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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58화 (58/190)
  • 제58화

    평범한 식당으로 위장한 건물의 지하는 불법 도박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탕-!

    그곳은 지금 형사들과 중국 범죄조직원들의 처절한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중국어로 욕을 하며 괴성을 내지른 조직원이 네모반듯한 칼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는 달려든다.

    형사는 탁자를 밟고 뛰어오른 조직원을 향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탕-!

    바닥으로 떨어진 조직원은 몇 번 몸을 꿈틀거리다 이내 잠잠해졌다.

    인호가 지하로 내려왔을 때는 이미 많은 수의 조직원들이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

    인호가 반대편을 바라본다.

    또 다른 문이 보이고 조직원들과 싸우는 형사들을 제외한 형사들이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다.

    정재훈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그 역시 저곳으로 간 것이리라.

    인호가 걸음을 뗀다.

    빠각-

    인호를 향해 정글도를 휘두르던 조직원이 턱에 꽂힌 주먹에 스르르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보면 인호가 참 찰지게 잘 때려.”

    촐싹거리는 사기꾼과는 달리 뚱보는 울상이다.

    “이 많은 망자를 언제 다 데리고 가.”

    툭 건드리면 당장 눈물을 뚝뚝 흘릴 것만 같다.

    달려드는 조직원을 근처 마작 테이블 위에 있던 마작 패를 던져 이마를 맞춘 후 목울대를 손목으로 후려친다.

    반대편 문에 도착한 인호가 망설임 없이 아래로 내려간다.

    “흐음-.”

    악취가 코를 자극한다. 수많은 절규가 귀를 어지럽힌다.

    오래된 곰팡이 냄새와 피 냄새…… 그리고.

    “도대체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인 거지……?”

    수많은 망령들의 절규가 들려온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고 이곳에 묶여 버린 지박령들이리라. 개중에는 악한 기운을 품은 망령들도 있었다.

    흡사 넓은 목욕탕을 연상시키는 공간이다. 곳곳에 비닐이 죽죽 늘어져 있는데 붉은 물감을 뿌려둔 것 같았다.

    저것들이 모두 이곳에서 죽어간 이들의 피일 것이다.

    사기꾼과 영감이 인상을 찌푸린다. 망령이기에 끔찍한 것을 봐도 좀처럼 감정표현을 하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 살풍경한 공간에서는 끔찍함을 넘어선 무언가가 느껴졌다.

    곳곳에서 형사들과 조직원들이 싸우고 있다. 정재훈도 보인다. 그는 조직원 한 명을 엎어 친 후 얼굴을 사커킥으로 후려 깠다.

    탕-!

    “조심해!”

    총을 가진 것은 형사들만이 아니었다. 조직원들 역시 전부는 아니지만 몇몇이 총을 들고 있었다.

    비명이 터지며 형사 한 명이 팔을 잡고 쓰러진다.

    타타탕-

    보복이라도 하듯 총을 발사한 조직원에게 총알이 날아든다.

    피떡이 되어 날아간 조직원은 몸을 몇 번 퍼덕이다 이내 움직이지 못한다.

    인호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가장 안쪽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 기운이 느껴지는 곳과 인호의 중간에는 한 사람이 서 있다.

    “검사님. 피하세요!”

    인호의 외침에 정재훈이 고개를 돌리다 바로 몸을 뒹구른다.

    화르륵-

    거대한 불덩이가 날아든다. 인호가 빠른 속도로 달려가 주먹으로 불덩이를 후려친다.

    운성이 만든 불덩이보다 강력했다.

    소멸되지 않은 불덩이가 인호를 집어삼킨다.

    인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뒤쪽으로 몸을 날린다.

    쾅- 쾅-

    연이어 주먹을 내지른다. 점점 불덩이가 사그라들더니 불꽃으로 흩날린다.

    인호가 무서운 눈빛으로 반대편을 쏘아본다.

    “하나가 더 있었군.”

    피로 물든 비닐 너머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온다. 검은 정장에 검은 구두를 심은 차가운 인상의 남자였다.

    “넌가? 운성을 해친 것이?”

    남자가 중국어로 묻는다.

    “아마도? 그러는 너는? 너도 장백 도문 출신인가?”

    남자의 인상이 싸늘하게 굳는다.

    “운성을 가르친 것이 나다.”

    “아-, 사부님이셨어? 이를 어째? 당신 제자 평생 걷지도, 손을 쓰지도 못할 텐데. 평생 병수발 들어야겠어.”

