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52화 (52/190)
  • 제52화

    한 남자가 밤길을 걷고 있었다.

    술을 많이 마셨는지 심하게 비틀거렸다.

    잘 포장된 길이 아니라 흙길이다. 주변은 온통 논이다. 신기하게도 비틀거리면서도 두렁에 빠지지 않는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던 남자가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 김 서방. 우리 씨름 한 번 할까?

    “응?”

    누군가 말을 걸었다.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고는 몸을 돌린다. 다시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음을 떼려 할 때였다.

    “김 서방. 우리 씨름 한 번 할까?”

    “흐미!”

    남자가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는다. 한 남자가 좁은 논두렁 길을 막고 서 있다.

    “누, 누구야?”

    “나? 저기 윗동네 사는 박 서방이지.”

    “박 서방? 내가 윗동네 사람들 다 아는데? 그리고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서방 타령이야.”

    남자가 히죽 웃는다.

    “씨름 한 번 하자. 나한테 씨름 이기면 이거 줄게.”

    남자가 손을 들어 올린다. 그 위에는 반짝이는 금덩이가 올려있다.

    “그, 그거 금이야?”

    “당연히 금이지. 내가 뚝딱하고 만들었거든.”

    앉아 있는 남자는 금덩이를 쥔 남자를 바라본다. 딱 봐도 비리비리해 보인다.

    “씨름해서 이기면 그걸 나 준다고?”

    “그래. 어때? 김 서방. 나하고 씨름 한번 할래?”

    “좋아. 하자. 지고서 금 안 주면 안 돼.”

    남자가 씨익 웃는다.

    “줄 거야. 대신 김 서방이 지면 김 서방도 나한테 한 가질 줘야 해.”

    * * *

    “오랜만에 출장이로구나.”

    뒷자리에 탄 사기꾼이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민다.

    “얌전히 좀 있어라.”

    “그래. 가끔 이렇게 공기 좋은 곳도 오고 그래야 해. 매일 공해 심한 서울에만 있었더니 목이 따끔거린다니까.”

    다른 말을 하는 사기꾼을 인호가 어이없다는 듯 바라본다.

    “아니. 망령이 공해가 심하다고 목이 따가워?”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나저나 민정이 운전 잘하네.”

    “제가 원래 한 운전해요.”

    오늘 운전대를 잡은 것은 이민정이었다.

    계속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우겨서 운전대를 맡긴 것이다.

    “차가 좋아서 그런지 승차감이 아주 좋아요.”

    이민정이 환하게 웃는다.

    “그나저나 박박수가 왜 오라고 한 거야?”

    영감의 물음에 인호가 어깨를 으쓱한다.

    “언제는 이유 말하고 불렀나요.”

    계룡산 만신당의 박수무당 박갑수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어제 늦은 시간에 빨리 좀 와 달라고 전화가 왔었다.

    주차장에 차를 댄 후 걸어서 계룡산을 오른다. 그래도 만신당까지는 길이 잘 닦여 있어 그리 힘들진 않았다.

    만신당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인호를 반겼다. 인호가 가방을 열어 아이들을 위해 준비해온 선물들을 꺼내놓았다.

    “민정아. 아이들하고 좀 놀고 있어.”

    “네, 소장님.”

    이민정이 아이들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이 아이들 모두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다. 그녀도 지리산 만신에게 보내질 뻔했었다.

    “왔으면 냉큼 들어오지 거기서 뭐 하냐?”

    문이 열리며 박갑수가 보인다.

    “들어가려고 했어요.”

    안으로 들어가 박갑수 맞은편에 앉는다. 이제 막 우린 듯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가 앞에 있다. 인호가 도착할 시간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리라.

    “무슨 일로 우리 박박수께서 저한테 먼저 연락하셨을까요?”

    “보고 싶어서?”

    “거 되도 않는 농담을 하고 그러세요?”

    “왜? 나는 너 보고 싶으면 안 되냐?”

    “왜 불렀는데요?”

    박갑수가 후후 불며 차를 마신다.

    “일이 생겼어.”

    “직접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러니 불렀지. 여기서 멀지 않은 마을에 이상한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이상한 일이요? 망령하고 관련된 일이에요?”

