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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59화 (59/190)
  • 제59화

    사무실에 들어선 인호는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이민정에게 다가간다. 뭘 보는지 인호가 다가서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민정아.”

    “아이, 씨발 깜짝이야.”

    인호가 눈을 부라린다.

    “씨발? 씨이- 발? 너 지금 씨발이라고 했냐?”

    “그러니까 왜 사람 놀래키고 그래요?”

    “내가 놀래켜? 내 사무실 문 열고 들어와서 직원 이름 부른 게 놀래킨 거냐?”

    “그게, 그러니까. 아무튼 소장님한테 욕한 거 아니에요.”

    인호가 이민정을 쏘아보다 소파에 앉는다.

    “커피 드려요?”

    “아메리칸 스타일로.”

    “믹스 커피가 다 똑같지 아메리카 스타일은 무슨. 그런 걸 주문할 거면 에스프레소 커피머신기라도 사주던가. 요즘 랜탈하면 돈도 얼마 안 하드만.”

    구시렁거리는 이민정을 보며 인호가 피식 웃는다.

    “뭘 보고 있었길래 사람이 들어오는지도 몰라?”

    “민정이 요즘 괴사모에 푹 빠졌잖아.”

    “괴사모?”

    사기꾼의 말에 인호가 무슨 말이냐는 듯 바라본다.

    “괴담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괴사모.”

    “괴담? 하아-, 민정이 정말 할 일이 없나 보구나. 월급은 따박따박 받으면서 그런 거나 보고 있는 것 보면.”

    “아니거든요. 할 일 많거든요.”

    “도대체 그런 건 왜 보는 건데? 니 주변에 벌어지는 일로는 부족한 거냐? 괴담? 하, 하하. 저렇게 니 옆에 괴담들이 떠다니는데.”

    인호가 사기꾼과 영감을 보며 말하자 이민정이 어깨를 으쓱한다.

    “다 일의 연장이에요.”

    “핑계 댈 게 정말 없었나 보다. 일이래, 일.”

    “정말이에요. 괴담 카페 보다가 일거리 찾을지 누가 알아요?”

    “그런 곳에 올라오는 글들 전부 소설이잖아. 지어낸 이야기란 뜻이지.”

    “맞는 말씀이긴 한데. 아닌 것도 있거든요.”

    인호가 됐다는 듯 피식 웃고는 커피를 마신다. 인호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낀 것인지 발끈한 이민정은 자기 휴대폰을 들고 와 인호의 옆에 앉는다.

    “이 글 보시면 제 말이 거짓말 아니라는 걸 아실걸요.”

    - 폐 역 괴담.

    “이제 폐 역이 된 퇴계원역 괴담이에요. 한 번 보세요.”

    인호가 이민정이 건네는 휴대폰을 받아 글을 읽기 시작한다.

    - 일단 많은 사람들이 직접 폐 역이 된 퇴계원역에 가서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을 밝힙니다.

    글을 올린 이가 작성한 서두를 보며 인호가 피식 웃는다.

    “대부분 이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지.”

    “계속 읽어 보기나 해요.”

    - 아실 분은 다 아시겠지만 퇴계원역에 유명한 괴담이 있습니다. 현재 이용 중인 퇴계원역이 아닌 폐 역이 된 퇴계원역에서요.

    “흐음-. 전기 공급도 안 되는데 플랫폼 끝 쪽 전등에 불이 들어온다?”

    “네. 사람들이 가서 인증샷도 엄청 많이 찍었어요. 어떤 사람은 역 전체 전원이 내려가 있는 사진도 함께 게시했어요. 여기 보세요.”

    이민정이 사진 몇 장을 보여준다.

    배전반의 전원이 내려가 있는 사진과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는 전등의 사진들이다.

    그중에 전등과 낡은 의자만 찍혀 있는 사진을 보며 인호가 볼을 긁적였다.

    “흐음-.”

    “이제 믿으시겠죠?”

    “응. 믿어.”

    “네? 믿는다고요? 고작 사진 몇 장 보여드렸더니 믿으신다고요? 지금도 저 놀리시는 거죠?”

    “아니야. 정말 믿어.”

    인호가 휴대폰 속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희미하긴 하지만.”

    손가락 끝은 정확히 전등 아래의 의자를 가리키고 있다.

    “망령의 기운이 느껴지거든.”

    “헉-!”

    이민정이 휴대폰을 떨어트린다. 다행히 소파 위에 떨어져 휴대폰이 망가지는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사기꾼과 영감도 흥미가 돋는지 사진을 바라본다.

