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60화 (60/190)
  • 제60화

    김정국.

    할머니 남편의 이름이었다.

    김정국은 할머니와 결혼한 후 아이 둘을 낳았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어느 날 김정국은 할머니에게 서울에 가서 직장을 구하겠다고 했다.

    친구인 이필성이 서울에 가면 사는 곳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한 것이다.

    1979년이었으니 퇴계원이 있는 남양주는 시골이나 마찬가지였다.

    김정국은 결국 이필성에게 설득되었고 돈 많이 벌어 자리 잡는 대로 할머니와 자식들을 부른다는 말을 남긴 채 서울로 떠났다고 한다.

    “그날이 마지막이었어요. 지금 이 자리에서 잘 가라고, 돈 많이 벌어오라고 손을 흔들어 줬어요.”

    울음을 참고 있던 이민정이 결국 눈물을 쏟고 만다.

    할머니는 4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이곳에서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떠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여자 몸으로 아이 둘을 키우며 말이다.

    “할머니.”

    “네.”

    “제가 이것저것 잘하는 게 참 많아요. 그런데 그중에 가장 잘하는 게 바로 사람 찾는 거예요.”

    할머니가 인호를 바라본다. 기대가 가득한 눈빛이다. 하지만 그 눈빛은 이내 불안함으로 바뀐다.

    “남편이 아직 살아있을까요?”

    여든이 넘는 나이였다.

    고령화 사회라고 하지만 살아있을 확률이 높다고 장담할 순 없었다. 하지만 인호는 여전히 자신감 있는 음성으로 말한다.

    “제가 지금 할머니하고 대화 나누고 있잖아요. 전 산 사람뿐 아니라 이미 돌아가신 분들도 잘 찾아요.”

    “정말요?”

    “네, 당연하죠.”

    남편이 이미 죽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죽은 후 곧바로 저승사자의 부름을 받았다면 인호로써도 방법이 없긴 했다.

    하지만 그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열심히 찾아볼게요.”

    “정말 고마워요. 제 평생 소원이 남편 얼굴 한 번 보는 거예요. 이렇게 부탁할게요.”

    할머니가 두 손을 모아 간절하게 말한다.

    인호도 뜨거운 것이 훅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억지로 감정을 내리누른다.

    “민정아.”

    “네, 소장님.”

    “너 출장이다.”

    “네? 갑자기 출장이요?”

    눈물을 훌쩍거리며 의아한 듯 묻는다.

    “내가 할머니 남편분 찾을 때까지 매일 여기 와서 할머니 말벗해드려. 할 수 있지?”

    “네, 그럴게요. 할 수 있어요.”

    소매로 눈물을 쓱 닦으며 이민정이 힘차게 대답한다.

    “뚱보.”

    “응.”

    “민정이한테 무슨 일 생길지 모르니까 같이 있어 주고.”

    “알겠어.”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뚱보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다.

    “뭐 임무에 충실하겠다고 이상한 생각하면 정말 죽는다.”

    “우씨. 안 그럴 거거든. 나도 할머니 남편 찾았으면 좋겠거든.”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인호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할머니. 꼭 찾을게요. 그러니까.”

    최대한 밝은 웃음을 보여준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 *

    휴대폰을 내려놓는 인호가 답답한지 한숨을 길게 토해낸다.

    - 47년 출생자 중 소장님이 말씀하신 이필성 씨는 없어요. 혹시나 싶어 46년생, 48년생까지 조사해 봤는데, 없더라고요. 사는 곳을 대략적으로라도 알면 찾을 가능성이 조금 높아질 텐데.

    아쉽게도 할머니는 김정국의 친구인 이필성이 정확히 어디에 살았는지는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 거냐?”

    “그러게 왜 큰소리 뻥뻥 치고 온 거야? 할머니가 얼마나 실망하겠어?”

    인호가 사기꾼을 쏘아본다.

    “공권력 이용에 실패하면 방법은 하나뿐이지.”

    “설마 그 방법이 내가 생각하는 그거냐?”

    “맞을 거야.”

    인호가 일어서며 말한다.

    “발품 팔자.”

