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해가 지고 주변이 어두워진다.
인호는 마지막으로 주변을 살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한 동을 모두 비워두었다.
다른 동은 늘어난 제소자들로 불편할 테지만 오늘이 지나면 이전처럼 되돌아갈 것이다.
물론 인호가 찾아올 악령을 완벽하게 제압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말이다. 방으로 되돌아왔을 때 강호영은 구석에 딱 붙어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와, 왔나요?”
“아직이요. 그것이 오게 되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교도관들이 주변을 완벽하게 지키고 있다지만 크게 기대하는 바는 없었다.
애초에 악령은 그들이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인호는 방 중앙에 앉은 채 눈을 감는다. 이제 악령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그나저나 잘 해줘야 할 텐데.”
인호가 작게 중얼거린다.
* * *
교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승합차량 한 대가 시동을 끈 채 서 있다.
“아직이죠?”
정재훈이 유 형사에게 묻는다.
승합차 뒤에는 몇몇 경찰들이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 손으로 뭔가를 조작할 때마다 화면이 바뀌었다.
“네. 아직은 별다른 이상이 없네요.”
유 형사의 말에 정재훈이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올까요?”
“소장님이 온다고 했잖습니까.”
“그렇죠. 내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정 소장이 온다면 오는 거겠죠.”
함께 한 시간은 길지 않지만 인호에 대한 정재훈의 신뢰는 대단했다.
“그런데 정말 귀신 짓일까요?”
“그걸 확인하려고 소장님이 저 안에 계시는 거니까요.”
사실 유 형사는 인호에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윤창식을 시신을 통해 악령이 개입한 흔적이 있다는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다.
“드론은 몇 대나 운용하는거죠?”
“네 대 돌리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이니 맡겨 두시죠.”
정재훈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 악령은 다루는 놈이라면 반드시 교도소 주변에 올 거야. 너무 멀리 떨어지면 악령과의 교감이 떨어지거든. 교도소 주변을 살피면 반드시 그놈이 올 거야.
인호의 말 때문에 경찰청 내 감청 등의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이들에게 협조를 구했다. 교도소 주변에 드론을 띄워 감시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검사님.”
그들 중 한 명이 정재훈을 부른다.
“여기 보십시오.”
정재훈이 모니터를 확인한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인다.
“라이트를 끄고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교도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차가 멈춘다. 몇 분이 지나도 차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정재훈이 유 형사를 바라본다. 유 형사가 승합차에서 내린다. 주변에는 마찬가지로 시동을 끄고 서 있는 차가 몇 대 더 있었다.
유 형사가 후레쉬를 몇 번 깜빡이니 차에서 형사들이 우르르 내린다.
사전에 작전 브리핑을 하였기에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각자 임무를 숙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유 형사가 움직이자 형사들이 그 뒤를 쫓는다.
형사들이 이동할 때 정재훈이 휴대폰으로 인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 들어갑니다.
* * *
우웅-
메시지를 확인한 인호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강호영을 바라본다.
“온 것 같네요.”
강호영이 눈에 띌 정도로 몸을 떤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으니 별일 없을 겁니다. 한 가지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두려움은 악령에게 아주 좋은 먹잇감입니다. 그러니 최대한 담대해야 합니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그냥 눈을 감고 있어요.”
일반인이기에 악령을 보게 되면 두려움에 떨다가 공포에 찬 비명을 토해낼지도 몰랐다.
악령이 인간의 두려움을 좋아한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싸움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악령과 싸울 때 어그로가 튀어서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문은 밖에서 잠겨 있습니다. 악령 때문에 내보내 달라고 떼써도 나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냥 나를 믿고 그대로 계시면 됩니다.”
강호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주변의 온도가 차가워진다. 강호영도 느낀 것인지 몸을 부르르 떤다.
크르르-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인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수령을 상대하는 건 또 오랜만이네.”
수령이란 짐승의 영을 말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시신을 확인하며 악령이 인간의 망령이 아닌 짐승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인호는 죽은 윤창식의 목덜미에 난 상처를 분명히 볼 수 있었다.
크르르-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무언가 문을 뚫고 안으로 쑥 들어온다. 온몸에 붉은 기운을 풀풀 흘려내는 거대한 개의 수령이었다.
