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61화 (61/190)
  • 제61화

    청담동 고급 마사지 샵.

    한 노인이 안으로 들어서자 카운터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빠르게 다가온다.

    “왕 회장님 오셨어요. 준비 다 되어 있어요.”

    “그래.”

    노인은 여자의 안내를 받아 탈의한 후 마사지를 받기 시작한다. 마사지 1회 비용이 수십만 원이나 하는 최고급 마사지다.

    20대 초반의 아름다운 여자가 노인의 몸에 오일을 바른 후 마사지를 하고 있다.

    “문제는 다 해결됐고?”

    “회장님 덕분이에요.”

    “어려운 일 있으면 이야기해.”

    “네, 회장님.”

    “다음 주에 유럽으로 휴가를 떠나려고 하는데 시간되면 함께 가지.”

    “…….”

    마사지사의 손이 잠시 멈칫한다. 고개를 침대에 파묻고 있는 노인을 잠시 바라보던 마사지사가 이를 꽉 깨물고는 다시 마사지를 시작한다.

    “네, 회장님.”

    “이런 마사지 샵 차리려면 돈이 얼마나 드나?”

    “청담동에서 하려면 상당히 많이 들죠.”

    “그래? 이런 샵 차리면 잘 관리할 수 있고?”

    “돈이 없어 못 차리지 실력이 없어 못 차리나요.”

    “그렇군. 유럽 다녀온 다음에 목 괜찮은 곳에 가게 자리 알아보지.”

    노인의 손이 등을 마사지하고 있는 마사지사의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다. 마사지를 하는 여자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펴고는 마시지에 열중한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온다.

    “누…….”

    들어온 남자, 인호가 입에 검지를 가져다 댄다.

    “무슨 일이야?”

    인호가 계속 마사지를 하라는 듯 여자에게 고개를 까딱인다.

    마사지가 이어진다. 마사지사가 별말 하지 않자 노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돈 좋아하지?”

    “돈 싫어하는 사람 있나요?”

    마사지사는 인호를 바라보며 노인의 말에 대꾸한다.

    “내가 스물아홉 살에 서울에 왔어. 남양주 촌동네에 살다 주머니에 한 푼 없이 서울에 상경했지. 정말 안 해본 일이 없어. 그렇게 지금의 부를 이루었지.”

    “시드 머니도 없이 사업을 이루셨다고요?”

    마사지사의 물음에 노인이 클클하며 웃는다.

    “도움을 받았지.”

    “좋은 분이셨나 봐요. 도움도 주시고.”

    “좋은 놈이었지. 그놈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야.”

    “친구셨나 봐요.”

    “친구? 맞아. 친구였어.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그 시절 시골에서는 몇 살 차이는 다 친구 먹고 그랬거든.”

    “친구분이 어떤 도움을 주셨어요?”

    마사지사의 물음에 노인이 즉시 대답을 하지 않는다.

    “마지막 선물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마지막 가는 길에 선물을 주고 갔지. 그 선물을 밑천으로 지금의 태창을 일궈낸 거고.”

    인호가 마사지사와 눈을 맞추고는 밖으로 나가라는 신호를 준다.

    마사지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간다.

    “왜 그래? 벌써 끝난거야?”

    “아직 남았습니다.”

    마사지사의 목소리가 아닌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노인이 화들짝 놀라며 일어선다.

    “너 누구야?”

    “그건 차차 알아가도록 하죠. 이필성 씨 본인 되시죠?”

    “누구냐니까?”

    노인, 이필성의 강경한 태도에 인호가 잠시 생각하다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건넨다.

    - 대은 그룹 기획조정실 정인호 과장

    “대은 그룹?”

    이필성이 놀란 눈으로 인호를 바라본다.

    “대은 그룹에서 어떻게 오신 거요?”

    말투도 바뀐다.

    “김정국 씨 아시죠?”

    “김정국? 그, 그게 누군데 그러시오.”

    “조금 전 얘기하셨잖아요. 함께 고향에서 서울로 온 나이가 많았던 친구. 김정국 씨요.”

