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화
청년, 박경수가 주위를 살핀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딱 보니 평범한 것 같지는 않은데? 너도 알고 있지? 내가 너보다 강하다는 걸 말이야.”
박경수가 한숨을 내쉰다.
“정민이 형.”
안쪽에서 누군가 카운터로 다가온다. 박경수보다 한두 살 많아 보이는 남자다.
“저 잠시 밖에 좀 나갔다 올게요.”
“오케이. 오늘 네 시간 공짜?”
“네. 라면도 하나 드릴게요.”
“굿!”
박경수가 인호를 보며 말한다.
“나가서 이야기하죠.”
박경수는 인호와 이민정을 피씨방 근처의 커피전문점으로 데리고 갔다. 가장 안쪽 손님이 없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아-, 도깨비 이야기하시는 걸 보니 다 알고 오신 것 같네요.”
“다 아는 건 아니고. 지금부터 알아가려고.”
이민정이 주문한 음료를 들고 온다.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하자고. 이건 내가 살게.”
“어떤 이야기가 듣고 싶으세요?”
“전부 다.”
박경수가 빨대로 커피를 휘휘 젓고는 갈증이 나는지 벌컥벌컥 마신다.
“그 새끼들 다 벌 받아야 할 새끼들이에요.”
“어째서?”
“누나. 우리 누나. 최우민 그 개새끼가 죽였어요. 강간하고 들킬까 봐 자살한 것처럼 위장했어요.”
“세 사람은 그걸 아는데 입 닫고 있었고?”
“네. 할머니가 누나가 자살한 게 아니라고 제대로 조사해 달라고 경찰서 매일 찾아갔어요. 그런데 그 세 사람이 증인으로 나서서 최우민의 알리바이를 증명했어요.”
“그게 사실일 수도 있잖아.”
“아니요.”
박경수가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제가 봤어요.”
인호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사고 당시 박경수의 나이는 열한 살이었다. 애초에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않으셔도 돼요. 누나를 통해 본 거니까요.”
“누나를 통해 봐?”
“네. 최우민을 누나를 강간할 때 그 새끼들은 구경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침묵했죠. 최우민이 무서웠으니까. 자기들이 다니는 회사의 사장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근처에서 최우민의 힘은 막강하니까요.”
인호는 커피를 마시며 박경수의 말을 듣기만 했다.
박경수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갔기에 동네 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것이 도깨비인 척해도 당한 사람들이 박경수를 알아보지 못한 이유였다.
복수의 감정을 숨기고 있다 작년에 성인이 된 후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내가 정말 궁금한 게 있거든.”
“말씀하세요.”
“도대체 어떻게 한 거냐? 너한테 당한 사람들에게 아무런 흔적도 없었거든. 네가 누나의 힘을 빌렸다면 망자의 기운이 남아 있었을 텐데 말이야.”
인호가 가장 궁금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전 귀신들을 볼 수 있어요.”
“그건 알고 있고.”
박경수의 귀문이 열려있음은 피씨방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박경수의 귀문은 이민정보다 더 넓었다. 최근까지 계속 망령들과 교류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귀신을 만질 수도 있어요. 귀신을 만지면 그 귀신이 가진 기억을 볼 수 있어요. 그리고 미약하긴 하지만 귀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어요.”
“하하. 하하하하. 그게 말이 돼? 아니, 말이 되는구나. 네가 처음도 아니고.”
아버지가 남긴 기록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 Soul intervener, 영혼 간섭자. 영혼 간섭자들은 영혼의 기억을 읽고 그들의 힘을 일부 사용할 수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영혼의 힘은 금방 사라진다.
아버지가 미국에 갔을 때 만났던 이와 관련된 기록이다. 인호는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아버지가 기록을 해 두었으니 거짓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영혼 간섭자를 눈앞에 두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박경수에게 당한 세 사람에게서 아무런 기운도 느낄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분명 망자의 힘이긴 한데 그 힘을 살아있는 박경수가 사용하였기에 기운이 희미해지거나 사라진 것이다.
“제 말을 믿으세요?”
“못 믿을 이유가 없잖아. 일단 나부터가 보통 사람들은 믿지 못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인호가 커피로 입을 축인 후 말을 잇는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복수를 끝마쳤잖아.”
“네. 다시 서울로 가려고요. 피씨방도 어제 부동산에 내놨어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왜 말 안 하세요?”