    “잘 모르겠는데? 영감님은 뭔가 느껴져요?”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쵸? 소장님이 우리들 놀리시는 것 같죠? 하여튼 못돼먹어서는.”

    “그게 아무한테나 느껴지면 내가 밥벌이는 하겠어?”

    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이민정과 망령들을 바라본다. 인호가 이민정을 바라본다.

    “퇴계원역이라고 했지?”

    * * *

    “요즘 정신 차린 것 같아 참 보기 좋아요.”

    녹차를 마시며 말하는 부장을 보며 인호가 어색하게 웃고 있다.

    “하하, 그러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 중국 사람들 죽이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이에요. 그들을 죽이는 게 인호 씨에게는 간단한 일이었겠죠. 그래서 더 대견해요.”

    “제가 대견하다는 말을 들을 나이는 지났는데요.”

    “불과 얼마 전까지 인호 씨 행동을 돌이켜보세요.”

    부장의 말에 인호가 머리를 긁적인다.

    “제가 조금 그랬죠.”

    “정 검사 쪽 문제도 깔끔하게 처리됐어요.”

    중국 범죄조직을 소탕한 후 말이 아주 많았다.

    정재훈이 형사들에게 총기 사용을 허락했던 것 때문에 과잉 진압이라는 말도 있었고.

    작전 중 사망자만 열 명이 넘었다. 물론 그들 모두가 범죄조직원들이었다.

    형사들 중 두 명이 중상, 세 명이 경상을 입기는 했지만 열 명이 넘는 사망자 때문에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범죄자들에게도 인권이 있다고 시민단체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중국 조직이 그간 벌였던 범죄들이 하나둘 언론에 조명받자 시위대는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췄다.

    “정 검사에게 인호 씨는 정말 큰 은인이에요. 인호 씨 덕분에 탄탄대로가 열렸잖아요. 어쩌면 최연소 차장 검사, 검사장 다 할 수 있을지 몰라요.”

    “저하고는 딱히 상관없는 일이라서요.”

    “왜요? 정 검사가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인호 씨가 치는 사고 수습하는 데 편하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다.

    인호가 벌이는 일 중에는 망령에 관련된 것 말고 인간들과 관련된 일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대로만 해요. 그러면 지원도 빵빵하게 해 줄 거예요.”

    “지원은 무슨…….”

    딸랑 뚱보 하나 보내놓고선 그걸 지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승사자가 항상 붙어 있는 것이 도움이 되긴 하지만…….

    “제발 그놈 식비는 그쪽에서 지원해 주세요. 얼마나 많이 먹는지 아시잖아요.”

    “하긴-, 저승사자 박봉으로 간식값도 안 될 거예요. 제가 건의해 볼게요.”

    “건의해 보는 게 아니라 그래 주셔야 한다니까요. 나하고 민정이 두 사람 식비보다 그 녀석 식비가 몇 배는 더 나와요. 아니, 무슨 저승사자가 못 먹고 죽은 망령도 아니고-.”

    “못 먹고 죽은 거 맞잖아요.”

    “그건 맞지만.”

    뚱보는 어디론가 도망갔는지 자리에 없었다.

    인호가 부장을 부담스러워하는 것만큼 뚱보도 부장을 무서워한다.

    생각해 보면 이제 막 저승사자가 된 뚱보에게는 한참 위인 직장 상사가 어렵기도 할 것이다.

    “오늘은 뭐 해요? 함께 식사라도 할까요? 당연히 제가 살게요.”

    “하하, 아닙니다. 오늘 직원들하고 단체 나들이 가기로 했어요.”

    “나들이요? 부럽다. 나도 같이 가고 싶다.”

    “직원들 워크샵 같은 거라서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함께 가시죠.”

    녹차를 다 마신 부장이 잔을 내려놓으며 묻는다.

    “어디로 가는데요?”

    인호가 빙긋 웃는다.

    “퇴계원역이요.”

    * * *

    “소장님. 우리 워크샵 가는 거예요?”

    “진심으로 묻는 거냐?”

    “아뇨. 부장님하고 밥 먹기 싫어서 도망친 거잖아요.”

    “도망을 치다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냥 퇴계원역이 마음에 걸렸을 뿐이야.”

    “피이.”

    이민정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영감이 인호에게 묻는다.

    “딱 봐도 돈 안 될 것 같은 일인데 정말 가려고?”

    “궁금하잖아요. 그리고 사실 나도 괴담 좋아해요.”