    * * *

    땡초에게 소개받은 흥신소의 유정우에게 이필성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한 후 인호는 사기꾼과 영감을 대동한 채 경기도 남양주로 향했다.

    할머니가 옛날에 살았다는 동네에 혹시라도 김정국과 이필성을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남양주에 도착한 후 한 일은 노인정을 찾아다니는 일이었다.

    - 이곳에 오래 사셨어요?

    - 혹시 김정국, 이필성이라는 분들 아세요?

    - 47년생이신데요.

    - 서울로 돈 벌러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질문을 하며 수많은 노인정을 순회하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산 캔 커피로 목을 축인다. 벌써 오 일째였다.

    하지만 아직도 쓸만한 정보를 구하진 못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사기꾼이 구시렁거린다.

    “영감님. 성과 없어요?”

    “이 주변 망령들은 죄다 모른다고 하네. 전에 여기 도시가 생길 때 기존에 살던 주민들 대부분이 땅 팔고 서울로 이사 갔다고 하더라.”

    “그래요?”

    캔을 찌그러트린 후 쓰레기통에 버린다.

    다시 움직여야 할 때다.

    “조금 외진 동네에도 가 봐야 하나?”

    “지금까지 다닌 동네들도 다 외진 곳이었어.”

    인호가 차에 시동을 건 후 휴대폰으로 주변 지도를 검색한다. 가 보지 않은 동네를 찾고는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어 이동한다.

    “이 정도까지 했으면 되지 않았어? 니가 노는 놈도 아니잖아. 평소 너답지 않게 왜 이러냐?”

    “나다운 게 어떤 건데?”

    “그건…….”

    “사기꾼. 사람이 꼭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어떻게 사냐? 매일 밥만 먹으면 물리잖아. 가끔은 짜장면도 먹고, 초밥도 먹고 그래야지.”

    “니가 알아서 해라.”

    “거참, 그만 좀 땍땍대라. 인호가 알아서 잘할까?”

    “제가 또 뭘 얼마나 땍땍댔다고 그러세요?”

    사기꾼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영감의 시선을 피한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지금까지 인호가 돈만 보고 일했어?”

    “누가 그렇데요?”

    “너나 나나 인호한테 그럴 처지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적당히 하자.”

    “나한테만 뭐라 그래.”

    영감이 사기꾼에게 타박을 주는 사이 차가 멈춘다.

    남양주에는 아직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구가 많지 않은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규모가 크지 않은 슈퍼마켓 옆에 노인정이 붙어 있다.

    슈퍼마켓에 들러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달달한 음료수와 먹거리를 산 후 노인정으로 들어간다.

    “안녕하세요.”

    노인들이 두 패로 나뉘어 고스톱을 치고 있다. 한쪽은 할머니들, 다른 한쪽은 할아버지들이다.

    점 100원짜리 고스톱인데 사뭇 분위기가 진지했다.

    “어디서 온 사람인가? 선거철 되려면 멀지 않았나?”

    “그런 사람 아니에요, 어르신. 일단 이것 좀 드시면서 하세요.”

    인호가 사 온 것들을 내려놓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먹거리를 먹기 시작한다.

    “무슨 일로 왔어? 딱 봐도 농사짓는 젊은이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네. 뭣 좀 여쭤볼 게 있어서 왔어요. 어르신들 혹시 김정국, 이필성이라는 이름 아세요?”

    할아버지들 중 입으로 가져가던 손을 멈추고는 인호를 바라본다.

    “정국이는 왜?”

    “김정국 씨 아세요?”

    딱 봐도 할아버지들 중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할아버지다.

    “이 형님이 이 지역 터주대감이야. 어렸을 때부터 이 지역에서 살았지.”

    옆에서 식혜 음료수를 마시던 할아버지가 말한다.

    “정국이면 아주 오래전에 마누라하고 자식새끼 다 팽겨치고 서울 간 놈 아니야.”

    “네, 맞아요. 어르신.”

    “그런데 왜 정국이를 찾아? 정국이 마누라 몇 해 전에 하늘나라 갔어.”

    “사정이 있어서요. 어르신. 혹시 이필성이라는 분도 아세요?”

    “당연히 알지. 필성이 놈도 정국이하고 같이 서울 갔잖아.”