“무슨 말?”
“저 사람 죽였잖아요.”
“네가 안 죽였으면 내가 죽였을 거야.”
“하-, 그게 말이 돼요? 사람이 죽었잖아요.”
“그래서 내가 널 경찰에 신고라도 하리?”
인호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법. 준수해야지. 그런데 자기가 가진 힘, 권력으로 그 법을 이용하는 새끼들은 당해도 싸. 그게 내 지론이야. 네가 한 일 분명 나쁜 짓이지. 하지만 그건 보통 사람들 기준이고. 내 기준은 아니야.”
인호가 손을 흔들며 몸을 돌린다.
“간다.”
커피전문점 밖으로 나오자 이민정이 묻는다.
“정말 이대로 가도 돼요? 살아 있는 사람의 문제는 정 검사님에게 맡기기로 했잖아요. 이러다 부장님한테 혼나요.”
인호가 고개를 돌려 커피전문점 안을 바라본다. 박경수는 아직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저 녀석 못 끝내.”
“네?”
인호가 걸음을 옮기며 말한다.
“아직 하나 남았잖아.”
* * *
오상근은 오랜만의 지구대 회식에서 제법 많은 술을 마셨다. 지구대장이라는 직책 때문인지 경찰들이 잘 보이려 따라주는 술을 계속 받아 마시다 보니 얼큰하게 취했다.
최근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자신의 뒤를 봐주던 최우민이 죽고 그의 꼬봉처럼 행동하던 세 사람이 이상한 일을 겪었다.
“씨발. 요즘 세상에 도깨비가 어디 있어? 다 쇼하는 거야. 나 겁주려고 말이지.”
회식 장소에서 집까지 거리가 멀지 않아 걸어가고 있었다.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가며 오상근이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씨발. 가로등 고치라고 한 게 언제인데 아직도 안 고쳤어. 공무원 새끼들이 태만하니 나라가 이 꼬라지지.”
골목길이 제법 길었지만, 가로등은 중간에 딱 하나뿐이었다. 오상근이 막 가로등을 지나칠 때였다.
- 오 서방 씨름 한 번 하지.
오상근이 몸을 휙 돌린다.
나이가 들긴 했지만, 반평생 경찰로 지내던 사람답게 몸놀림이 민첩하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다가와서 가로등 불빛 아래에 선다.
“너는…….”
어디선가 본 얼굴이다. 기억을 더듬던 오상근이 ‘아’하며 탄성을 토해낸다.
“피씨방?”
동네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들어오지 않는다는 신고를 받아 조사를 하던 중 찾아갔던 피씨방의 사장이었다.
박경수가 히죽 웃으며 말한다.
“잘 아네. 오 서방. 우리 씨름 한 번 해야지?”
“무슨 개소리야? 아-, 너구나. 도깨비 노름하고 있는 새끼가. 야, 너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그리고 겁도 없이 내 앞에 나타나? 내가 누군지 몰라?”
“잘 알지. 비리 경찰 오 서방 아닌가?”
“비리 경찰? 뭔 개소리야?”
“그게 무슨 말인지는 본인이 더 잘 알잖아. 오 서방. 그간 최 서방한테 많이 받아먹었지? 그런데 어쩌나 최 서방이 죽어 버렸으니 이제 뒷돈 받을 곳도 없네?”
오상근의 눈이 가늘어진다.
“네가 죽였냐?”
“죽여? 나는 씨름 한 번 했을 뿐이야. 그리고 이겼지. 내기를 걸었는데 아마 건 것이…….”
박경수가 씨익 웃으며 말끝을 흐린다.
“목숨이었지?”
“이런 개새끼가!”
오상근이 박경수에게 달려든다. 박경수는 자세를 낮춰 오상근의 주먹을 피하며 안으로 파고든다. 오상근의 허리띠를 턱 잡은 박경수가 말한다.
“씨름 시작. 내기에 걸 것은 당연히 오 서방 자네 목숨이야. 그러니 잘해.”
박경수가 두 손을 바짝 끌어당긴다. 비쩍 마른 몸인데 어찌나 힘이 센지 덩치가 큰 오상근이 와락 끌려온다.
“쉬워, 쉬워.”
바깥쪽에서 다리를 거니 오상근이 벌러덩 넘어진다.
“크크, 오 서방. 내가 이겼네?”
