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55화 (55/190)

제55화

극락 흥신소 사무실에 정재훈 검사와 손님들이 방문했다.

“이렇게 보니 반갑네.”

정재훈 검사의 옆에 서서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남자는 바로 박경수였다.

“경수 씨는 새롭게 생긴 특별수사 5부에 특별채용되었습니다. 앞으로 함께 할 일이 많으니 인사할 겸 함께 왔습니다.”

“했던 일은 묻고 가는 겁니까?”

“일단은요. 최우민 그 사람 파고들어 보니 지은 죄가 아주 많아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를 죽인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만……. 일단 증거가 없잖아요. 살인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여기 있는 우리뿐이고요. 국가를 위해 일하며 사죄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윗사람들의 허락을 구했는지는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일단 정재훈부터가 누군가 염라대왕이 직접 고른 인물이다. 연쇄 살인마를 특별채용한다고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오상근인지 하는 경찰은 구속되었습니다. 꽤 오랫동안 국가시설 신세를 져야 할 겁니다.”

“순리대로 되었네요.”

인호가 박경수를 보며 묻는다.

“날 원망하지는 않고?”

“아니에요. 오히려 감사하죠. 제가 그동안 누날 위한다며 몹쓸 짓을 많이 했어요. 감사합니다.”

박경수의 누나 박예진은 인호의 도움으로 가야 할 곳으로 가게 되었다.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머니와 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 주었다.

동생이 범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이승에서의 한도 풀고 혼자 남은 할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도 할 수 있었기에 박예진은 환하게 웃으며 떠나갈 수 있었다.

“커피들 드세요.”

이민정이 커피를 타온다.

“매번 민정 씨에게 신세만 지네요.”

“호호, 신세는요. 우리들이 남인가요?”

정재훈이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자 이민정이 웃으며 말한다.

“팀이잖아요. 팀.”

“아-, 그렇죠. 우리는 팀이죠.”

인호의 도움으로 정재훈이 사건을 해결하게 되면 서로 득이 된다. 정재훈은 성과를 쌓을 수 있고 인호는 그에 상응하는 금전적인 보상을 받는다.

이번 도깨비 사건을 처리한 후 인호가 받은 보상은 3천만 원이다. 사건의 크기에 비해 큰 금액은 아닐지라도 이전이라면 한 푼도 받지 못했을 무보수 일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극락 흥신소 유지에 큰 도움이 되었다.

“점심시간 다 됐는데 함께 식사나 하시죠.”

“그럴까요?”

정재훈의 제안으로 모두가 일어나 나가려 할 때였다.

벽을 뚫고 들어 온 사기꾼이 인호를 향해 고개를 까딱거린다.

“아무래도 식사는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네요.”

정재훈과 일행이 사무실을 떠나자 인호가 묻는다.

“무슨 일인데?”

“서울역 왕초 할배한테 문제가 생겼어.”

“왕초 할배? 갑자기 무슨 문제?”

“일단 가 보자.”

* * *

서울역.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구석진 곳에 인호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인호의 옆에는 노인 망령이 앉아 있었는데, 그 푸른빛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정말 말 안 할 거예요?”

망령은 히죽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할배!”

“이놈아 시끄럽다. 나 귀 안 먹었어.”

왕초 할배.

서울역에 머무는 망령들의 우두머리 같은 존재다. 기운이 강해서 왕초가 된 것은 아니었다. 서울역에서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기에 망령들이 대우해 주는 것이다.

왕초 할배는 지금 실시간으로 존재가 소멸하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더 지나면 왕초 할배의 영은 완전히 소멸하고야 말 것이다.

“말을 해야 해결법을 찾을 것 아니에요.”

“칠십 년 넘게 왕초 노릇했으면 됐어. 이 자리 노리는 녀석들도 많고.”

“설마 짱돌하고 멍게가 무슨 짓이라도 한 거예요?”

“에끼 이놈아. 그놈들이 뭘 한다고 내가 당하겠냐?”

“하긴 그래요. 할배가 괜히 왕초가 아니니까.”

오랜 세월 이승을 떠돌았다는 말은 기운도 기운이지만 경험이 많다는 이야기였다.

이제 망령생 30년이 조금 넘은 이인자 격인 짱돌이나 멍게가 왕초 할배를 이렇게 만들 순 없었다.

“그러니까 왜 그러는데요?”

“하아-. 말은 하긴 해야겠지?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있는 망령들 모조리 내 꼴 날 테니.”

그 뒤로 왕초 할배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한 달 전쯤부터 서울역을 찾는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밤 11시면 어김없이 나타나서는 서울역 노숙자들에게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준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교회에서 와서 그런 일 많이 하니 그런 줄 알았지.”

“그 사람들도 교회 사람들이에요?”

“종교인인 건 맞는데 교회는 아니야. 진실교라는 곳이야.”

“진실교요?”

“그래. 자기들이 모시는 신이 세상의 진실을 알려준다나? 아무튼 그 녀석들이 서울역에 출입한 후에 여기 사는 녀석들이 자꾸 없어지는 거야.”

“망자 말고 노숙자들이요?”

왕초 할배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알아봤지. 망령들의 귀는 언제나 활짝 열려있으니까. 그 진실교인지 하는 종교의 교인들이 노숙자들에게 편하게 일하고 돈 많이 버는 직업을 소개해 준다고 했다더라.”

“좋은 일이네요.”

“크크, 그렇지.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 일주일 전인가? 보름 전에 그놈들 말 듣고 서울역 뛰쳐나간 녀석이 돌아왔어. 거의 숨만 붙어서 왔지. 그리고 아주 무서운 이야기를 했어.”

진실교.

종교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온 이들의 정체는 놀랍게도 장기 밀매 조직이었다.