    “인생 자체가 괴담이면서 괴담은 무슨.”

    “그래서 좋아한다는 거예요. 밥벌이를 싫어하면 안 되죠. 그리고 돈 안 되는 일이라도 해야 할 일은 합니다.”

    사기꾼이 낄낄거린다.

    “언제는 돈 안 되는 일만 물어온다고 구박이란 구박은 다 해놓고. 맞죠, 영감님.”

    “야. 그때는 정말 먹고 살기 힘들었잖아. 진짜 젯상 차리는 돈도 빠듯할 때가 한두 번이었는지 알아?”

    사기꾼이 창밖을 바라보는 뚱보의 볼을 폭폭 찌른다.

    “왜 이렇게 말도 없이 시무룩해 있을까?”

    “아니거든.”

    “아니거든. 맞거든.”

    “아니라고!”

    뚱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사기꾼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까 인호가 부장님한테 말한 것 때문이고만. 왜? 부장님한테 혼났어? 제발 적당히 먹으라고 한 소리 들었어?”

    “우씨. 아니라고.”

    인호가 룸미러로 뚱보를 보며 묻는다.

    “정말 혼났냐?”

    “…… 혼났다기보다는 저승사자 체면을 좀 지키라고.”

    “크크. 내 말이 그 말이야. 제발 좀 체통 좀 지켜라. 모르는 사람이 보면 누가 널 저승사자로 알겠냐? 프로 먹방러인 줄 알지.”

    “우씨-!”

    그때 이민정이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뚱보 오빠. 걱정하지 마요. 소장님이 오빠 먹을 것 안 사주면 내가 사줄게요.”

    “정말?”

    뚱보의 표정이 환해진다.

    “당연하죠. 소장님이 월급 올려 주시면 먹을 것 많이 사드릴게요.”

    뚱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한마디 한다.

    “안 사주겠다는 말이야.”

    “어허. 그 말씀은 제 월급 안 올려주겠다는 말이에요?”

    “사무실에서 매일 괴담 카페나 기웃거리는데 무슨 월급을 올려줘?”

    “일이라니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폐 역이 된 퇴계원역에 도착했다.

    사기꾼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한다.

    “밤이 되니까 음산하긴 하다.”

    인호가 주위를 살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역의 담 위로 올라간다. 손을 내밀어 이민정을 끌어올려 준다.

    “나는?”

    뚱보가 손을 내밀고 있다.

    “니가 알아서 들어와.”

    인호가 웃으며 말한 후 역 안으로 들어간다.

    “우씨.”

    영체화하여 담을 뚫고 들어 온 뚱보가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인호를 쏘아본다. 그때 인호는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이었네.”

    플렛폼의 끝부분에 전등 하나가 켜져 있다. 그리고 그 아래 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오오, 소름. 정말이었어.”

    사진으로는 볼 수 없지만, 이민정도 엄연히 망령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인호를 선두로 일행이 플랫폼을 가로지른다.

    “저기-.”

    인호의 부름에 의자에 앉아 있던 망령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다.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네, 안녕하세요.”

    “뭣 좀 여쭤봐도 될까요?”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웃고 있지만 두 눈에는 짙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 슬픔 속에는 그리움이라는 감정도 보였다.

    “왜 이곳에 계세요? 혹시 이곳에서 사고라도 당하셨어요?”

    “아니에요.”

    “여긴 이제 기차도 안 와요.”

    “알아요.”

    할머니의 표정이 시무룩해진다.

    “그래도 난 여기서 기다려야 해요.”

    “기다려요? 누굴요?”

    “남편이요.”

    “아-.”

    인호가 작은 탄성을 토해낸다.

    “할아버지 기다리시는 거예요? 언제 가셨는데요?”

    “우리 남편이 서울에 직장 구하려 간 게 서른두 살 때에요.”

    “네?”

    “내가 스물일곱 살 때였으니까 아주 오래됐어요.”

    “할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52년생이에요.”

    살아 있었다면 여든이 가까운 나이였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인호가 할머니에게 묻는다.

    “할아버지 떠나신 후에 계속 여기서 기다리신 거예요?”

    할머니가 슬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든다.

    “나도 먹고살기 바빠서요. 시간이 날 때마다 왔어요. 아이들이 큰 후에는 매일 왔고요.”

    “하아-.”

    인호가 답답한 한숨을 토해낸다. 인호가 할머니 옆에 앉는다.

    “저한테 이야기 좀 해 주실래요? 남편분 이야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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