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53화 (53/190)
  • 제53화

    인호가 심각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이번에는 목숨까지 빼앗았군.”

    박갑수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유 형사.”

    “네.”

    인호의 호출로 서울에서 내려 온 유 형사가 다가온다.

    “뭐래?”

    “타살의 흔적이 조금도 없다고 합니다.”

    인호의 시선이 머무는 곳.

    한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용서를 비는 듯한 모양새였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저 남자가 바로 최우민이었다.

    “가시죠.”

    인호가 일행을 이끌고 그들이 묶고 있는 숙소로 이동한다.

    “이게 무슨 일이래요? 갑자기 지방 가신다고 해서 여행이라도 가시는 줄 알았죠.”

    “내 팔자에 여행은 무슨.”

    유 형사의 말에 인호가 피식 웃는다.

    “서울은 안녕하고?”

    “소장님이 하루 비웠다고 무슨 일이 생길 리가 없지 않습니까.”

    “유 형사.”

    “네. 말씀하세요.”

    “이쪽 경찰 통해서 뭔가 알아낼 수 있을까?”

    경찰들이라고 해서 아무 곳에서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관할이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자칫 업무 침범이 될 수 있는 민감한 사항이다.

    “정 검사님께 전화 한 통 드리면 간단합니다. 뭘 알아볼까요?”

    “도깨비들하고 씨름했다는 세 사람, 그리고 오늘 죽은 최우민이라는 사람에 대해 좀 알아봐. 그리고…….”

    인호가 박갑수를 바라본다.

    “이 동네에서 벌어졌던 이상한 일이 없는지 알아봐 주세요.”

    “기간은?”

    “아주 오래전이라도 상관없어요. 기왕이면 범죄 쪽으로 알아봐 주세요.”

    “뭔가 집히는 게 있구나?”

    “일단 좀 알아보고요.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 * *

    인근 지역을 관할하는 경찰서에서 유 형사가 나온다.

    “치사하게 혼자 커피를 드시다니요.”

    인호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유 형사에게 준다.

    “뭐래?”

    “일단 최우민이라는 사람은 이 지역의 유지에요. 돈도 많고 회사를 경영하는데 인근 주민들이 그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그 세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평판은?”

    “세 사람의 평판은 그냥 평범해요. 그냥 직장생활 열심히 하는 중년 가장? 그런데 최우민이라는 사람이 조금 이상해요.”

    “이상하다?”

    유 형사가 커피를 뽑아 인호의 앞에 앉는다.

    “보통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백퍼센트 좋은 말만 나오지 않거든요.”

    “그게 정상이지.”

    “그런데 최우민 그 사람은 모두 좋은 말뿐이에요.”

    “경찰들이?”

    “네. 이런 경우는…….”

    “주기적으로 약을 쳤다?”

    유 형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죠.”

    최우민이 지역 경찰들에게 뒷돈을 주었다는 뜻이다.

    “아시잖아요. 아무리 지역 유지고 사업체 경영하고 있어도 적이 없을 수 없어요.”

    “오히려 적이 많지. 왜? 사람은 욕심이 많은 존재니까.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 내 윗사람에게 항상 불만을 품게 되어 있어.”

    “내 말이요.”

    “유 형사. 이런 작은 동네에도 폭력 조직이 있으려나?”

    “흐음, 거창하게 조폭까지는 아니더라도 농두렁건달은 있겠죠.”

    “논두렁건달?”

    “지역 사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조직이에요. 동네 친구들끼리 어울려 사고 좀 치고 다니다 커서 건달 행세를 하는 거죠.”

    “걔들도 이권 다툼하고 그래?”

    유 형사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소장님 대도시도 이권 다툼이 심하지만 시골도 장난이 아니에요. 시골 번화가가 크진 않아요. 그런데 시골 사람들 씀씀이가 상당히 커요. 대부분 땅부자들이거든요. 시골에 다방이 많은 이유가 다방 래지들이 땅부자 홀아비들 유혹해 팔자 고치려고 하는 거예요. 아무튼 시골이라고 무시하면 안 돼요.”

    “오케이. 유 형사. 조금 전 말한 논두렁건달인지 하는 놈들 좀 파봐. 그 녀석들한테 최우민에 대해서 알아보자고.”

    “네, 소장님.”

    * * *

    박갑수는 노인정에서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탁-

    “아이쿠, 빡이네.”

    “흘흘, 우리 박수께서 못하는 것도 있으셨고만.”

