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63화 (63/190)

제63화

교도소 내 접견실.

유 형사는 한 남자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남자는 불안한 눈빛이다. 다리를 떨며 손톱을 잘근거리고 있는데 시선을 한곳에 두지 못하고 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창식이한테도 그렇게 말 하셨죠?”

유 형사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진다.

“안전할 거라면서요. 괜찮을 거라면서요? 그런데 이게 뭐예요? 지켜 준다면서요.”

“하아-. 미안하다. 할 말 없다.”

유 형사가 한숨을 푹 내쉰다.

남자는 다리를 달달 떨며 중얼거린다.

“이번엔 내 차례에요. 내 차례라고. 나도 죽을 거야.”

“아니야. 니가 왜 죽어? 걱정하지 마, 너 안 죽어.”

“아니에요. 죽을 거예요. 창식이도 죽었잖아요.”

접견실 밖에서 교도관이 유 형사와 눈을 맞춘다.

“오늘은 이만 갈게. 금방 다시 올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남자는 유 형사와 눈도 맞추지 않는다. 유 형사는 접견실 밖으로 나가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남자를 바라본다.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나도 죽을 거야’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 * *

인호는 소파에 앉아 휴대폰 문자를 확인하고 있다.

유미향 할머니의 딸인 김희수에게 온 문자다. 보답하고 싶다며 식사를 함께하자는 문자였다.

- 괜찮아요. 뭔가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에요. 본래 주인에게 가야 할 돈을 드린 것뿐이에요. 식사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하시죠.

문자를 보낸 후 등을 소파에 기대며 기지개를 쭉 켠다.

“조금 받아도 되지 않아?”

인호가 사기꾼을 쏘아본다.

“아니. 너 아니었으면 10원도 못 받았을 거 아냐. 내가 틀린 말 하는 건 아니잖아.”

“적당히 해라. 두 분이 남긴 유산이다.”

맞은 편에 앉은 영감이 씩 웃는다.

“어떻게 5백억이나 뜯어낼 생각을 한 거야?”

“자기 입으로 만 배로 갚겠다고 했잖아요. 입 닫는 대가로 받은 돈이 5백만 원이니 만 배면 5백억 맞잖아요.”

인호는 이필성에게 5백억 원을 내놓으면 모든 일을 덮겠다고 했다.

당연히 이필성은 발끈했다.

자신이 받은 돈은 5백만 원인데 5백억 원을 내라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호가 적절히 협박을 섞어 결국 5백억 원을 받아냈다.

그 돈을 유미향 할머니의 딸과 아들, 김희수와 김종민에게 정확히 반씩 보내주었다.

“어때요? 제가 한 건 했죠?”

이민정이 인호에게 커피를 건네며 말한다.

“야. 돈도 안 되는 일이잖아. 일을 물어 올 거면 돈이 되는 일을 물어와야지.”

“돈은 못 벌었지만, 가슴이 따뜻해졌잖아요.”

“그래. 네 덕에 가슴이 따뜻해서 난방비 걱정은 없겠다.”

인호가 웃으며 커피를 마신다.

사무실 문이 열리며 유 형사가 안으로 들어온다.

“유 형사. 이제 전화도 없이 막 쳐들어오는구나. 우리 사무실이 완전히 유 형사 집이 됐어.”

농담을 던졌지만 유 형사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무슨 일인데?”

유 형사가 맞은 편에 앉으니 이민정이 곧 커피를 타다 준다.

“소장님.”

“응.”

“혹시 귀신을 부려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나요?”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보는데?”

“증인 보호 프로그램이라고 들어보셨어요?”

“드라마에서 들어봤을걸.”

유 형사가 커피로 입을 축인다.

“유니콘 그룹은 아시죠?”

“알지. 유니콘 그룹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재계 20위 권에 있는 대기업이다.

유니콘 그룹은 10대 기업만큼이나 유명한데 그룹 총수가 과거 유명한 조직폭력배였기 때문이다.

서울 전지역을 장악하던 중앙파라는 곳의 보스로 일본의 야쿠자, 미국의 마피아처럼 폭력조직을 기업화했다.