    박갑수가 고개를 흔든다.

    “그랬다면 널 부를 일도 없었지.”

    박갑수는 망령 퇴치에 있어 인호가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도깨비.”

    “네?”

    인호가 잘못 들었다는 듯 박갑수를 바라본다.

    “잘 들은 것 맞아. 도깨비가 나타난 것 같아.”

    “거참. 최근 들었던 농담 중에 가장 재미있는 농담이었네요. 자-, 농담은 그만하시고 본론으로 들어가죠.”

    “농담 아니야. 진짜 도깨비야.”

    인호가 헛웃음을 짓는다.

    인호도 도깨비가 있는 것은 알고 있다. 아니, 있었다. 아버지가 남긴 기록에는 분명히 도깨비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활동할 당시 마지막 도깨비가 소멸 된 것으로 기록된 것을 보았다.

    “진짜 도깨비라고요?”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도깨비가 맞아. 씨름을 했다고 하더군.”

    “도깨비 씨름.”

    도깨비 설화는 아주 유명하다.

    술에 취한 사람이 고갯길을 넘어가다 도깨비를 만나 씨름을 한다. 밤새도록 엎치락뒤치락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빗자루나 도리깨가 옆에 있었다는 등의 설화다.

    “도깨비가 절 부를 정도의 일인가요?”

    도깨비는 장난기가 심하지만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하진 않는다. 동화 속에 간혹 나쁜 도깨비들도 등장하지만 진짜 도깨비는 그렇지 않다.

    그들이 소멸하게 되는 것도 나쁜 짓을 해 악업을 쌓은 이유가 아니라 깃들어 있던 빗자루 등의 물건들이 쓸모를 다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도깨비가 소멸한 이후 새로운 도깨비가 등장했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었다.

    도깨비가 원래 오래된 물건에 념이 깃들어 탄생하는 존재라지만 이상하게도 현대에는 도깨비가 등장하지 않았다.

    “그게-, 나도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야. 도깨비가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지. 그런데 이 도깨비는 이상해.”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씨름에 내기를 건다고 하더라고.”

    “내기요?”

    “처음 씨름을 한 사람은 말을 못 하게 됐다. 두 번째 사람은 앞을 보지 못하게 됐고. 최근에 당한 사람은 듣지 못하게 됐다더라.”

    “도깨비가 아니잖아요.”

    도깨비는 사람에게 무언가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나도 요괴를 의심하고 있긴 해.”

    요괴妖怪.

    요괴는 망령이 아니다.

    요사하고 괴기스러운 것이라는 말뜻처럼 동물이나 물건 등에 사념이 깃들어 영성을 얻게 된 존재다.

    요괴들은 더 강한 힘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요괴가 도깨비인 척 연기를 하는군요.”

    “그런 것치고는 당한 사람들에게서 기운이 느껴지질 않아. 너도 알겠지만 요괴건 도깨비건 특유의 기운이 남거든. 내가 그 기운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칠 사람도 아니고.”

    “그렇죠.”

    “그래서 하는 말인데.”

    “사람이 한 짓이라고 의심하시는 건가요?”

    박갑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악한 것이 몸을 차지하고 있는 누군가가 벌인 일인 것 같다고 생각은 하는데…….”

    확인은 해 봐야겠지만 인호 역시 박갑수의 생각과 같았다.

    “일단 한 번 봐야 할 것 같네요.”

    * * *

    가장 먼저 만나 본 사람은 처음 당한 말을 하지 못하는 남자였다.

    “도깨비를 만나셨다고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씨름을 해서 이기면 금덩이를 주겠다고 했다죠? 대신 지면 한 가지를 가져간다고 했고. 그래서 가져간 게 선생님 목소리고요.”

    남자가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히 듣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하다.

    “그때의 상황을 좀 설명해주실래요? 아-, 글로 적으시면 됩니다.”

    남자가 종이 위에 자신이 겪은 일을 쓰기 시작한다. 인호는 내용을 확인하며 남자를 유심히 살핀다. 박갑수의 말대로 도깨비나 요괴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남자가 적은 내용은 박갑수에게 들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제가 해결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최선을 다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후 인호는 보지 못하는 남자와 듣지 못하는 남자를 차례로 만났다. 모두가 똑같은 말을 한다. 도깨비가 씨름을 청했고 이기면 금덩이를 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도깨비가 원래 이래요? 어렸을 때 동화책으로 볼 때는 장난기는 심하지만 그래도 착하고 귀여운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탐문을 마치고 들른 식당에서 이민정이 말했다.