수령은 빨간 두 눈으로 인호를 쏘아보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해코지한 것인지 수령의 색은 아주 새빨갰다.
“주인을 잘못 만났구나.”
귀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정창수 회장의 수족이 어째서 도망친 이들을 귀신처럼 찾아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개의 수령을 부리니 도망친 이의 물건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캬앙-
수령이 날카롭게 울부짖는다.
“으으으-.”
강호영이 반응을 보인다. 수령의 주인이 강호영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눈에도 수령이 보였다.
“저, 저게…….”
“눈 감으세요.”
인호가 담담하게 말한다.
수령은 인호를 경계하며 강호영을 살핀다. 자신이 해치워야 할 사람이 인호가 아닌 강호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옆걸음질을 쳤다.
“이런, 이런. 그러면 안 되지. 내가 먼저라고.”
인호의 눈에서 푸른빛이 일렁인다.
수령이 뒤로 물러선다. 인호에게서 위험을 감지한 것이다.
뒷걸음질 치던 수령이 문에 부딪힌다.
수령이 날카롭게 울부짖는다. 아마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너 여기서 못 나가. 그리고 혹시 내 목소리 들리는지 모르지만 포기하는 편이 좋을 거야.”
이 주변 어딘가에 있을 수령의 주인에게 한 말이다.
수령과 영적으로 교감을 이루고 있다면 인호의 음성을 들을 수도 있다.
인호가 수령에게 다가선다.
“이리 오렴. 편하게 해 줄게. 더 이상 나쁜 주인 때문에 죄를 짓지 않도록 해 줄게.”
컹- 크르르르-
수령이 주둥이를 쩍 벌리며 인호를 위협한다. 하지만 인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진 순간, 수령이 펄쩍 뛰어올라 인호의 목줄기를 물어뜯으려 했다.
깽-
인호의 팔을 문 수령이 고통에 찬 비명을 토해내며 뒤로 물러선다.
정장 상의를 벗은 인호가 와이셔츠 소매 단추를 풀고 위로 걷었다.
온통 검은 문양으로 가득한 팔이다. 조금 전 물린 곳에 붉은 기운이 서려 있다. 하지만 그 기운은 곧 희미해지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네가 악행을 많이 쌓아 강력해진 건 알겠지만 나 역시 평범한 인간은 아니란다.”
인호의 몸 가득 새겨진 검은 문양은 인호의 업보다. 그건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했기에 내려진 하늘의 형벌이다.
수령의 악한 기운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검은 문양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제 알겠지? 뭘 해도 내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해.”
크르르- 왕-
수령이 벽을 박차고 인호를 향해 날아든다. 포기할 마음이 없는 듯했다.
인호가 상체를 비틀며 수령의 목을 움켜쥔다.
아니, 움켜쥐려 했다.
“이런.”
수령의 몸이 갑자기 사라진다.
“으아아악-!”
강호영이 비명을 토해낸다. 사라진 수령이 강호영을 덮친 것이다. 인호가 황급히 달려가 발로 수령의 머리를 찬다. 푸른빛이 물든 다리에 맞은 수령이 깽 하며 벽에 틀어박힌다.
다행히 강호영이 수령에게 물리진 않았다. 수령의 악한 기운이 조금이라도 몸에 침투하게 되면 강호영은 크게 잘못되었을 것이다.
“좋게 말로 하려고 했더니 안 되겠다. 넌 일단 좀-.”
우드득-
인호가 주먹을 말아쥔다.
“맞자.”
퍽- 빠각- 퍽-
인호가 손과 발로 수령을 두들겨 패기 시작한다. 수령은 어떻게든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부질없는 발악일 뿐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간 악령답지 않게 인호에게 일방적으로 구타당하는 수령은 애처롭게 보일 정도였다.
“네가 무슨 죄가 있겠니. 다 널 이렇게 만든 주인 잘못이지.”
구석에 딱 달라붙어 움직이지 못하고 인호의 눈치를 살피는 수령.
인호가 품속에서 무언갈 꺼낸다.
황금색, 푸른색, 붉은색 세 개의 방울이다.
“삼신령三神鈴이라는 것이다. 내 힘으로 널 소멸시킬 수 있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다. 말 못 하는 축생으로 태어났다지만 윤회의 고리가 어떻게 이어질지 모른다. 쌓은 악업을 모두 씻고 다음 생에는 선한 존재로 태어나거라.”