    “그 한마디가 네 운명을 결정지었다.”

    으러렁거리는 남자를 향해 인호가 인상을 굳히며 말한다.

    “넌 말 안 해도 운명이 정해져 있거든.”

    인호가 내달린다.

    정재훈을 지나칠 때 그가 손을 내민다. 정재훈을 힐끔 바라본 후 남자를 향해 외친다.

    “그래. 너무 쉬웠지.”

    인호의 눈에 푸른빛이 어른거린다.

    다시 불덩이가 날아든다.

    “모두 밖으로 나가!”

    인호가 크게 외치며 불덩이를 향해 몸을 날린다.

    형사들에게 한 말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따라온 망령들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콰르르르-

    확실히 운성의 불덩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세 번의 주먹질을 더 한 후에야 불덩이를 소멸시킬 수 있었다. 인호가 소매를 걷고는 반대 손 검지로 검은 문양을 푹 찌른다.

    손가락이 순식간에 검게 물든다. 이빨로 검게 물든 손가락 끝을 물어뜯는다. 피와 섞인 검은 기운을 사방으로 뿌린다.

    “결계?”

    남자가 흠칫 몸을 떤다.

    인호가 자신이 뿌린 검은 피가 만든 결계 안으로 들어간다. 인호의 살거죽이 꿈틀거린다.

    “후우-, 후우-.”

    인호가 목을 비튼다.

    “우리 둘 중 한 명만 이 밖으로 나갈 수 있어.”

    “헛소리! 이런 결계 따위는 당장이라도 부술 수 있다.”

    “괜한 곳에 힘쓰지 마. 이 결계는 토룡 형님도 한 시간은 투자해야 풀 수 있으니까.”

    “토룡!”

    남자 역시 운성처럼 토룡이라는 이름에 거센 반응을 보인다.

    인호가 주먹을 말아쥔다.

    “이제 본격적으로 놀아보자. 네 제자라는 녀석은 너무 쉬웠거든.”

    스릉-

    남자가 검을 꺼내 든다.

    검신의 길이가 70센티미터 정도 되는 검이었다. 견명술법과 강체술법도 사용했다.

    그리고 한 가지 술법을 더 사용한다. 두 다리에 술법을 사용하는 걸 보니 움직임에 연관된 술법이리라.

    “대단한 술법이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막 돋네.”

    “토룡을 안다니 장백 도문의 술법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겠지?”

    “당연히 알지. 토룡 형님이 그러시더라고. 혼자 가서 다 깨부수고 왔다고. 다들 팔다리 하나씩 병신으로 만들었다고 하던데 그때 운 좋게도 거기 없었나 보네?”

    남자가 분노에 찬 외침을 터트리기 전 인호가 먼저 말한다.

    “나도 술법이라면 조금 사용할 수 있지.”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인호를 바라본다. 인호가 정장 상의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무언갈 찾는 척하며 남자를 바라보며 씨익 웃는다.

    탕-!

    “컥-!”

    남자의 왼쪽 허벅지에 피가 튀었다. 정장 상의에서 권총을 꺼낸 인호가 어깨를 으쓱한다.

    “어때 내 술법?”

    조금 전 정재훈을 지나칠 때 그가 건내 준 것이 바로 총이었다.

    “비겁한…….”

    “적어도 너희는 비겁하다는 말을 하면 안 되지.”

    인호가 죽일 듯 남자를 쏘아본다.

    “너-. 망령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남자의 도술은 인호가 아는 것과 궤가 조금 달랐다. 도술이라면 토룡 황동호를 아는 탓에 익숙했다.

    하지만 남자의 도술에는 인호에게 익숙한 기운이 섞여 있었다.

    바로 망령의 기운이었다.

    남자가 이를 꽉 깨물고는 몇 장을 부적을 꺼낸다. 보통의 부적은 괴황지와 경면주사로 제작된다.

    하지만 남자가 꺼낸 부적은 괴황지에 검은색으로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그 글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바로 망령의 기운이었다.

    “이런. 들켜 버렸군.”

    남자가 곧 자신의 몸 곳곳에 부적을 붙인다. 부적은 검은 연기가 되어 남자의 몸에 스며든다.

    “후우-.”

    고개를 숙여 검은 연기를 들이마신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검게 물든 두 눈동자가 인호에게로 향해 있다.