    머리카락이 몇 올 남지 않은 할아버지가 빡한 것을 쓸어가며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린다.

    “낫다. 청단에 피 3점이니까 6점. 우리 박수님은 피박.”

    “하하. 역시 어르신들한테는 안 되네요. 제가 어디 가서 고스톱 쳐서 돈 잃고 그러는 사람 아닌데. 비밀인데 제가 타자거든요.”

    박갑수가 천이백 원을 건네며 웃는다.

    “우리 박수님이 타자셨네. 순옥아. 오늘 우리가 타자 돈 좀 따보자.”

    할아버지의 맞은편에 앉은 할머니가 ‘좋지’하며 추임새를 넣는다.

    “박수님. 막걸리 한잔해.”

    고스톱을 치지 않는 할머니 한 분이 놋 주발에 막걸리를 가득 담아 건넨다.

    “감사합니다. 이야, 이 김치 맛있겠네요.”

    박갑수는 막걸리를 단숨에 비우고 김치를 쭉 찢어 입에 넣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고스톱을 치며 박갑수가 은근한 투로 묻는다.

    “어르신들. 혹시 이 마을에 이상한 일이 벌어진 적 없었나요?”

    “이상한 일? 뭔 일?”

    “그냥 이상한 일이요. 막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일 있잖아요.”

    박갑수에게 막걸리를 주었던 할머니가 은근한 투로 말한다.

    “이상한 일 나 알아.”

    “어떤 일이요?”

    “저기 윗동네 순자네 집에 개를 키우는데 그것이 암컷이야. 그런데 매일 집안에서 키우는데 어느 날 깜순이가 새끼를 뱄잖어. 어때? 이상하지?”

    “하, 하하. 이상하네요. 그런데 그런 일 말고 다른 일은 없을까요? 예를 들자면…….”

    박갑수가 말끝을 흐리자 노인정에 있는 노인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인다.

    “누군가 죽었다던가 하는 그런 일이요?”

    “사람 죽는 일이 뭐 대단하다고. 지난달에도 달수 그 친구 갔잖아.”

    “그렇게 죽는 거 말고요. 이상하게 죽는 거요.”

    이상하게 죽는다.

    박갑수는 자기가 말을 하고도 이상한지 어색하게 웃는다.

    “우민이처럼?”

    “그렇죠.”

    “글쎄. 동네가 워낙 작아서 그런 일이 별로 없는데?”

    그때 언제 노인정으로 들어왔는지 할머니 한 분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없긴 왜 없어!”

    농사일을 하다 왔는지 할머니 손에는 호미가 들려있었다. 할머니를 본 노인들이 ‘아’하며 탄성을 토해낸다.

    조금 전 고스톱에서 돈을 딴 할아버지가 은근한 투로 말한다.

    “한 10년 됐나? 저기 성격 더러운 할망구 손녀가 있었는데 말이야.”

    * * *

    시내에 몇 없는 모텔 중 시설이 가장 깨끗한 곳이 인호와 일행들의 숙소였다.

    “자, 다 됐다. 드시죠.”

    이민정이 족발과 순대, 떡볶이 등을 정리한 후 말한다.

    인호와 박갑수, 유 형사가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앉는다. 이민정은 앞에 놓은 종이컵에 소주를 채워준다.

    “유 형사. 뭐 좀 건진 거 있어?”

    “동네에서 노는 놈들 좀 만나봤어요.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죽은 최우민하고 사고당한 세 사람이 동갑내기 친구더라고요.”

    “그래?”

    “네. 최우민이 어린 시절부터 대장 노릇을 했나 봐요.”

    “집에 돈이 많으니까.”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고 했다. 가뜩이나 좁은 지역 사회에서 집에 돈이 많은 것은 아주 큰 권력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동네 주민들 중 최우민의 집에 아쉬운 소리 하지 않은 집이 없을 것이다.

    “커서도 세 사람은 최우민의 회사에서 근무를 했어요. 친구가 사장이어서 그런지 세 사람 모두 부장 소리 듣고 있더라고요. 시내 룸에서 일하는 어깨 녀석 하나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네 사람이 몰려다니면서 나쁜 짓도 많이 했더라고요. 나이 들어서도 룸이며 노래방이며 다녔고요.”

    돈이 많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경찰들은 평이 좋은데 그 녀석은 아니라고 했다는 거지?”

    “그렇죠.”

    박갑수가 소주를 마신 후 말한다.

    “동네 노인정에서 고스톱을 치면서 좀 물어봤는데.”