    “네, 맞아요.”

    김정국과 이필성을 아는 사람을 드디어 만난 것이다.

    “제가 알아볼 일이 있어서요. 기관에 알아봐도 이필성이라는 분을 찾을 수가 없어서요. 김정국 씨 친구라던데 혹시 왜 그런지 아세요?”

    “친구? 친구는 친구지. 필성이 놈이 정국이보다 세 살이나 어렸는데 친구 먹어 버렸지. 우리 어렸을 때는 다 그렇게 했어.”

    “아-!”

    인호는 유 형사가 이필성을 찾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김정국과 이필성 두 사람이 친구라고 하니 동갑내기와 한 살 위아래로만 조사를 한 것이다.

    설마 세 살이나 어릴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런데 왜 두 사람을 찾는 거야?”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요. 어떤 분하고 약속을 했거든요.”

    할아버지가 수정과 음료수를 마시고는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찬다.

    “쯧쯧, 미향이가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먼 길 가기 며칠 전까지 역에 갔어. 폐 역 관리하던 사람이 미향이 사정 안타까워서 매일 문을 열어줬거든. 이 주변 사람들치고 미향이 부침개 얻어먹지 않은 사람이 없었어.”

    할아버지는 과거를 회상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퇴계원역 할머니 이름이 미향인 듯하다.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꼭 찾아. 그리고 만약 정국이가 살아 있다면 이 말 꼭 전해줘. 너 한 사람 평생 기다리다 떠난 사람이 있다고.”

    * * *

    유 형사가 자판기 커피 한 잔을 인호에게 건넨다.

    “확실히 검찰청 커피가 경찰서 커피보다 맛있는 것 같아. 검사님들 마시는 커피라고 고급 커피를 사용하나?”

    “설마요.”

    “알아봤어?”

    “당연하죠.”

    유 형사가 인호의 옆에 앉고는 가지고 온 서류를 건넨다.

    “1950년생 이필성. 남양주 출신이고 아직 살아있습니다.”

    “그래?”

    “네. 김정국이라는 분은 남양주를 떠나고 2년 후에 실종 신고가 된 이후에 소식이 없네요. 사망했다고 보는 게 맞죠. 신분도 없이 수십 년을 살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인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살핀다. 서류의 정면에는 사진 한 장이 꽂혀있다. 한 노인의 사진이었다.

    “이 사람이 이필성?”

    “네. 거기 주소지도 있죠? 대치동에 살더라고요. 돈이 아주 많은 분 같아요. 이번에도 제법 짭짤한 의뢰인 것 같네요.”

    인호가 커피를 마시고는 고개를 흔든다.

    “자원봉사야.”

    “자원봉사요? 무슨 일인데요?”

    “그런 일이 있다. 아참. 그리고 승진 축하해.”

    유 형사는 이번 중국 범죄조직 일제 소탕 성과로 1계급 특진하게 되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모두 소장님 덕이죠.”

    “유 형사가 잘한 거지.”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잖아요. 진실교 사건 소장님이 물어온 거잖아요.”

    유 형사가 인호 손에 들린 서류를 보며 말한다.

    “이필성이라는 사람 조사하다 알게 된 사실인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어요.”

    “이상한 점?”

    “네. 소장님이 말씀하신 김정국과 이필성이 서울로 온 시기 있잖아요. 서울에 올라오고 몇 개월 안 지나서 장사를 시작했더라고요. 원래 돈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장사를 시작해 크게 성공했더라고요. 그때 번 돈으로 사업을 시작해 더 큰 성공을 이뤘고요. 태창 실업이라고 사무용 팩스하고 복사기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에요. 대기업까지는 아니더라도 규모가 상당해요. 자회사도 몇 개 있는 그룹이죠. 지금은 아들이 회장으로 있어요.”

    “재주가 좋은 사람이네. 커피 잘 마셨어.”

    “별말씀을요. 자주 오셔서 커피 드시고 가세요.”

    인호가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멀어져 간다.

    인호의 뒷모습을 보던 유 형사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아-, 반장님. 오랜만에 전화 주셨네요. 네. 네?”

    유 형사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진다.

    “정창수는요? 네. 알겠습니다. 바로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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