다.

    “민성이 있니?”

    2층에 사는 할머니다.

    “네.”

    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안으로 들어온다.

    “라면 끓여 먹으려고?”

    “네.”

    “한 개 끓여서 둘이 먹어서 배가 차겠어?”

    “…….”

    유민성이 대답하지 못하자 할머니가 안타깝다는 듯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거 먹어.”

    할머니가 손에 든 봉지를 건네준다. 안에는 밥과 몇 가지 반찬이 들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니야. 그리고 내일부터는 할미 집 와서 밥 먹어. 알겠지?”

    “괜찮아요.”

    유민성이 어린 나이라고 해도 2층 할머니가 폐지를 모아 어렵게 사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괜찮아. 그래도 돼. 어떤 마음씨 좋은 양반이 너희들 돕고 싶다고 했어.”

    “누가요?”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처음 봤는데 같이 밥을 먹자고 했던 동네 아저씨. 오늘 타고 있던 차는 굉장히 고가의 차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뭐더라? 키? 크다? 키다?”

    “키다리 아저씨요?”

    “아, 맞아. 키다리 아저씨. 그 아저씨가 너희들 돕고 싶다고 할미한테 돈을 줬어. 너희들 밥 굶지 않게 잘 먹여 달라고. 그러니까 내일부터 할미 집 와서 밥 먹어. 알았지?”

    유민성이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내 꾸벅 고개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나한테 감사할게 뭐 있누. 그 키다, 키다리 아저씨 그 아저씨한테 고마워해야지. 아빠는 오늘도 안 오는겨?”

    “잘 모르겠어요.”

    “아이구, 가여운 것들. 언능 밥 먹고 일찍 자. 아빠 기다린다고 또 늦게까지 기다리지 말고.”

    “네.”

    할머니가 돌아간 후에도 유민성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방문이 열리며 유설아가 나온다.

    “오빠. 배고파.”

    “응. 라면 금방 끓일게 밥 먹자.”

    “그거 뭐야?”

    유민성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보며 묻는다.

    “이거? 선물.”

    “선물? 누가 선물 줬어?”

    유민성이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동생의 손을 꼭 잡았다.

    “키다리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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