    “모, 몰라. 나는 그런 사람 몰라. 왜 온지 모르지만 돌아가시오.”

    이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한다. 인호가 그런 이필성에게 묻는다.

    “혹시 김정국 씨 죽이셨습니까?”

    이필성이 획 몸을 돌리고는 인호를 쏘아본다.

    “죽이긴 누굴 죽여! 당신 대은 그룹 소속이 맞긴 해?”

    “전화 걸어서 확인해 보셔도 상관 없습니다.”

    이필성이 인호를 쏘아보다 밖으로 나간다.

    열려있는 문을 보며 인호가 중얼거린다.

    “곧 다시 만나자고요.”

    * * *

    현관문이 열리며 50대 중반 정도의 남자가 걸어와 소파에 앉는다. 이필성은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그러냐?”

    “거래처에서 이상한 전화가 계속 걸려 오네요.”

    “거래처?”

    “네. 저희 제품 주기적으로 납품 받던 대기업들에서요. 대은 그룹 같은 경우는 정밀에서 납품하던 것들을 이번 계약 이후에는 거래처를 바꾼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왔어요.”

    “흐음.”

    대은 그룹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필성이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소파에 등을 묻는다.

    “혹시 뭐 짐작 가는 거라도 있으세요?”

    “그런 거 없다.”

    “갑자기 약속이나 한 것처럼 왜 그럴까요? 제품에 불량이 있나 싶어 알아보니 그것도 아니었어요. 그리고 아시겠지만 대은 그룹 납품하지 못하면 정밀은 타격이 정말 커요. 대은 그룹 쪽에 끈 없으세요?”

    “있어도 소용 없을 게야.”

    이필성은 며칠 전 마사지샵에 찾아온 남자를 떠올렸다.

    대은 그룹 기획조정실 과장.

    “도대체 뭘 알고 온 거야.”

    “네? 뭐라고 하셨어요?”

    “아니야. 혼잣말이야. 애비도 한 번 알아볼 테니 너도 이리저리 줄을 좀 대봐.”

    “당연히 그래야죠.”

    이필성이 거실 한쪽에 있는 술 진열장을 바라본다. 건강을 위해 십 년이 넘도록 술을 마시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독 술이 당겼다.

    이필성이 주머니에서 명함 하나를 꺼낸다. 명함을 준 남자와 다시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 * *

    삼성동 대은 그룹 본사 사옥 인근 한식당.

    이필성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인맥을 동원해 알아보니 인호가 대은 그룹 기획조정실에 근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대은 그룹을 비롯한 여러 그룹들이 태창 그룹을 보이콧하는 것에 정인호라는 남자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문이 열리고 인호가 안으로 들어온다.

    “생각보다 빨리 연락하셨네요.”

    “크흠-.”

    심기가 불편하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인호가 자신보다 나이는 한참 어리다고 해도 저쪽은 지금 자신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이번 일 그쪽에서 손을 쓴 겁니까?”

    “이번 일이라고 하시면…… 아-, 뭐 그렇죠.”

    두리뭉실한 대답에 속에서 천불이 끓어오르지만 참아야 했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인호가 이필성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때 종업원이 다가와 말한다.

    “식사 준비해 드릴까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인호의 말에 이필성이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종업원들이 상을 채운다. 인근의 유명한 한식당답게 맛있어 보이는 밑반찬과 음식들이 한 상 가득 찼다.

    인호는 물로 입을 가신 후 천천히 식사를 즐긴다. 가끔 이필성과 눈을 맞추기도 한다. 안절부절못하는 투가 역력했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신가 보군요. 저희 회장님도 자주 오시는 곳인데.”

    “아닙니다. 맛있습니다. 그냥 입맛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아-, 그러세요? 왜 입맛이 없으실까?”

    인호가 빙긋 웃으며 물로 입을 헹군다.

    “뭘 원하냐고 물으셨죠?”

    “네.”

    이필성을 뚫어져라 바라본 인호가 짧게 말한다.

    “진실.”

    “네?”