유통과 건설로 시작한 유니콘 그룹은 현재 계열사가 스무 개가 넘는 대기업이 되었다.

“유니콘 그룹은 겉으로 볼 때 평범한 기업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온갖 나쁜 짓은 다 벌이고 있어요. 정 검사님이 아주 오래전부터 조사를 하고 계셨고요. 경찰도 벌써 몇 년 전부터 유니콘 그룹을 조사 중이죠.”

“몇 년 동안 조사만 한다는 말은 잡아넣기 힘들다는 뜻이네.”

“네.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 하는데 증거를 안 남겨요. 힘들게 증거를 잡으면 요리조리 빠져나가 버려요. 정계, 법조계 할 것 없이 여기저기 선을 안 댄 곳이 없어서 영장도 청부가 안 되죠.”

“법꾸라지?”

“네, 맞아요.”

유 형사가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유니콘 그룹의 정창수 회장을 엮어 넣을 완벽한 증거를 찾았어요. 증언해 줄 증인도 확보했고요.”

“그럼 됐네. 뭐가 문젠데?”

요즘의 정재훈 검사라면 증거와 증인이 확실하다면 조폭 출신 대기업 회장이 아니라 현역 국회의원도 구속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세였다.

정재훈 뒤에 아주 높은 분이 계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본인의 의지나 역량도 충분했다.

“증인이 두 명이에요. 증거도 그 두 사람이 가지고 있고요. 두 사람을 확보한 후 곧바로 증인 보호 프로그램이 가동됐어요. 그런데 증인을 숨겨만 놓으면 귀신같이 정창수 회장 똘마니들이 찾아내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던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어요.”

잠시 뜸을 들인 후 유 형사가 말한다.

“교도소.”

“교도소?”

“네. 두 사람을 교도소 안에 집어넣고 보호했어요. 당연히 성형 수술도 했고요. 우리 쪽 사람들도 주변에 배치하고 교도관들도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채웠죠. 혹시 몰라 두 사람을 서로 다른 교도소에 수감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중 한 명이 며칠 전에 죽었어요.”

유 형사가 들고 있는 종이컵을 와락 구긴다.

“그 증인을 귀신이 죽였다?”

“확실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정황을 볼 때 사람이 한 짓은 아니에요.”

“자살했을 수도 있잖아. 정창수인지 하는 사람이 복수할까 봐 무서워서.”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두 사람은 공식적으로 사망 처리가 됐어요. 아무리 정창수 회장이라고 해도 성형을 하고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사람을 어떻게 찾겠어요? 그리고 죽은 사람도 이상해요. 교도관의 말에 따르면 갑자기 비명을 내질렀다고 해요. 계속 저리 가, 살려줘 라는 말을 했다고 해요.”

“악몽?”

유 형사가 고개를 젓는다.

“시신을 확인했는데 눈을 뜨고 있었어요. 그 사람 눈은…… 공포로 가득했어요.”

“흐음-. 귀신 짓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었네. 여기 온 이유는 남은 한 사람이 죽지 않게 보호해 달라는 거야?”

“네. 귀신 짓이라면 소장님이 막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런 짓을 벌인 놈도 잡아야죠.”

인호가 일어선다.

“가자.”

“네? 어딜요?”

“교도소 가자며. 할 일도 없는데 지금 가 보지 뭐.”

* * *

인호는 교도소 접견실에서 살아남은 증인 강호영과 마주 앉아 있었다.

강호영은 뭔가 불안한지 심하게 다리를 떨고 입술을 질겅였다. 얼마나 입술을 씹어 댔는지 온통 피멍울이 잡혀있었다.

“강호영 씨.”

강호영이 고개를 들어 인호를 힐끔 바라본 후 다시 숙인다.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인호가 명함을 강호영 앞으로 밀어준다.

“극락 흥신소?”

강호영의 눈 속에 의문이 가득하다. 도대체 극락 흥신소라는 곳이 뭐 하는 곳인지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호영 씨. 혹시 영적인 존재를 믿어요?”

“교회에서 나온 거예요?”

“아니에요. 말을 바꿀게요. 초자연적인 현상. 예를 들자면 영혼, 귀신 같은 것들요.”