“없어져도 아무도 신경 안 쓰는 노숙자들을 노린 거야. 장기 뽑아내기 전에 휴대폰도 개통하고 통장도 만들게 하고 그런다더라.”

대포폰과 대포통장, 그리고 장기 밀매.

어떤 이야긴지 그림이 그려진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게 할배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왕초 할배의 말대로 무서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건 살아 있는 사람들의 문제였다.

왕초 할배가 이런 지경이 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너도 알잖아. 서울역은 인생 막장까지 간 녀석들의 마지막 안식처야. 여기 있는 놈들 중에 사연 없는 놈 없다.”

“잘 알죠. 할배도 그 중 하나였고요.”

“크크, 그렇지. 그런데 쳐죽일 놈들이 그런 사람들에게 몹쓸 짓을 하잖아. 그래서 참견을 좀 했어.”

“대체 왜 그러셨어요.”

망령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참견을 하면 나쁜 기운이 쌓이게 된다. 그러한 일을 반복하다 악령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녀석들 중에 이상한 녀석이 있더라고.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었어. 이상한 부적을 나한테 던졌는데 그걸 맞으니 이렇게 됐네.”

“부적이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면 중국이겠네요.”

부적술의 원류는 중국이다.

망령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줄 정도의 부적을 사용할 정도라면 흔히들 말하는 ‘도사’일 것이다.

인호가 답답한 듯 한숨을 토해내며 말한다.

“지금이라도 차사 따라가세요.”

“싫다. 이놈아. 가봐야 상제께서 너무 늦게 왔다고 지옥에 보내지 않겠냐. 그냥 이대로 지워지는 것이 낫지.”

“하지만…….”

“나도 알아. 영의 소멸이 어떤 의미인지.”

영이 소멸하게 되면 모든 것이 끝나게 된다.

“인호야.”

“말해요.”

“내가 네 아버지한테도 부탁을 안 했거든.”

“그러면 나한테도 하지 말아요.”

“버르장머리 없는 건 어떻게 나이가 들어도 고쳐지지를 않아.”

“그냥 이렇게 살다 죽을래요.”

왕초 할배는 대화를 시작할 때보다 더 희미해져 있었다. 점멸하는 시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는 뜻이다.

“네 아버지 죽고 한동안 여기 지냈을 때 기억나냐?”

“그때를 어떻게 잊어요. 제 인생 최악의 시절이었는데.”

아니다.

그때 왕초 할배가 없었다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왕초 할배는 혼자 남게 된 인호를 위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건 어린 시절의 인호에게 큰 위로가 되었었다.

인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짜식. 울기는.”

왕초 할배가 인자하게 웃는다.

“그래서 뭔데요.”

“그 녀석들 좀 어떻게 해줘. 노숙자들도 노숙자들이지만 그 독사 같은 놈이 망령들까지 해코지 할까 봐 걱정이야.”

“그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요. 다른 건요?”

왕초 할배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져 간다. 아니, 몸 전체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이제 정말 마지막 때가 온 것이다.

“인호야.”

인호가 왕초 할배를 바라본다. 왕초 할배는 힘겹게 손을 들어 인호의 얼굴을 쓰다듬고는 말한다.

“결혼해라. 그리고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아.”

점점 흐려지다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왕초 할배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 허공에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 흐른다.

- 널 만나 행복했다.

“으아아아악-!”

고개를 숙인 인호가 가슴속의 응어리를 토해낸다. 눈에서는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다.

고개를 든 인호가 눈물도 닦지 않고 말한다.

“다 들었지? 어떤 새끼들인지 알아봐.”

* *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커피?”

“네.”

정재훈이 커피 두 잔을 내려 한 잔을 인호 앞에 내려놓는다. 인호는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정재훈은 그런 인호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인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또 평소와 달리 아무런 연락도 없이 찾아왔다.

“대포폰, 대포통장, 장기 밀매.”

인호가 입을 뗀다.

정재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변한다.

“진실교라는 곳이 있다고 하네요.”

“진실교.”

정재훈이 곧바로 휴대폰으로 검색한다. 하지만 검색되는 것이 없다.

“이야기를 듣기 전에 한 가지만 약속해 주세요.”

“말씀하세요.”

“딱 한 놈. 딱 한 놈은 제가 직접 처리합니다. 나머지 놈들은 검사님이 알아서 하세요.”

직접 처리한다는 말에 정재훈이 움찔한다. 인호의 기세가 너무 사나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십시오.”

함께 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정재훈은 인호라는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인호가 이런 반응을 보일 때는 그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을 것이다.

“서울역 노숙자들을 상대로 좋은 직장 소개해 준다고 하고는 대포폰, 대포통장 만들고 장기 적출까지 한다네요.”

“미친-.”

“한 달 전부터 서울역 드나든다고 하는데 이미 다른 지역 노숙자들도 많이 당했을 확률이 높아요.”

정재훈은 인호의 이야기를 모두 기록한다.

“확실하지 않지만 중국 쪽하고 연관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

망령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줄 정도의 부적을 그릴 수 있는 도사는 인호가 아는 바로는 한국에 두 명뿐이었다.

한 명은 현학 거사라 불리는 김명운이고 다른 한 명은 인호와 형님, 동생하는 사이였다.

두 사람이 이런 일을 벌였을 리는 없었다.

“어떻게 알게 됐냐는 질문은 의미 없겠죠?”

정재훈이 기록한 종이를 접어 품속에 챙긴다.

“검사님은 검사님대로, 저는 저대로 알아보죠.”

“알겠습니다.”

인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재훈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후 문을 향해 걸어간다.

막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정재훈의 말이 들린다.

“많이 힘들어 보이세요. 가끔은 짐을 누군가와 함께 나눠지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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