인호가 삼신령을 흔든다.
딸랑- 딸랑-
방울소리가 들린다.
수령이 흠칫 몸을 떨며 주위를 살피다 인호의 옆에 선 한 존재를 보고는 잔뜩 몸을 움츠린다.
“인호 씨. 오랜만이에요.”
회색 작업복 같은 것을 입고 있는 남자다. 모자 역시 회색이었는데 모자 중앙에 강아지가 수놓아져 있다.
“네, 오랜만입니다. 사자님.”
수령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저승사자다.
“에구. 어쩌다 이렇게 됐누.”
저승사자가 안쓰럽다는 듯 수령을 바라본다.
“주인을 잘못 만난 게로구나.”
저승사자가 인호에게 시선을 준다.
“부탁 하나 해도 됩니까?”
“말씀하세요.”
“저 아이를 이렇게 만든 놈 혼쭐을 내주세요.”
인호가 피식 웃는다.
인간들의 일에 관여해선 안 되는 저승사자가 인간을 혼쭐내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죠.”
저승사자가 웃으며 수령에게 손을 내민다.
인호를 향해 이를 드러내던 것과는 달리 수령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다. 저승사자가 수령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승에 있는 것은 네게 고통일 뿐이니 나와 함께 가자꾸나. 가야 할 곳 역시 고통이겠지만……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오지 않겠느냐.”
저승사자가 인호를 향해 빙긋 웃는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저승사자와 수령의 모습이 사라진다.
“다 끝난 겁니까?”
강호영이 묻는다. 그는 저승사자가 온 것을 모른다. 당연히 인호가 저승사자와 대화를 나눈 것도 모른다. 그의 눈에는 수령이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네? 또 뭐가 남았습니까?”
강호영은 일어나려다 다시 쪼그려 앉는다. 인호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시작입니다.”
인호가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한다.
“문 좀 열어주세요.”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가며 인호가 강호영에게 말한다.
“이제 나쁜 놈들 벌 받게 해야죠. 부디 재판에서 알고 계신 모든 진실을 말하시길 바랍니다.”
* * *
교도소 밖으로 나가니 몇 대의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소장님.”
유 형사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웃는 모습을 보니 일이 잘 해결된 모양이다.
“그놈은 어디 있어?”
유 형사가 뒤쪽 승합차를 가리킨다.
승합차 뒷좌석에 세 사람이 타고 있다. 가운데 앉은 남자의 손에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양옆에 앉은 남자들은 형사들로 보였다.
인호가 차 문을 열고 남자에게 묻는다.
“니가 귀신이냐?”
남자가 인호를 죽일 듯 쏘아본다.
“너구나?”
“그래. 나야.”
남자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형사들이 제압한다.
“놔, 놓으라고! 죽여버릴 거야!”
남자는 인호에게 달려들려 발악해 보지만 형사들의 힘을 이기지 못한다.
“넌 내가 반드시 죽인다! 알겠어!”
“그래. 꼭 그렇게 해. 다행히 죄책감은 느끼지 않아도 되겠다. 나도 너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없거든.”
인호가 남자를 향해 손을 뻗는다.
“뭘 하려는 거야! 손 치워!”
미친 듯 고개를 흔드는 남자. 형사들이 머리를 흔들지 못하게 제압한다. 인호의 손이 남자의 머리 위에 얹어진다.
“하늘이 널 다른 사람과 다르게 만든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다른 사람들을 해치라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지. 하늘을 대신해 네 죄를 물을 자격이 내게는 없다. 하지만 네 힘을 거둘 수는 있지.”
인호의 눈이 파랗게 빛난다.
“으아아아악-!”
남자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른다. 인호는 자신의 기운으로 남자의 귀문을 강제로 닫고 있다. 인호의 손에 맺힌 푸른 기운이 남자의 머리로 옮겨간다.
잠시 후 푸른 기운이 다시 인호의 손으로 돌아온다. 푸른 기운은 갈 때보다 올 때 더 강렬해 보인다.
“만약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면 그 죄 또한 내가 받을 것이다. 이후 네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모르지만, 너로 인해 죽어간 이들에게 사죄하며 살아라.”
인호는 남자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몸을 돌린다.
“너 같은 놈도 주인이라고 따랐던 그 아이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