    “진실을 원합니다. 이필성 씨와 김정국 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김정국 씨가 주고 간 마지막 선물이 뭡니까?”

    “그건-.”

    “없는 이야기 지어내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제가 다른 것은 몰라도 누가 나를 속이고 있는지는 귀신같이 알아차리거든요.”

    이필성은 갈증이 나는지 컵의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 일을 왜 궁금해하시는지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우리 회장님께서 아주 오래전에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으세요. 그분 이름이…….”

    인호가 말끝을 흐린다. 이필성은 그런 인호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유, 미, 향.”

    한 글자씩 끊어서 말을 하자 이필성이 몸을 부르르 떤다.

    “아시는 이름이죠?”

    “…… 네.”

    “유미향 할머님이 회장님께 부탁하셨어요. 남편분이신 김정국 씨와 관련된 진실을 밝혀 달라고. 그러니까.”

    인호가 싸늘하게 식은 눈에 이필성을 담는다.

    “진실을 말하세요.”

    * * *

    “우리 정말 열심히 일하자.”

    남양주 시골에서 서울에 상경한 두 친구는 서울역에서 다시 한번 다짐한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모조리 했다.

    자신이 힘이 들수록 남양주에 있는 아내와 자식들을 서울로 데리고 올 수 있다는 생각에 김정국은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운이 좋은 것인지 그들은 조건이 상당히 좋은 공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일이 위험한 만큼 임금이 높았다. 하루하루가 버티기 힘들었지만 아내와 자식들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견뎌냈다.

    그렇게 힘들게 일하던 어느 날 김정국은 창고 정리를 하던 중 제대로 쌓여 있지 않은 창고의 자재들에 깔리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 사고로 크게 다쳤지만, 회사에서는 이렇다 할 조치를 해 주지 않았다.

    결국 시름시름 앓던 김정국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게 되었다.

    김정국이 죽자 회사에서는 그 사실이 알리지 않으려 몇몇 사람의 입을 막았다.

    그중 한 명이 이필성이었다.

    김정국의 친구로 입사도 함께 했고 평소에도 함께 붙어 다녔던 것을 모르는 회사 사람들이 없었다.

    회사 사장은 이필성에게 입을 다무는 대가로 작은 대가를 주었다.

    “하, 하하. 오백만 원이요?”

    이야기를 들은 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다.

    김정국의 죽음을 모르는 척하는 대가로 받은 돈이 고작 오백만 원이었다.

    그 시절의 오백만 원이 작은 돈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사람의 죽음을, 그것도 친구의 죽음을 숨기는 대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적은 돈이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협박을 받았어요. 함부로 떠들고 다니면 나도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비루한 핑계일 뿐이다.

    “김정국 씨의 아내분께는 사실을 전해 드렸어야죠.”

    “저도 그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제수씨가 와서 진실을 요구할 거라면서 알리지 말라고 협박했습니다.”

    “그래서. 친구의 죽음을 묻은 대가로 받은 오백만 원으로 장사를 시작한 겁니까?”

    이필성은 인호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허탈하게 웃고 있지만, 인호의 가슴속에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당신에게는 무수히 많은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회사를 나와 장사를 했다면 더 이상 그들과 관계가 없었을 텐데 어째서 아내분께 진실을 밝히지 않은 겁니까?”

    “처음에는 협박이 무서워서. 그리고 그 후로는 죄책감 때문이었습니다.”

    “그 말 같지도 않은 핑계 때문에 한 여인이 평생 동안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린 것을 알고 있습니까?”

    “제수씨가 아직 살아있습니까?”

    쾅-!

    유미향 할머니가 죽은 것도 모르고 있다면 이필성은 조금도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제가 백 배, 아니 천 배, 만 배로 갚겠습니다.”

    “지금 와서 그런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인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문을 열고 나가기 전 인호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한다.

    “기억하십시오.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 때문에 한 여인이, 두 아이가 평생을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정작 당신은 잘 먹고 잘살았죠. 책임을 지셔야죠. 사람이, 법이 당신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인호가 이를 까득 깨문다.

    “내가 그 책임을 물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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