    “도깨비 아니야.”

    “네? 씨름했다면서요. 그 사람들도 다 도깨비라고 하잖아요. 주겠다는 금덩이도 금 나와라 뚝딱해서 만든 거 아닌가요?”

    “도깨비는 내기를 하지 않아. 고작해야 씨름하는 사람이 가진 술이나 떡 정도만 원한다고.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어.”

    인호의 집안은 벌써 4대째 이 일을 이어오고 있었다.

    인호의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할아버지, 아버지를 거치며 자기들이 겪었던 일 중 특이한 것들을 따로 기록해 둔 일지가 있다.

    그 기록들 어디에도 도깨비가 사람에게 이런 짓을 했다는 기록은 없었다.

    인호가 생각에 잠겨 있자, 이민정이 인호의 잔을 채워주며 화제를 돌렸다.

    “역시 술은 반주가 최고라니까요.”

    이민정이 소주를 마신 후 국밥을 한 숟가락 가득 퍼먹는다.

    “너 좋다는 남자들 많다고?”

    “그럼요. 제가 얼마나 인기 많은데요.”

    생긴 것만 보면 그럴 수 있다.

    “지금 이런 모습을 보면 참도 좋다고 하겠다.”

    “흥! 먹을 때 건드는 거 아니라고 했어요.”

    “아, 그렇습니까? 많이 드세요. 한 그릇 더 시켜 드릴까요?”

    “안 그래도 깍두기가 맛있어서 한 그릇 더 할까 고민 중이었어요.”

    인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고는 소주를 마신다.

    박갑수에게 들은 말, 그리고 오늘 만난 사람들에게 들은 말을 떠올려 본다.

    “입, 눈, 귀. 뭐지?”

    “입, 눈, 귀가 왜요?”

    “그냥 느낌인지 몰라도 신호 같단 말이야.”

    “신호요?”

    “그냥…… 느낌이야, 느낌.”

    * * *

    최우민은 술을 얼큰하게 마신 후 차에서 내린다.

    “사장님. 쉬십시오.”

    “수고했어.”

    기사에게 손짓을 한 최우민이 비틀거리며 대문을 향해 걸어간다.

    대문 안쪽으로 넓은 정원과 커다란 이층집이 보였다. 최우민의 집이었다.

    대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 최 서방. 우리 씨름 한 번 할까?

    갑자기 들려오는 음성에 최우민이 깜짝 놀란다.

    천천히 몸을 돌리니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이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인데 말라도 너무 마른 체형이었다.

    “누, 누구야?”

    “최 서방. 우리 씨름 한 번 할까?”

    “안 해!”

    최근 주변 마을에서 벌어진 기괴한 일을 최우민이 모를 리가 없었다.

    도깨비가 나타나 주민들과 씨름을 했고 씨름에서 진 세 명의 주민이 봉변을 당했다.

    자신은 금덩이에 혹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다. 아니, 오히려 돈이 아주 많은 편이었다.

    “아니. 최 서방. 넌 씨름을 해야 해.”

    “안 한다고! 도깨비고 뭐고 안 한다고!”

    남자가 씨익 웃는다. 그 웃음에서 섬뜩함을 느낀 최우민이 몸을 돌려 대문 손잡이를 돌렸다.

    턱- 턱-

    하지만 대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래봐야 소용없어.”

    “사, 살려 주세요. 누구 없어요! 도깨비가 나타났어요!”

    최우민이 큰소리로 외친다. 이 정도 소리라면 집에 있는 가족들이 들었을 것이다. 이제 조금만 시간을 끌면 경찰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소용없대도. 아무도 최 서방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 그리고 볼 수도 없지. 설혹 봤다고 해도 말을 할 수 없어.”

    “무, 무슨 소리야?”

    남자가 차갑게 웃는다.

    “무슨 소리긴. 최 서방은 나와 씨름을 해야 한다는 소리지.”

    0