    “토룡 녀석이 다녀간 후 장백 도문이 어떤 꼴을 겪었는지 아나? 주변의 시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아나?”

    “내가 알 바 아니잖아.”

    탕-

    총알이 남자의 몸에 맞고 튕겨 나간다.

    “총 따위로는 나를 어찌할 수 없다.”

    “그런 것 같네.”

    “토룡에게 복수하기 위해 새로운 술법을 연구했지. 그러다 결국 방법을 찾아냈다. 억울하게 죽은 망자들의 한을 도술과 하나로 만들 수 있다면 무궁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남자의 입매가 기이하게 뒤틀린다.

    인호가 곁눈질로 주위를 살핀다. 어느새 싸움은 끝났고 형사들이 남자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버러지 같은 것들. 모조리 죽여주마. 그리고 너희들이 지닌 원한으로 나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저기 말하는 도중에 미안한데.”

    인호가 정장 상의를 벗어 한쪽에 내려놓는다.

    “네가 망령에 대해 얼마나 알지 모르지만.”

    와이셔츠를 벗어 정장 상의 위에 올린다.

    “망령이라면 내가 전문가거든.”

    인호가 남자를 보며 씨익 웃는다. 인호의 상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검은 문양을 본 남자의 눈이 거세게 떨리고 있었다.

    그 문양에서는 강렬한 기운이 느껴진다. 자신이 최근에 얻은 기운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기운.

    자신의 기운이 조잡하다면 인호의 몸에 새겨진 검은 문양에서는 순수한 기운이 느껴진다.

    “아, 안돼.”

    이대로 싸우면 무조건 패배한다는 생각에 남자가 도망을 치려 한다.

    “내가 말했지? 여기서 나갈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라고.”

    인호가 가볍게 몸을 풀고는 남자를 향해 천천히 다가간다.

    “즐기자고.”

    상체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검은 문양들이 꿈틀거린다. 남자가 인호를 향해 검을 베어온다.

    깡-

    인호가 팔을 들어 검을 막는다. 날카롭게 벼려진 검과 살로 이루어진 팔이 부딪쳤는데 마치 금속이 부딪친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망령의 기운을 사용한 순간 넌 이미 진 거야. 망령의 기운은 내 몸에 작은 생채기도 남길 수 없어.”

    인호가 남자의 검을 덥석 움켜쥐더니 반대 손으로 검신 중앙을 후려친다.

    검은 인호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반 토막이 나버렸다.

    빠각-

    인호의 주먹이 남자의 얼굴 정중앙에 틀어박힌다.

    찢어질 듯 비명을 내지르는 남자.

    인호는 한 톨의 자비도 필요 없다는 듯 남자에게 가학적인 폭행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팔과 다리가 하나씩 박살 나고 갈비뼈도 몇 대나 부러진다. 이빨은 남은 것보다 입 밖으로 튀어 나간 것이 더 많았다.

    “인호 씨. 그만 하세요. 그러다 죽어요.”

    정재훈의 외침이 들린 후에야 인호가 폭행을 멈췄다.

    인호가 천천히 몸을 돌린다. 그의 얼굴과 상체는 땀으로 번들거리고 있다.

    정재훈은 인호의 몸에 새겨진 검은 문양들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본다. 평소 인호의 행동을 떠올려 볼 때 문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줄 알았다.

    “다 사연이 있는 겁니다.”

    “아, 네. 그렇겠지요.”

    인호가 와이셔츠와 정장을 입는다.

    “이제 다 끝난 거죠?”

    “네. 다 끝났어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긴다. 인호의 등에 대고 정재훈이 크게 외친다.

    “오늘 수고하셨어요. 인호 씨 아니었으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을 거예요.”

    인호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손을 흔든다.

    * * *

    서울역 지하도.

    인호는 벽에 기댄 채 중얼거리고 있다.

    “복수가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네요.”

    옆에는 종이컵에 소주가 한가득 따라져 있다.

    “중국까지 가서 복수해주려고 했는데 거기 이미 망했데요.”

    인호가 남은 소주를 병나발 분다.

    “크흑-. 그러니까 편히 쉬어요.”

    인호가 환하게 웃는다.

    “그래도 영감님 덕분에 어렸을 때 조금은 덜 외로웠어요. 내가 이 말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인호가 몸을 일으키더니 종이컵에 담긴 소주를 보며 중얼거렸다.

    “고마웠어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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