귀신이라는 말에 강호영이 몸을 부르르 떤다.

“뭔가 아는 게 있나 봐요?”

인호는 이곳에 오기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방문했다. 다른 교도소에서 죽은 증인 윤창식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유 형사의 말대로 망령, 아니 악령의 짓이라면 어떻게든 흔적이 남아 있을 테니 말이다.

시신을 확인하니 유 형사의 짐작이 맞았다. 윤창식에게는 강력한 악령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입을 꾹 닫고 있는 강호영을 보며 인호가 말한다.

“뭔가 안다면 말해줘요. 그래야 호영 씨가 살 수 있어요.”

“당신 뭐 하는 사람인데?”

“명함에 적혀 있잖아요. 전 극락 흥신소 소장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영매협회 회장이기도 해요. 영매 아시죠?”

강호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믿을지 모르지만 전 영혼을 볼 수도, 만질 수도, 대화를 나눌 수도 있어요. 그러니 말해봐요. 나는 호영 씨 도와주려고 온 사람이에요.”

강호영이 고개를 돌려 접견실 창문으로 안쪽을 보고 있는 유 형사를 힐끔거린다. 형사와 함께 왔기에 어느 정도 신뢰가 생긴 것인지 강호영이 입을 연다.

“회장님 측근 중에 귀신이라는 놈이 있어요. 말 그대로 귀신 같은 놈이에요. 싸움 실력도 실력이지만 귀신의 특기는 다른 데 있어요. 귀신은 도망치는 사람을 별명처럼 귀신같이 찾아냅니다. 정말 귀신을 부린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어요. 검사님한테 연락하고 보호 프로그램 받기 직전에 귀신에게서 문자가 왔어요.”

- 어디 한 번 숨어봐. 내가 찾아낼 테니까. 기왕이면 꼭꼭 숨도록 해. 그래야 찾는 나도 재미가 있을 테니. 내가 널 찾게 되면 어떻게 될 줄 잘 알 거야. 부디 잘 숨길 바란다.

인호가 볼을 긁적였다.

강호영의 말은 강력한 악령을 부리며 귀신이라 불리는 조직폭력배가 있다는 말이었다.

“윤창식 씨를 그 귀신이라는 사람이 죽였다고 생각하세요?”

강호영이 고개를 푹 숙인다.

“흐음, 좋아요.”

인호가 손을 들자 유 형사가 안으로 들어온다.

“네, 소장님.”

“재판 날이 언제라고 했지?”

“이번 주 금요일이요.”

“오늘이 수요일이니 이틀 남았네?”

인호가 강호영을 바라보며 말한다.

“어떻게든 금요일까지 지켜 주면 되는 거지?”

* * *

여러 명이 사용할 정도 크기의 수감실에 인호와 강호영 두 사람이 있다. 강호영은 벽에 알 수 없는 기이한 도형을 그리는 인호를 바라보고 있다.

“귀신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 하게 하는 부적 같은 건가요?”

“아니요. 반대죠. 들어오면 다시 밖으로 나가지 못 하게 하는 결계 같은 거예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날 지켜 준다면서요.”

“지켜 줄 거예요. 그러니 안심해요.”

악령이 이곳에 온다면 싸워 이길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악령이 이곳에서 도망치지 못하게 잡아둬야 했다.

만약 이곳에서 악령을 처치하지 못하고 도망치게 둔다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를 것이다.

“일단 이것 지니고 있어요.”

인호가 부적 한 장을 강호영에게 건넨다.

“도력이 높은 도사가 그린 호신부에요. 몸을 지켜 주는 부적이죠. 그걸 지니고 있으면 웬만한 잡귀들은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해요. 물론 악령이라면 조금 다르겠지만. 적어도 한두 번은 호영 씨를 보호해 줄 거예요.”

인호가 방 중앙에 자리 잡고 앉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생각보다 시설이 나쁘지 않네요.”

“수감자들이 인권 단체에 찌르기라도 하면 난리가 날 테니까요.”

“아하-. 범죄자에게도 인권이 있다?”

“그런 거죠.”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뭘 해야 합니까?”

강호영의 물음에 인호가 눈을 감으며 말한다.

“기다려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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