    동네에 벌어진 일을 알아내기 위해 노인정만큼 좋은 장소가 없다.

    “좀 오래되긴 했는데 이상한 일이 있었더라고. 한 10년 전쯤에 박예진이라고 이 동네 살던 여고생이 죽었어. 나무에 목을 맸다더라.”

    “여고생이 목을 매요?”

    “경찰이 와서 확인하고 자살이라고 했데. 그런데 죽은 애 할머니가 자기 손녀는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는 거야. 그러면서 손녀 시체를 봐야겠다고 했대.”

    “경찰에서 거부했고?”

    “거부했다기보다 시간을 좀 끌었나 봐. 그때 그 일 담당했던 경찰이 지금 지구대장이야. 할머니는 지금도 손녀가 자살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어.”

    “할머니를 만나 보셨어요?”

    박갑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들 내외가 교통사고로 죽은 후에 손자, 손녀를 키우셨어. 죽은 예진이가 큰 애고 둘째인 사내 녀석은 나이 차이가 좀 났나 봐.”

    인호가 소주를 마시고는 인상을 찌푸린다.

    “뭔데? 이제 이야기해 줄 때도 됐잖아.”

    “그냥 이상하잖아요. 도깨비인 척하는데 도깨비는 아니에요. 당한 사람들을 보면 뭔가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서요. 눈, 귀, 입을 빼앗았어요. 그리고 최우민인지 하는 놈은 무릎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죽었죠.”

    유 형사가 끼어든다.

    “잘못을 비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 사죄하는 것처럼.”

    족발을 우물거리던 박갑수가 중얼거리듯 말한다.

    “예진이가 죽었어. 그런데 자살이 아니야. 범인은 최우민? 세 명의 친구는 그 범죄를 알고 있다고 한다면.”

    박갑수의 말을 유 형사가 받는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않았네요. 진실을 외면한 거죠.”

    인호가 피식 웃는다.

    “이야, 추리력이 대단들 하세요.”

    인호가 잔을 앞으로 내민다.

    “내일 해야 할 일 알겠죠?”

    “전 지구대장 좀 파 볼게요. 시체를 바로 확인시켜 주지 않은 이유가 뭔지 알아보겠습니다.”

    “난 예진이 할머니하고 막걸리 한 사발 해야겠네.”

    “좋아요.”

    그때 이민정이 끼어든다.

    “그럼 난 뭘 할까요?”

    “민정이 니가 해야 할 일이 가장 중요하지.”

    “뭔데요?”

    인호가 그녀를 보다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떡볶이 국물이 튀어 있고, 순대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다.

    “청소?”

    * * *

    날이 밝자 인호는 이민정과 함께 차를 타고 이동했다.

    - 손자 이름이 박경수입니다. 나이는 스물하나. 지 누나가 죽던 해 열한 살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할머니가 서울로 올려보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내에서 피씨방 운영하고 있습니다.

    조사를 해준 것은 땡초를 통해 소개받은 흥신소의 유정우였다.

    차를 세운 인호가 고개를 위로 든다.

    ‘리벤지 PC방’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하, 하하. 재밌네.”

    “왜요?”

    “저걸 보고도 모르겠어?”

    이민정이 어깨를 으쓱한다.

    “리벤지. 복수라는 뜻이잖아. 뭔 피씨방 이름이 살벌하게 복수야?”

    “영어 잘하셔서 좋으시겠어요? 사기꾼 말 들어보니 일본어, 중국어도 잘하신다면서요?”

    “미안. 내가 좀 잘났지?”

    “흥이네요. 그런데 피씨방 이름이 복수인 건 조금 이상하긴 하네요.”

    “그래. 주인도 이상한지 들어가 보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서 내리니 바로 피시방 입구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손님이 많지 않았다.

    카운터에 마른 청년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사장님 되세요?”

    “아니요. 알반데요.”

    청년이 안경을 고쳐 쓰며 말한다.

    “아, 그래요? 사장님은 언제 출근하세요?”

    “저녁에 나오세요. 애들 학원에서 오는 것 보고 출근하시거든요.”

    “그렇구나. 그럼 조금 이따가 다시 와야겠네.”

    이민정이 밖으로 나가려 문을 열려 할 때 인호가 몸을 돌린다.

    “연기 좋네?”

    “무, 무슨 말이에요?”

    아르바이트생이 당황한 듯 말을 더듬는다. 인호가 그런 아르바이트생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니가 여기 사장이잖아. 그치, 경수야? 아니, 도깨비 씨라고 불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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