“미, 미친 새끼야. 저리 가.”
“우리 내기했잖아.”
“나는 내기한 적 없어.”
“괜찮아. 동의를 구하는 내기는 아니었거든.”
박경수의 눈에서 푸른 빛이 번쩍인다. 그가 손을 뻗어 오상근의 목을 움켜쥐려 할 때였다.
“거기까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박경수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린다.
낯익은 얼굴.
낮에 만났던 인호가 다가오고 있었다.
“씨발.”
박경수가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오지 말아요.”
“왜? 죽이려고?”
“당연하잖아요. 이 새끼가 어떤 새낀지 알아요?”
“잘 알지.”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강간당한 네 누나 시체를 할머니가 보자고 하니 시간 끌면서 강간 흔적 없앤 새끼잖아.”
“그게 무슨…….”
빠각-
오상근이 무슨 말인가를 하려 할 때 박경수가 주먹으로 얼굴을 내리친다.
“알면서 그래요?”
“알아도 생목숨 끊기는 걸 구경만 할 수는 없잖아. 경수야. 너 할 만큼 했어. 그러니 그만하자.”
“뭘 그만해! 나하고 할머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우리 누나, 착하고 예쁜 우리 누나가 왜 죽어야 했는데! 왜 짐승만도 못한 놈에게 강간당하고 죽어서도 이상한 소문에 휩싸여야 하는데!”
“분하지. 억울하지. 죽이고 싶지. 다 이해해.”
“아니. 당신은 이해 못 해.”
“그래. 다는 이해 못 하겠지. 하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해. 지금까지 내가 만난 수많은 망령들. 사연 없는 이가 하나 없다. 그중에는 너보다 더 억울한 일 겪은 망령들도 있었지. 그래서 다는 아니라도 조금은 이해해. 그러니까 그만하자.”
박경수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그만 못해. 알잖아요. 그만두기에는…….”
박경수가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 오상근을 보고는 인호에게 고개를 돌린다. 처연하게 웃고 있는 박경수를 보며 인호가 쓰게 웃는다.
“너무 멀리 왔잖아요. 그래서 안 돼요.”
그 순간이었다.
“경수야.”
박경수가 흠칫 몸을 떤다.
인호의 뒤에서 왜소한 체구의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다.
“우리 강아지.”
박경수의 할머니였다.
“할머니. 여긴 왜 왔어!”
“우리 강아지 있다고 해서 왔지. 경수야. 이제 그만해. 이제 할 만큼 했잖아. 네가 사람 죽이고 범죄자가 되면 죽은 예진이도 슬퍼할 거야.”
“할머니는 아무것도 몰라. 누나가 얼마나 힘들어하는데.”
인호가 한마디한다.
“박경수. 그건 네 핑계잖아. 오히려 너 때문에 누나가 힘들지.”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 영혼 간섭자에게 힘을 준 영혼은 점점 기운을 잃어간다. 접촉이 잦아지면 영혼은 깊은 잠에 빠져든다. 그리고 결국 영혼은 소멸하게 된다.
아버지의 기록이다.
“너 계속해서 누나의 힘을 쓰면 결국 네 누나는 저승에도 가지 못하고 영혼이 소멸하게 돼. 그건 알고 하는 짓이냐? 지금도 네 누나 계속 자고 있지?”
“…….”
박경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할머니가 박경수에게 다가간다. 박경수의 손을 꼭 쥔 할머니가 말한다.
“우리 강아지 수고했어. 우리 강아지 누나 참 좋아했는데 그렇지? 그러니까 인제 그만해.”
“할머니. 할머니 나는…….”
박경수는 할머니의 품에 안겨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하아-, 안타깝네요.”
인호의 곁으로 박갑수와 유 형사가 다가온다. 유 형사는 고개를 저으며 아쉬움을 토해낸다.
“그래도 전 제가 해야 할 일을 해야겠네요.”
뚜벅뚜벅 걸어간 유 형사가 오상근의 손에 수갑을 채운다.
“오상근 씨 당신을 뇌물수수, 증거인멸, 살인방조 등의 혐의로 현장에서 긴급 체포합니다. 당신은…….”
박갑수가 인호의 어깨를 두드린다.
“수고 많았다.”
인호가 쓰게 웃으며 몸을 돌린다.
“수고는 저 도깨비가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